§ 나는 될놈이다 277화
-크르륵…… 주인님이 화내신다?
“그래!”
-나, 침입자 믿지 않는다. 침입자 죽는다.
“날 안 믿어도 돼. 안에 가서 말이나 전하라고.”
-크릉. 크릉…… 알겠다. 침입자. 거기서 기다리고 있는다.
[혼신의 협박 스킬에 성공했습니다.]
[화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갈그랄이 돌아서서 들어가자, 태현은 순간 갈등했다.
‘그냥 은신 스킬로 따라붙어 버려?’
갈그랄도 지금 설득에 한 번 실패했는데, 이 성의 주인 악마는 더 설득하기 힘들지도 몰랐다.
‘참자. 남은 인원들도 다 데리고 가야 하니까.’
남은 교단 NPC들을 버리고 가기에는 이제까지 공을 들인 게 너무 아까웠다.
각 교단의 공적치 포인트들과 데메르 교단 퀘스트 보상까지!
후자는 그냥 나가도 받을 수 있겠지만 전자는 아니었다. 버리고 가면 분명히 깎일 공적치 포인트!
-침입자!
“?!”
태현은 깜짝 놀랐다. 분명 성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갈그랄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실패했나?’
이렇게 된 이상 무력 돌파를…….
-주인님께 무슨 말을 전해야 하는지 듣지 못했다.
“아.”
생각해 보니 그걸 잊고 있었다. 태현은 다시 갈그랄한테 말을 전달시켰다.
잠시 후, 갈그랄이 나오더니 말했다.
-침입자. 들어온다.
“네 주인이 뭐라고 안 하디?”
-침입자의 말을 들어보겠다고 하셨다.
갈그랄은 태현이 주인에 대해 건방지게 말하는 건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사실 그런 걸 신경 쓸 지능이 되지 못해서지만!
-킁. 침입자. 네게서는 불쾌한 기운이 느껴진다.
“……!”
태현은 순간 가슴이 덜컥거렸다. 설마 <아키서스의 화신>인 게 들킨 건 아니겠지?
지금 태현은 각종 스킬과 스탯, 그리고 <마르덴 후작의 살아 움직이는 가면> 아이템으로 정체를 숨기고 있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진작에 들켰을 신분!
“인간이라 그런 거겠지.”
-그런가. 아닌 것 같다. 저번에 봤던 인간은 이런 것 같지 않았다.
“네 기억이 맞다고 장담할 수 있어? 장담할 수 있냐고.”
태현은 고급 화술 스킬을 등에 업고 밀어붙였다. 그러자 갈그랄은 우물쭈물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갈그랄의 기억은 좋지 않다.
“거봐. 인간은 다 이런 거라고.”
-기억해 두겠다. 인간은 불쾌하다. 보면 죽여야 한다.
“……보면 죽여야 한다는 건 내가 한 말이 아닌데…….”
-인간. 죽인다. 인간. 죽인다.
“가능하면 내가 싫어하는 놈들을 죽여줬으면…… 아. 만약에 대륙으로 소환될 일이 생기면 여기로 가.”
태현은 대륙의 지도를 꺼내 오스턴 왕국의 성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길드들이 점령하고 있는 성들!
-여기가 어디인가?
“젖과 꿀이 흐르는 아주 좋은 땅이지. 악마한테 엄청나게 좋은 곳이야. 너는 모르지만 악마들 사이에서는 ‘대륙으로 소환되면 꼭 가봐야 할 곳 다섯 군데’ 중 탑에 들어간다고.”
-그건 몰랐다. 갈그랄. 소환되면 여기로 가겠다. 기억한다.
주인을 향해 가는 짧은 사이에도 남을 엿 먹이는 데 최선을 다하는 태현이었다.
* * *
-들어가라. 주인님 안에 계신다.
태현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악마들은 없나?’
쾅!
“……!”
홀 끝에 있는 건 해골로 된 거대한 의자였다. 그 의자 위에 악마 하나가 앉아 있었다.
태현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저 악마가 이 층의 주인인 아다드라는 것을.
‘저 왕관은 <악마 대공의 왕관>처럼 생겼는데. 판온 1 설정대로면 레벨이 400은 넘는다는 건가? 미친…….’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절대로 정면 승부해서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건 확실했다.
마계에서 악마 상대로 싸우는 건 너무 무모한 짓이었다.
개도 자기네 집에서 싸우면 보너스를 받고 들어가는데, 하물며 악마는 더더욱 그랬다.
“네가 에다오르를 쓰러뜨렸다는 그 악마냐?”
“예! 그렇습니다!”
태현은 넙죽 고개를 숙였다. 이럴 때 자존심을 세웠다가는 바로 목이 댕강 날아갈 수가 있었다.
“믿지 못하겠다.”
“여기 놈의 대검이 있습니다!”
“……!”
아다드는 태현이 든 대검을 보고 눈을 깜박거렸다.
“크핫핫핫! 멍청한 에다오르 놈. 인간한테 대검을 뺏기다니!”
“바로 그렇습니다! 아주 한심한 놈입니다.”
“하찮은 인간 놈아. 나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냐? 설마 에다오르를 한 번 쓰러뜨렸다고 나한테 보상이라도 달라고 할 생각은 아니겠지?”
“물론 아닙니다!”
태현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이제부터가 중요했다.
<고급 화술 스킬>을 믿고 최대한 혓바닥을 놀려야 할 시간!
“저는 대륙의 에스파 왕국에서 에다오르를 쓰러뜨렸습니다. 그런데 에다오르 이놈이 제게 저주를 걸어서 마계로 보내지 뭡니까? 만약 저를 돌려보내 주신다면 에스파 왕국에 남은 에다오르의 악마들을 마저 쓰러뜨리겠습니다!”
태현이 생각해낸 계획은 바로 이것이었다.
에다오르를 싫어하는 아다드의 성격을 이용하는 것!
에다오르와 싸우다가 마계로 떨어졌다고 속이는 데 성공한다면, 남은 에다오르의 부하를 처리하겠다는 핑계로 대륙으로 가는 차원문을 열 수도 있었다.
“차원문을?”
“예!”
“흠.”
아다드는 거만한 시선으로 태현을 내려다보았다. 태현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아다드를 마주 보았다.
‘저는 거짓말 할 줄 몰라요’라고 말하는 것 같은 얼굴!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물론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해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다는 거였습니다. 위대한 아다드 님께서 하고 싶지 않으시다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법 혀를 잘 놀리는군. 만약 네가 제대로 싸우지 못한다면 어떡하겠느냐?”
“아다드 님, 저는 대륙에서 부끄럽지만 백작의 작위를 갖고 있습니다.”
“호, 백작이라? 어느 성의 백작이지?”
“……카달타 성입니다!”
번개처럼 회전하는 태현의 머리!
카달타 성은 바로 쑤닝 길드가 점령한 성!
“제가 백작으로 있는 성을 걸고, 제가 믿는 신의 이름을 걸고, 제 말에 하나도 틀림이 없음을 맹세할 수 있습니다. 아다드 님!”
“신이라니. 불쾌한 소리 하지 마라.”
“죄, 죄송합니다!”
약간 더듬거리면서 겁먹은 척까지. 태현의 연기는 완전하게 물이 올라 있었다.
아다드도 몰랐다.
설마 인간 중에서 자기가 믿고 있는 신의 이름까지 팔아먹으면서 거짓말을 할 놈이 있을 거라고는!
게다가 저 성은 태현의 성도 아니었다. 나중에 아다드가 나타나서 박살을 내도 태현은 상관없었다.
“으음…… 좋다. 에다오르 놈을 방해할 수 있다면 차원문 하나 열어주는 것 정도는 나쁘지 않겠지.”
[위대한 악마 아다드를 속이는 데 성공합니다!!]
[화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대륙의 각 교단과의 관계도가 크게 오릅니다.]
[대륙의 각 교단 내 공적치 포인트가 크게 오릅니다.]
[대륙의 교단 관련 NPC들이 당신에게 존경을 표합니다.]
[대륙의 사기꾼 NPC들이 당신에게 존경을 표합니다.]
[대륙의 악마사냥꾼들이 당신에게 관심을 가집니다.]
‘사기꾼은 왜…….’
악마 하나 속였다고 떨어지는 막대한 보상들.
뭔가 떨떠름한 메시지창 하나 빼고는 다 완벽에 가까운 보상이었다.
“감사합니다, 아다드 님!”
“잠깐. 너는 무슨 잡신을 모시는 놈이냐?”
“……!”
태현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여기서 ‘아키서스’라고 말하면 무조건 죽는다!
“위대한…… 사디크 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백작의 성을 물을 때는 쑤닝 길드가 점령하고 있는 성을.
믿고 있는 신을 물을 때는 사디크 교단의 신을.
정말 손해 하나 안 보고 꿀꺽하겠다는 의지!
“나약한 사디크인가. 뭐, 됐다. 알겠다. 차원문을 이용해라. 혹시나 싶었는데…….”
태현은 침을 삼켰다. 아무리 그래도 궁금한 건 참을 수가 없었다. 여기서 물어보는 건 무덤을 파는 짓일 수도 있었지만…….
“위대한 아다드 님. 어째서 그런 걸 물어보신지 여쭤봐도 됩니까?”
“흥. 너 같은 놈이 알아서 뭘 하려고 그러느냐.”
“위대한 아다드 님께 하찮은 저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뭐든지 하고 싶습니다!”
[아다드가 당신을 아주 조금 높게 평가합니다.]
[아다드의 세력 내에서 당신의 평판이 아주 조금 오릅니다.]
“하찮은 인간 주제에 기특한 소리를 하는군. 그래. 혹시 아키서스를 믿는 놈인가 싶었다.”
“…….”
역시나 아키서스!
“혹시 대륙에 아키서스를 믿는 놈들이 아직도 있느냐?”
“글, 글쎄요?”
“없나 보군. 하긴, 그렇게 멸망시켰는데 쉽게 부활할 리가 없지. 그 빌어먹을 아키서스 놈과 관련된 게 아직도 있다면 내가 기필코 다시 대륙으로 내려가 조각조각을…….”
[아다드가 악마의 눈동자 스킬을 사용합니다.]
[공포에 면역입니다. 저항에 성공합니다.]
공포야 면역이었지만, 태현은 갑자기 걱정이 됐다.
악마들이야 대륙 소식에 어두워서 아키서스 교단이 부활한 걸 모르고 있었지만, 나중에 이걸 알게 된다면?
‘……쳐들어오는 건 아니겠지?’
오크 군세가 쳐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이제는 또 악마들까지 온단 말인가.
바람 잘 날 없는 아키서스 교단!
“위대한 아다드 님! 그 죽일 놈의 아키서스가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예전에…… 천사들과 대전쟁이 벌어졌을 때 일이지. 그 사악한 아키서스 놈은 우리를 속였다.”
“저런! 천사의 편을 든 겁니까?”
태현은 살짝 안심했다.
악마가 쳐들어온다면 천사를 찾아서 도와달라고 할 수 있을 테니까!
“아니다.”
“……?”
“천사도 속이고 악마도 속여서 둘을 부추겼다. 그리고 싸우게 만들었지.”
“…….”
“두 세력이 싸우다가 엉망이 되어서 휴전을 하려고 하자, 두 세력을 상대로 도둑질을 했다. 그리고 도망가 버렸지.”
“…….”
밝혀지는 뒷이야기들!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이게 신이야, 양아치야?
[대륙의 숨겨진 비밀을 들었습니다. 지혜가 크게 상승합니다.]
[신성 스탯이 오릅니다.]
[이 이야기를 교단에 전달할 경우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미쳤냐?’
악마를 속였다면 모를까, 천사를 속였으면 다른 교단한테도 공격의 대상!
‘하필 왜 이딴 신을 믿어가지고…….’
대륙에 좋은 신이 많고 많은데, 태현은 행운 하나만 올렸다는 죄로 사방팔방에 적을 쌓은 신의 화신이 되어야 했다.
“아다드 님! 그 더럽고 비열하고 치사하고…… 하여튼 온갖 안 좋은 수식어는 다 달아도 모자란 아키서스 놈을 찾는다면 반드시 제가 목을 베겠습니다!”
“……그러도록 해라.”
[아다드가 당신을 조금 더 높게 평가합니다.]
아다드는 무표정했지만 흡족한 표정이었다. 이제까지 무슨 소리를 해도 평가가 안 올랐는데, 아키서스 욕 한 번 대차게 했다고 오르는 평가!
‘얼마나 아키서스를 싫어하는 거야?’
태현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뒷걸음질로 물러섰다. 최대한 빨리 마계를 떠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 * *
“차원문 사용 허락받았다.”
“!??!!?!?!?”
각 교단의 NPC들은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진심을 다해서 설득하니까 믿어주던데.”
이다비가 태현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속삭였다.
“그걸 믿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안 믿으면 두고 간다고 하면 믿게 되어 있어.”
“…….”
태현은 교단 NPC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아,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말해두는데. 저 악마한테는 내가 사디크 교단 믿는다고 말해놨으니까 다들 입 맞춰.”
“사디크?!?!”
“앞으로 내가 말하는데 끼어드는 놈은 두고 간다.”
“흡!”
[협박에 성공합니다. 협박 스킬이 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