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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276화 (276/1,826)

§ 나는 될놈이다 276화

왔던 길을 되돌아서 가는 건 쉬운 일이었다.

가는 길마다 나오는 야생 몬스터들이 덤벼드는 것을 제외한다면!

“으아악! 진짜 왜 나한테만 이러는 거야!”

케인은 여기서도 손해를 봤다. 마계의 필드에 있는 몬스터들은 케인만 보면 신나서 달려들었다.

마치 케인의 몸에 꿀이라도 바른 것처럼!

한참을 지나, 마계로 떨어진 곳에 도착하자 많이 부서지고 박살 난 거대한 함선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 원래 저랬었나요?”

“없는 사이 습격을 많이 받았나 본데.”

“뭔가 이상합니다. 김태현 백작님. 저기 있는 사제들과 성기사들이 실력 없는 자들이 아닌데, 저렇게 많이 부서졌다니…….”

“물량에는 장사 없지.”

아무리 대단한 NPC라도, 사방에서 적들이 계속해서 몰려들면 함선을 다 지킬 수는 없었다.

콰콰쾅! 화륵!

“악마들을 물리쳐라!”

“에잇! 이 배 위에는 발을 올리지 못할 것이다, 이 사악한 놈들!”

멀리서 소리가 들려왔다. 함선 쪽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용암에서 나온 악마들이 시뻘건 화염을 내뿜고, 그에 맞서서 각 교단 NPC들이 방어막을 치고 흰색 섬광을 발사하고 있었다.

“도우러 갑시다!”

“아, 잠깐.”

“……?”

“신발 끈이 풀려서.”

“…….”

하론 사제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게 지금 무슨 소리?

“김태현 백작님! 무슨 신발 끈이 풀린다는 겁니까! 지금 당장 움직이셔야 합니다!”

“아, 신발 끈이 풀렸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싸우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책임질 거야?”

태현은 미적거리며 신발을 만지작거렸다. 거기에 끈이라고는 전혀 없었지만!

그러면서 태현은 이다비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 시선의 뜻을 깨달은 이다비는 외쳤다.

“앗! 저도 신발 끈이 풀렸어요!”

“…….”

“크, 크흠. 나도 신발 끈이…….”

시선을 이기지 못한 케인도 부끄러움을 참으며 말했다.

단체로 시간을 끄는 태현 일행!

하론 사제는 발을 동동 구를 뿐, 어떻게 하지는 못했다. 그들끼리만 가는 것도 위험했던 것이다.

태현이 이러는 이유는 하나였다.

-아쉬운 건 저쪽이니까!

태현은 원한을 잊지 않았다. 사소한 한 마디도 정확하게 적립해서 그대로 돌려주는 게 태현!

그런 태현에게 함선 위에 있는 교단 NPC들은 맛있는 먹잇감으로 보일 뿐이었다.

“신발 끈 다 묶으셨으면 출발합시다! 도와드려야 합니다!”

“아이고, 다리야. 여기서 좀 쉬자.”

“예!?”

“내가 다리가 좀 아파서…….”

태현은 구성욱에게 신호를 보냈다.

-여기서 쟤네들이 도와달라고 할 때까지 버티자고.

-…….

구성욱은 화끈거리는 얼굴로 털썩 자리에 앉았다. 그걸 신호로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은 주섬주섬 앉기 시작했다.

“다들 대체 왜 그러십니까?!”

* * *

효과는 굉장했다.

함선 위에서 치열하게 싸우던 각 교단 NPC들은 저 멀리 나타난 태현 일행을 보고 반색했다.

“앗! 저건 분명 아키서스 교단과 데메르 교단!”

“지원 요청을 보내시오!”

악마들의 마을로 들어가서 공격을 피한 태현 일행과 달리, 넓은 황야에 그냥 남아 있던 교단 일행들은 계속해서 덤비는 악마들과 싸워야 했다.

당연히 사람인 이상 피곤해지고 약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

전령 역할을 맡은 성기사는 재빨리 악마들 사이를 뚫고 달려갔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 왜 당장 돌아오지 않고 저기서 있는 거야?”

“문제가 생긴 거 아닌가?”

“문제가 생길 게 뭐가 있다고!”

“돌아옵니다, 어? 왜 혼자 돌아오지?”

전령 역할로 갔던 성기사는 같이 돌아오는 게 아니라, 혼자 돌아왔다.

그리고는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어…… 다리가 아파서 못 오신다고…….”

“…….”

“그게 무슨 헛소리야! 다시 가서 당장 도움을 전해!”

악마들과 치열하게 싸우면서, 그들은 태현에게 메시지를 다시 보냈다.

-빨리 와서 도와라! 뭐하는 거냐!

-다리가 아파서 못 가겠다.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다리가 더 아파져서 못 가겠다.

-……무례는 사과할 테니 와서 좀 도와주면……

-사과를 제대로 해야 다리가 좀 안 아파질 거 같다.

-잘못했습니다. 와서 도와주십시오……

-사례도 받아야 다리가 나을 것 같다.

-…….

* * *

“이야, 다리가 싹 나은 느낌이네!”

‘거짓말!’

“크흠, 크흠. 김태현 백작. 빨리 힘을 합쳐서 저 악마들을…….”

“나는 싸울 생각 없는데?”

“?!”

“미련하게 계속 자리에 있으니까 악마들이 몰려오는 거지. 게다가 너희들끼리 다 못 해치울 정도의 악마들인데, 우리가 낀다고 해서 달라지겠어?”

“그, 그러면 어쩌겠다는 겁니까!”

“도망쳐야지.”

“무슨 멍청한 소리를!”

야타 교단의 성기사가 발끈 화를 냈다.

“이렇게 주변에 적이 많을 때 등을 보여주고 도망치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 저 악마들이 신나서 우리의 등을 물어뜯을 것이오! 김태현 백작은 그런 기본도 모르는가!”

“갑자기 다리가 다시 아파 오는 거 같은데, 우리 그냥 따로따로 놀까?”

“…….”

세상에서 가장 치사한 협박! 야타 교단의 성기사는 입을 다물었다.

함선 위로 올라온 태현이 가장 먼저 한 소리는 ‘마계에서 대륙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찾았다’였다.

그 소리를 들은 교단의 NPC들은 아무리 치사하고 더러워도 태현에게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태현은 정말로 두고 갈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다들 입을 다물자 태현은 다시 말을 시작했다.

“걱정 마. 저 악마들을 따돌릴 방법은 있으니까. 우리는 그사이 튀면 돼.”

“???”

교단 NPC들뿐만 아니라, 다른 플레이어들도 궁금해했다. 어떤 방법으로 저기 있는 악마 몬스터들을 따돌릴 수 있단 말인가?

케인이 태현에게 물었다.

“어떻게 따돌리는데?”

“하하. 미끼가 있지.”

“미끼? 마을에서 뭐라도 사 왔나?”

“아니. 네가 있잖아.”

“…….”

* * *

“으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악!”

-소리를 줄여라!

“네가 내 입장이 되어 봐!”

-확 떨어뜨리는 수가 있다, 인간!

“이 자식이 어디서…… 떨어뜨리기만 해봐! 김태현한테 그대로 이를 거야!”

마계의 검붉은 하늘을 날아가는 두 콤비!

바로 용용이와 케인이었다.

-크릉?

-카르르륵!

함선 주변을 맴돌던 악마들은 용용이 밑에 매달려 날아가는 케인을 보더니 눈이 붉어져서 달려들기 시작했다.

아키서스의 신수, 아키서스의 노예. ‘아키서스’가 들어가는 둘은 악마들의 눈이 돌아가기 매우 좋은 목표물이었다.

화르륵!

“크아악! 왜 나만 밑에서 매달려 가는 건데! 위에 태워줘도 되잖아!”

-주인이 그러라고 했다! 네가 더 튼튼하다고!

“……김태현 XXX야!”

밑에서 타오르는 화염 침이 화살처럼 날아왔다. 케인은 용용이의 발톱에 매달린 채로 방패를 휘둘러서 막아냈다.

[끓어오르는 지옥의 화염 침이 방패 위에 직격했습니다. 내구도가 하락합니다.]

[끓어오르는 지옥의 화염 침이 갑옷 위에 직격했습니다. 내구도가 하락합니다.]

아무리 막고 피해내도 범위 공격은 완전히 다 피해낼 수가 없었다.

-아앗! 제대로 막아라, 인간!

“막고 있다고!”

두 콤비가 허공을 가로질러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는 동안, 나머지 일행들은 빠르게 빠져나갈 수 있었다.

“저, 저래도 되는 겁니까?”

구성욱은 케인이 걱정되어서 물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는 케인에게 우정을 느끼고 있었다.

같은 피해자로서 느낄 수밖에 없는 동지의식!

구성욱은 원래 케인 같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레드존 같은 길드를 이끌고 다니며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고 다녔으니까.

그러나 마계에서의 짧은 시간 동안, 구성욱은 확실하게 깨달았다.

케인은 그와 같은 처지라는 걸!

“응? 뭐가?”

“너무 위험해 보여서…….”

“괜찮아. 내 실력 정도면 충분히 피할 수 있지.”

“아, 아니. 태현 님 말고…….”

“내가 가장 앞에 선다고 걱정해 주다니, 이거 고마운데. 그런데 진짜 괜찮아!”

“그게 아니라……!”

태현은 듣지도 않고 앞으로 쌩 달려가 버렸다. 구성욱은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으로 뒤를 쫓았다.

* * *

[HP가 10% 이하로 내려간 상태에서 오랫동안 버텼습니다. 체력이 오릅니다.]

[<굳건한 신체> 패시브 스킬로 물리 방어력이 오릅니다.]

케인은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착지했다. 허공을 날아다니며 날아오는 공격들을 막아내고 피하는 건 보통 피곤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찌나 지쳤는지 태현에게 따질 힘도 없었다.

“케인 씨, 괜찮으십니까?!”

“??”

드러누워서 쉬려고 하던 케인은 구성욱이 달려오자 의아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얘는 왜 이래?’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이에 이렇게 걱정을 해주자 뭔가 좀 당황스러웠다.

“괜…… 괜찮은데. 왜?”

“왜냐뇨. 방금 그런 비행을 하고 왔는데 당연히 걱정이 되지 않겠습니까!”

케인 입장에서는 점점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구성욱의 태도!

둘이 떠드는 사이 태현은 저 멀리 지평선에 있는 성을 확인했다.

거무튀튀하고 어두운 색의 성벽. 그 밑의 해자는 끓어오르는 용암이 가득 차 있었다.

성문으로 들어가는 통로는 용암 위로 나 있는 구리 다리뿐!

“음, 다 같이 저기 들어가면 위험하겠지?”

끄덕끄덕!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이면 모를까, 저 성안으로 교단의 성기사들과 사제들이 들어가면 대번에 공격을 받을 것 같았다.

“가능하면 안 싸우고 차원문을 이용하고 싶으니까, 나 혼자 먼저 갔다 오지.”

“김태현 백작, 악은 물리쳐야 하오. 그런 식으로 피하려는 태도는 좋지 않…… 읍읍!”

“이 자식이 기껏 데리고 왔더니 보따리 달라고 난리네. 저기 용암에 던져줘? 응?”

[파이토스 교단과의 관계도가 하락합니다.]

“사, 사제님을 놓으십시오!”

“응? 용암에 놓으라고? 너희 사제를 싫어했나?”

“아, 아닙니다! 그냥 놓으라고요!”

태현의 화술에 말려든 성기사들은 얼굴을 붉혔다. 태현은 손을 탁탁 털고는 성으로 출발할 준비를 했다.

뒤에서 노려보는 성기사들!

‘거 참.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했는데…….’

남들이 들으면 목덜미를 잡을 생각을 하며, 태현은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주인님의 성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우리 악마들도 들어가기 힘든데, 인간들이 들어갈 수 있을 리가 있나. 문지기한테 말이나 해봐. 아마 거절당하겠지만. 바로 튀어야 할지도 모르겠군!

태현은 마을의 악마가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그 말 중에 분명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단서가 있을지도 몰랐다.

‘에다오르를 싫어한다고 했었나?’

에다오르와의 친분으로 사기를 칠 수 없다면, 그 반대로 가면 됐다.

태현은 당당하게 구리 다리 위에 발을 올렸……

콰콰콰쾅!

다리 위에 발을 올리는 순간, 성문에 서 있던 거대한 악마가 울부짖으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양손에는 거대한 도끼 하나씩을 들고서 달려오는 악마는 매우 위압적이었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반신에는 붉은색 근육이 터질 것처럼 불끈거렸다.

-침입자! 제거한다!

“잠깐! 난 침입자가 아니야!”

[적을 설득합니다. 고급 화술 스킬 보너스를 받습니다.]

[설득에 실패합니다.]

“?!?!”

-나 갈그랄! 침입자 말 믿지 않는다! 침입자 죽는다!

태현은 순간 망설였다. 싸워야 하나? 싸워서 잡는 거야 뒤에 지원도 있으니까 어떻게든 한다 쳐도, 그 뒤가 문제였다.

문지기 악마를 잡아놓고 그 안의 주인을 설득할 수는 없지 않은가!

“갈그랄, 내 말을 듣지 않고 멋대로 행동하면 네 주인이 널 벌할 거다! 멈춰!”

-혼신의 협박!

칭호 <악마의 혓바닥>을 얻고 보상으로 받은 스킬, <혼신의 협박>. 태현은 여기에 걸었다.

이것마저 안 통하면 그냥 싸워야 하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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