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75화
사람은 너무 갑작스러운 일을 겪으면 머리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최강짱짱맨도 그랬다.
“뭐, 뭐야? 왜 내가 길마야? 쑤닝은? 잠깐, 다른 길드원들은?”
횡설수설하던 최강짱짱맨은 허겁지겁 길드 확인창을 켰다.
길드원 목록:
최강짱짱맨
길드원은 오직 그 하나!
길드 마스터도 그였고, 다른 길드원도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야! 이게 뭐하는 거야! 어떻게 된 거냐고! 쑤닝은? 다른 길드원들은?”
쑤닝 같은 대형 길드에 길드원이 한 명이라니, 이게 말이 된단 말인가!
“흥. 우리 쑤닝처럼 명문 길드에 너 같은 놈을 들여보낼 줄 알았냐?”
“뭐, 뭐라고?”
“네 주제 파악을 하라고 알려준 거다!”
“이 자식이 죽고 싶나!”
그랬다.
켄의 작전, ‘플라잉 더치맨’은 그야말로 사악하고 치사한 방법이었다.
판타지 온라인 1 때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유구한 수법!
방법은 간단했다.
먼저 잃을 거 없는 플레이어 하나가 총대를 메야 했다. 그 플레이어는 길드 하나를 만든다.
물론 길드를 만들 때, 유명한 길드와 이름을 똑같이 만들고, 길드 문양도 비슷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런 다음 목표물한테 접근해서 길드 초대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길드 이름과 문양만 보고 확인을 했기에, 그 안의 자세한 수치까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게다가 유명 길드일 경우 사람들은 ‘이게 웬 떡이냐! 감사합니다!’ 하고 더더욱 쉽게 수락을 했다.
목표물이 덜컥 수락 버튼을 누르면, 이제 그다음으로 넘어간다.
길마가 길드를 나가는 것이다.
길드의 길마는 무조건 한 명 있어야 했고, 기존 길마가 정하지 않고 나가면 다음 길드원 중 가장 공적치 포인트가 높은 사람이 길마가 됐다.
물론 남은 사람이 한 명밖에 없으면 자동으로 그 사람이 길마!
그러면 목표물은 졸지에 사람 없는 길드의 길마가 되는 것이다.
황당하고 억울했지만 어디에 가서 호소할 수도 없는 장난!
눈물을 삼키며 길드 폐지 비용으로 골드를 내거나, 아니면 다른 희생양을 끌어들여서 길마 자리를 넘겨야 했다.
판온 1에서는 장난이었지만, 켄은 이걸 응용해서 좀 더 악질적인 방법으로 발전시켰다.
-길드를 폐지하면 6개월 동안 길드를 새로 만들거나, 다른 길드에 들어가거나 할 수 없어.
길드를 만들고 폐지하는 걸 신중하게 만들기 위해서 판온 2에서 정해진 규칙.
켄은 이걸 이용했다.
-쑤닝 길드인 척하고 끌어들여서 길드에 넣는다.
-길드에 넣으면 상대를 길마로 만들고 우리는 길드에서 탈퇴한다.
-그리고 끝까지 쑤닝한테 책임을 돌린다. 언젠가 들키겠지만 쑤닝처럼 이미지 안 좋은 길드는 해명하는데 고생 좀 할 거야.
-상대 플레이어가 바로 길드 탈퇴해서 6개월 동안 다른 길드에 못 들어가도록 만드는 거 잊지 말고!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는 건 시간밖에 없는 한가한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 * *
“이야, 기다리셨죠? 길드 들어오세요. 초대 보냈습니다.”
“수락했…… 잠깐, 왜 길드원이 하나밖에 없어? 잠깐만, 왜 내가 길마야?! 넌 왜 길드를 나가고?!”
피해자가 하나둘씩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쑤닝도 상황을 몰랐다. 설마 이런 식으로 견제하는 더럽고 치사한 놈들이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쑤닝, 선전포고다 이거지? 오냐. 어디 한 번 해보자!
-네가 날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죽인다!
갑자기 쏟아지는 귓속말들!
쑤닝은 당황해서 상황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시간이 꽤 지나고 간신히 한 명을 붙잡고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뭐 이딴 새끼들이 다 있어?!?!”
다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는 수법!
판온 1때부터 왕도를 달리던 쑤닝에게 이런 수법은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더 화가 나는 건 이 수법이 매우 효과적이란 것!
해명을 하려고 해도, 쑤닝 길드 이미지가 좋지 않다 보니 섭외하려던 플레이어들의 절반은 안 믿는 것 같았다.
“일단 수습을 해야 해! 섭외하려는 놈들한테 다 귓속말을 돌려! 지금 우리 길드 사칭하는 놈이 있으니까 주의하라고!”
쑤닝은 이를 박박 갈며 지시를 내렸다. 지금 이렇게 그를 견제할 놈이 대체 누구란 말인가?
‘설마 이것도 김태현이 한 짓은…… 에이,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겠지! 그놈이 이렇게 한가할 리는 없을 거고!’
언제나 설마는 사람을 잡는 법.
그리고 파워 워리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 *
“저, 쑤닝 길드에 초대했습니다.”
“……어디서 사기냐! 길드원 목록에 네 이름 하나밖에 없잖아!”
“히익!”
남자는 위협적으로 칼을 휘둘렀다. 그러자 쑤닝 길드원으로 위장한 파워 워리어 길드원은 잽싸게 도망쳤다.
“정말이지 별놈들이 다 있다니까…….”
쑤닝한테 들었기에 대비할 수 있었다. 남자는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멀리서 달려오는 플레이어 하나!
“죄송합니다! 제가 늦어서…… 혹시 설마 또 사칭인가요?”
“그래.”
“죄송합니다!”
플레이어는 연신 굽신거렸다.
“상관없어. 어차피 그런 멍청한 수법에 당하지는 않으니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다시 초대 보냈습니다.”
남자는 초대를 받고 길드원 목록을 확인했다. 길드에 있는 플레이어들의 이름 목록!
쑤닝부터 시작해서 중국계 이름들이 가득했다.
“좋아. 수락했다.”
[XXX 님이 <쑤닝> 길드에서 나갔습니다.]
[XXY 님이 <쑤닝> 길드에서 나갔습니다.]
…….
폭풍처럼 뜨는 메시지창!
“??????”
[당신은 <쑤닝> 길드의 길드 마스터가 되었습니다.]
“설…… 설마…….”
“멍청한 수법에 안 당한다고?”
비웃음 가득한 상대방의 얼굴!
그제야 남자는 어떻게 된 건지 깨달았다.
‘이놈들이 작정하고 이중으로 함정을 짰구나!’
처음에 온 어설픈 놈은 대놓고 들키기 위해서 왔고, 두 번째 온 놈은 나름 공들여서 중국계 닉네임 가진 사람들로 길드를 채워놓은 것이다.
사기 하나 치기 위해 보여주는, 정말 무시무시한 집념!
“죽여 버리겠다!”
“튀어! 튀어!”
“이까짓 길드 따위!”
남자는 바로 길드를 폐지해 버렸다. 그리고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을 쫓아갔다.
* * *
그리고 이 소식은 다시 쑤닝에게 들어갔다.
“……아니, 경고를 했는데도 사기를 당해? 당한 놈들은 다 머리가 없냐?!?!”
쑤닝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입을 다물었다. 정말 당한 사람만 알 수 있었던 것이다.
“후우, 후우…… 화낼 필요 없지. 어차피 이건 쓸데없는 장난일 뿐이야. 우리를 질투하는 같잖은 놈들이 한 짓이겠지. 해명만 제대로 하면, 다시 길드에 넣을 수 있어. 제대로 설명하고 길드 초대 제대로 해.”
“저, 그게…….”
“……?”
“당한 사람들이 곧바로 길드를 폐지하고 나와서…… 6개월 동안 다른 길드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합니다.”
“…….”
쑤닝의 입이 떡 벌어졌다.
쑤닝 길드를 사칭해서 평판을 떨어뜨리게 하려는 줄 알았는데, 함정 속에 한 가지 함정이 더 있었던 것!
* * *
밖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고, 태현은 일행과 함께 마계에서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마을 내의 평판을 올리기 위해서는 악마들이 원하는 걸 가져다줘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영혼석을 얻어야 했다.
영혼석을 얻기 위해서는 역시 주변 던전을 깨는 게 제일!
그렇다고 아무 던전이나 갈 수 없었다.
태현은 <신의 예지> 스킬로 들어가도 될 것 같은 던전과 들어가면 X될 것 같은 던전을 예리하게 구분했다.
아무 사전 정보도 없이 밖에서 던전을 확인할 수 있는 건 <아키서스의 화신> 정도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먼저 모험가 직업을 들여보내고 잔뜩 긴장해서 들어가 탐험을 해야 알아낼 수 있는 걸 태현은 스킬 하나로 대신하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만만치 않았다. 비교적 약한 던전에서도 마계의 몬스터는 강력했고, 일행은 뭉쳐서, 전력을 다해서 싸워야 했다.
그 결과…….
“……어, 그 펫 원래 저렇게 생겼었나요?”
“……묻지 마라.”
이다비는 용용이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처음 봤을 때랑 많이 달라진 것 같은 모습!
근육근육!
덩치는 키우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지만, 대신 날개와 몸통의 근육이 장난이 아니게 생겨 있었다.
-주인이여…… 크큭…… 힘이…… 넘쳐흐른다…….
용용이의 말투도 뭔가 달라진 상태! 태현은 고개를 흔들며 마을로 향했다.
“영혼석 몇 개 모았냐?”
“12개. 더럽게 안 나오네.”
“악마들은 보상도 엄청 짜게 주잖아. 괜히 악마들이 아니라니까.”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은 투덜거리며 걸어갔다. 지금 그들은 마을의 악마들이 내준 퀘스트를 깨기 위해 영혼석을 모으고 있었다.
영혼석!
영혼석은 모든 악마가 좋아하는 아이템이었다. 남녀노소 악마들 모두가 영혼석을 모으려고 했다.
당연히 마을 내 평판을 올리고 좀 친해지기 위해서는 영혼석을 찾아서 바쳐야 했는데…….
문제는 이 영혼석이 더럽게 안 나온다는 점이었다.
-영혼석을 갖고 왔다고? 그래. 이제 10개 더 갖고 와. 뭐? 보상 없냐고? 인간놈이 여기 마을에 있는 것 자체가 보상이지!
게다가 악마들은 보상을 매우 짜게 줬다. 거의 열정페이 수준!
퀘스트를 하는 플레이어들은 영혼석 개수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 명, 예외가 있었다.
바로 태현이었다.
촤르륵!
“영혼석을 몇 개나 갖…… 허억!”
태현이 쏟아낸 영혼석들을 보자 악마의 눈동자가 커졌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모아온 것보다 몇 배는 되는 양!
“어, 어떻게?”
“분명 같이 싸웠는데??”
악마보다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이 더 놀랐다. 분명 같이 움직이고 같이 싸웠는데 갖고 있는 영혼석 개수는 몇 배라니.
‘행운을 이럴 때 쓰게 되나.’
쓸 기회가 적어서 잊기 쉬웠지만, 태현에게 이런 정해진 개수의 아이템을 모아오는 퀘스트는 손쉬운 일이었다.
막대한 행운 스탯 덕분!
닭을 잡으면 닭다리가 8개가 나오고, 문어를 잡으면 문어 다리가 20개가 나오는 마술!
[퀘스트를 완벽하게 해냈습니다.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마을 내 평판이 올라갑니다. 악마들이 당신을 아주 조금 더 인정합니다.]
쪼잔한 악마들은 넘기고, 태현은 슬슬 때가 됐다는 걸 느꼈다. 평판은 이 정도로 올렸으면 지금 올릴 수 있을 만큼 다 올렸다고 봐도 됐다.
이제 튈 시간!
마계에서 뭘 더 먹겠다고 버텼다가는 위험할 것 같았다.
에다오르부터 시작해서 아키서스를 많이 싫어하는 악마들까지. 여기는 적이 너무 많았다.
“좋아. 슬슬 여기 층의 주인이 머무르고 있는 성으로 가볼까?”
“저, 김태현 백작님?”
하론 사제는 손을 들고 머뭇거리며 물었다.
“……?”
“다른 교단 사람들은…….”
“아. 잊고 있었네.”
“…….”
정말로 잊고 있었던 것 같은 태현의 표정! 하론 사제를 포함한 데메르 교단 사람들은 땀을 흘렸다.
“농, 농담을 하신…….”
“아니야. 진짜 잊고 있었어. 찾으러 가자.”
그래도 찾으러 간다는 게 어딘가. ‘잊고 있었네’란 말에 당황하던 하론 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역시 영웅인 김태현 백작, 말은 저렇게 해도 책임감은…….
그러나 그 생각은 태현의 말에 곧바로 사라져 버렸다.
“하마터면 공적치 포인트 두고 갈 뻔했네.”
“…….”
뒤에서 따라오는 다른 사제들이 황당한 표정으로 하론 사제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하론 사제는 시선을 피했다.
“나는 아무것도 못 들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