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70화
악마 전사는 창을 거뒀다. 싸울 의지가 완전히 사라진 표정이었다.
“그 대악마 에다오르와 친분이 있는 인간이라면 내가 건드리기도 좀 뭐한데. 인간. 여기는 뭘 원해서 왔나?”
“뭐든지 좋아. 보급품도 좋고…… 찾는 게 있어서 마계에 왔는데, 실수로 여기 떨어졌어. 에다오르가 이걸 알면 정말 슬퍼하겠군.”
“저런. 내가 알기로 여기서 에다오르의 층으로 바로 가는 길은 없어. 몇 개 걸쳐서 가야 할 거야. 그것도 길이 멀고.”
“이런…… 에다오르를 보고 싶었는데!”
태현의 연기는 점점 물이 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안도하고 있었다.
‘에다오르가 멀다 이거지?’
대화를 하면서 정보를 하나씩 하나씩 얻는 태현! 악마 같은, 아니, 악마보다 더한 솜씨였다.
“그러면 일단 마을로 들어오는 건 괜찮다 이거지?”
“그래. 그건 허락해 주지.”
[악마들의 마을에 입장을 허락받았습니다.]
[마을 악마들의 적대도가 0으로 변합니다. 마을의 악마들에게 공격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뭘 사는 건 힘들 거 같은데. 인간의 화폐는 여기서 통하지 않아.”
“그럼 뭘 쓰는데?”
“영혼석을 쓰지.”
악마는 빛나는 돌멩이를 꺼내서 흔들어 보였다.
영혼석:
영혼이 담겨 있는 돌입니다. 가치 높은 영혼이 담길수록 돌의 가치가 올라갑니다.
[마법 스킬이 부족해 아이템의 성능을 전부 확인할 수 없습니다.]
곧바로 뜨는 메시지창. 영혼석을 활용해서 뭔가를 만들려면 마법 스킬이 더 필요한 모양이었다.
“영혼석을 구할 방법은 없나? 뭐 시킬 일이라도…….”
“크하하. 인간에게 시킬 일이 뭐가 있겠냐…… 라고 말하겠지만, 에다오르와 친분이 있는 인간이라면 보통 능력이 아니겠지.”
악마는 턱을 긁적이더니 말했다.
“요즘 저쪽 계곡 밑 마을 악마 놈들이 이상하게 설친단 말이지. 저 용암 하천은 우리 구역인데. 거기서 설치는 놈들을 처리해 줄 수 있겠어?”
<악마의 부탁–악마들의 마을 퀘스트>
악마도 때때로 인간에게 부탁을 할 때가 있다. 당신이 에다오르와 친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악마는 당신을 고평가하고 있다.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이웃 마을의 악마들을 공격해서 실력을 증명해라.
보상:?, ??, 영혼석x10
대륙에서라면 평범한 퀘스트였지만, 여기서는 의미가 달랐다.
마계에서, 악마를 상대로 퀘스트를 받아낸 것 아닌가!
“물론 해줄 수 있지!”
[퀘스트를 수락했습니다.]
* * *
“악마한테…….”
“퀘스트를 받았다고요?”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은 태현을 복잡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여러 감정이 섞여 있는 눈빛이었다.
‘어떻게 악마한테 퀘스트를 받을 수 있지, 대단하다!’ 하는 감정과……
‘역시 김태현이다, 이제 하다못해 악마한테도 퀘스트를 받는구나!’ 하는 감정이 반반씩 섞인 눈빛!
“그래. 용암 하천으로 가서 악마들 잡아 오자고. 아까 싸우는 거 보니까 악마 전사쯤만 돼도 실력이 보통이 아니야.”
“그 정도입니까?”
“가능하면 하나 상대로 모두가 공격을 퍼부어서 끝내는 식으로 가자고. 그게 깔끔하지. 데메르 성기사들이 죽으면 곤란하잖아.”
“김태현 백작님……!”
하론이 감동한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다른 교단의 전력인데도 이렇게 걱정을 해주다니.
‘성기사들 죽으면 공적치 포인트 깎이잖아.’
물론 태현의 속마음은 전혀 다른 의도였지만…….
구성욱은 손을 들고 물었다.
“그런데 차원문 위치는 찾으셨습니까?”
“이번 퀘스트 끝내고 물어보려고. 네가 악마들 상대해 봤냐? 인간들 되게 싫어해.”
“확실히…… 악마들이니까…… 그런데 어떻게 대화하신 겁니까?”
“진심을 다해서 말을 걸었지.”
“…….”
“어쨌든 빠르게 움직이자고! 악마 사냥하고 돌아와야 해!”
* * *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은 약간 방심하고 있었다.
그들은 고렙이었고, 게다가 이 정도 인원. 몬스터를 상대하면서 밀릴 전력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콰콰쾅!
“어디서 건방진 인간놈들이!”
[악마의 타오르는 검에 당했습니다. HP가 빠르게 깎이기 시작합니다.]
[악마의 혼동 저주에 걸렸습니다. 방향 감각을 잃습니다.]
몇 명이 안 돼서 만만하게 봤는데, 엄청난 전력을 가진 악마들!
용암 하천에서 헤엄치다가 곧바로 반격을 해오는 게 보통 강한 게 아니었다.
길드원들은 처음에 기세 좋게 공격한 게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비틀거렸다.
허겁지겁 방패 뒤로 숨어서 버티기!
“와, 대단한데?”
“지금 감탄할 땝니까?!”
구성욱은 쌍검을 뽑아 들고 악마 전사 하나에게 달려들었다. 묵직한 철퇴를 휘두르는 악마. 한 번 피할 때마다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렇게 고생을 해서 얻은 <차가운 울음의 검>인데도 악마들의 전투력은 정말 강했다.
‘이걸 못 얻었으면 정말 위험했겠다!’
-무기 튕겨내기!
[강한 힘이 실린 공격으로 인해 튕겨내기가 절반만 성공합니다.]
“성욱아!”
“제가 갑니다! 모두 조심하세…….”
-아키서스의 신성 영역!
태현은 빠르게 스킬을 사용했다. 아까웠지만 지금은 팍팍 쓸 때였다.
‘여기서 괜히 오래 걸려서 싸웠다가는 다른 동료들이 올 수도 있어.’
악마들 마을끼리의 싸움인 이상, 저 마을에 다른 악마들도 분명 있을 것!
순식간에 주변에 아키서스의 힘이 서린 영역이 펼쳐졌다.
행운 저항에 실패한 적에게는 저주가 내려지는 신성 영역!
“아키서스?!?!?!”
“아키서스의 힘을 어떤 놈이 썼지?!”
저주가 내리꽂히는데도 핏발선 눈을 희번덕거리며 아키서스를 찾는 악마들!
정말 아키서스를 싫어하는 게 진심으로 느껴졌다.
‘아키서스가 대체 뭘 했길래 이러냐.’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언제나 피를 보는 건 눈치 없는 사람이었다.
바로 케인!
“아키서스의 철벽! 강철 같은 신앙심!”
기회라고 보고 스킬을 연달아 쓰는 케인. 그러나 그건 이 주변에 있는 악마들에게 모든 어그로를 끄는 짓이었다.
“저놈이다!”
“죽여! 영혼째 씹어 먹어!”
방금까지 했던 공격은 힘을 아낀 것이었다. 악마들은 방어를 포기하고 전력을 다해 케인에게 덤벼들었다.
“이런 미친?!”
이쯤 되자 케인도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대체 그가 뭘 했다고 방어도 포기하고 공격?!
“케인, 조심해라!”
태현은 케인 앞으로 뛰쳐나가면서 검을 휘둘렀다. 아무리 탱커인 케인이라도 저 공격을 다 맞으면 즉사할 가능성이 있었다.
콰콰콰쾅!
악마 전사의 창이 회전하면서 치고 들어왔다. 태현은 곧바로 반격 스킬을 사용했다.
-반격의 원!
[반격의 원이 성공했습니다.]
[강력한 힘이 담긴 공격을 상대로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들고 있는 무기의 내구도가 하락합니다.]
완벽한 타이밍에 반격의 원을 써도 하락하는 내구도. 정말 만만치 않은 적이었다.
“크아앗!”
그러나 덕분에 악마 전사도 크게 데미지를 입은 모양이었다. 반격의 원을 맞은 상태에서 신성 영역의 저주에 한 번 더 당하는 악마 전사!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메시지창은 신경 쓰지 않고 태현은 다음 적을 찾아 움직였다. 악마들은 케인을 노리느라 등을 완전히 노출한 상태였다.
‘죽여 달라면 죽여줘야지!’
-행운의 일격, 행운의 일격, 행운의 일격. 치명타 폭발!
“캬아아아아악!”
공격을 당한 악마가 등에서 화염을 뿜어냈다. 이건 예상하지 못한 태현은 화염에 직격당했다.
“……!”
[악마가 지옥화염 독수리를 소환합니다.]
[지옥화염 독수리는 주인이 죽을 때까지 당신을 공격합니다.]
화염이 독수리로 변하더니 태현의 팔을 공격하고 들어왔다.
[지옥화염의 부리에 당했습니다. 회피가 불가능합니다. 한동안 오른팔을 쓸 수 없습니다.]
[HP가 빠르게 감소합니다!]
회피 불가능의 공격. 태현의 약점이었다. 당황할 법도 하지만 태현은 냉정했다. 바로 대응에 들어갔다.
-왕가의 축복, 왕가의 가호!
오스턴 왕가에게서 받은(?) 비전 갑옷! 태현은 사기적인 회복 스킬을 바로 사용했다.
[오른팔의 붙은 화염이 꺼집니다.]
[HP가 회복됩니다.]
50% 이하로 내려갔던 HP가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사이 악마는 거리를 벌리기 위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케인! 잡아라!”
-노예의 쇠사슬!
촤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케인의 손에서 쇠사슬이 뻗어 나가 악마를 잡고 그대로 끌어당겼다.
“이 저주받을 아키서스의 종자 놈이! 네 주인과 함께 영원히 끓는 유황 속으로 커헉!”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케인에게만 신경을 쓰면 태현이야 좋았다. <공격의 원>으로 공격을 퍼붓다가 상대가 반격을 하면 바로 <반격의 원>으로 카운터. 그러다가 치명타 스택이 쌓이면 <치명타 폭발> 스킬로 폭딜!
쾅! 쾅! 콰쾅!
태현이 휘두르는 대검에서 묵직한 기운이 뿜어져 나올 때마다 악마는 휘청거렸다.
“대, 대단하군. 정말…….”
필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많은 플레이어를 봤지만, 태현은 정말 차원이 달랐다.
단순히 스킬이 강력하고, 스탯이 강력한 게 아니었다. 그런 식의 플레이어는 많았다.
경험치를 올리고, 레벨 업을 하고, 좋은 스킬을 얻고, 좋은 장비를 끼고…… 흔히 볼 수 있는 강함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태현은 강함의 방식이 달랐다.
매 순간 빠르고 위협적으로 움직이는 악마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뒤에서 날아오는 악마가 부리는 지옥화염 독수리의 공격을 피해내고, 그러면서도 최대로 딜을 뽑아내기 위해 스킬 연계를 멈추지 않았다.
마치 정밀기계 같은 전투 방식!
몇 가지 행동을 동시에, 완벽하게 해내는 모습이 정말 믿겨지지가 않았다. 저런 플레이어가 정말 <라제단 대장장이>일까?
‘내가 잘못 생각했다!’
하도 기계공학으로 인상 깊은 모습을 많이 보여줘서 착각했다. 필은 가슴 속 깊숙한 곳에서 목소리를 들었다.
-저건 절대 대장장이가 아니야!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필은 뭔가 떠오를 것 같았다. 저 모습은 분명, 판온 1에서, 누군가를 연상시키는…….
“으악!”
필은 깜짝 놀라서 몸을 수그렸다. 전투가 격렬하다 보니, 악마가 쏘아 보낸 검은색 마탄이 그한테까지 날아온 것이다.
“괜찮으세요, 필 씨?!”
“난 괜찮아!”
전투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애초에 작정을 하고 온 원정대를 상대로 소수의 악마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그러나 덕분에 필은 방금 하던 생각을 잊어버렸다.
“와, 이거 잡았다고 레벨 업이야?”
“이 악마들 레벨이 대체 몇이지? 200을 넘나?”
“에이, 설마 그 정도까지는 안 가겠지.”
듣지 않으려고 해도 들리는, 다른 플레이어들의 레벨 업 소리!
태현은 마음을 가다듬으며 아이템 수거에 집중했다. 대륙으로 돌아가면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 그리워지리라.
영혼석(5):
영혼이 담겨 있는 돌입니다. 가치 높은 영혼이 담길수록 돌의 가치가 올라갑니다.
악마들이 갖고 있던 영혼석이 나왔다.
‘써먹고 싶은데, 이건 대륙에 가서 수혁이를 불러야 할 거 같아.’
태현의 마법 스킬로는 성능도 다 볼 수가 없었다.
“저, 저쪽 계곡 밑에서 악마들이 오는 거 같은데요?”
“일단 빠지자. 여기서 더 싸우는 건 무리니까.”
태현도 나름 갖고 있던 스킬들을 사용했고, 길드원이나 교단 NPC들도 지치고 다친 상태였다.
이 정도면 악마가 내준 퀘스트를 완료시킬 정도는 되는 수준!
그렇게 일행은 악마들의 마을로 다시 돌아갔다.
* * *
“대단하군. 역시 에다오르와 친분이 있는 인간이야. 정말 쓰러뜨릴 줄은 몰랐는데. 여기 영혼석이다.”
“고맙군. 혹시 한 가지 물어봐도 되나?”
“뭐지?”
“이 층의 차원문은 어디에 있지? 대륙으로 나가는 차원문.”
“아, 차원문?”
악마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태현은 그걸 보고 순간 생각했다.
‘가기 쉬운 곳에 있나?’
“우리 주인님 성 안쪽에 있을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