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69화
그러나 제대로 본 게 맞았다.
복용 시 사망!
‘……뭔 페널티가 이따구야?’
판온에서 사망 페널티는 결코 만만한 게 아니었다. 당연히 복용 시 사망 같은 페널티가 있는 아이템은 거들떠볼 필요도 없겠지만……
‘……궁금하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위험이 큰 만큼 대가가 큰 법이었다. 태현은 미친 듯이 궁금해졌다.
스킬 <권능 포식>.
저만한 페널티에, 이름이 <권능 포식>이라면…….
‘혹시 아키서스 권능과 관련된 스킬인가? 신 잡아먹는 괴물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스킬인데…….’
궁금하다.
정말로 궁금하다!
가끔 경험 많은 게이머로서의 감이 신호를 보낼 때가 있었다.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이성이나 감이냐!
‘일단 사망 한 번은 <부활> 스킬이 있어서 괜찮아. 페널티 없이 바로 싸울 수 있다. 문제는 지금이 마계라는 건데…….’
복용 자체는 할 수 있었다. 교단을 세우고 얻은 <부활> 스킬 덕분이었다.
문제는 언제 하느냐!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태현은 참았다.
‘마계에서 한 번 죽을 수도 있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부활> 스킬은 미리 쓰면 안 돼. 쿨타임이 더럽게 기니까.’
태현은 참았다. 아무리 감이 신호를 보내도 따라서는 안 될 때가 있는 법!
* * *
“다른 교단의 사제들도 설득을 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싫다는 놈들 내버려 둬.”
태현은 냉정했다. 하론 사제와 데메르 성기사들이 당황했지만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실 다른 교단의 전력과 같이 움직인다면 더 편하기는 했다. 그러지 않는 이유는 하나.
‘어차피 차원문 찾으면 지들이 따라오게 되어 있는데 뭘…….’
다른 교단의 도움을 안 받고 차원문을 찾아내면?
그걸 빌미로 또 공적치 포인트!
-물에 빠뜨린 사람을 건져주기 전에 보따리부터 찾아라!
한 번 기회를 잡은 태현은 결코 손쉽게 놔줄 생각이 없었다.
“크아앙!”
“아오, 저것들 또 나왔어!”
케인은 진저리를 쳤다. 이 주변 황야에서는 계속해서 악마 사냥개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악마 사냥개들은 케인을 좋아했다.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케인만을 노리는 악마 사냥개들!
탱커로서 어그로를 끄는 스킬을 쓰지 않아도 저렇게 몬스터가 달려드는 건 케인에게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이야, 누가 탱커 아니랄까 봐 잘 막는데?”
“내가, 스킬, 쓴, 거, 아니라고!”
사냥개한테 연타를 당하며, 케인은 이를 갈았다.
-데메르의 산들바람!
-데메르의 상급 치유!
다행히 뒤에는 든든한 사제단이 있었다. 아키서스 교단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탄탄한 실력을 가진 사제들!
그들은 순식간에 케인을 회복시켰다. 케인은 속으로 감탄했다.
‘진짜 대단하기는 하구나!’
케인도 파티 플레이 경험은 꽤 있었다. 태현한테 당하기 전에는 사제 플레이어들과 같이 파티를 했었다.
그러나 그 사제 플레이어들의 수준은 엄청나게 낮았다.
지금 데메르 교단의 고위 사제들과 비교한다면 보름달과 반딧불 정도의 차이!
데메르 사제들이 주문을 외우자 순식간에 HP가 꽉꽉 차오르고 공격력은 껑충 뛰었으며 이동속도, 회피율, MP 회복 속도까지 올랐다.
‘<아키서스의 노예>같은 거 말고 <데메르의 노예>같은 걸로 전직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교단도 멀쩡하고 태현 같은 놈도 없는 데메르 교단!
“야, 앞에!”
“어?”
콰- 앙!
잠깐 딴생각을 하던 케인은 악마 사냥개한테 들이받혀 뒤로 날아갔다.
“저 사냥개들은 왜 이렇게 케인을 좋아하는 거지?”
케인이 뒤로 날아가고, 태현과 성기사들, 길드원들이 공격에 노출되었다. 그런데도 사냥개들은 뒤로 날아간 케인을 쫓아 달리려 했다.
물론 그걸 그냥 두고 볼 사람들이 아니었다.
-공격의 원, 강타, 치명타 폭발!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캐캐캥!”
옆으로 빠르게 돌진하는 악마 사냥개의 발목을 검으로 후려친 다음, 순간 비틀거리는 사냥개의 머리통을 다시 후려갈긴다. 그리고 스킬 폭발!
1초 가까운 순간에 벌어진 번개 같은 연속 공격! 곡예에 가까운 공격을 해내는 태현을 본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뭐 저런 놈이 다 있냐?’
‘스킬인가? 아니, 아무리 봐도 방금 건 스킬이 아니었는데?’
하론 사제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혹시…….”
“……?”
“이 악마들이 아키서스에 대해 특히 반감을 갖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악마들마다 다 제각각 특성이 다르니, 싫어하는 신이 따로 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 개들이 아키서스를 싫어한다고? 왜?”
“그 이유야 저도 잘…… 이 층의 주인 악마가 아키서스에게 안 좋은 추억이 있다던가…….”
“…….”
점점 더 수면 위로 떠오르는 에다오르 주인설! 그러나 태현은 고개를 저으며 현실을 부정했다.
‘아니야. 아키서스 같은 인성 더러운 신은 분명 원한을 갖고 있는 악마들도 많을 거야. 꼭 에다오르라는 법은 없지.’
“마을이다!”
“?!”
사냥개들을 물리치고 나자 성기사 중 한 명이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키며 외쳤다.
나무 목책 대신 검은색 뼈로 세워진 벽이 있고, 입구에는 해골로 쌓은 문이 있는 것만 제외한다면 대륙의 마을과 비슷한 모습!
“저기로 들어가도 될까요?”
“차원문의 위치를 알아내려면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문제는 저기 들어가서 환영받을 수 있나 아냐?”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은 수군거렸다. 대륙의 모든 마을이 플레이어들을 환영해 주는 건 아니었다.
어떤 마을들은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꺼지라고 외치거나, 심지어 공격하는 곳도 있었다.
그런 마을의 경계심을 풀고 친밀도를 올려서 드나들 수 있는 마을로 만드는 게 뛰어난 플레이어!
그렇지만 아무리 봐도 저 악마들의 마을은 난이도가 너무 높아 보였다. 경험 많은 그들이 가도 힘들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 주변에서 대기하다가, 밖으로 나오는 악마 있으면 붙잡고 도와줄 거 없냐고 물어봐야 하지 않나?”
“그거 악마한테도 통하는 방법이야?”
“드워프 부족한테는 통했는데…… 악마한테도 통하지 않을까?”
길드원들이 떠드는 사이, 태현은 앞으로 전진했다.
혼자서 위풍당당하게!
“?!”
“태, 태현 님! 뭐해요!”
뒤에서 화들짝 놀라서 소리쳤지만 태현은 당당하게 걸어갔다. 문을 지나자 하품을 하던 악마 하나가 태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인간이잖아?!”
악마 전사는 바지 하나만 입고 근육질의 몸을 자랑하고 있었다. 머리에는 뿔에, 붉은색 피부는 누가 봐도 악마!
“옛날에 겁이 없는 인간들은 마계에도 온다고 말을 들었는데, 진짜인지는 몰랐네. 잘 먹겠다!”
악마는 냉큼 창을 들어 태현을 찔렀다. 태현은 바로 옆으로 공격을 피했다.
뭔가 되게 허술하게 생긴 모습이었지만, 공격에 담긴 위력은 장난이 아니었다.
‘이 자식 레벨이 몇이야?’
평범해 보이는 창도 뭔가 불길한 기운이 스멀거리는 게, 행운만 믿고 회피해도 될지 걱정이 되는 무기였다.
스르릉-
태현은 무기를 뽑아 들고 악마와 대치했다.
태현의 계산은 간단했다. <고급 화술 스킬>이 있으니, 악마를 제압하고 나서 반강제로 대화를 시도할 생각이었다.
콰직!
-지옥의 일격!
악마의 창이 쏜살같이 찔러 들어왔다. 그러나 단순한 찌르기는 태현에게 의미가 없었다.
공격을 보고 피하는 게 아닌, 공격을 하는 상대방의 예비 동작을 보고 피하는 초절정 테크닉!
“제법 재빠르구나, 인간!”
화르륵!
악마의 창끝에서 검은 불꽃이 피어오르더니 ‘확’ 하는 소리와 함께 폭발적으로 퍼져나갔다.
[회피에 성공합니다.]
[회피에 성공합니다.]
[악마가 내뿜어내는 불꽃에 맞았습니다. 오랫동안 맞으면 몸의 상태가 약화됩니다.]
즉발 데미지만 회피하면 나머지는 벗어날 수 있었다. 태현은 빠르게 도약해서 화염에서 벗어났다.
‘와라!’
스킬을 한 번 써서 데미지를 입히면 바로 연달아서 공격해 오는 게 정석.
태현은 그 틈을 노리고 <반격의 원>을 쓸 생각이었다. 정확하게 들어가면 아무리 튼튼한 악마라도 크게 데미지를 입을 것이다.
그러나 악마 전사는 공격하지 않았다. 멈칫하더니 창을 내렸다.
“……?”
“방금 그 회피하는 모습…… 설마 너, 아키서스와 관련이 있냐?”
방금까지 보여주던 허술한 모습은 어디로 가고, 악마는 전신에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여차하면 이 주변 동료들을 전부 불러서 공격이라도 할 것 같은 느낌!
그리고 태현은 언제나 이럴 때 얼굴에 철판을 깔 수 있는 사람이었다.
“뭐? 아키? 아키서스? 그게 뭔데?”
[악마의 눈이 발동됩니다.]
[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간파당하지 않습니다.]
악마나 드래곤처럼 고레벨의 몬스터에게는 거짓말도 쉽게 통하지 않았다. 태현은 <고급 화술 스킬>을 찍어놓은 것에 감사했다.
“……인간. 나를 속이는 거 아니냐? 방금 본 건 아무리 봐도 아키서스의 능력이었다.”
“아키서스가 뭔데 그러는 거냐? 방금 네 공격을 피한 건 내 스킬인…… 아차, 너 이 자식. 치사하게 내 스킬을 캐물으려고 이상한 질문을 던진 거냐!”
백 점 만점에 백 점인 태현의 연기!
악마는 의심을 살짝 거둔 것 같았다.
“으음…… 혹시 모르니까, 인간은 믿는 신을 배신하기 힘들다고 들었다. 그래. 한 번 아키서스 개X끼를 해봐라.”
“뭐?”
“네가 아키서스와 상관이 없다면 아키서스 개X끼를 해보라고.”
누구누구 개X끼 해봐!
원시적이지만 언제나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특히 사제나 성기사 같은 직업들은 자기가 믿는 신을 욕하면 바로 페널티가 들어왔으니까.
그러나 악마는 몰랐다.
상대는 아키서스 교단 관련자가 아니라 아키서스의 화신!
“흥.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태현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여기서 냉큼 욕을 했다가는 오히려 의심을 살 수 있었다.
정말 남 속이는 데에는 천부적인 감각을 발휘하는 태현!
“그렇지만 자꾸 쓸데없는 오해를 받는 것도 싫으니 말해주지. 아키서스 개X끼! 아키서스 개X끼! 됐냐?”
“……내가 착각했나 보군. 좋다. 덤벼라!”
[악마를 속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대륙에서 이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칭호:악마를 속인 자를 얻습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수많은 NPC를 속이다 못해 이제 악마까지 속여 넘기는 태현!
태현은 속으로 침을 삼켰다.
‘후. 들키는 줄 알았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여기 악마들은 신 중에서도 특히 아키서스를 싫어하는 모양이었다.
태현은 <에다오르의 뜨겁게 끓어오르는 진홍빛 대검>으로 무기를 바꿨다.
조금 찜찜하기는 했지만, 이 무기를 쓰면 악마들이 아키서스 관련자로 오해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 그 무기는!”
‘아차!’
악마 전사가 생각보다 격한 반응을 보이자, 태현은 혀를 찼다. 저건 평범한 반응이 아니었다.
‘아키서스로 몰린 것 때문에 너무 급하게 행동했나? 저놈이 에다오르의 부하일 수도 있는데…….’
“44층의 대악마 에다오르와는 무슨 사이냐?”
태현은 예리하게 상대 악마를 관찰했다. 저건 에다오르의 부하가 아니었다. 부하라면 저런 식으로 에다오르를 부르지 않았다.
‘이 층도 에다오르의 층이 아닌 거 같고!’
태현의 머리가 미친 듯이 빠르게 회전했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아주 친한 친구지!”
“?!”
악마 전사는 깜짝 놀랐다.
“말도 안 되는! 어떻게 대악마 에다오르가 인간 따위하고 우정을 맺을 수 있단 말이냐!”
“그러면 이 검은 어떻게 내가 갖고 있겠냐?”
“그, 그렇군. 확실히…….”
태현은 주먹을 쥐었다. 상대는 완전히 속아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