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67화
퍽! 퍼퍼퍽!
기세 좋게 나갔지만, 대장장이들의 사냥은 쉽지 않았다.
원래 사냥도 해본 놈이 잘하는 법!
대장장이들은 계속 안에서 제작만 했기에, 간단한 사냥도 쉽지 않았다.
“저, 저 뿔사슴 뒤로 돈다! 네 뒤에 있어!”
“뭐?! 어디?!”
“그쪽이 아니라 뒤쪽! 망치 휘둘러!”
“폭탄 던진다? 폭탄 던진다?!”
혼란 그 자체!
그래도 대장장이들은 점점 사냥에 익숙해져 갔다.
“저쪽에 짧은 인던 있는데 한 번 들어가 볼까요?”
“우리들끼리요? 그래도 던전인데 사제 한 명 정도는…….”
“우리 HP 많고 버프 서로 다 걸어주면 할 만할 것 같은데요?”
“좋습니다! 한번 해봅시다!”
몇 번의 몰이사냥을 한 대장장이들은 실력에 자신이 붙었다. 서로 버프를 걸어주고, 만반의 준비를 한 다음 근처 산에 있는 던전 입구로 향했다.
“???”
그러나 막혀 있는 던전 입구! 던전 입구에는 전사 플레이어 세 명이 서 있었다.
“뭡니까? 왜 길을 막아요?”
“지금 우리 길드 애들이 던전 돌고 있으니까 나중에 와라.”
“예? 아니, 같이 깨면 되잖아요?”
“사냥하는 데 방해된다.”
가브리엘은 어떻게 된 건지 깨달았다.
던전 독점!
던전을 깰 때 독점하면 여러모로 좋았다. 경험치, 아이템, 히든 몬스터 보상까지…….
물론 널리 알려진 던전은 독점하는 게 힘들었다. 플레이어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니 당연히 겹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하는 게 이런 식으로 입구를 막고 못 들어오게 하는 것!
물론 한 번 하면 예전 케인의 레드존 길드처럼 푸짐하게 욕을 먹지만…….
원래 이런 걸 하는 길드는 보통 두꺼운 철판을 얼굴에 깔고 있기 마련이었다.
“너무하지 않습니까!”
“맞아요! 우리가 뭐 얼마나 잡는다고!”
대장장이들의 항의에도 길드원들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았다.
“다른 데 가서 사냥하면 되잖아. 우리 정도면 친절하지. 다 깨면 비켜주니까. 아예 점령 안 한 걸 고맙게 여겨.”
“그게 무슨…….”
“그리고 보니까 대장장이 같은데 무슨 사냥이야? 그냥 들어가서 아이템이나 만들라고. 골드 줄 테니까 수리나 좀 할래?”
“우리도 사냥할 수 있습니다!”
“아. 가라고. 확 PVP 해버릴까 보다.”
길드원 중 하나가 귀찮았는지 위협하는 시늉을 했다. 검을 들고 윽박지르는 모습. 그걸 본 대장장이들은 울컥했다.
그러나 가브리엘은 입술을 깨물더니 말했다.
“알겠습니다. 가겠습니다.”
돌아서는 가브리엘. 대장장이들은 놀랐지만 가브리엘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를 위로했다.
“잘 참았어요. 확실히 싸워봤자 우리만 손해니까…….”
“던전이 거기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곳 가죠.”
“아니요.”
“……?”
“저 던전에 갑시다.”
“?!”
말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멀어지자, 가브리엘은 대장장이들에게 본심을 털어놓았다.
“저기 길드는 그렇게 대단한 길드도 아니에요. 이 주변에 고렙 없다고 저렇게 횡포를 부리는데, 계속 저러는 꼴은 못 봐주겠습니다. PVP를 하더라도 저기 안으로 들어갈 겁니다!”
“그, 그렇지만…… PVP는 좀…….”
“맞아. 사냥이면 모를까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가브리엘은 태현의 플레이 영상을 떠올렸다. PVP와 기계공학을 결합시킨 테크닉의 진수!
가브리엘은 태현의 팬 중의 팬이었다. 태현의 영상은 몇 번이고 돌려봤다. 아예 외울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김태현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태현은 가르쳐주지도 않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브리엘은 태현의 제자처럼 태현의 전투 방식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었다.
‘그래, 김태현이 날 도와주고 있다!’
가브리엘은 그렇게 생각했다. 태현이 듣는다면 ‘뭔 소리를 하는 거냐’ 싶을 정도의 망상!
그러나 가브리엘은 평범한 망상병 환자가 아니었다. 그는 재능 있고 가능성 넘치는 망상병 환자였다.
“여러분. 여러분이 싫다면 저는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저를 믿어주신다면…… 제대로 싸워볼 계획을 만들어보겠습니다. 저를 믿어주십시오!”
가브리엘의 뜨거운 목소리는 다른 대장장이들을 흔들었다.
“……에이, 뭐 죽으면 죽는 거지. 페널티 몇 번 받으면 어때. 같이 한다!”
“정말로?!”
“페널티도 페널틴데 저놈들 너무 재수 없잖아. 우리 대장장이라고 무시한 거 봤냐? 죽더라도 본때는 보여주고 죽을래.”
한 명이 넘어오자, 다른 사람들도 차례대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나도 한다! 기계공학끼리 뭉쳤는데 끝까지 같이 가자고!”
“이익…… 좋아! 나도 간다!”
* * *
“아니, 가라니까. 진짜 한 대 맞고 갈래?”
던전의 입구를 막고 있던 길드원들은 대장장이들이 다시 나타나자 짜증을 냈다.
그러나 가브리엘은 침착하게 말했다.
“아까 장비 수리해 주면 골드 주신다고 해서…….”
“뭐? 크하하하하!”
길드원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놀리기 위해서 한 말을 진짜로 믿고 올 줄이야.
“아니, 내 장비를 뭘 믿고 너희 같은 대장장이한테 맡기겠어? 왜 대장장이가 필드에서 사냥을 하려고 해. 실력 없어서 그런 거 아니야?”
맞는 말은 맞는 말!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은 다시 한번 울컥했다.
‘지금?’
‘아니, 조금만 더 참아.’
그들은 서로 눈빛을 보냈다. 가브리엘은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그런…… 말한 것만 믿고 수리하러 왔는데…….”
“에이. 불쌍하게. 여기 1실버 줄 테니까 받고 가라.”
“감, 감사합니다!”
가브리엘은 길드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길드원 중 아무도 가브리엘을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바로 지금!
치지지직-
“……?”
콰콰쾅!
[검은 무쇠 폭탄이 폭발합니다. 기계공학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받는 피해가 감소합니다.]
[폭탄 제작자입니다. 받는 피해가 감소합니다.]
“크억!”
갑작스러운 폭발에 길드원들은 경악했다. 그러나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스턴 상태에 빠집니다. 움직일 수 없습니다.]
“죽어라!”
퍽!
가브리엘은 묵직한 망치를 휘둘렀다. 이제까지는 아이템을 만들기 위해 휘둘렀던 망치!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거기에 행운까지 따랐다. 가브리엘은 외쳤다.
“다 던지세요!”
“이, 이런 미친…… 너희들 이러고도 무사할 거 같냐!”
그러나 대장장이들은 잔뜩 약이 올라 있었다.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폭탄을 던졌다.
“무사할 거 같다 이 자식들아!”
“어디 한 번 해봐! 난 죽어도 아쉬울 거 없어!”
콰쾅! 콰콰쾅!
“이런 개…….”
스턴 상태에서 풀리기 직전에 다시 날아오는 폭탄들. 길드원들은 이를 악물었다.
“두들겨 패! 죽여버려!”
대장장이들은 우르르 몰려가 망치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다들 힘은 기본적으로 올려놓았기에 데미지가 만만치 않았다.
폭탄 데미지에, 우르르 몰려와서 집단으로 두들겨 맞자 아무리 전사여도 피가 빠르게 깎였다.
“잠, 잠깐…….”
[HP가 0으로 내려가 사망합니다.]
어이없는 사망!
남은 길드원 둘도 곧바로 사망했다. 상대방이 방심했고, 기습한 데다가, 숫자도 대장장이들이 더 많긴 했지만…….
그래도 승리!
대장장이들은 손에 손을 잡고 기뻐했다. 판온을 하면서 PVP를 한 건 처음이었던 것이다.
“아직 좋아하기는 이릅니다!”
“……?”
“빨리 아이템을 챙기고 준비를 해야 해요. 곧 남은 길드원들이 올 테니까요.”
가브리엘은 재빠르게 대장장이들에게 지시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김태현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태현이라면…….
여기에서 함정을 놓고 추가로 싸운다!
“덫을 깝시다. 만들어놓은 거 있죠? 덫 제작 스킬 있으신 분이 까세요. 추가 데미지 들어가게.”
“저 있습니다!”
“저도 있으니까 둘이 깔죠.”
“남은 폭탄은 여기 옆에 깔아놓읍시다. 던지면 바로 폭발하게!”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었다. 대장장이들은 한 번 맛본 PVP의 맛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두려움은 잊어버리고 모두 싸울 각오가 흘러넘쳤다.
그사이 어이없게 기습당한 길드원들은 다른 길드원들에게 연락하고 있었다.
-야! 우리 지금 웬 이상한 놈들한테 당해서 로그아웃됐어!
-뭐? 어떤 놈들인데. 레벨 높아 보였어?
-아냐. 대장장이들인데…….
-……대장장이한테 죽었다고?
-기습한 데다가 숫자도 많았다고! 수리해준다고 다가왔다가 갑자기 자폭을 해대는데…….
다른 길드원들은 처음에는 설명을 믿지 못했다. 이게 뭔 개풀 뜯어 먹는 소리?
-저거 죽어놓고 쪽팔려서 구라치는 거 아냐?
-아니야!!
-일단 가보자고. 던전 안에 들어간 놈들도 다 나오라고 그래.
우르르-
근처에 있던 길드원들은 별생각 없이 빠르게 달려갔다.
아무리 그래도 대장장이인데, 방심만 하지 않으면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독이 발린 화살 덫을 작동시켰습니다. 중독 상태에 빠집니다.]
[구덩이 덫을 작동시켰습니다. 움직일 수 없습니다.]
[작은 화염 폭탄이 앞에서 터집니다. 화상 상태에 빠집니다.]
잔뜩 벼르고 준비한 대장장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무서웠다.
“이, 이게 뭐야?!”
“대체 뭐하는 놈들이야 저거?!”
깔아놓은 폭탄과 덫에 길드원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고, 마지막 남은 길드원까지 쓰러지자 가브리엘은 달려가서 망치를 휘둘렀다.
[HP가 0으로 내려가 사망합니다.]
가브리엘은 망치를 번쩍 들고 외쳤다.
“우리는 노예가 되지 않을 겁니다! 판온의 주인이 될 겁니다!”
그 모습에 대장장이들은 크나큰 감동을 받았다. 이것이다. 이것이 기계공학이다!
“가브리엘 만세!!”
“기계공학을 위하여!”
* * *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 채, 태현은 마계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널찍한 황야라고 해서 방심할 수는 없었다. 마계의 몬스터는 온갖 곳에서 나타났다.
어두운 하늘에서 나타나는 건 물론이고, 딱딱한 암석 바닥을 뚫고 나타나거나 끓어오르는 용암에서 나타났다.
“용암 악마 사냥개다! 피하십시오!”
“왜 자꾸 내가 있는 곳에만 나타나는 거야!”
케인은 뒤에서 나타난 몬스터를 보고 절규했다. 성기사들도, 사제들도 많은데 이상하게 그가 있는 곳에 자꾸 몬스터가 나타나는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뭔가 이상했다.
콰쾅!
[용암의 이빨에 당했습니다. 화상 상태에 빠집니다.]
[저항에 성공합니다.]
“저리 가라!”
케인은 발로 몬스터를 걷어찬 다음 바로 추가타를 날렸다.
-크르르…….
“이 똥개들이 어디서 덤…… 어?”
용암에서 뭔가 더 거대한 몬스터가 나오기 시작했다.
케인은 그걸 보고 말을 더듬었다.
나타난 건 방금 상대한 <용암 악마 사냥개>보다 몇 배는 거대해 보이는 사냥개!
“저건 용암 악마 사냥개 어미입니다!”
“……설명 고맙다!”
뒤에서 외치는 사제 NPC가 정말 얄밉게 느껴졌다.
-크르르……!
사냥개 어미는 다른 많은 사람을 내버려 두고 케인만을 노려보았다.
마치 ‘방금 네가 한 짓을 알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 같은 얼굴! 케인은 속으로 울었다.
‘김태현 저놈은 이런 상황에서 시치미도 잘 떼던데 왜 나는…….’
케인은 급하게 <검은 바위단> 쪽을 보며 외쳤다.
“모두 도…….”
-크와아아앙!
달려드는 사냥개! 용암으로 된 앞발을 휘두르자 불꽃이 날아갔다. 케인은 그걸 막고 튕겨 나갔다.
[용암 발톱에 적중당했습니다. 튕겨 나갑니다.]
자세가 무너진 케인. 그런 케인한테 사냥개가 달려들었다. 케인의 목소리를 들은 구성욱이 외쳤다.
“모두 도?! 뭡니까?!”
“자기가 맡을 테니까 모두 도망가라는 거겠지.”
“그런……!”
탱커의 귀감! 구성욱은 순간 감동받았다. 케인의 충성심이 장난이 아니라더니 정말…….
“모두 도와달라고 이 XXXX들아!”
사냥개한테 연속해서 물리며 필사적으로 외치는 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