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64화
분통을 터뜨려도 이미 정해진 순서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70을 찍었다.’
마의 70!
남들은 150, 200을 향해 쭉쭉 달려가고 있다고 생각해 보면 마음이 아팠지만…….
‘진, 진정 중요한 건 다른 사람이 아니라 과거의 자기보다 나아지는 거니까…….’
태현은 빠르게 정신승리를 했다.
연속해서 이어지는 메시지창!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신 잡아먹는 괴물을 봉인한 대가로 저주를 받습니다.]
[강제로 공간이동됩니다. 저항할 수 없습니다.]
화르륵!
봉인되어가는 괴물에서 흘러나온 검은 기운이 태현의 전신을 휘감았다.
“…….”
잘 나가다 마지막에 상큼하게 뒤통수를 치는 메시지창. 태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리에 모인 사제와 성기사들은 경악한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당연했다. 대결전을 각오하고 있었는데, 시작도 하기 전에 보스 몬스터를 그냥 봉인시켜버린 것이다.
“김, 김태현 백작님……!”
감격한 목소리로 말하는 하론!
“대륙을 위해서, 저희를 위해서, 그런 희생을 하시다니!”
“말, 말도 안 되는…… 저런 자가 우리를 위해서 희생을…….”
“하지만 사실이지 않소!”
[타이란 교단의 NPC들이 당신의 희생에 감격합니다. 교단 내의 평가가 오릅니다. 교단과의 관계도가 올라갑니다.]
[야타 교단의 NPC들이 당신의 희생에 감격합니다. 교단 내의 평가가 오릅니다. 교단과의 관계도가 올라갑니다.]
주르륵 뜨는, 메시지창들! 자리에 있던 교단들 전원이 태현의 행동에 감격하고 있었다.
아무리 보스 몬스터를 원샷에 잡았다고 해도 좀 지나친 감동!
태현은 뭔가 짐작 가는 게 있어서 하론을 향해 물었다.
“설마 이 괴물을 잡는 놈한테는 저주가 걸린다거나 하는 거였나?”
“……모르셨습니까?”
“말을 안 했는데 어떻게 아냐 이 자식아!”
“죄, 죄송합니다!”
-크하하…… 내 저주의 힘을 느껴라…… 저 세계의 끝까지 날아가도록 해라…….
“아. 시꺼.”
봉인되어가는 괴물이 뒤에서 시끄럽게 떠들자 태현은 뒤를 향해 어둠의 화살을 날렸다.
매섭고 빠르게 날아가는 어둠의 화살!
퍼퍽!
태현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이미 저주는 걸렸고, 회피는 불가능한 상황.
어디로 가게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저주로 가는 상황에 분명 좋은 곳으로 보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가장 좋은 행동은?’
태현은 바로 답을 내렸다.
덥석!
태현은 바로 케인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태현을 감싸고 있던 검은 기운이 케인도 감싸기 시작했다.
[강제로 공간이동됩니다. 저항할 수 없습니다.]
“……이게 뭐하는 거냐?”
“하하, 좋은 건 같이 나누고 살아야지.”
“미친놈아!”
케인은 절규했다. 태현을 상대한 지 꽤 되었기에, 지금 태현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물귀신 작전!
‘아니…… 어차피 아키서스의 노예 직업 페널티 때문에 따라갔어야 했겠지만…….’
케인은 붉어진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눈빛에 다른 사람들이 흠칫했다.
덥석!
“왜, 왜 날 잡아?!”
“같이 가자!”
물귀신의 연쇄!
케인은 닥치는 대로 달려들어 아무나 붙잡기 시작했다. 가까이 있던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은 피하지도 못하고 붙잡히기 시작했다.
덥석!
태현은 에드안도 끌어들였다.
“……태현 님, 제가 뭔 잘못이라도?”
“에드안. 이동되고 나서 편하려면 최대한 더 많이 데리고 와야겠지?”
“최선을 다해서 끌어들이겠습니다!”
에드안은 눈부신 활약을 선보였다. 도둑의 자랑은 역시 민첩!
피하려는 교단의 NPC들을 붙잡고 닥치는 대로 저주를 걸리게 만들었다.
“역시 에드안이야. 가차 없지.”
“저놈을 꼭 우리 교단이라고 밝혀야 했을까요?”
루포는 체념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저주에 걸린 상태였기에 반쯤 포기한 목소리!
“으악! 왜 나를 붙잡는 것이냐!”
“하하! 손이 미끄러졌습니다!”
“김태현 백작! 이놈 좀 말려보시오!”
“하하. 에드안은 내 말을 잘 안 듣는 흉폭한 놈이라서.”
방심하고 있던 교단의 NPC들은 차례대로 공간이동의 저주에 같이 걸리기 시작했다.
“위로! 위로 올라가서 저주를 풀자!”
“배로 돌아가야 해!”
어찌나 급했는지, 교단의 사제들과 성기사들은 태현한테 따지지도 않고 허겁지겁 던전의 출구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걸 본 태현이 하론에게 물었다.
“배 위로 올라가면 저주를 풀 수 있나? 그럴 방법이 있었어?”
“……없을 겁니다.”
침울한 하론의 얼굴!
저주에 걸렸다는 공포 때문에 별 의미도 없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 * *
“야, 위장 철저하게 했지? 성기사하고 사제들이야. 탐지 마법 쓰면 위험하니까 최대한 선량하게 보여야 해.”
“이 장사 한두 번 합니까? 걱정 마십쇼.”
잭과 부하들은 철저하게 위장하고 교단의 함선들을 향해 접근하기 시작했다.
평화로워 보이는 겉모습에, 미리 준비한 상단의 깃발. 거기에 상단의 직원 같은 복장까지. 각종 위장 스킬들로 준비한 그들!
그 순간 교단의 함선 갑판 위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저, 저놈들 왜 저래? 왜 갑자기 난리지? 우리 오는 거 눈치챘나?”
“설, 설마…….”
“교단 놈들 스킬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아! 이런 젠장…… 여기까지 왔는데…….”
그러나 교단의 함선은 그들을 눈치챈 게 아니었다.
콰르륵! 콰륵!
교단의 함선을 감싸기 시작하는 거대한 어둠! 잭은 입을 벌렸다. 지금 뭔가 강력한 마법이 일어나고 있었다.
“뭐, 뭐야 저거……?”
쑥!
허공에 거대한 구멍이 열리더니, 함선이 그 안으로 빨려들어 가버렸다.
남은 건 방금 있었던 일이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잔잔하고 평화로운 바다뿐!
“???????”
잭은 사기라도 당한 기분이었다.
* * *
“으아아아아아아아-”
옆에서 질러대는 케인의 비명을 들으며, 태현은 바닥에 착지했다.
치이익-
“치이익?”
뭔가 타는 소리!
[마계의 끓어오르는 용암에 닿았습니다. 회피에 성공합니다.]
[마계의 끓어오르는 용암에 닿았습니다. 회피에 성공합니다.]
“아뜨뜨! 아뜨!”
태현이야 회피했지만, 케인은 피하지 못했다. 케인은 HP가 감소한다는 메시지에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뭐야 여기?!”
주변을 둘러보자, 거대한 황야가 눈에 들어왔다. 그냥 황야가 아니었다.
바닥 곳곳에는 끓어오르는 용암이 흐르고, 땅은 흙이 아닌 검게 굳은 암석이었다.
그리고 하늘에는 태양도 보이지 않았다. 온통 시커먼 어둠뿐!
검붉은 색이 보통 불길한 게 아니었다.
“서, 설마 아니지? 내가 생각하는 그게?”
케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방금 뜬 메시지창에 분명, ‘마계의 끓어오르는 용암’이라고 나와 있었다.
설마, 설마…….
“마계로 온 거 같은데?”
“갸아아악! 갸아아아아아악!”
케인이 비명을 지르는 사이 차례대로 태현의 희생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콰콰콰쾅!
함선째로 날아온 교단 NPC들!
물 하나 없는 마계의 황야 위에 교단의 함선이 추락한 모습은 장관이었다.
“모두 집합!”
“…….”
태현의 말에 주변에 떨어진 사람들은 모이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를 하나 들어보기나 하자’라는 표정이었다.
“어쩌다가 저주에 당해서 마계에 떨어지게 됐지만, 그렇다고 절망할 이유는 없지.”
“아니, 당신 때문에 떨어진 거잖아……?”
타 교단의 사제 중 한 명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물귀신 작전을 쓴 게 누군데!
그러나 태현은 당당했다.
언제, 어느 순간에서라도 당당함을 잃지 않는 게 태현의 장점!
“내가 뭘 했는데?”
“김태현 백작이 저주를 맞았는데 우리를 끌고 와서…….”
“내가 설마 일부러 그랬겠냐? 나도 이런 저주인 줄 몰랐지! 그리고 대부분은 저 에드안 때문이잖아.”
정치해도 될 것 같은 책임 회피와 우기기! 태현은 멈추지 않고 추가타를 날렸다.
“그리고 내가 괴물을 쓰러뜨리고 봉인시켰는데 설마 날 그냥 내버려 두고 입 닦을 생각은 아니었겠지? 교단들이 그렇게 뻔뻔하지는 않을 거 아니야. 설마 그런가?”
“그, 그런 건 아니오.”
교단들의 입장에서 ‘널 그냥 내버려 두고 입 닦을 생각이었다! 저주 걸린 건 너지 우리냐!’라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었다.
“그러면 문제없네. 불만 있는 사람?”
[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설득에 보너스를 받습니다.]
여기 온 플레이어들은 다 태현의 편이었고, 나머지 NPC들은 태현의 화술 스킬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태현은 이 인원을 전부 마계로 끌고 왔는데도 은근슬쩍 넘어가는 데 성공했다.
귀신같은 회피 능력!
* * *
방송에서는 김태산이 미인 MC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태현이가 집 안에서는 정반대라니까. 내가 방송 보고 깜짝 놀랐지. 아니, 얘가 어떻게 저렇게 착하게 나왔나?”
“김태현 플레이어가 집에서는 딴판인가요? 어떻길래?”
“으음…….”
김태산은 말을 머뭇거렸다. 생각해보니 곧이곧대로 말하면 그한테도 수치스러운 상황!
“가족한테 막 화를 내거나 성질을 부리나요?”
“그러지는 않지. 누구 아들인데.”
“그러면 게으르거나…… 다른 건 다 포기하고 게임만 하나요? 사실 김태현 플레이어 정도 실력이면 게임만 하는 게 문제가 되지 않잖아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게으르지는 않아. 자기 관리 꼬박꼬박 잘 하고, 대학도 알아서 잘 다니고…….”
“아, 김태현 플레이어가 대학생이셨군요.”
“그놈이 그래 봬도 한국대 수석 입학했…… 잠깐, 왜 이야기가 여기로 샜지?”
MC 역할을 맡은 여자 플레이어가 김태산을 따뜻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사실 자식 자랑을 하고 싶으셨군요. 그 마음 이해합니다.
정상급 플레이어에, 다른 단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들어보니 오히려 완벽한 수준!
처음에 김태산이 태현한테 불평한 것도 아버지로서 아들한테 가지는 애정 섞인 불평이 분명했다.
김태산이 그 눈빛을 이해하지 못할 리 없었다.
“아니야! 아니라고!”
“네. 네. 이해합니다. 김태현 플레이어가 성에 안 차시는 거죠? 저희 부모님도 그러셨어요. 제가 뭘 해도 만족하지 못하시고 더 바라시는…… 그게 부모님 마음이죠?”
“그런 게 아니라니까! 사람 말 좀 들어, 이 사람아!”
“그러면 김태산 플레이어의 영상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최강지존무쌍> 길드의 대규모 전투! 모두들 기대해주세요!”
삑-
배장욱은 리모콘을 누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리모콘을 잡은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배미나 이자식!!!”
방심한 사이 그의 여동생이 강하게 뒤통수를 후려갈긴 것이다.
방금 본 SBC 생방송. 김태산과 관련된 특집. 배장욱은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이건 대박이다!
방송으로서의 재미도 잡았고, 태현의 팬들도 추가로 관심을 가질 것이고, 게다가 김태산이라는 플레이어 자체의 실력도 출중했다.
‘내가 너무 안일했다! 잘나가고 있다고 해서 방심하면 안 됐는데!’
이쯤 되자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배미나가 설마 태현한테도 접촉한 게 아닐까?
태현한테 가장 발언력 강한 게 누구겠는가. 부모님 아니겠는가. 김태산을 섭외했다면 김태산을 설득해서 태현을 설득할 수도 있었다.
태현은 독점 계약을 한 상황도 아니고, 얼마든지 방송사를 바꿀 수 있었다.
게다가 최근 방송도 방송사를 통해 방송한 게 아니라 <파워 워리어>라는 이상한 길드 방송을 통해 개인 방송으로 내보내지 않았는가!
“차 준비해!”
“예? 어디로요?”
“김태현 플레이어 만나러 간다!”
“전화로 해도 되지 않습니까?”
딱!
경쾌하게 울리는 소리!
“이 자식이 지금 머리가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성의 몰라, 성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