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63화
“그나마 적이 적어서 다행입니다.”
태현의 속도 모르고, 옆에서 구성욱이 그렇게 말했다.
여기서 신성 관련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스킬이 봉인 당한 상황.
아까처럼 하나씩 나와서 맞상대하는 게 아닌, 적이 우르르 나오는 형태였다면 원정대는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
그러나 태현에게는 아쉽기 그지없는 상황! 뭐라도 좀 때리고 잡아서 경험치를 올리고 싶은데…….
“들어갑시다, 김태현 백작!”
“흥! 오지 않을 거면 두고 오게. 아까도 가장 늦게 오더니 이번 원정에 별 열의도 없는 것 아닌가?”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오!”
“내가 틀린 말을 했나!”
사제들끼리 싸우는 걸 보며 태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넌 나중에 처리해 준다.’
한마디 했다가 태현한테 그렇게 당해놓고, 학습 능력이 없는 것 같았다.
언제나 그런 사람은 태현한테 VIP 고객이나 마찬가지!
* * *
“언제 나오는 거야?”
“따라 들어가 볼까요?”
“아니…… 너무 위험하지, 그건.”
잭은 수평선에 멈춰선 교단의 함선들을 살펴보았다. 함선 위에는 보기만 해도 흉흉해 보이는 성기사들이 우글거렸다.
원정대를 제외했는데도 강력한 전력!
잭의 수준에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김태현하고 다른 놈들은 어디로 간 거야? 바다 밑으로 내려갔나?’
어떻게든 태현의 빈틈을 잡아서 멱을 따야 하는데, 워낙 같이 다니는 놈들이 쟁쟁해서 그게 쉽지가 않았다.
사실 다른 교단의 NPC들은 태현을 많이 싫어했기에 잘 접근한다면 다른 방향의 뒤통수가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걸 생각해내는 건 태현 정도!
콰아아아아아-
“……?”
저 멀리서 뭔가 거대한 소리가 들리자, 잭과 그의 부하는 바로 고개를 돌렸다.
이게 무슨 소리?
“배, 배다!”
“반대 방향에 배! 열 척은 넘어!”
잭의 해적선에 있는 해적 부하들은 그래도 나름 시야가 좋았다.
그런 해적 부하들의 시선을 뚫고 갑자기 벼락처럼 나타난 함선들!
“왕국 해군이냐?!”
잭은 기겁해서 외쳤다. 왕국 해군이면 최악의 상황. 그러나 다행히 최악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해적입니다!”
“어떤 해적인데?!”
“갈…… 갈르두!”
“뭐?! 갈르두?!”
에스파 왕국에서 움직이던 대해적 갈르두! 해적 꿈나무(?)인 잭은 당연히 강력한 해적 NPC인 갈르두에 대해 알고 있었다.
저주를 받아서 바다를 떠도는 대해적 갈르두. 그의 성격에 거슬리는 건 뭐든지 다 부숴버리는…….
“도망치기에는 이미 늦었습니다!”
“바칠 거 갖고 나와! 골드! 전부 긁어모아!”
잭은 그래도 판단이 빨랐다.
다른 플레이어들이라면 욕심을 부려서 도망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잭은 알고 있었다.
이미 늦었다는 것을!
그렇다면 차라리 모든 걸 바치고 납작 엎드려서 배라도 건져야 했다.
“항복 깃발 올려! 항복!”
[대해적 갈르두의 해적단에게 항복 요청을 보냈습니다.]
“제발, 제발……!”
[항복 요청이 받아들여졌습니다.]
“살았다!”
얼마나 뜯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목숨은 구한 것이다. 잭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촤르륵-
잭과 부하들은 해적들에게 둘러싸여 갈르두의 해적선 갑판으로 끌려갔다.
삐끗하면 바로 무기에 관통당할 살벌한 분위기!
“뭐냐, 너는?”
“저, 저는 잭입니다. 해적으로 살아오면서 언제나 갈르두 님의 아름다운 명성과 이름을 존경해 왔습니다! 부디 제가 준비한 선물을 받아 주십시오!”
갈르두는 피식 웃었다. 잭의 화술 스킬은 갈르두를 속일 만큼 높지 않았다. 잭의 속셈이 훤히 보이는 갈르두였다.
“좋다, 받아주겠다!”
“감사합니다!”
“원하는 건 네 목숨이렷다?”
“예!”
“살려주도록 하지.”
‘살았다!’
잭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려라!”
“예?”
“살려준다고 했을 텐데. 지금 내리라고 했다.”
“……!!”
잭은 갈르두의 말뜻을 알아듣고 창백한 표정을 지었다.
날강도 그 자체!
잭의 해적선을 내려놓고 꺼지라는 뜻 아닌가.
“그, 그것이…….”
“목숨이 별로 필요하지 않은가 보군.”
‘$*@#&$($*#(…….’
잭은 피눈물을 삼키며 내릴 준비를 했다. 그 순간 갈르두가 물었다.
“여기서 뭘 하고 있었지?”
“해적질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누구를?”
“저 교단들의 배를…….”
갈르두의 눈빛이 번쩍였다.
“네 배를 돌려받고 싶나?”
“예? 예! 물론입니다!”
“좋아. 그러면 내 말을 따라라!”
<갈르두의 협박-해적 퀘스트>
대해적 갈르두는 당신의 해적선을 볼모로 잡고 당신에게 임무를 강요하고 있다.
임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경우, 당신의 해적선은 갈르두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성공할 경우 해적선을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다. 갈르두를 만나는 건 해적으로서의 영광이기도 하다. 최선을 다해서 임무를 해내라!
보상:?, ???, ?????
꿀꺽-
잭은 침을 삼켰다. 판타지 온라인은 언제나 위기가 기회로 바뀌는 곳이었다.
‘갈르두의 밑으로 들어가는 건 기회다!’
이번 일만 잘 해내면 갈르두의 부하로 들어가서 이것저것 얻어낼 기회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뒤통수를 치고 갈르두의 모든 걸 삼킨다!
“하겠습니다! 뭐든지 시켜만 주십시오!”
“저 교단의 함선으로 다가가라. 그리고 염탐해라! 특히 김태현 백작이라는 놈이 있을 것이다.”
“????”
잭은 깜짝 놀랐다. 갈르두가 왜 대체 태현을 찾고 있는 거란 말인가?
잭은 몰랐지만, 태현은 에스파 왕국을 탈출하면서 데넬손인 척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갈르두를 만났을 때 친 사기!
갈르두는 상상도 못 한 채 믿고 있다가, 결국 찾아오지 않은 태현에게 분노해 카테란드 섬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깨닫게 된 진실!
-찾아서 박살 낸다!
갈르두를 속이고 무사할 사람은 없었다.
* * *
“왜 귀가 간지럽지?”
던전의 안쪽으로 이동하면서 태현은 중얼거렸다. 이다비가 그걸 듣고 물었다.
“누가 욕하는 거 아니에요?”
“흠, 너무 많아서 짐작이 안 가는데.”
“…….”
“그나저나 여기 던전은 왜 이래? 몬스터 하나 없고. 뭔 쓰레기 같은…….”
“좋은 거 아닌가요? 여기 클리어해야 보상을 받을 수 있는데…….”
“난 싸우고 싶다고. 뭐라도 좀 안 나오면 저 교단 놈들이라도 잡아야…….”
“그건 안 돼요!”
이다비는 기겁을 하고 말렸다. 태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이다비를 쳐다보았다.
“설마 내가 진짜 잡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
“…….”
“가끔 네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단 말이야…… 하론 사제. 여기는 원래 이런 곳인가?”
“예, 백작님. 고서에 따르면, 예전 원정대는 괴물과 사투를 벌이고 이 깊은 곳에 봉인을 시켰다고 들었습니다.”
“거, 몬스터 몇 마리 정도 남겨놓을 수도 있지 않나…….”
태현은 아쉬워서 연신 입맛을 다셨다. 하론은 웃으면서 말했다.
“백작님은 농담도 잘하시는군요!”
“농담 아닌데.”
“어찌 되었든 다른 몬스터가 없다는 건 천만다행입니다. 봉인된 괴물이 워낙 강력한 놈이기에 던전 자체에 영향을 줘서 몬스터를 출몰시켰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최대한 빨리 들어가서 봉인을 다시 재정비해야 합니다.”
“봉인은 어떻게 하는 거지?”
“각 교단의 사제들이 한 곳으로 힘을 모아 다시 한번 주문을 외우면 됩니다.”
“상대가 그냥 당해주나?”
“어…… 봉인되어 있으니까요?”
“봉인되어 있는 건 확실하고?”
“하하, 각 교단의 힘을 모은 봉인이 그렇게 쉽게 풀릴 리가…….”
하론을 내버려 두고, 태현은 이다비에게 속삭였다.
“보통 이런 건 가보면 봉인이 깨져 있거나 깨지기 직전 아닌가?”
“불, 불길한 소리 하지 말죠. 판온은 꼭 그런 법 없잖아요.”
쿠쿠쿵-
순간 어디선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주변은 깊은 바닷속인데도 선명하게 들리는 소리!
“뭐냐?!”
“조심해라! 주변을 경계해!”
성기사들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검을 뽑아 들고 외쳤다.
[신을 잡아먹는 괴물이 깨어나려고 합니다.]
[다시 봉인하십시오!]
콰득! 콰드득!
섬뜩한 소리와 함께 깊은 바닷물을 가두고 있는 수중의 벽에서 거대한 손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은 모습!
“모두 모여라! 전투 준비!”
“나오는 순간 쏟아붓는다!”
각 교단의 전투원들뿐만 아니라,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도 급하게 움직였다.
태현을 따라온 것도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
-크흐흐…… 어리석은 신의 추종자들이 나타났구나……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 말을?!”
“봉인이 풀렸단 말인가!”
-여기가…… 너희의 무덤이 될 것이다…….
콰직! 콰지직!
물로 된 벽에서 또 하나의 팔이 튀어나오고, 추하게 일그러진 괴물의 얼굴이 나타났다.
으드드득-
팔다리에 신성한 빛으로 그려진 봉인 문자가 덕지덕지 새겨져 있는 괴물!
그러나 그 문자도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봉인이 풀리기 직전 같았다.
-보아라! 내 힘을!
[신을 잡아먹는 괴물이 살신의 포효를 사용합니다.]
[공포에 질립니다!]
“커헉!”
“이런 미친!”
저항 불가의 강제 광역기! 공포 상태가 뜬 플레이어들은 경악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한 번에 바로 공포 상태에 빠지다니!
그러나 태현은 멀쩡하게 서 있었다. <공포를 모르는 자> 칭호 덕분에 공포 관련 스킬에는 면역이었던 것이다.
철컥-
태현은 석궁을 꺼내 들고 말했다.
“내가 어렸을 때 뭘 싫어했는지 알아?”
“……?”
이다비와 케인은 공포 상태로 인해 시야가 흐려지고 어두워진 상태였다. 그런데도 태현의 목소리는 그대로 들렸다.
“뭔,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어렸을 때 만화영화를 보면 꼭 주인공이든 악당이든…… 서로가 변신할 때는 기다려주고 하더라고. 난 그게 참 이해가 안 갔어. 그냥 변신하기 전에 패서 이기는 게 깔끔하고 빠르잖아.”
조준 완료!
태현은 앞에 가까이 다가가 석궁을 조준했다. 괴물은 태현이 뭘 하려는지 예상하지 못했는지 봉인을 풀기에 바빴다.
“네가 풀려나면 몬스터들도 많이 나올 거고, 그거 생각하면 조금 끌리긴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수지. 그냥 죽어라.”
죽일 수 있을 때 죽여야 한다!
태현은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괜히 봉인에서 풀려난 놈이 제힘을 되찾고 날뛰기 시작하면 태현까지 같이 망할 수 있었다.
-크하하…… 내 힘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놈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 크아아아아아아아악!
하나밖에 없는 오리하르콘 화살을 화끈하게 장전해서 갈겨버리는 태현!
바로 이런 게 태현의 장점이었다.
단 하나밖에 없는 물건이라도 써야 할 때는 쓴다!
‘아까워서 망설이는 건 멍청이나 하는 짓이지!’
빠르게 날아간 오리하르콘 화살이 괴물의 이마에 적중하더니, 눈부신 빛을 폭발하듯이 뿜어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오리하르콘 화살로 인해 괴물에게 추가 데미지가 들어갑니다.]
[신 잡아먹는 괴물이 다시 영원한 봉인으로 빠져듭니다.]
미친듯한 폭딜!
행운으로 인한 높은 데미지와 오리하르콘 화살로 인한 추가 데미지까지.
그야말로 오리하르콘 죽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격에 보스 몬스터를 침묵시키는 강력함!
[칭호:마탄의 사수를 얻습니다.]
[칭호:금전감각이 마비된 자를 얻습니다.]
[칭호:괴물을 봉인한 자를 얻습니다.]
[신성 관련 스킬을 다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어?’
그러면, 패시브 스킬이 돌아오고, 경험치는 다시…….
[레벨 업 하셨습니다.]
“아니, 이런 빌어먹을 순서를 봤나!”
그거 순서 바꾼다고 뭐 크게 달라지는 게 있다고! 태현은 억울함에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