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59화
“……!”
타이란 사제는 경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뇌물을 요구하는 건가!”
“아니,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네. 뇌물이라니. 마음이 담긴 선물이지.”
“그게 무슨 마음이 담긴 선물이오!”
“왜 그래. 가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진심이 담긴 거라고. 안 그래, 이다비?”
“맞는 말이네요.”
쿵짝이 맞는 두 사람! 타이란 사제는 이를 갈며 말했다.
“좋소! 얼마를 원하시오!”
“골드보다는 다른 걸 원하는데. 공적치 포인트 내놔.”
“……!”
무슨 맡긴 물건을 달라는 것처럼 당당하게 말하는 태현! 타이란 교단의 사제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대답했다.
“공적치 포인트는 교단을 위해 헌신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오! 어디 타이란 교단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가!”
“싫으면 말던가. 참고로 지금 뒤에서 사과할 사제들이 더 있는데, 뒤 순서로 갈수록 공적치 포인트 더 많이 받아낸다. 어지간하면 지금 내고 끝내는 게 이익일걸.”
“……절대 안 되오!”
“알겠어. 싫으면 말라니까.”
“안 된다고 했잖소!”
“……귀가 막혔냐?”
안 된다고 하면서 발걸음은 떼놓지 않는 타이란 사제!
“안 할 거면 가라니까!”
“김태현 백작! 지금 대륙의 위기가…….”
“아, 안 사요. 안 사. 애들아! 사제님 좀 치워라!”
케인과 루포는 곧바로 타이란 사제의 양팔을 붙잡았다. 힘껏 저항하는 타이란 사제!
“이럴 수는 없소! 이럴 수는 없단 말이오!”
“자, 다음 분!”
약점을 잡힌 사제들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다들 공적치 포인트는 안 된다고 뻗댔지만, 결국 항복하는 한 명이 나오기 시작했다.
“야타 교단은 훌륭해! 좋아. 공적치 포인트는 잘 받겠어.”
야타 교단의 사제가 항복하고 태현한테 공적치 포인트를 주자, 다른 사제들은 발끈해서 야타 교단의 사제에게 외쳤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그쪽은 자존심도 없소? 교단의 공적치 포인트를 그렇게 함부로 주다니!”
“지금 김태현 백작을 원정대에 넣는 게 중요한 거 아닙니까!”
나름 대의를 위해 희생을 했는데 동료들이 불평을 하자, 야타 교단의 사제도 울컥한 듯이 외쳤다.
생각해보니 이 원인을 제공한 게 저들 아닌가!
“자기네들이 입단속 못 해서 남까지 이런 상황에 빠뜨려놓고! 반성은 못 할망정!”
“뭐, 뭐요? 지금 말 다 했소?”
아수라장!
대륙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힘을 합치기 위해 모인 교단의 일원들.
그들은 출항하기도 전에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
“이거 위험한 거 아닌가?”
사제들끼리 멱살을 잡고 이놈 저놈 하는 꼴을 본 루포가 중얼거렸다.
* * *
“크윽…… 타이란 님. 죄송합니다…….”
가장 마지막까지 고집을 부리다가 가장 많은 공적치 포인트를 바치게 된 타이란 교단의 사제!
그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태현에게 공적치 포인트를 건넸다.
“그러게 먼저 했어야지. 어쨌든 공적치 포인트는 잘 받았네.”
NPC들의 실수 한마디 갖고 한 장사치고는 정말 쏠쏠하게 남는 장사였다.
‘아이템을 받는 것도 좋겠지만 그건 지금 할 게 아닌 거 같고, 관계를 우호로 만들어야 하나?’
태현은 사제들을 쳐다보았다. 태현에게 원망 섞인 시선을 보내는 사제들!
이미 틀어진 관계를 원래대로 돌릴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흠, 그냥 다른 데다가 쓰는 게 낫겠다. 사이는 계속 안 좋아도 뭐 어쩌겠어?’
사이가 안 좋아진 걱정이라고는 조금도 안 하는 태현이었다.
분위기가 싸늘해지자, 사제 하론이 입을 열었다.
“여, 여러분. 여러분들은 여기 대륙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모이신 분들입니다.”
“…….”
그러나 분위기는 변하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쳐다보지 않으려고 했다.
방금 태현이 공적치 포인트를 뜯어내는 과정에서 일어난 불화!
“흥! 우리는 먼저 가보겠소.”
“누가 할 소리!”
각 교단의 사람들은 각자 끌고 온 함선을 향해 냉큼 올라타 버렸다. 그걸 본 하론은 털썩 주저앉았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루포와 케인, 에드안까지 태현을 쳐다보았다. ‘이거 어쩔 거야’ 하는 시선!
그러나 태현은 당당했다.
“다들 배 탔으니 나도 배 타도 되지?”
“…….”
* * *
“배 떠납니다.”
“좋아! 30분 후에 우리도 닻 올리고 쫓아간다!”
“그런데 형님, 너무 위험한 거 아닙니까?”
“뭐가 위험해?”
“김태현이잖아요. 상위 랭커…….”
“랭커 안 잡아봤냐?”
“잡아보긴 잡아봤는데…… 그게 정면으로 싸워서 잡은 게 아니라 바다에 빠뜨린 거잖습니까.”
“그게 중요한 거야! 무슨 놈이든 간에 일단 바다에 빠뜨리면 우리가 유리하다고. 스미스 봤냐? 그놈 바다에 빠뜨리면 어떻게 될 거 같냐. 자랑하는 말은 타지도 못하고 허우적거릴걸?”
해적 플레이어 잭.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해적을 동경하던 사람이었다.
지금도 핸드폰 벨소리는 론리 아일랜드의 ‘잭 스X로우’일 정도로!
그런 그가 판타지 온라인에서 해적을 선택한 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해적이 쉬운 직업은 아니었다.
도시에서는 악명 때문에 쫓기는 일이 많고, 바다에서는 그보다 더 강한 해적이나 왕국 해군을 피해 가면서 움직여야 했다.
잭은 치밀하고, 끈기 있게 행동했다. 강한 적은 피하고 약한 적은 덮쳤다.
배를 습격해서 약탈하는 것이야말로 해적 플레이어의 성장 방식!
그 결과 잭은 약탈자 세계에서는 나름 알아주는 약탈자가 되어 있었다.
경쟁자가 엄청나게 많은 육지와 달리, 비교적 경쟁자가 적은 바다는 잭의 세계!
그런 잭에게 의뢰가 왔다.
-아탈리 왕국의 제노마 시에 김태현이 있다. 항구에서 배를 타려고 하는 걸 보니 어딘가로 가려는 게 분명하다. 김태현을 습격해서 퀘스트를 방해해라.
길드 연합(태현한테 당한 게 많은)에서 온 의뢰!
무려 2천 골드가 걸린 의뢰였다. 환전하면 1억 원 가까이 되는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양!
그만큼 길드 연합은 태현한테 쌓인 게 많았던 것이다.
“물론 정면 승부는 힘들겠지. 나도 안다.”
“그러면요, 형님?”
“우리가 이제까지 했던 대로 하는 거다. 몰래 뒤를 쫓는다. 언젠가 빈틈이 나올 테니까!”
잭은 이제까지 자기보다 약한 상대하고만 싸우지 않았다. PVP를 즐기는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언제나 자기보다 강한 상대와 싸울 가능성이 있었다.
그럴 때일수록 발휘되는 것이 개인의 실력!
잭은 기다리고 기다렸다가 상대의 빈틈을 노리는 데에는 도가 튼 플레이어였다.
“역시 형님이십니다!”
“깃발 제대로 바꿨지? 해적인 거 숨겨야 해. 들켰을 때 변명할 수 있도록.”
“히히, 제 미술 스킬 아시잖습니까.”
해적선 위의 플레이어들은 바다 위의 약탈에 최적화된 스킬들을 갖고 있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던 것!
“재수 없게 말이야. 김태현 같은 이름이나 갖고 있고…….”
잭의 중얼거림을 들은 부하가 말했다.
“판온 1 때 이야기입니까, 형님?”
“그래. 김태현이란 이름만 들어도 재수가 없어.”
‘저 이야기만 몇 번째인지…….’
판온 1 때 태현한테 PVP를 시도했다가 처절하게 털린 잭!
게다가 그때 태현은 대장장이였기에 그 충격은 더욱 컸다.
한동안 약탈자들 사이트에서 비웃음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 비웃음은 다른 약탈자들도 태현한테 차례대로 사이좋게 털리고 난 이후 사라졌지만…….
“어쨌든! 지금 해야 할 일에 집중한다고. 쫓아!”
“예!”
* * *
“잭한테 메시지를 보냈나?”
“그래. 보냈지.”
“일은 철저하게 해야지. 다른 곳에도 다 보냈겠지?”
“보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어차피 이놈들 중에서 대부분이 실패할 텐데…… 선금을 준 게 좀 아까운데.”
“선금을 안 주면 이놈들도 안 움직이지. 헛소리하지 말라고.”
“알아. 어차피 선금은 푼돈이니까.”
대형 길드 연합!
야심차고 패기 넘치게 결성된 그들이 가장 먼저 한 것은 태현한테 암살자들을 보내는 것이었다.
<김태현한테 당한 피해자 연합>이라고 이름을 지어도 될 정도로, 태현한테 당한 길드 비중이 높았던 것!
<크라잉 해머>, <성기사이즈킹>처럼 태현한테 직접 당한 길드들은 당연히 있었고, 태현한테 당한 건 없어도 잘나가는 솔로 플레이어인 태현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길드들도 있었다.
물론 모두의 의견이 일치하지는 않았다.
“꼭 김태현한테 신경을 써야 하나? 지금 같은 상황에?”
태현한테 직접적으로 당한 게 없는 길드의 마스터들은 지금 상황을 좋아하지 않았다.
기껏 잘나가는 대형 길드들끼리 모여서 한다는 짓이 플레이어 한 명한테 암살자를 고용해서 보내는 것이라니.
쪽팔린 것에도 정도가 있지!
“맞아. 우리가 지금 대륙 최고가 되려고 모였지 쪽팔리려고 모인 건가?”
그러자 쑤닝이 입을 열었다.
태현의 단골 고객! 아니, 가장 많이 당한 피해자!
그래서 그런지, 쑤닝의 목소리에는 진심 섞인 살기가 담겨 있었다.
“우리가 골드 냈지, 너희가 냈나?”
“…….”
“그리고 지금 오스턴 왕국의 상황. 이것도 김태현 때문인 걸 알 텐데? 오스턴 왕국의 상황 때문에 우리 계획이 얼마나 꼬인 줄 알면서 그런 소리를 해? 우리 연합에 방해되는 놈한테 본보기를 보여준다. 이걸로 이유는 충분할 터!”
“으음…….”
태현이 별생각 없이 아키서스 교단의 힘을 키우려고 오스턴 왕국에서 벌인 일!
지금 그게 나비효과로 돌아오고 있었다.
여기서 오스턴 왕국에 영지를 만들려고 했던 길드들이 꽤 있었던 것이다.
세력을 갖추게 되면 전원이 공개적으로 연합을 발표하고, 패도적이고 강력한 연합의 길을 당당하게 나아가려고 했는데…….
오스턴 왕국의 병사들과 싸우느라 그럴 여유가 사라진 것이다.
덕분에 태현을 향한 길마들의 이 가는 소리는 더욱더 높아질 뿐!
“다른 길드들을 더 끌어들이겠다는 계획은 어떻게 됐지?”
“지금 초대장은 다 보내 놨다.”
“지금도 충분하지만 더 많이 모아서 나쁠 건 없지. 대형 길드가 우리만 있는 게 아니니까.”
“맞는 말이야. 따로 다니는 랭커들을 상대하려면 더 뭉칠 필요가 있어.”
우습게도, 현재 랭커 중에서 최상위권을 다투는 랭커 중에서 대형 길드 소속은 의외로 적었다.
스미스나 이세연은 각자 이끄는 소수 정예 길드 소속이었고, 태현은 아예 길드도 없는 솔로 플레이어!
많은 인원과 철저한 협동으로 길드 내 고렙을 지원해 주는 대형 길드 입장에서는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내가 아는 랭커 중 쓸 만한 놈이 있는데. 로이라고.”
“로이?”
“그 자식 그거 PK꾼 아냐?”
“PK꾼이어도 랭커면 끌어들이는 게 이익이지. 들어올 생각 있다면 들어오라고 해.”
“아니, 지금은 어디에 잡혀 있나 봐.”
“……?”
“랭커인데 잡혀 있다고?”
자리에 모인 길마들은 ‘바보인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최강지존무쌍> 길드에 잡혀 있다던데. 제대로 코가 꿰였다고 하더군.”
“등신 같은 놈이네.”
“뭐하러 그런 놈을 불러?”
“끝까지 들어봐. 나도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거기 길드가 의외로 강하더라고. 안 알려진 게 신기할 정도였어.”
그 말에 다른 길마들이 관심을 가졌다.
“그래?”
“뭐, 소수 정예 길드는 원래 잘 안 알려지니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로이 그놈이 그러는데, 거기 길마가 김태현을 매우 싫어한다고 하더라고.”
“과연! 거기 길마도 김태현한테 당한 게 분명해!”
“아주 잘됐네. 그 길마도 초대하라고.”
쑤닝과 성기사이즈킹 길마는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그걸 본 다른 길마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놈들을 정말 믿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