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58화
세상일은 아무도 모르는 법.
태현의 눈앞에 있는 대장장이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태현의 말을 경청했다.
“그리고 뭐가 더 있나…… 아, 파티 플레이를 해.”
“기계공학 대장장이는 파티에 잘 안 넣어주는데요…….”
그냥 대장장이도 파티에 들어가는 게 힘든 상황에서, 기계공학 대장장이는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태현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꼭 다른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들하고 파티를 할 필요는 없지. 같은 기계공학 대장장이들하고 파티를 해.”
“……!”
“기계공학이 불안정하기는 하지만 원래 기계공학 스킬 갖고 있으면 페널티가 좀 덜하잖아. 사고를 쳐도 좀 피해가 덜하겠지. 그리고 화력도 몇 배로 늘어날 거고.”
“그런 방법이……!”
이제까지 도시나 성 안에서 플레이어들 상대로 장사를 할 생각만 했지, 그들끼리 뭉쳐서 필드에 나갈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제작 직업의 고정관념!
“손에 손 잡고 필드에서 폭탄을 뿌리면서 사냥을 해봐. 나름 괜찮을걸?”
“감사합니다! 꼭 해보겠습니다!”
사냥을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않고, 자기가 직접 하겠다는 대답. 태현의 마음에 쏙 드는 대답이었다.
태현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어떻게 되지?”
“가브리엘입니다.”
“그래. 가브리엘. 열심히 해봐.”
가브리엘은 고개를 숙이더니 몸을 돌려 뛰어갔다. 그걸 본 플레이어들은 다시 수군거렸다.
“뭐야, 저런 놈이 물어보는 것도 받아줘?”
“김태현이야 원래 성격 좋잖아. 방송 못 봤냐?”
“아무리 성격 좋아도 그렇지 저렇게 달라붙는 플레이어 하나하나 다 상대해주지는 않잖아. 유명 플레이어 중에서 성격 좋은 사람들도 저렇게 상대해 주는 건 못 봤는데.”
“야. 그런 플레이어랑 김태현이랑 같냐? 그런 가식적인 연기하는 놈들하고 김태현은 다르다고. 케인 봐라. 원래 그렇게 깽판을 치던 놈인데도 김태현은 끝까지 따라다니면서 충성하잖아. 진짜 참인성이니까 가능한 거지.”
케인이 들었다면 바로 PK를 신청했을 소리!
그러나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이런 이야기가 잘 먹히는 법이었다. 게다가 눈앞에서 태현이 가브리엘에게 친절하게 대해준 걸 본 이상 더더욱 그랬다.
그러던 도중 누군가가 말했다.
“나, 나도…… 물어보면 대답해 주지 않을까?”
“……!”
처음이 어렵지, 한번 말이 나오자 다들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름 실력에 자신이 있는 플레이어가 태현 앞으로 뛰쳐나갔다.
“김태현 씨!”
“……?”
“제 파티에 들어오시죠!”
뛰쳐나온 플레이어는 속으로 생각했다. 중요한 건 자신감이라고!
방금 나타난 초보 플레이어도 친절하게 대해준 태현을 봤을 때, 오히려 이런 식의 접근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었다.
자신감 넘치게, 당당하게!
‘김태현을 파티에 넣을 수만 있다면 대박이다!’
그러나 돌아온 건 싸늘한 목소리였다.
“미쳤냐?”
“……네?”
“네가 누군데? 너 나 알아? 왜 갑자기 친한 척이야?”
“어, 그게, 그러니까, 김태현 씨 팬…….”
“팬이면 뭐 어쩌라고. 내가 네 말 다 들어줘야 하냐? 깃발 꽂고 싶냐?”
1초도 걸리지 않고 바로 튀어나오는 협박! 플레이어는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당황했다. 뭔가 알고 있던 김태현하고 많이 다른 모습!
“…….”
그 모습에 손을 들고 태현한테 말을 걸려던 다른 플레이어들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겁 없는 플레이어 한 명이 먼저 나서서 저렇게 당해준 덕분에 망신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김태현 성격 좋다고 한 새끼 나와봐.”
“아, 아냐. 분명 저 플레이어가 실수를 한 거야. 저렇게 건방지게 나왔으니까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 눈빛 안 보이냐? 사람 한 명은 그냥 죽이겠다!”
플레이어들이 웅성거리면서 자기들끼리 싸우는 사이, 태현은 그대로 그들 사이를 돌파했다.
“김태현 씨! 여기! 여기 좀 보십쇼!”
“……?”
거리에서 멀어져서 항구로 향하는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정식이었다.
“저 알면 손 좀 흔들어주십쇼! 이 자식들이 제 말을 안 믿어요!”
태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손 한 번 흔들어주고 항구로 향했다.
그래도 우정식은 의기양양했다. 손을 흔들어주지 않았는가!
“봤냐?! 봤냐고!”
“그냥 ‘손 좀 흔들어주십쇼’만 듣고 흔들어준 거 아닌가?”
“별로 친해 보이지 않던데…….”
쉽게 풀리지 않는 불신!
“이 자식들이 진짜 속고만 살았냐!!”
* * *
항구에서 대기하고 있는 각 교단의 NPC들. 태현은 순식간에 그들의 견적을 파악했다.
‘저 성기사 갑옷하고 검…… 레벨 200은 넘는 거 같은데. 성기사단장인가?’
그렇게 숫자가 많지는 않지만, 한 명 한 명이 다 고레벨 NPC였다. 이번 퀘스트가 어느 정도의 난이도인지 짐작이 갔다.
“헉. 저거 야타 교단의 <검투사를 위한 야타의 허리띠>잖아요?”
“그게 뭔데?”
“비싼 아이템이죠.”
비싼 아이템은 한눈에 알아보는 이다비였다.
“예전에 길드 몇 개가 야타 교단 들어가서 저 허리띠 얻으려고 온갖 퀘스트는 다 했는데 결국 못 얻었다고 들었거든요. NPC가 차고 있네요.”
“쟤 죽으면 훔칠 수 있나?”
“……에드안이 할 소리를 왜 그쪽이 해요……?”
“하하. 농담이야.”
농담이라고 말했지만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게 태현이었다. 이다비는 불안한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사망 페널티 한 번은 감수할 수 있었기에 따라왔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
‘그나저나 진짜 대단하네.’
보통 플레이어라면 만나지도 못할 고위 NPC들을 아주 숨 쉬는 것처럼 만나고 다니는 태현!
그뿐만이 아니었다. 태현은 단순히 모험가 취급을 받는 게 아니라, 엄청난 명성과 업적을 가진 영웅으로 대우를 받았다. 그게 더 대단한 것이었다.
지금도…….
“퉷!”
“…….”
태현을 동경하는 눈빛으로 보던 이다비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태현을 보자마자 침을 뱉는 다른 교단의 성기사들!
철컥!
“태현 님! 진정하십시오!”
“그 석궁은 또 뭡니까! 쏘시면 안 됩니다!”
“저 자식이 쏴달라고 말한 거 같은데?”
“그런 말 한 적 없습니다!”
“아냐. 말한 거 같아. 나한테 텔레파시 마법을 보냈다고. ‘저한테 석궁을 쏴주세요!’라고 했어.”
한 발밖에 없는 석궁을 꺼내 드는 태현. 에드안과 루포, 케인은 필사적으로 태현을 말렸다.
그랬다. 데메르 교단이야 온건하고 평화주의적인 교단이었기에 태현한테 별로 적대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교단들은 아니었다.
[타이란 교단이 당신을 적대합니다.]
[야타 교단이 당신을 적대합니다.]
[파이토스 교단이 당신을 적대합니다.]
[데메르 교단은 당신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데메르 교단 빼고 다들 태현에게 맺힌 게 많아 보이는 상황!
“흥. 어디서 같잖은 교단의 놈이 오다니.”
“천박하기 그지없군.”
태현한테 들리라고 떠들어대는 각 교단의 NPC들. 다른 플레이어였다면 참았을 것이다.
원래 적대 관계에 있는 NPC들은 저런 반응이 당연했으니까!
참고 참아서 퀘스트를 완수하면, 저렇게 플레이어를 무시하던 NPC들의 반응도 바뀌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태현은 달랐다.
“나 갈래.”
“!?!?!?!?!?!”
“기분 더러워서 못 해먹겠네. 나 간다.”
“아, 아니. 김태현 백작님!”
데메르 교단의 하론이 당황해서 태현을 붙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태현은 매몰차게 손을 치우고 걸어갔다.
“저, 저런 책임감 없는!”
“그래. 나 책임감 없으니까 그냥 갈 거야.”
[고급 화술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협박에 추가 효과가 부여됩니다.]
[중급 협박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위압 스킬이 적용됩니다.]
[당신의 협박에 사람들이 매우 불안해합니다.]
<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다는 건, 아무 NPC나 붙잡고 욕설을 퍼부어도 뒷감당이 된다는 뜻이었다.
온갖 욕설을 퍼부은 다음 ‘하하 사실 그쪽한테 한 말이 아니라 그쪽 뒤에 보이는 유령한테 한 말이었어’라고 해도 넘어갈 수 있는 게 <고급 화술 스킬>!
“잠, 잠깐! 지금 대륙의 위기가 눈앞에 닥쳐왔는데 이렇게 멋대로 빠져도 되는 것인가!”
“같잖은 교단의 천박하기 그지없는 놈인데 뭐 어쩌겠냐.”
쌓은 원한은 1분도 지나기 전에 꼬박꼬박 갚는다!
태현을 욕했던 NPC들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하론에게 말했다.
“하론 사제! 저걸 저렇게 두고 볼 생각이오?! 아키서스 교단을 모시고 온 건 데메르 교단일 텐데?”
“아니, 누구한테 책임을 돌리는 겁니까? 김태현 백작을 모욕한 게 누군데!”
하론도 만만치 않았다. 괜히 데메르 교단을 대표해서 사신으로 온 게 아니었다.
자기가 한 일도 아닌데 책임을 씌우려고 하자 곧바로 정색하는 하론!
“어쨌든 김태현 백작이 필요하니 알아서들 데리고 오십시오! 전 분명히 여기까지 모시고 왔습니다!”
하론이 정색하자 다른 사제들이 깨갱 하고 물러섰다.
“그, 그래도 하론 사제가 데리고 왔으니 좀 친하지 않은가. 달래보게나, 좀.”
“맞, 맞네. 부탁하네.”
태현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소리만 듣고 있었다.
‘뭔가 이상한데?’
사실 이렇게 태현이 고집을 부리면, 시비를 걸어온 사제들이 사과를 할 거라고는 예상하고 있었다.
<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는 데다가 지금 상황은 태현보다는 저 사제들이 잘못한 상황이었으니까.
게다가 태현의 지위는 절대 낮은 편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안절부절못하는 건 좀 이상했다. 태현은 하론 사제를 불렀다.
“하론 사제, 그런데 나 없어도 다들 뛰어난 사람들인데 왜 저렇게 매달리는 거지?”
“김태현 백작님. 이번 원정은 각자의 실력이 중요한 게 아닌, 각 교단에서 힘을 합치고 화합하는 게 중요한…….”
“아니, 그딴 입에 발린 소리는 됐고.”
시무룩해지는 하론!
“교단에서 신에게 받은 예언의 내용을 맞추려고 하는 겁니다.”
“예언의 내용이 뭔데?”
“특정 교단들의 이름을 불러가면서 꼭 같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거기에 아키서스 교단도 들어가 있었습니다.”
“아, 그래서 쟤네들이 나 빠질까 봐 이러는 건가?”
신에게 받은 예언의 내용을 철저하게 믿는 사제들의 입장에서, 그걸 지키지 않는 건 절대로 안 되는 일이었다.
그들도 설마 한마디 했다고 태현이 삐져서 ‘나 안 해’라고 할 줄은 몰랐던 것!
“김태현 백작님. 저들도 많이 반성했을 테니 사과한다면 그 사과를 받아주시는 게…….”
“물론이지. 하론 사제. 대륙의 위기가 코앞인데 내가 설마 개인적인 감정으로 일을 그르치겠나?”
“김태현 백작님! 과연 백작님은 영웅이십니다!”
[하론의 친밀도가 오릅니다.]
[데메르 교단 내에서 당신의 평가가 오릅니다.]
하론이 돌아가고, 옆에서 듣던 이다비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이번 퀘스트가 많이 중요한가 봐요? 그렇게 양보할 줄은 몰랐어요.”
“응? 무슨 양보?”
“방금 적당히 넘어가 주겠다고…….”
“그래. 적당히는 이제부터 정해야지.”
“……!”
그러는 사이 타이란 교단의 사제가 왔다. 그는 우물쭈물한 목소리로 태현에게 사과했다.
“김태현 백작, 미안하게 됐소. 감정이 앞서서 모욕한 것을 사과하오.”
“…….”
“김태현 백작?”
“아. 미안. 다른 걸 좀 생각하고 있었지.”
태현의 태도에 사제는 발끈했지만, 지은 죄가 있어서 뭐라고 하지는 못했다.
“그러면 이걸로 된 거요?”
“다른 사제들은 사과 안 하나?”
“그들도 차례대로 와서 사과할 거요.”
“흠. 그래, 그렇단 말이지…….”
태현은 손을 내밀었다. 타이란 교단의 사제는 악수를 하자는 걸로 오해하고 손을 잡으려고 들었다.
탁!
“왜 내 손을 잡으려고 그래?”
“악, 악수하자는 거 아니었소?”
“내 손바닥을 봐. 위를 향해 펴져 있잖아. 이게 무슨 뜻이겠어?”
“……?”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