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248화 (248/1,826)

§ 나는 될놈이다 248화

태현은 초보자한테 약했다. 지수한테도 그랬듯이.

“알겠어. 상자 내놔봐.”

“감, 감사합니다!”

“여기 1골드 줄 테니까 마차 타고 그냥 착실하게 레벨업을 하라고. 이런 곳에서 도박하지 말고.”

말하다 보니 태현은 살짝 양심이 찔렸다. 생각해 보니 이런 곳을 만든 그가 할 소리는 아니었다.

“흑흑…… 네. 앞으로 그럴 겁니다.”

“이런 상자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니까. 봐라. 이게 열어 봤자 아무것도 안 나온다니까.”

태현은 초보자한테 골드를 주고받은 상자를 눈앞에서 열어보았다. 초보자한테 교훈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최하급 랜덤 나무 보물상자>에서 황금 고블린 동상이 나왔습니다!]

[행운이 오릅니다.]

번쩍이면서 나오는 눈부신 빛!

누가 봐도 상자에서 나올 수 있는 아이템 중 좋은 아이템을 뽑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

태현과 초보자는 서로 말없이 쳐다보았다.

“으아아아앙! 이딴 게임 접을 거야! 접을 거라고!”

“야! 야! 잠시만!”

울부짖으며 달려 나가는 초보자! 그 모습을 본 태현은 괜히 미안해졌다.

태현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둘이 소란스럽게 떠들자, 주변에 있던 플레이어들도 고개를 돌렸다.

“어? 김태현 아냐?”

“김태현이 돌아왔다!”

“김태현이다! 김태현을 붙잡아!”

“김태현을 붙잡고 강화하면 분명 더 좋게 될 거야!”

우르르 몰려오는 사람들. 태현은 그걸 보고 말없이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케인이 태현의 팔을 붙잡았다.

“안 돼 이 자식아! PK는 안 돼!”

“내 영지에서 내가 PK 하겠다는데 왜 말리냐?”

“기껏 불러놓은 사람들 쫓아내면 안 되지!”

“그럼 네가 막을래?”

케인은 움찔했다. 몰려오는 플레이어들의 눈빛에서는 진한 광기가 느껴졌다.

-행운을 내놓아라!

“으, 으윽…….”

“이게 무슨 짓이냐!”

그 순간 위에서 들려온 근엄한 목소리!

펠마스였다.

펠마스를 본 플레이어들은 움찔했다. 태현과 케인은 어이가 없었다.

대체 펠마스가 뭔 짓을 했길래 펠마스 앞에서 저렇게 쥐 죽은 듯이 있는단 말인가.

“죄, 죄송합니다, 펠마스 님!”

“용서해 주세요!”

펠마스는 의기양양하게 ‘엣헴’거리며 말했다.

“거기 당장 물러서지 못할까! 물러서지 않으면 행운 티켓을 주지 않겠다!”

“행…… 운 티켓?”

태현의 말에 펠마스가 작게 대답했다.

“신전에서 파는 아이템 중 하나입니다.”

“…….”

뭘 더 파는지 묻고 싶었지만 태현은 갑자기 두려워졌다.

펠마스가 나선 덕분에 플레이어들은 정리가 되었다. 우르르 몰려왔던 플레이어들은 시무룩해져서 물러섰다.

그러면서도 태현한테 간절하게 외치는 건 덤!

“제발! 제발 축복을! 아키서스 축복 좀!”

“한 번만 더 받으면 강화가 될 것 같은데……!”

사람들의 비명을 무시하며, 태현은 펠마스에게 말했다.

“저놈들은 내버려 두고, 일단 건물부터 짓자. 성기사, 사제들을 고용해야 해.”

“물론입니다. 태현 님. 저도 드디어 제가 부려먹을 수 있는…….”

“넌 안 돼.”

“어째서입니까?!”

태현이 없는 사이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를 정말 이름 그대로의 곳으로 바꿔놓은 펠마스!

물론 골드를 더 불려놓고 사람들을 많이 모으기는 했지만, 태현은 이게 잘한 짓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게 뭐하는 짓인지…….’

-건축 가능한 건물 확인.

[특수 목재로 된 울타리-영지 주변에 특수 목재로 된 울타리를 설치합니다. 영지 주변으로 들어오는 소형, 중형 몬스터를 막아줍니다. 설치 가능. 제작 비용 5천 골드.]

[소형 식량 창고-영지 주민들을 위한 식량 창고입니다. 주민들의 불만도가 내려갑니다. 제작 비용 천 골드.

(아키서스 교단의 본거지입니다)

(소형 식량 창고->아키서스 신전 식량 창고를 지을 수 있습니다)]

아키서스 교단의 본거지라는 이점 덕분에, 몇몇 건물들은 아키서스 교단 관련 건물들로 상위 호환이 가능했다.

‘그런데 영지에 주민들도 없지 않나?’

지금 있는 건 밖에서 몰려온 플레이어들뿐!

‘그러면 일단 이런 건 넘어가고.’

[아키서스 동상-영지 안쪽에 아키서스의 동상을 설치합니다. 들이는 비용에 따라 동상이 주는 효과가 달라집니다. 제작 비용 ? 골드.]

[아키서스의 분수-특별한 혜택을 주는 아키서스의 분수를 설치합니다. 분수 안에 던져진 동전은 영주가 갖습니다. 제작 비용 천 골드.]

‘설치, 설치.’

골드가 넉넉했기에 이런 건물들은 손쉽게 지을 수 있었다.

수십 개가 넘는 설치 가능한 건물들. 태현은 일단 필수적인 것들부터 먼저 설치했다.

영지 주변에는 강화된 암석으로 만들어진 낮은 성벽.

영지 안쪽에는 아키서스 교단과 관련된 여러 가지 건물들.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는 아키서스 교단의 본거지다 보니, 여러 가지 혜택이 있었다. 그 혜택을 안 쓸 이유가 없었다.

일반 건물보다는 아키서스 교단 건물을 짓는 게 이익!

[아키서스 교단의 놀라운 투기장-투기장을 설치합니다. 투기장의 규칙은 영주가 정합니다. 제작 비용 5만 골드.]

-설치!

[투기장이 지어집니다.]

“헉!”

태현은 설치를 말해놓고 멈칫했다. 방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하도 투기장을 좋아하다 보니, 투기장을 지을 수 있다는 메시지창을 보고 그냥 설치를 눌러버린 것!

‘아, 아니…… 투기장도 나름…… 쓸모가 있을 거야…… 다른 건물들처럼…….’

아무리 생각해도 사치에 가까웠지만, 태현은 취소하지 않고 넘어갔다.

투기장에 대한 이상한 집착!

[영지에 건축물을 지을 인원이 부족합니다.]

[퀘스트를 내려서 인원을 모집할 수 있습니다.]

“여기 제작 직업들 많지? 잘됐네.”

직업 특성상, 지금 여기에 온 사람들은 제작 직업들이 많았다. 뭔가를 만드는데 행운을 기대하는 사람들!

제작 직업이라면 꼭 건축가 플레이어는 아니더라도 건물들을 지을 때 도움이 꽤 될 것이다.

“퀘스트를 내려서 모집해야겠군.”

“예?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펠마스의 말에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럴 필요가 없는데?”

“건축 퀘스트에서 가장 공적치 포인트를 높게 쌓은 사람한테는 태현 님이 특별한 축복을 내려주시면 되지요! 아이템이나 그런 거 있잖습니까.”

실로 악마 같은 발상!

물론 태현이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아주 좋아. 성수를 만들어봐야겠군.”

“역시 태현 님!”

죽이 잘 맞는 두 사람이었다.

* * *

“선배님!”

“어. 왔냐.”

멀리서 달려오는 정수혁을 보고, 태현은 손을 흔들었다.

오스턴 왕국에서 커다란 퀘스트를 끝내고 영지로 돌아왔기에 시간 여유가 꽤 있었다.

영지에 건물을 올리고, 아이템을 확인하고, 재정비를 마친 후 다음 퀘스트를 하기 전의 휴식 시간!

태현은 그사이 정수혁을 만나기로 했다. 정수혁이 만나자고 했던 것이다.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도 궁금하고…….’

오크 주술사들과 함께 우르크 지역으로 다시 떠난 정수혁!

그 주변의 아키서스 교단 영향력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을지 궁금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나야 뭐 잘 지냈지. 일단 들어가서 밥이나 먹자.”

깍듯하게 인사하는 정수혁. 태현은 그를 데리고 단골 순댓국밥집으로 향했다.

“쟤가 그 후배야?”

“……?”

안에는 최상윤이 먼저 앉아 있었다.

“누구신……?”

“내 친구. 얘도 판온해. 랭커야.”

“헉!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닉네임이 어떻게 되시는지…….”

태현과 최상윤은 동시에 시선을 피했다. 정수혁은 ‘???’ 하는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오스턴 왕국에서 화염 끈 거 잘 봤다.”

재빨리 말을 돌리는 최상윤! 태현도 거기에 호응했다.

“그래.”

“역시 선배님이십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솔선수범하시다니. 저는 정말…….”

“……그런 게 아닐 것 같은데.”

최상윤은 중얼거렸다. 아무리 봐도 태현이 그냥 나서서 꺼줄 사람이 아니었던 것!

“내가 지른 불이었거든.”

“야! 내가 아는 사람도 거기서 요새 얻었는데! 네가 지른 불이었냐!”

“네가 안 당했으면 됐지.”

조금도 반성하지 않는 태현!

“아, 그리고 거기서 이세연하고 스미스 만났다.”

“뭐? 정말로?!”

“어. 던전에서 아이템 하나 갖고 싸웠지.”

최상윤은 깜짝 놀랐다. 대체 안 본 사이에 어떤 일이?

방송이나 사이트에서 전혀 공개되지 않은 정보였기에 더욱 놀라웠다.

“이겼냐? 이겼지? 설마 졌어?”

“승패 날 정도까지 안 싸웠어. 야, 스미스 생각보다 강하던데. 나랑 상성이 안 좋아.”

“아…… 확실히. 너하고 상성이 안 맞긴 하겠네.”

데미지를 엄청나게 흡수해 버리는 단단한 직업, 태현은 스미스에게 데미지를 주기 힘들었다.

“뭐, 상대하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지.”

“이세연은?”

“그래. 이세연은…… 이세연은 말이야…….”

태현은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중에 위험해질 것 같은 예감!

“걔 내가 판온 1 했던 거 아는 것 같더라.”

“뭐?! 어떻게?!”

“그냥 찍은 거 같던데. 이세연 같은 사람 알잖아. 한번 믿으면 어지간해서는 안 흔들리겠지.”

최상윤은 불쌍하다는 듯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하필 왜 저런 여자한테 걸려서…….

“그러고 보니 이세연 길드 애들이 경매장에서 골렘 재료 싹쓸이하던데, 너 때문이었냐?”

“……그걸 또 바로 다시 만드냐. 길드로 노는 놈들은 이래서 싫다니까.”

태현은 입맛을 다시며 투덜거렸다. 확실히 길드로 움직이는 플레이어들은 솔로 플레이어보다 여러 면에서 유리했다.

“그러니까 길드 만들자니까. 너랑 내가 힘을 합치면 천하무적이라니까?”

“헉, 선배님! 길드 만드실 겁니까? 저도 꼭 넣어주십시오!”

“……아냐. 길드는 안 만들 거야.”

“아, 이 자식. 왜 이렇게 고집은 세 가지고…… 판온 1 때랑은 다르다니까.”

최상윤의 말에 태현은 입맛을 다셨다. 언제나 솔로 플레이어를 고집하기는 했지만, 최상윤의 말이 틀린 곳은 없었던 것이다.

“이건 나중에 생각하자고. 그래서 왜 만나자고 한 거냐, 수혁아.”

“아, 넵! 다름이 아니라, 제가 이제 개인 방송을 해보려고 하는데, 선배님 허락을 받으려고…….”

“네가 방송을 하는데 왜 내 허락을 받아?”

“그야 제가 하고 있는 게 선배님과 연관이 많잖습니까. 괜히 피해 가실까 봐…….”

“됐어. 상관없으니까 네 마음대로 해.”

“감사합니다!”

정수혁은 기쁜 표정으로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제 동기 중에서 저 알아보는 사람이 몇 명 있었습니다.”

“오, 그랬어?”

“예. 관심 가지는 친구들도 있었고, 어떻게 김태현 플레이어하고 같이 다니게 된 건지 물어본 애들도 있었는데…….”

최상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끼어들었다.

“너희 같은 대학 같은 과 아니었나?”

“맞습니다.”

“그런데 태현이를 몰라?”

“선배시기도 하고…… 아ㅆ, 아니, 과 생활을…….”

“그냥 아싸라고 해라.”

“옙. 아싸시다 보니까…….”

하란다고 정말로 하는 정수혁! 태현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팠다.

“애들이 선배님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하긴, 나 같아도 그러겠다.”

방송에서 나오는 유명인사가 같은 과에 다니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쉽지 않았다.

태현이란 이름도 흔한 이름이다 보니, 그냥 동명이인이라고 생각하고 넘기는 게 보통!

“뭘 그러긴 뭘 그래. 난 외모 커스텀도 안 하고 그대로 하는데. 그걸 왜 못 알아봐?”

“방송에서 장비 다 끼고 나오면 그게 의외로 알아보기 힘들다니까. 인상이 팍 달라져. 그리고 사람 얼굴 못 알아보는 건 네가 할 소리는 아니지…….”

“뭐? 내가 왜?”

“아냐. 아무것도.”

최상윤은 입을 다물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