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236화 (236/1,826)

§ 나는 될놈이다 236화

치열한 싸움은 점점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팽팽하게 맞붙었지만, 제1왕자 쪽이 더 많은 병사를 보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자 2왕자 쪽은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두, 두고 보자!”

하나둘씩 부하들이 쓰러지자 결국 2왕자 측 지휘관은 도주를 선택했다.

“헉, 헉헉…… 김태현 백작님! 저희가 승리했습니다! 저희가 더 강하다는 걸 보여드렸습니다!”

제1왕자 측의 지휘관인 찰스는 피투성이가 된 채로 검을 들고 외쳤다.

“대단해! 나는 그쪽이 이길 줄 알고 있었지!”

“감, 감사합니다……?”

찰스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기껏 태현을 모시고 갈 수 있는 상황에서 기분을 상하게 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 그러면 모셔도 되겠습니까?”

“그러도록 하지. 아, 잠깐 이쪽으로 와봐.”

태현은 자연스럽게 말 탄 병사 한 명을 불렀다. 병사는 영문도 모른 채 태현 앞에 섰다.

퍽!

“?!”

“내가 귀족인데 그래도 말은 타고 가야지. 안 그래?”

당당하게 말을 뺏는 태현!

병사는 어이가 없었지만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다른 왕국이지만 그래도 귀족!

“가자!”

* * *

“이 자식! 바른대로 불어!”

“사디크 님을 찬양하라! 절대로 불지 않겠다!”

“기다려 봐. 내가 아이템 갖고 있는 게 있어.”

사디크 사제를 간신히 한 명 잡은 플레이어들은 정보를 얻기 위해 웅성거렸다.

공포 스탯이 높거나, 특별한 스킬이 있을 경우 이렇게 포로로 잡은 NPC한테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는 그런 스킬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덕분에 사디크 교단의 사제는 단단히 입을 다문 상태!

“이거면 통할 거야. <에랑스 마탑의 자백제>. 나중에 퀘스트 깰 때 쓰려고 사놓은 거지만…….”

[에랑스 마탑의 자백제를 사용합니다. 사디크 교단의 사제가 질문에 대답합니다.]

[한 가지 질문에만 대답할 수 있습니다.]

드디어 얻은 기회! 플레이어들은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지금 물어볼 건 한 가지밖에 없었다.

“저 평원에 난 사디크의 화염을 끄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사디크의 성물 반지>가 필요하다…….”

“……그건 어디서 구하는데?”

[에랑스 마탑의 자백제의 효과가 끝났습니다.]

“이 자식아! 어디서 구하는지는 말해줘야지! 인간적으로!”

사제를 붙잡고 닥달해 봤자 없는 정보가 나오지는 않았다. 플레이어들은 푹푹 한숨을 쉬며 토론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야, 그냥 이거 정보 사이트에 올리자. 공유하는 게 나을 거 같아.”

“뭐? 우리가 이놈을 어떻게 잡았는데? 그런 걸 그냥 공유하자고?”

“지금 그런 거 신경 쓸 때가 아니잖아. 저 화염 더 커지면 우리가 얻은 마을도…….”

이들은 오스턴 왕국에 와서 작은 마을 하나를 얻은 상태였다.

아직 화염이 닿으려면 멀었지만, 그래도 이대로 내버려 두면 언제든지 탈지 모르는 상황!

그들은 결국 결정을 내렸다. 그들이 얻은 정보를 공유하기로.

-사디크의 화염 끄는 방법 알아냈다! <사디크의 성물 반지>가 있으면 끌 수 있대!

-뭐? 그걸 어디서 구하는데?

-그건 너희들이 알아서 해야지.

-구라 아냐?

-이걸 우리가 뭐하러 구라를 치냐!

-거짓말은 아닌 거 같아. <사디크의 성물 반지>, 들어본 적 있어. 사디크 교단 토벌 퀘스트 깰 때 얻은 서적에서 이름이 나왔었거든. 사디크 교단의 핵심 아이템 중 하나야.

사이트에는 사디크 교단 토벌 퀘스트를 한 플레이어들도 있었기에, 정보는 곧 확인되었다.

-그런데 그걸 어디서 구하냐?

-……그러게?

-아는 사람 없냐?

* * *

“뛰어난 승마술! 역시 김태현 백작님이십니다!”

“내가 좀 대단하지.”

“그 아름다운 소환수까지! 역시 김태현 백작님이십니다!”

-내가 좀 대단하다. 주인이여.

-저거 아부하는 거거든? 적당히 걸러라.

이동하는 동안, 찰스는 쉬지 않고 아부를 했다. 오죽하면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질린 표정으로 쳐다볼 정도였을까.

“심지어 백작님을 따르는 자들까지…….”

그렇게까지 말하고 찰스는 뒤를 돌아보았다.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의 장점을 말하기 위해서였다.

“……선한 인상을 갖고 있습니다! 역시 김태현 백작님이십니다!”

“야!”

“고작 칭찬할 게 그거냐?!”

“그건 우리 엄마가 칭찬할 게 없을 때 하는 소리거든?!”

뒤에서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의 항의가 들어왔지만, 찰스는 안 들리는 척을 했다.

어지간히도 태현을 끌어들이고 싶었는지, 찰스는 계속해서 떠들어댔다.

“아키서스 교단이 저희 왕자님을 후원해주신다면 그보다 더 든든한 일은 없을 겁니다. 김태현 백작님께도 좋은 일일 겁니다!”

“왕자야, 내가 후원해 주면 당연히 좋겠지만, 나한테는 왜 좋은 일인데?”

“……저희 왕자님 같은 분과 친하게 지내실 수 있지 않습니까?”

“…….”

갑자기 싸늘해지는 분위기!

태현은 그 순간 결심했다.

제1왕자 이놈은 믿을 놈이 못 된다고!

말만 번드르르하고 약속해주는 건 하나도 없지 않은가. 태현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제1왕자가 태현을 이용하면 이용했지 뭘 챙겨줄 것 같지는 않다고.

남 이용하는 걸로 따지면 태현은 그 분야의 달인! 제1왕자 정도 되는 사람이 속여먹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찰스는 싸늘해진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재빨리 입을 열었다.

“하, 하하. 저희 왕자님께서 왕위에 오르시기만 한다면 분명히 챙겨주실 겁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렇게 생각했지. 역시 제1왕자야. 내가 들은 소문이 헛소문이 아니었어.”

“오. 무슨 소문을 들으셨습니까?”

“듣자 하니 책임감이 넘치고 백성들을 사랑해서…….”

지나가는 길 주변은 오크들의 습격으로 완전히 박살이 나 있었다.

오크들이 날뛰는 동안 자기들 영역에서 힘을 아끼고 있던 왕자에게 말해주기에는 민망한 칭찬!

케인은 들으면서 생각했다.

‘저놈 저거 또 시동을 거네.’

태현이 친절한 말을 해줄 때 가장 경계해야 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걸 몰랐다.

그렇게 일행은 각자의 꿍꿍이를 갖고 제1왕자의 성으로 움직였다.

‘그런데 뭔가 잊고 있는 거 같은데.’

케인은 머리를 긁적였다. 뭔가 잊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게 뭐지?’

* * *

“성벽부터 보수해! 수성 장비? 골드 줄 테니까 바로 구입해! 그리고 성문은 평소에 열고 있지 마! 앞으로 들어오는 놈은 무조건 신분부터 확인해! 알겠냐!”

카달타 성으로 돌아온 쑤닝은 편집증적으로 성의 수비와 보안에 집착했다.

눈 뜨고 성을 뺏긴 충격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 충격 때문에 쑤닝은 어떤 변수도 막고 싶어 했다.

“김태현 그 자식은 대체 어떻게 도망친 거야? 개구멍 같은 거 있는 거 아니겠지?”

무심코 정답을 짚은 쑤닝! 그러나 다른 길드원들은 다들 부정적이었다.

“설마…… 그런 게 있겠습니까? 김태현은 마법사들도 데리고 있고 비행 수단도 있으니 은신 스킬을 쓰고 나갔다거나…….”

“그래. 그랬겠지.”

쑤닝이 생각해도 그게 더 맞는 말 같았다.

오크 군대가 돌아가고 나서, 쑤닝과 그의 길드원들은 간신히 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남는 건 상처뿐인 승리였지만 어쨌든 성을 지켰다!

‘그 연합 놈들이 돈을 더럽게 밝히긴 하지만…… 언젠가 본전을 뽑아주마!’

“성안 확실하게 확인해! 혹시라도 김태현이 폭탄 같은 걸 놓고 갔을 수도 있어!”

“……!”

쑤닝 길드원들은 전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생각해도 태현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

“성벽 밑 뒤져봐. 성벽 밑에 깔고 갔을 수도 있어.”

와르르-

“야!!!”

[무너지는 성벽에 깔렸습니다. 왼쪽 다리가 부러집니다.]

안 그래도 습격으로 위태위태했던 성벽들은 조금만 건드려도 와르르 무너졌다.

덕분에 거기에 깔린 길드원들은 그걸 수습하느라 한바탕 고생을 해야 했다.

있지도 않은 태현의 기계공학 수작을 두려워하는 쑤닝 길드!

그리고 가장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적들이 돌아온 것 같다.

-어, 어떻게 하지?

-주인님께서는 언제 돌아오시는 거지?

내성에서 조각상인 척하고 있는 날개 악마들! 태현이 지하 던전으로 들어갈 때 크기가 맞지 않아 남겨놓고 간 악마들이었다.

어슬렁거리는 쑤닝 길드원들을 본 날개 악마들은 긴장으로 몸을 단단하게 굳혔다.

“조각상이네?”

“에이, 이거 별로 못 만든 조각상인가보다. 잘 만든 조각상 보면 보너스 주는데.”

“이놈의 성은 멀쩡한 게 없다니까.”

다행히 눈치채지 못한 길드원들!

그렇게 날개 악마들은 눈도 깜박이지 못하고 내성에서 숨죽이고 있어야 했다.

* * *

“환영하네, 김태현 백작!”

“영광입니다. 왕자님.”

오스턴 왕국의 제1왕자는 어딘가 비열하고 쩨쩨한 인상이었다. 왕보다는 간신배에 어울리는 얼굴!

“그래, 나를 지원하겠다고?”

“…….”

태현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다짜고짜 지원을 해달라는 왕자!

케인은 순간 두려움에 떨었다. 안 돼! 여기서 칼 뽑으면 안 돼! 여기는 왕자의 군대가 있다고!

그러나 케인의 걱정은 헛된 걱정이었다. 필요만 하면 언제든지 가면을 쓸 수 있는 게 태현!

“하하. 물론입니다. 왕자님.”

“역시 김태현 백작! 내가 사람을 제대로 봤어. 들어보니 내 왕국의 도시와 성에 아키서스 교단의 신전을 세우고 있다고 들었는데, 여기 카나안 성에도 세울 생각인가?”

“허락해 주신다면 물론입니다.”

오크들이 날뛰고 간 덕분에 멀쩡한 성과 도시를 찾는 게 더 힘든 상황!

카나안 성은 그 와중에서도 보기 드물게 번성하고 멀쩡한 성이었다. 제1왕자의 본거지였기 때문이었다.

제1왕자의 군대와 그가 데리고 있는 강력한 검사들이 다 여기에!

‘오크들하고 싸울 때나 쓰지…….’

태현은 속으로 1왕자를 욕했다. 애초에 오스턴 왕국에서 제대로 전력을 다해 싸웠다면, 태현이 여기까지 와서 이런 난리를 피울 필요도 없었다.

태현의 영지까지 오기도 전에 막혔을 테니까!

“그래? 신전을 짓고 싶다고? 얼마나 바칠 생각인가?”

1왕자의 말에 이제는 케인뿐만 아니라 이다비도 두려움에 떨었다.

‘죽이면 안 돼요!’

“하하, 왕자님께 바치는 골드는 얼마든지 바쳐도 아깝지 않습니다. 두려운 건 제가 바치는 성의가 모자랄까 느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모두의 걱정과 달리 태현은 매우 친절한 태도로 일관했다.

그리고 거기에 추가되는 수많은 추가 효과들!

[귀족 작위를 갖고 있습니다. 제1왕자가 당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화신의 매력> 스킬로 인해 제1왕자가 당신을 대하는 태도에 보너스를 받습니다.]

[중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제1왕자가 당신을 대하는 태도에 보너스를…….]

그 결과…….

“김태현 백작만 한 충신이 없어! 자네 같은 인재만 내 밑에 있었어도 이런 왕국 정도는 바로 통일해 버렸을 텐데! 자네도 아탈리 왕국에 있지 말고 여기로 오지 그러나? 자네 같은 인재는 아탈리 왕국 같은 놈들한테는 아까운데!”

호감도가 아주 철철 흘러넘치는 제1왕자! 누가 보면 10년은 같이 일한 사이인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면 영지도 주시는 겁니까?”

“그건 좀…… 왕국에 영지는 다 주인이 정해져 있거든. 내 영지를 줄 수는 없잖나? 하지만 충성심 넘치는 자네라면 꼭 영지 같은 게 없어도 날 위해 오겠지. 그렇지 않나?”

‘아주 죽여 달라고 해라, 그냥.’

가만히 있어도 태현이 등쳐먹기 좋은 상황인데, 점점 더 의욕에 불을 지르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