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34화
랭커들 사이에서는 어떤 퀘스트를 하는지, 어떤 아이템을 얻으려고 하는지, 이런 정보 하나하나가 매우 중요했다.
괜히 랭커들이 자기 정보를 숨기는 게 아니었다.
만약 이세연이나 스미스가 <잊혀진 망자의 왕관>을 얻으려고 한다는 정보가 퍼진다면?
둘을 견제하려는 많은 플레이어가 저 왕관을 먼저 얻으려고 온갖 짓을 할 게 분명했다.
실제로 이세연이나 스미스는 개인 방송을 해도 정보를 숨기는 데 꽤 많이 신경을 썼다.
이동하는 장면은 방송하지 않는다거나, 중요한 퀘스트는 아예 다 끝난 다음에 방송을 한다거나…….
‘내가 왕관 가져간 걸 공개하면 자기들이 왕관 되찾기 더 힘들어진다는 걸 알 텐데 그런 짓을 하려나?’
* * *
“여러분. 죄송합니다. 제가 부족해서…….”
“아, 아닙니다!”
“스미스 님은 최선을 다해주셨어요!”
진심으로 고개를 숙이는 스미스!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들도 옆에서 상황을 같이 겪었다.
이건 스미스 탓이 아니었다. 그 상황에서 아무도 죽지 않고 빠져나온 게 천만다행!
다들 화염 속에서 날뛰느라 체력은 쭉쭉 깎이고 온갖 디버프는 다 받은 상태였지만 그래도 살아는 있었다.
“길마님한테는 제가 연락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그런…….”
스미스의 태도에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은 다시 한번 감동을 받았다.
이게 바로 참 인성이구나!
‘그에 비해 김태현은…….’
구성욱은 태현을 떠올렸다. 스미스 같은 참인성과 비교한다면 태현은 비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
스미스는 검은 바위단 길마와 귓속말로 연락을 했다. 검은 바위단 길마는 상황을 듣고 당황해했다.
-아니,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그러면 더 이상 안 하셔도 괜찮습니다. 이제까지 해주신 거로도 충분한데요.
-그렇지만 제가 못 찾았는데…….
-남은 건 저희가 하겠습니다. 그 던전을 깬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검은 바위단 길마는 스미스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더 이상 참가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스미스 님도 지금 자기 할 거 때문에 바쁘실 텐데, 더 이상 시간을 쓰게 하는 것도 그렇죠.
길마는 그렇게 마무리를 짓고 스미스를 보냈다. 스미스는 미안해하면서 작별 인사를 했다.
-남은 건 우리가 해야지. 왕관을 김태현이 가져갔다고?
-네.
-가져올 방법이 있나?
-교섭해 볼까요?
-아니면 위협도 괜찮을 것 같은데. 통하려나?
-김태현이 랭커긴 하지만 우리가 랭커 하나 못 상대하지는 않잖아요. 김태현 수준이 어느 정도지?
-스미스랑 맞붙어도 안 밀리던데.
-미친. 그 정도야?
길드원들은 웅성거리며 떠들었다. 그러는 와중, 구성욱은 뭔가 떠올렸다.
‘어? 잠깐만. 나 김태현한테 <교황의 축복을 받은 강철> 받아야 하는데……?’
고민하고 고민했지만 다른 방법보다는 그게 그나마 가장 빠른 방법!
문제는 구성욱과 그의 길드가 방금 김태현과 싸웠다는 것에 있었다.
‘……달라고 하면 안 주겠지……?’
그냥 달라고 해도 안 줄 태현의 성격에, 그런 일까지 있었으니…….
구성욱은 갑자기 앞날이 어두워지는 걸 느꼈다.
* * *
<퇴각하는 오크 군대를 추격하라–오스턴 왕국 퀘스트>
오스턴 왕국을 유린하며 날뛰던 오크 대군세는 대족장 카라그의 부상으로 인해 나뉘어서 후퇴하고 있다.
평원에서의 일로 많은 이들이 다쳤지만 아직도 많은 오크 전사들이 남아 있다. 이들을 내버려 둔다면 훗날의 위험이 되리라.
보상:오스턴 왕국 내에서의 평가 상승, 오스턴 왕자와 만날 기회 생김.
“이게 대체 뭔 일이냐??”
사디크의 영원한 불꽃을 끄라는 퀘스트와 함께, 갑자기 오크 군대가 퇴각한다는 소식이 뜨자 플레이어들은 당황했다.
잘나가던 오크들이 왜?
“안 돼!!!! 지금 튀면 어쩌라고!!!”
그중 제일 절망한 플레이어들은 오크 군대에 들어가는 퀘스트를 선택한 플레이어들!
오크 대군세가 잘나갈 것 같아서 냉큼 들어간다고 신청했는데, 갑자기 대족장이 이끄는 오크 부족들부터 시작해서 차례대로 후퇴를 시작하다니.
“취익! 대족장님께서 후퇴하셨다. 우리도 후퇴한다!”
“아, 아니. 잠깐만! 지금 저기 뒤에 요새를 보라고! 안 보여?”
한창 요새를 신나게 공격하다가 후퇴를 하면?
당연히 독이 오른 요새 안 플레이어들의 반격이 돌아왔다.
“잘 걸렸다 이 자식들아!”
“오크들 믿고 우리 요새를 털려고 해? 간이 부었냐?!”
방금까지 요새 안에서 버티고만 있었던 게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의 역습!
그렇게 플레이어들이 날뛰는데도 오크들은 반격하지 않고 후퇴에만 집중했다.
신이 난 건 오크들에게 시달리던 플레이어들이었다.
“그런데 대족장은 무슨 일이 있었길래 부상을 입은 거지?”
“보통 사이트에 무슨 일 있었는지 뜨는데, 왜 아무것도 안 뜨냐.”
“사디크의 화염이 터졌다는데? 사디크 교단이 여기 왜 온 거지?”
제대로 된 정보가 없으니 헛소문만 잔뜩 돌고 있었다. 사이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크 군대에 참가한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공적치 포인트가 부족해 대족장이 이끄는 본대에 끼지 못했다.
결국 정확한 사실을 알고 있는 건 현장에 있던 플레이어들뿐!
최강지존무쌍 길드원들이야 워낙 인터넷을 안 하니 올라올 일이 없고, 스미스나 이세연은 각자 입을 다물고 있었고, 검은 바위단까지 입을 다물고 있으니…….
어떻게 된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
궁금하기는 했지만 플레이어들은 일단 각자 할 일에 집중했다.
도망치는 오크들을 쫓고, 오크 군대에 참가한 플레이어들은 최대한 멀리 도망치고…….
얼추 오스턴 왕국에서 오크 부족들이 다 도망치고, 정리가 끝나자, 오스턴 왕국에 와있던 플레이어들은 상황이 생각보다 좋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사디크의 영원한 화염!
처음에 ‘점점 넓어지고 있으니 사디크 교단을 조사해 끌 방법을 찾아보시오’라고 했을 때만 해도, 플레이어들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차피 평원에 난 불이었으니까.
다들 자기들이 점령한 요새나 성, 도시를 수리하고 주변에 있는 오크들을 몰아내는 데에만 신경을 썼다. 그게 원래 목적이기도 했고.
그러나 화염은 꺼지지 않는 것뿐만이 아니라, 점점 넓어졌다.
“오크들 다 치웠다! 이제 이 요새는 진짜 우리 길드 거야!”
“크흑흑흑! 다른 길드에 비하면 작은 요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야! 이거 하나 얻으려고 정말…….”
오크들을 몰아낸 길드원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 작은 요새 하나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던가!
이제 보상을 받을 때가 왔다. 오크들도 물러갔으니, 이 요새를 잘 수리하고 가꿔서 길드의 본거지로…….
화르륵!
“응?”
뭔가 타는 소리가 들렸다. 길드원들은 요새의 망루 위로 올라가 밑을 내려다보았다.
요새 앞까지 번진 화염!
“???”
“언제 여기까지 온 거야?”
평원에서 가깝기는 했지만, 설마 이렇게 화염이 꺼지지 않고 요새 앞까지 올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
“야! 요새 벽에 불붙었어! 불 꺼!”
“빙결 마법이라도 써봐!”
“불, 불이 안 꺼지는데?”
성벽과 달리 요새의 벽은 대부분 나무 같은 걸로 되어 있었다. 불이 한 번 붙자 그 뒤는 빠르게 타올랐다.
게다가 그냥 불이 아닌, 사디크의 영원한 화염!
[사디크의 힘이 담긴 화염은 보통 방법으로는 꺼지지 않습니다.]
그제야 길드원들은 깨달았다.
저 평원에 놓인 불을 끄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요새는 어떡해?!”
“두고 가야 하나?”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 불이 번지는데!”
천천히 다가오는 화염이 그렇게 공포스러울 수가 없었다. 몇몇 길드원들은 어떻게든 불을 꺼보려고 했지만, 전원 실패했다.
결국 그들은 눈물을 머금으며 요새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 * *
-사디크의 화염 누가 처리 좀 해봐! 오스턴 왕국에서 뭘 할 수가 없어!
-나 오스턴 왕국에 이렌 시 리스폰 포인트로 해놨는데, 이렌 시도 화염에 휩쓸리는 거 아니지?
-설마 내가 있는 곳까지 오나?
사이트에서는 오스턴 왕국 플레이어들의 비명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다들 ‘설마 내가 있는 곳까지 오겠어?’ 하고 낙관적으로 넘기고 있었지만, 상황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피해를 본 플레이어들이 상황을 찍어서 올리자, 다른 플레이어들도 상황을 깨달았다.
이거 잘못하면 다 같이 홀딱 망한다!
-사디크 교단 퀘스트 구한다!
-어떻게 구한 마을인데! 사디크 교단 퀘스트 깨고 있는 사람?
-사디크 교단 관련 정보 전부 산다!
사디크의 화염과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은 플레이어들은 다급하게 사디크 교단을 찾기 시작했다.
* * *
“아, 진짜. 게임 접을까…….”
버포드는 투덜거리며 검을 휘둘렀다.
사디크 교단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다른 플레이어들이 얻지 못하는 기회를 그가 잡은 줄 알았다.
국왕 암살 퀘스트까지만 해도 좋았다. 그때가 바로 그의 전성기였다.
‘……그 뒤로 쫄딱 망했지만…….’
잡으라는 국왕은 못 잡고, 막으라는 토벌군은 못 막고, 지키라는 성물은 뺏기고, 심지어 나름 횡재했다고 생각했던 반지마저 웬 이상한 중갑 전사한테 뺏겼다.
하락할 대로 하락한 교단 내의 평가!
사디크 교단이 쫓겨나는 규칙이 없어서 망정이지, 다른 교단이었다면 쫓겨났어도 이상하지 않을 평가였다.
그래도 한 게 아쉬워서 붙어는 있었지만, 버포드는 의욕이 많이 내려간 상태였다.
“빨리하지 못하겠나!”
“예, 예. 지금 갑니다.”
아탈리 왕국의 국왕, 다미아노 2세의 삼촌인 안토니오는 사디크 교단과 같이 은둔하고 있었다.
버포드는 안토니오가 주는 일일 퀘스트를 억지로 깨고 있었지만…….
보상은 짜고 퀘스트 내용은 구질구질한, 때려치우고 싶은 퀘스트들!
‘아. 진짜. 내가 왜 이딴 교단 들어왔지.’
버포드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 순간 뜨는 퀘스트창!
<오스턴 왕국에 사디크의 불꽃을 피워 올려라–사디크 교단 퀘스트>
많은 패배를 겪고 힘을 잃었지만 아직 사디크 교단은 끝나지 않았다.
현재 오스턴 왕국은 오크들의 습격으로 인해 피폐해지고 몰락한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평원에 피어오른 사디크의 불꽃은 사디크 신께서 내린 계시!
오스턴 왕국으로 가 사디크의 이름을 넓혀라!
보상:?, ??, ???
오스턴 왕국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거기로 가 사디크 교단의 영향력을 올리는 퀘스트였다.
버포드는 그걸 보고 무릎을 쳤다.
‘역시 이대로 끝나지는 않는구나! 사디크가 그래도 신은 신이야! 거기 평원에 이렇게 불꽃도 피어 올리고!’
물론 태현이 터뜨린 숨결 때문이었지만, 버포드는 거기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냥 사디크가 교단을 위해 피워 올린 불꽃이라고 착각!
착착착-
퀘스트가 뜨자, 사디크 교단의 은신처에서는 오스턴 왕국으로 떠날 준비가 시작되었다.
많이 실패하고 두들겨 맞은 사디크 교단이라 규모가 많이 줄어 있었다.
“절대로 들켜서는 안 된다. 정체를 숨기고 은밀하게 행동해라! 사디크 교단을 널리 퍼뜨리는 거다!”
“예, 대주교님!”
버포드는 아직 오스턴 왕국의 상황을 몰랐다. 지금 그쪽 플레이어들이 전부 ‘사디크 교단 어떻게 찾냐’하고 이를 갈고 있다는 것도.
* * *
“선배님, 저도 우르크 지역으로 가야 할 것 같은데요.”
정수혁은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정수혁은 아직 우르크 지역에서 남은 퀘스트가 있었던 것이다.
“그 오크들 데리고?”
“예, 잘 따르니까…… 괜찮지 않겠습니까?”
“뭔 애완동물 키우냐?”
정수혁도 말하면서 뭔가 아니다 싶었는지 민망해했다. 반짝반짝한 눈동자로 정수혁만을 쳐다보는 오크 주술사들!
“취익, 위대한 주술사님 만세!”
“췩! 아키서스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