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32화
<아키서스의 노예>의 좋은 성능에 눈이 뺏겨서 눈치를 채지 못했지만, 세상에 장점만 있는 직업은 없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
케인의 원래 직업인 <붉은 피의 전사>와 비교했을 때, <아키서스의 노예>는 지나치게 성능이 좋았다.
더 높은 방어력, 더 다양한 스킬, 더 적은 페널티!
그때 냉정하게 생각을 해봤어야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장점만 있는 직업이 있을까?
그랬다. <아키서스의 노예>는 좋은 성능을 가진 대신 이런 식으로 페널티가 붙는 직업이었다.
아키서스의 화신을 무조건적으로 보호하지 않으면 페널티를 받는 직업!
아무리 치사하고 더러워도, 아키서스의 화신을 보호하지 않으면 페널티가 들어왔다.
심지어 아키서스의 화신이 도망치라고 해도!
‘아니,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케인한테 설명을 들은 태현은 당황했다. 자기가 명령해도 도망치지 못한다니.
이게 의외로 까다로운 조건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더욱.
“진짜 내가 왜 이딴 직업을 가져가지고! <노예의 헌신>!”
케인은 자포자기하며 크게 외쳤다. 순간 눈부신 청색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태현에게 걸린 모든 디버프가 사라졌다.
[쇠락해지는 기운 저주가 완전히 사라집니다.]
[눈을 가리는 정령 저주가 완전히 사라집니다.]
[피를 말리는 악령 저주가 완전히 사라집니다…….]
수십 개가 넘게 걸렸던 저주들이 일순간에 사라지다니!
무슨 저주계의 종합세트도 아니고, 이만큼 저주가 걸려 있었다는 것에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오크 주술사들이 얼마나 이를 갈고 저주를 퍼부었으면…….
‘용케 이 저주 달고 싸웠네, 진짜.’
어이가 없는 건 어이가 없는 것이고, 그보다 더 신기한 건 케인의 스킬이었다.
“이야, <노예의 헌신> 그 스킬 정말 좋은데? 한 번에 디버프를 지우다니.”
이 정도 스킬은 고렙 사제 플레이어가 며칠에 한 번만 쓸 수 있을 정도의 스킬!
“지우는 거 아냐…….”
케인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러면?”
“전부…… 나한테 갖고 오는 거지…… 어쨌든…… 퀘스트는 깼다……!”
“…….”
[돌발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신성 스탯이 오릅니다.]
‘이 자식…… 생각보다 너무 좋잖아?’
태현은 케인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케인을 데리고 다니면 거의 목숨을 +1 시켜주는 것이나 마찬가지!
“앞으로 우리 오랫동안 같이 다니자.”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뭘 준비했든지 빨리하라고!”
실제로 태현한테 카운터를 한 대 맞은 카라그는 분노한 눈빛으로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바로 덤벼들었을 놈이 저렇게 가만히 서 있자 더 무서웠다.
‘딱 봐도 강력한 스킬 준비 중인 거 같은데…….’
태현이 하도 피해대니 뭔가 범위 공격을 가하려는 것 같았다. 보스 몬스터라면 당연히 저런 범위 공격을 갖고 있을 것이다.
“케인, 고맙다.”
“그건 나중에 말해도 되니까…….”
“아니, 네가 죽을 거 같아서. 미리 말해놓는 거야.”
“……개XX. 알겠으니까 마음대로 해라!”
케인은 포기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태현에게 걸린 디버프를 갖고 오는 순간 여기서 죽을 각오를 마친 상태였다.
어차피 페널티를 받을 거라면 퀘스트 실패 페널티나 받지 말자!
태현은 아이템을 꺼냈다.
딸칵-
작은 소리가 묘하게 크게 들렸다.
[불의 마수의 숨결 아이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그래. 사용.
그리고 평원에 화염의 지옥이 펼쳐졌다.
* * *
스미스와 검은 바위단은 오크의 공격이 시작되자 한 발짝 떨어져서 태현을 구경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들한테도 오크 전사들의 공격이 들어왔지만, 그 정도 공격은 쉽게 막아낼 수 있었다.
창과 도끼를 들고 달려드는 오크 전사들은 검은 바위단에게 손도 대지 못하고 박살!
“췩! 저놈들 너무 강하다!”
“대족장님께서 처리해주실 거다!”
몇 번 공격했는데도 전혀 틈이 안 보이자, 오크들은 머뭇거리며 물러섰다.
지금 어디까지나 중요한 건 대족장의 원수인 케인을 처리하는 것!
덕분에 스미스와 검은 바위단은 여유를 갖고 구경할 수 있었다.
“김태현이 밀리는데요?”
“잘 됐습니다. 기다리다가 김태현 씨가 항복을 하면 저희가 가서 도와주면 될 것 같습니다.”
스미스의 말에 구성욱은 속으로 생각했다.
‘김태현이 그럴 거 같지는 않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태현이 항복을 외치고 아이템을 내놓는 상황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응?”
갑자기 오크들을 이끌고 있던 대장군 오크 플레이어가 길드원을 이끌고 돌격!
“으으응??”
그러더니 카라그를 막고 태현을 구출!
“뭐야?”
“저기 있던 오크, 김태현하고 알고 지내던 사이였나?”
“친한 모양인데? 구하는 거 보니까…….”
김태산이 들으면 ‘친하긴 누가 친해!’라고 화를 냈을 소리였지만, 그때 김태산은 카라그와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은 태현과 김태산이 카라그와 싸우는 모습에 정신이 팔렸다.
강력한 보스 몬스터와 싸우는 플레이어들은 언제나 사람의 시선을 잡아끄는 힘이 있었던 것이다.
몇 배는 커다란 덩치를 가진 오크가 뿜어내는 박력! 거기에 지지 않고 덤벼드는 플레이어들!
게다가 언젠가 카라그와 싸워야 할 상황이 오게 될지도 몰랐다. 그래서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은 모두 집중해서 카라그를 쳐다보았다.
알아낼 수 있는 건 모두 알아낼 수 있도록.
그렇기에 그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다른 쪽에 있던 정수혁 일행이 오크들을 헤치고 최대한 멀리 도망치기 시작했다는 것을.
“……?”
“왜 그러시죠?”
“뭔가 이상합니다.”
스미스가 얼굴을 굳혔다. 태현을 따르는 다른 플레이어들이 저 멀리 도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예? 그냥 오크들한테 도망치는 거 아닙니까?”
태현이 카라그에게 패배한다면, 다른 사람들이라도 살아야 했다. 태현한테 오크들의 시선이 집중됐으니 다른 사람들이 도망가는 건 쉬웠다.
그러나 스미스는 얼굴을 찌푸렸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뭔가…… 놓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 * *
그에 비해 이세연은 한결 나았다. 그녀는 태현이 어떤 사람인지 스미스보다 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언데드들을 일으키면서 오크들을 막고, 태현과 김태산이 카라그와 싸우는 걸 본 이세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른 사람들이 자리에서 빠져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거 뭔가 이상한데?’
김태현이 오크들을 붙잡고 있는 사이, 다른 사람들이 빠져나간다?
김태현이 과연 그런 짓을 할까?
‘안 할 것 같은데.’
그렇다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의 이유는?
‘어, 설마…….’
이세연은 순간 전율했다. 아군을 멀리 보내는 건 도망치게 하는 걸 수도 있었지만, 다른 이유일 수도 있었다.
전체 범위 공격!
이 넓은 평원 전체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거대한 공격을 어떻게 가할지는 잘 상상이 가지 않았지만, 김태현이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길을 만들어! 일단 거리를 벌리자!”
-예, 주인님!
이세연이 불러낸 데스 나이트들이 오크들을 쓰러뜨리며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촥! 촤라락!
-비켜라, 살아 있는 덩어리들아!
-죽음의 주인 앞에 무릎을 꿇어라!
“취익! 이 더러운 언데드 놈들이 어디서!”
“췩! 우리를 우습게 보는 거냐!”
하필이면 이세연이 있는 쪽에 오크 군대들이 득시글거려서 뚫는데 더 시간이 걸렸다.
‘김태현이 골렘들만 안 부쉈어도!’
골렘도 다 같은 골렘이 아니었다.
이세연이 부렸던 적철 골렘들은 구하기 힘든 적철 주괴를 아낌없이 넣고, 마법 시약과 골렘의 핵을 구한 다음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나를 만들 수 있는 고렙 골렘이었다.
원래 랭커나 보스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한 비장의 카드 중 하나였는데, 김태현은 너무 쉽게 부숴버린 것이다.
신의 예지로 핵의 위치를 파악하고, 고대의 망치와 각종 스킬들로 인한 폭딜!
덕분에 태현은 공짜로 레벨업을 하나 하게 된 셈!
‘내 스킬들은 다 김태현하고 상성이 안 좋아. 진짜.’
이세연은 불평하며 유령마 위에 올라탔다. 일단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거리는 좀 벌려놓을 생각이었다.
언제나 태현은 예상하지 못한 일을 일으켰으니까.
그 순간, 뒤에서 뜨거운 열기가 훅, 하고 몰려왔다.
* * *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계속해서 화염 공격을 회피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행운이 오릅니다.]
“행운은 그만 올려 이 자식들아!”
[화염 공격을 회피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화염 저항력이 오릅니다.]
“그래, 이건 좀 좋군.”
[불의 마수의 숨결로 인해 오크 전사 134명이 죽었습니다. 명성, 악명이 오릅니다.]
‘왜 악명도 같이 오르지? 이 주변을 날려버려서 오르나?’
태현은 조금도 양심의 가책이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 전력으로 달리고 있는 태현의 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본다면, 악명이 오르지 않는 게 이상한 것이었다.
화르르르륵!
지금 평원의 상황은 불지옥 그 자체!
“취이익! 도망쳐라! 도망쳐야 한다!”
“췩! 저 미친 인간 놈이 평원에 불을…… 풀었다!”
“취익! 대족장님을 보호해라! 대족장님께서 부상을 당하셨다!”
평원 전체에 화염이 날뛰고 있었지만, 가장 심한 타격을 입었던 건 불의 마수의 숨결을 터뜨렸을 때 가장 가까이 있었던 대족장 카라그였다.
태현이 터뜨리는 순간 그대로 직격!
[대족장 카라그가 불의 마수의 숨결에 직격당했습니다.]
[대족장 카라그가 <사디크의 영원한 불> 저주에 걸립니다. 저항에 실패합니다.]
[대족장 카라그가 움직이지 못합니다. 오크 군대의 사기가 내려갑니다.]
[일부 오크들이 대족장을 보호하기 위해 움직입니다.]
[일부 오크들이 도망치기 시작합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칭호:자폭하는 기계공학자를 얻습니다.]
칭호:자폭하는 기계공학자
자폭하는 기계공학자:당신은 기계공학을 위해서라면 당신 몸에 폭탄을 붙이고서도 터뜨릴 수 있습니다.
높은 자리를 가진 NPC들이 두려움을 가짐, 근접에서 폭발 데미지 증가, 폭발 저항력 증가.
대족장 카라그는 죽지는 않았지만, 상태 이상에 제대로 걸렸는지 불의 마수의 숨결에 직격당하고 나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태현은 욕심을 부리지 않고 뒤로 돌아서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잡고 싶었지만, 잡을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화염지옥!
단순히 화염이 아니었다. 누가 사디크 교단이 만든 보스 몬스터 아니랄까 봐, 곳곳에서 여러 스킬이 자연적으로 터져 나왔다.
[사디크의 화염 창이 지역에 쏟아져 내립니다!]
[사디크의 분노의 화염이 당신을 휘감습니다. 회피에 성공합니다.]
[사디크의 열이 당신을 공격합니다. 회피할 수 없습니다. HP가 감소합니다.]
태현이 터뜨린 곳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화염들. 당연히 터뜨린 곳이 가장 위험하고 격렬했다.
빠르게 도망치기 시작했고, 대부분 회피했는데도 쭉쭉 깎이는 HP!
이런 상황에서 화염지옥의 중앙에 있는 카라그를 잡겠다고 남는 건…….
‘과욕이지.’
게다가 믿고 있던 카라그가 당하자 멀리서 지켜만 보고 있던 오크들이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대족장을 구하기 위한 충성심!
화염도 무섭지 않은 것 같았다.
“췩! 대족장님을 끌고 후퇴해라!”
“취이익! 인간 놈! 네 얼굴을 절대 잊지 않겠다!”
“…….”
케인을 데리고 화염 사이를 전력 질주하던 태현은 뒤에서 들려오는 오크들의 한 서린 저주에 찜찜해지는 걸 느꼈다.
적을 줄이지는 못하고 더 늘린 기분!
‘카라그 저놈 그냥 여기서 죽어주면 좋겠는데.’
날로 먹으려는 생각을 하며 태현은 입맛을 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