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29화
뒤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살기를 무시하며, 태현과 케인은 빠르게 출구를 향해 달렸다.
-수혁아! 위 상황 어떠냐!
-…….
“얘는 왜 또 대답이 없어?!”
태현은 혀를 찼다. 지금 대답이 없다는 건 한 가지밖에 없었다.
밖의 상황이 귓속말에 대답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없다는 것!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저 던전 안보다는 밖이 무조건 안전할 테니까.
스미스와 이세연을 같이 상대할 수는 없었다.
콰쾅!
[던전의 출구를 통해 밖으로 나왔습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취익?”
“췩, 새로운 놈들이 또 나왔다.”
“…….”
케인은 무기를 떨어뜨리려다가 간신히 붙잡았다.
던전의 출구로 빠져나오자 그들이 마주한 것은…….
수없이 늘어진 오크들의 군세!
이제까지 오크 군대들을 만나보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이 오크들은 이제까지 본 오크 중에 가장 숫자가 많고 위협적이었다.
“설, 설마 이거…….”
케인은 오크들의 모습에서 무언가를 깨닫고 떨었다. 설마, 설마 아니겠지?
“대족장…….”
“취이익! 저놈! 저놈이다!”
“췩! 저놈의 얼굴! 케인이라는 놈이다!”
[대족장 카라그의 오크 전사들이 당신을 발견합니다!]
[당신을 죽이기 전까지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
“오크의 이름으로! 취익! 저놈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
“으아아아악! 진짜 오늘 왜 이래!”
아까는 이세연하고 싸우더니 올라오자마자 대족장이 이끄는 오크 전사들과 싸워야 하는 상황!
케인은 눈물이 나오는 걸 참으며 급하게 포션을 사용했다.
벌컥벌컥!
“선배님! 이쪽으로 오십시오!”
정수혁이 지팡이를 들고 크게 외쳤다. 정수혁과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그리고 오크 주술사들은 위화감 없이 대족장의 군대 사이에 끼어 있었다.
“……너희는 거기서 뭘 하고 있냐?”
* * *
태현 일행이 땅 밑 던전에서 개구멍 사이를 기고 있을 때, 대족장이 이끄는 오크 군대는 위풍당당하게 진군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는 희생이 있었다. 쑤닝 길드 같은…….
“이겼다! 드디어!”
“지원군도 오고 있어!”
“김태현! 듣고 있냐! 저기 지원군이 오고 있다고! 넌 끝났어! 이 자식아!”
늑대를 타고 덤비는 오크 선봉대를 간신히 물리친 쑤닝은 방방 뛰며 외쳤다.
그러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전원 다 던전으로 가버렸기 때문!
-싸워야 하나?
-주인이 가만히 있으라고 했으니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것 같군.
날개 악마들만 내성에서 조용히 장식인 척하고 있을 뿐이었다.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쑤닝은 더욱더 열이 받았다.
“좋다! 어디 한번 거기서 버텨봐라! 여러분! 잘 오셨습니다. 어디 한 번 같이 김태현을 자근자근 밟아 봅시다!”
“우오오오!”
길드 연합은 신이 나서 성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이미 사라진 태현 일행이 나타날 리는 없었다.
“???”
“어디 갔어……?”
“찾아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길드 연합은 그 전에 미리 해야 할 것을 잊고 있었다.
지금 중요한 건 태현이 아니라 여기로 달려오고 있는 오크 군대!
찾기도 전에 멀리서 대족장이 이끄는 오크 군대가 물밀 듯이 몰려왔다.
“!!!!!!!”
거짓말 안 하고, 거의 바다처럼 보일 정도로 많은 오크들이었다. 성벽 위에서 오크들이 몰려오는 걸 본 플레이어들은 기겁했다.
다른 도시나 성은 본대에서 나눠진 오크들을 상대했지만, 지금 오고 있는 오크들은 본대 그 자체!
절대로 이 병력만으로 이길 수 없었다.
“도…… 도망쳐야 하지 않나?”
다른 길드에서 온 플레이어들은 바로 도망치자고 말했다. 쑤닝 길드와 달리 그들은 여기서 목숨을 바칠 의리가 전혀 없었다.
쑤닝은 기가 막혔지만, 지금 상황에서 같이 싸우자고 말해봤자 씨도 먹히지 않을 걸 잘 알았다.
“……그래! 도망친다!”
결국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카달타 성은 아무도 갖지 못한 채, 오크들에게 버려지게 되었다.
쑤닝 길드와 타 길드 연합은 피눈물을 흘리며(쑤닝만 흘렸지만) 도망!
그러나 오크 군대는 멈추지 않았다.
-내 아들을 죽인 케인 놈은 보이지 않는군. 주술사들! 제대로 주술을 펼치고 있는 것 맞는가?
-췩, 위치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 주변은 아무것도 없다!
-취익, 지하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그렇다면 이동해라! 놈이 나올 때까지 그 위에서 대기할 테니!
오크들은 카달타 성을 반쯤 박살을 내버리고 바로 케인을 쫓아 우르르 이동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습니다.
-췩, 여기 던전의 출구처럼 보이는 곳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열리지 않습니다.
-좋다. 기다린다!
케인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자 오크들도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튀어나온 게 바로…….
던전에서 먼저 나온 정수혁과 다른 사람들!
“…….”
“……개꿀잼몰카인가?”
파워 워리어 길드원 중 누군가의 입에서 그런 말이 흘러나왔다. 그만큼 현실감이 없었던 것이다.
던전의 출구를 가운데로 두고, 빙 둘러싼 오크 군대!
수많은 오크가 그들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걸 본 정수혁이 지팡이를 꽉 잡았다.
지금 필요한 건?
스피드!
“대족장님 만세! 바마어의 대리로 참전해 오크 주술사들을 이끌게 된 정수혁입니다! 대족장님께서 이곳으로 오셨다고 해서 저도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정수혁은 예전이었다면 절대 보여주지 못했을 순발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취, 취익?”
“췩, 위대한 주술사님이 하시는 거니 맞는 일이겠지. 충성! 충성!”
정수혁의 도박은 다행히 성공했다. 원래 이끌고 있던 오크들이 있다 보니 대족장은 넘어가 준 것이다.
-저놈들은 뭔가?
-제가 붙잡은 포로들입니다!
-왜 갑자기 여기에서 나타난 거지?
-대족장님이 원수를 찾았다는 말을 듣고 한시라도 빨리 움직이려다 보니 지름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 던전을 통해서 온다면 빠르게 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 밑에서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나?
-물…… 물론입니다!
[대족장 카라그를 속여 넘기는 데 성공합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스킬 <아키서스의 혀>를 얻습니다.]
<아키서스의 혀>
외친 스킬명과 다른 스킬을 쓸 수 있습니다.
“……?”
뭔가 이상한 스킬이 떴지만, 대족장을 속여 넘기느라 잔뜩 긴장한 정수혁은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넘겼다.
“후…… 살았다…….”
“대, 대단해. 저기서 카라그를 속이다니!”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도 감탄할 거짓말!
그 순간 누군가 정수혁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태현이 어디 있냐?”
“?!?!”
오크들 사이에, 김태산이 있었다.
휘황찬란한 오크 장군 갑옷과 투구를 입은 폼이 마치 십 년은 넘게 오크 군대를 이끈 것 같은 익숙함!
“어, 어떻게?”
“오크 군대 이끌라고 제안이 와서 받았지. 먼저 나온 거 보니까 태현이 저 밑에 있구만?”
“없, 없는데요?”
“그래. 있다고?”
정수혁의 거짓말을 김태산은 바로 간파했다.
‘요놈. 어디 한번 나와 봐라!’
카라그는 김태산을 높게 평가해서 많은 오크 전사들을 배정해 주었다. 덕분에 김태산은 이 거대한 군세에서 일부를 차지하고 여기 이 자리에 서 있었다.
* * *
태현과 케인이 나오자, 정수혁은 결국 그들을 불렀다.
“선배님! 이쪽으로 오십시오!”
더 이상 속여 봤자 의미도 없고, 어떻게든 태현과 합류해서 도와야 했다.
-쏟아지는 산성의 비! 화신과의 공명!
-흐려지는 안개! 혼란의 눈!
일단 주변의 오크들을 최대한 혼란시키기 위해 전체 마법을 걸려고 했다.
운 좋게도 <아키서스의 마법>도 상황에 맞춰서 굴러갔다.
“취익! 저놈! 배신자다!”
“위대한 주술사가 배신했다! 췩! 죽여라!”
상황을 깨달은 오크 전사들은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달리는 대지!
-치솟는 화염의 세례!
정수혁과 오크 주술사들은 일제히 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단체 싸움에서 무엇보다 위력적인 게 바로 마법!
땅이 흔들리고 화염이 내달리며 오크 전사들 위로 쏟아져 내렸다.
“취이익! 뜨겁다!”
“췩! 저놈을 공격해라! 저놈이 우두머리다!”
한 번 마법이 작렬할 때마다 오크가 일고여덟은 넘게 나뒹굴었지만, 금세 오크들은 그 자리를 채웠다.
질보다 양!
-놈들을 절대로 여기서 내보내지 마라!
대족장 카라그의 목소리가 떨어지자, 오크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돌격하기 시작했다.
[대족장 카라그가 <대족장의 명>을 사용합니다. 오크들이 버프를 받습니다.]
[오크들이 후퇴하지 않습니다.]
수없이 몰려드는 오크들. 태현은 그걸 보고 생각했다.
‘그냥 케인 버리고 튈까?’
콰콰쾅!
그러나 그런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도 전에, 던전의 출구가 열리며 스미스와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이 튀어나왔다.
“김태현 씨! 왕관을 돌려주십시오!”
“…….”
순간 주변에 있던 오크들이 전부 그들을 쳐다보았다.
스미스와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은 눈을 깜박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
-저놈들도 전부 처리해 버려라!
“취이이이익!”
대족장의 명령에 따라 오크들은 스미스와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에게 돌격했고…….
콰콰콰콰콰콰콰콰-
그대로 튕겨 나갔다.
-전투마 소환!
“나와라, 내 애마 슬레이프니르!”
강력해 보이는 전투마가 허공에서 돌진하며 튀어나왔다. 스미스는 바로 그 위에 올라타더니 랜스를 들고 오크들에게 돌격했다.
평야에서 진정한 힘을 보여줄 수 있는 게 바로 기사 직업!
-멋, 멋있는 이름이다!
“네 이름도 충분히 멋있지 않냐?”
-그렇긴 하다.
이 와중에 저렇게 떠드는 용용이와 태현을 본 케인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김태현 씨! 왕관을! 돌려주십시오!”
말 한 마디 할 때마다 오크들이 몰려와서 스미스는 랜스로 오크들을 쭉쭉 꿰어야 했다.
그렇게 말하면서 오크들의 파도를 뚫고 태현 쪽으로 돌진하는 게 가히 공포영화의 살인마를 연상시켰다.
오크들이 더 무서운지 스미스가 더 무서운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
“태현 님! 설마 스미스한테도 아이템 뜯어낸 거 아니죠?!”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오크들을 상대하며 비명을 질렀다.
“뜯어낸 게 아니라 정당하게 얻은 건데?”
“그런데 왜 저래요?!”
“몰라. 욕심이 많은가 보지.”
어찌 되었든 스미스와 검은 바위단 길드가 나타난 덕분에 태현 일행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들이 보통 강한 게 아니었기에, 오크들도 나눠진 것이다.
그리고 아직 한 명이 더 남아 있었다.
-황천의 역병, 죽음의 시선, 데스 나이트 군대 소환!
오크 전사들의 한쪽이 그대로 무너지더니, 순식간에 데스 나이트들로 전부 변해 버렸다.
콰르릉! 콰릉!
그 주변의 하늘은 어두워지고 땅이 시커멓게 변했다. 언데드들의 땅!
“김태현! 왕관 내놔!”
“이세연까지?!?!”
이세연이 언데드들의 군대 사이에서 또랑또랑하게 외치자, 그 목소리를 들은 이다비는 눈을 감았다.
그냥 김태현하고 안 어울리는 게 낫지 않았을까? 길고 가늘게 사는 게 낫지 않았을까?
* * *
평원에는 현재 네 세력이 있었다.
가장 많고 가장 강력한, 오크 대족장이 이끄는 오크 군대.
그리고 태현 일행과 스미스와 검은 바위단 일행, 마지막으로 일인군대를 이끌고 있는 이세연까지.
서로가 미묘한 관계인 상황!
가장 먼저 시작을 끊은 건 스미스였다.
“김태현 씨, 왕관을 돌려주십시오! 그건 저희 아이템입니다!”
스미스가 먼저 우직하게 덤비기 시작했다. 그는 오크들을 쓸어버리며 태현 쪽으로 접근했다.
살벌한 기세!
“뭐? 시끄러워서 잘 안 들리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