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28화
-불멸의 육신!
[치명타를 당했습니다!]
[상대의 무기가 끓어오릅니다. 악마의 오라가 당신을 침범합니다.]
[마력이 흡수됩니다.]
크게 흔들리는 시야. 스킬로 대부분의 데미지를 흡수했는데도 충격이 컸다. 이세연은 바로 거리를 벌렸다.
-흑색 이동!
그리고 이어지는 연속 스킬 콤보!
-심연의 촉수, 혼동의 저주, 발걸음을 묶는 그림자, 데스 나이트 라이징!
보통 마법사들은 한두 개 쓰고 기다려야 할 마법들을 이세연은 숨 돌릴 틈도 없이 연속으로 사용했다.
[심연의 촉수가 당신을 묶습니다!]
[회피에 성공합니다.]
[혼동의 저주가 당신에게 작렬합니다!]
[회피에 성공합니다.]
[발걸음을 묶는 그림자가 당신을 묶습니다!]
[회피에 성공합니다.]
“…….”
이세연은 어이가 없다는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태현의 회피력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명중률이 매우 높은 스킬들만 골라서 썼는데…….
전부 다 빗나가다니!
한 개 정도는 통할 줄 알았는데!
“정말 무슨 직업인 거야?!”
언제나 흥미 대상 그 자체! 이세연은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지만, 그 목소리에는 즐거움이 담겨 있었다.
어디 한번 제대로 싸워보자!
순식간에 언데드들이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위압적으로 검을 뽑는 데스 나이트들!
케인은 그걸 보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죽는 거 아냐?’
[심연의 눈을 가진 데스 나이트가 있습니다. 그림자 잠수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림자 도약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
다시 한번 이세연 주변으로 파고들려고 했던 태현은 혀를 찼다.
역시 이세연. 그녀 주변으로 은신해서 들어가려는 도적을 상대할 방법은 이미 갖고 있었다.
-죽음의 흡수.
데스 나이트들을 흡수해서 빠르게 힘을 회복하며, 이세연은 태현을 쳐다보았다.
방금 태현은 이세연을 공격할 때 망치를 넣고 <에다오르의 뜨겁게 끓어오르는 진홍빛 대검>을 꺼내 들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 망치는 나한테는 데미지를 못 준다는 건데. 설마 무생물한테만 데미지를 주는 거 아냐? 아무리 그래도 그런 옵션이 있을까?’
무심코 정답을 맞힌 이세연!
“김태현이 무기를 바꿀 시간을 주지 마!”
몰려드는 데스 나이트. 데미지를 주지 못하더라도 태현의 발을 묶을 수만 있다면 남는 장사였다.
‘힘을 회복할 시간을 벌어야 해.’
장기전으로 가면 유리한 건 그녀였다.
[데스 나이트의 명계의 독에 당합니다. 회피할 수 없는 독입니다. 지속적으로 데미지가 들어옵니다.]
[괴식 요리 스킬로 명계의 독 제조 방법을 얻었습니다.]
-방어의 원, 치명타 폭발!
일단 지금은 이세연 주변으로 다시 파고들 수 없었다. 태현은 케인과 함께 데스 나이트들을 상대했다.
“잠깐…… 쟤네들 뭐야?”
그제야 이세연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발견했다. 태현과 싸우는 사이 동상 뒤 개구멍에서 줄줄이 나오는 플레이어들!
“여기 어떻게 온 거야?!”
이세연이 눈치챘다는 걸 깨달은 플레이어들은 달리기 시작했다.
“야! 튀어! 튀어!”
“이세연이잖아! 여기 왜 있는 거냐?”
“설마 김태현이 이세연한테도 사기를 친 거 아닐까? 삥을 뜯었다던가…….”
“그건 아니겠지! 정말 그건 아니겠지!”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과 정수혁, 거기에 오크들까지.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던전의 출구로 줄행랑쳤다.
이세연은 당황했지만 그들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지금 태현을 상대하기 위해 힘을 회복하고 쌓아놓는 중이었다.
저렇게 알아서 도망쳐주면 차라리 편했다. 굳이 힘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이세연이 HP와 MP를 회복하는 사이 태현은 데스 나이트를 정리해나갔다. 케인이 탱킹을 하는 동안 바로 망치를 들고 두드려 패는 태현!
이세연은 고개를 저었다. 김태현을 얕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도 그녀의 실력에 자신이 있었는데, 이건 정말…….
직업을 대 네크로맨서용으로 키운 게 아닐까 싶을 정도!
“김태현, 혹시 나한테 원한 있어서 직업 그렇게 키운 거 아니지?”
“그건 내가 할 소리거든? 나한테 원한 있는 건 너겠지. 난 너하고 엮일 생각도 없었다고.”
“원한은 아니고…… 그냥 내 길드에 들어올 때까지 공격하는 것 정도인데. 이건 원한이라기보다는 애정 아닐까?”
“애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게 애정이냐? 증오지!”
그렇게 둘이 대화를 하며 서로의 틈을 엿보는 사이…….
“이세연!!!!!”
콰콰콰콰콰쾅!
분노한 스미스가 석실의 벽을 깨고 안으로 난입했다. 그 뒤에는 검은 바위단의 길드원들이 따라붙은 채로.
* * *
“정말 치사하게 이러깁니까! 어?”
들이닥친 스미스는 소리를 지르다가 안의 상황을 보고 당황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한 번 대차게 싸운 것 같기는 한데, 왜 저기에…….
김태현하고 케인이 있단 말인가?
“뭐야, 스미스까지? 여기 던전에 꿀이라도 발라 놨나?”
태현은 스미스와 그 뒤에 나타난 플레이어들을 보고 중얼거렸다.
이세연 때문에 정신이 팔려서 놓치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이 던전이 뭔가 중요한 던전 같았다.
‘뭐지? 이 던전이 뭐가 중요한 거지?’
“김, 김태현 씨는 왜 여기에?”
“어쩌다 보니?”
“저 여자를 믿지 마십시오!”
스미스는 이세연을 가리키며 외쳤다. 태현은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믿은 적도 없는데.”
“둘이 너무하는 거 아냐?”
이세연이 끼어들자 스미스는 울컥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여자가 저를 속이고 혼자 여기로 왔습니다!”
“뭐, 속고 속이는 게 인생인데 뭘 새삼스럽게…….”
태현은 이세연이 속였다는 말에 별로 놀라지 않았다. 판타지 온라인 1에서부터 이미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이기기 위해서는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태현과 이세연!
그러나 스미스는 태현이 놀라지 않자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두드렸다.
“방송에서 나오는 이미지로 속으시면 안 됩니다!”
“아니…… 속긴 누가 속아. 지금 싸우던 거 안 보이냐?”
“그…… 그런 겁니까?”
스미스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세연 씨가 김태현 씨도 속였나 보군요.”
“……반대인데.”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김태현 씨가 당신을 속였을 리 없지 않습니까! 그 반대면 반대지!”
“진짜 반대인데…… 내 말은 안 듣겠지.”
이세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나 스미스가 그녀의 말을 들을 것 같지는 않았다.
‘2:1은 많이 불리한데…… 아이템만 갖고 빠져나가야겠다.’
이세연은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다. 노리는 건 동상 위의 왕관. 집는 순간 무언가 보스 몬스터가 나타나겠지만, 그건 나머지 사람들이 알아서 생각할 일이었다.
스미스는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잘됐습니다. 김태현 씨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도와달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네?
-김태현 씨는 이세연 씨와 싸우고 있었으니 우리 편을 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다가 이세연 씨처럼 치사하고 야비한 성격이 아니니 우리를 속이지도 않을 겁니다.
-어……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구성욱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예?
-아, 아니. 김태현한테 다 말하는 건 좀 위험하지 않습니까? 그냥 이세연하고 싸우는 것만 협조하죠. 어차피 지금 보면 싸우게 될 것 같은데요.
스미스는 구성욱의 말에 둘을 쳐다보았다. 가만히 있는 것 같아 보여도 김태현과 이세연은 서로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었다. 공기가 끊어질 것 같은 긴장감!
그야말로 고수의 대결이었다.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도 침을 삼키며 긴장했다.
‘그래서 왕관은 어디 있어?’
‘저기 가운데 왕좌 앞에 있는 동상 위.’
‘저기 있다. 이세연이 저걸 못 잡게 해야 해.’
‘스미스 님한테 다 맡겨놓을 수는 없지. 우리가 몸을 내줘서라도 잡아야 해. 알겠지?’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이 시선을 교환하며 귓속말을 하는 순간, 태현은 씩 웃었다.
그걸 본 이세연은 일이 틀어졌다는 걸 직감했다.
“저 바보들!”
“그랬군. 동상이었군!”
“김태현 앞에서 뭔 짓을 하는 거야! 이 멍청이들아!”
이세연은 투덜대며 태현을 막으려 들었다. 그러나 지금 태현의 발을 묶을 수 있는 수단은 없었다.
저 사기적인 회피력!
스미스와 길드원들이 오기 전에도, 이세연은 시선을 관리했다. 태현이 얼마나 눈치가 빠르고 통찰력이 좋은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혹시라도 노리는 게 동상 위의 왕관이라는 게 알려질까 봐 그쪽을 보지도 않고 싸움에 집중했는데…….
저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이 눈치 없게 동상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바람에, 태현이 눈치를 채버렸다.
‘먼저 잡는 수밖에 없어!’
이세연은 연속 마법을 사용하며 달려들었다.
마법사는 근접전을 피하는 게 상식이었지만, 이세연 정도 되는 마법사라면 근접전에서도 어느 정도 마법을 써서 버틸 수 있었다.
“케인, 막아라!”
“으아아악!”
케인은 괴성과 함께 이세연 앞을 막아섰다.
-내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HP를 깎아버리고 일시적으로 무적 상태를 얻는 아키서스의 노예 직업 스킬!
-에너지 드레인, 지옥의 저주 화살 연사, 지옥 에너지 폭발!
이세연이 케인을 치우기 위해 마법을 중첩시켜서 콤보를 넣었지만 케인은 버텨냈다.
“말도 안 돼!”
“크윽…… 김태현! 이 자식아! 빨리 좀 해라!”
그 찰나면 충분했다.
탁-
[<잊혀진 망자의 왕관>을 얻었습니다.]
[잊혀진 망자의 왕관이 사라졌습니다. 잊혀진 망자가 깨어납니다.]
[높은 행운으로 잊혀진 망자를 깨우지 않는 데 성공합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
“……?”
태현은 동상의 어깨를 밟고 서서 메시지창을 읽었다.
당연히 태현도 왕관을 얻으면 이 동상이 뭔가 움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안 깨울 수도 있나?
“김, 김태현 씨!”
“?”
스미스가 당황한 목소리로 태현을 불렀다.
“그 왕관은…… 저희가 찾고 있던 아이템입니다!”
“그랬어?”
“이세연 씨가 방해를 했지만 저 아이템을 얻기 위해 먼저 들어온 건 저희입니다. 충분한 사례를 할 테니 그 아이템을 돌려줄…….”
“스미스 님, 김태현 갔는데요.”
“…….”
스미스는 말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 태현과 케인이 던전의 출구로 향해 달려 나가고 있었다.
스미스의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 모습!
그걸 본 이세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김태현이 도망치게 되면 잡을 자신이 없었다.
그러면 저 왕관은 이제 다시 찾을 방법이 없다고 봐야 하는데…….
“당신 때문입니다!”
“뭐? 아무리 생각해도 너희들 때문이지! 김태현 앞에서 그렇게 티를 내면 어떻게 해!”
“당신이 김태현을 공격해서 그런 겁니다. 그러니까 김태현이 당신에게 복수를 하려고 저 왕관을 가져간 거 아닙니까!”
“너…… 김태현이 누군지나 알고 하는 소리니?”
“김태현이 김태현이지 누구겠습니까!”
“…….”
이세연은 말하려다가 말았다. 김태현의 정체는 아무한테도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일종의 독점욕!
정체를 말해줬다가는 아무리 저 선량하고 호구…… 아니, 성실한 스미스라도 분노하리라.
그러면 이세연에게는 유리해지겠지만…….
‘난 그러지 않아도 이길 수 있으니까.’
자신감!
“스미스 님! 쫓아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다시 한번 잡고서 설득을 해봅시다!”
“……안 통할 것 같지만…….”
스미스와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은 재빨리 태현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걸 본 이세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지팡이를 들었다.
김태현 상대로 되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해보는 데까지는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