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25화
[발견할 수 없는 던전의 입구를 행운의 힘으로 발견했습니다. 행운이 오릅니다.]
‘그건 됐고.’
이제 태현은 행운 스탯이 오른다는 말을 들으면 ‘또 레벨업하려면 경험치가 더 들겠군’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더 슬픈 건 이 스탯을 스스로 조절할 수도 없다는 것!
<아키서스의 변덕> 패시브 스킬 덕분에 다른 플레이어들보다 훨씬 더 쉽게 스탯을 얻고, 더 많이 얻을 수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랜덤 배분!
‘그나저나 무슨 던전이지?’
태현은 호기심이 생겼다.
던전. 언제나 플레이어의 가슴을 뛰게 하는 단어!
특히 이렇게 성이나 도시 주변에 있는 던전은 모든 플레이어가 탐을 내는 던전이었다.
이른바 역세권이라고 해도 좋을 수준!
도시의 NPC들에게서 쉽게 소모품을 사고, 버프도 받고, 몇 배는 더 유리한 식으로 던전을 공략할 수 있는 것이다.
‘……쑤닝 길드는 이걸 몰랐던 거 같은데.’
메시지창에 뜬, ‘발견할 수 없는 던전’도 그렇고, 여기 주변에 온 흔적이 전혀 없는 것도 그렇고. 쑤닝 길드는 이 던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모양이었다.
알면 피눈물을 두 배로 흘렸을 것!
‘아니…… 지금 무슨 던전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지.’
태현은 바로 다른 사람들을 불렀다.
지금 중요한 건 이 던전이 어떤 던전이느냐가 아니라, 지하에 던전이 있다는 사실 자체!
보통 던전의 출구는 입구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렇다면 이 던전을 따라서 출구로 가면, 이 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밖에 있는 쑤닝 길드와 몰려오는 오크들을 두고 도망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뭡니까?”
“이 주변 다 치우고 여기로 들어가자! 던전 찾았다!”
“네? 무슨 던전인데요?”
“그게 지금 중요하냐? 너 오크들 상대하고 싶어?”
“그, 그건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은 태현의 단호한 말에 일단 던전의 입구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무슨 던전인지는 모르는 채로…….
* * *
“확실히 난이도가 높은 던전입니다.”
스미스는 그렇게 말하며 앞에 달려드는 고대 제국의 전사에게 칼을 휘둘렀다.
주무기인 랜스를 쓰지 않고 칼을 썼지만, 스미스는 걸어 다니는 인간 전차 그 자체였다.
공격은 막강한 방어력으로 다 막아내고, 반격은 복잡한 스킬 연계가 아닌 평타 한 방 한 방을 꽂아 넣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무너지는 적 몬스터들!
좋은 직업과 좋은 장비, 좋은 스킬과 좋은 스탯 분배까지. 모범적인 캐릭 성장의 예시 그 자체였다.
비교적 좁은 공간이라는 건 문제도 되지 않았다.
스미스야 쉽게 쉽게, 마치 산책하는 것처럼 던전을 나아갔지만, <검은 바위단>의 길드원들은 그러지 못했다.
“헉, 헉헉…….”
“잠깐만요! 회복 좀 하고 가겠습니다!”
따라오던 길드원들은 사제들에게 힐을 받으며 한숨을 돌렸다. 대부분의 적들을 스미스가 상대했는데도 HP가 위험할 정도로 깎여 있었다.
이 던전은 단순히 적의 레벨이 높은 게 문제가 아니었다.
적이 많이, 빠르게 나타나는 것도 나타나는 거지만 싸움 방식 자체가 악랄하고 집요했다.
어떻게든 최대한 안 맞으려고 해도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
갑자기 벽이 열리더니 벽 뒤에서 튀어나오고, 땅 밑에서 기어 나오고, 스미스한테 날린 마법이 튀어서 그들한테도 날아오고…….
“스미스 없었으면 못 깼겠는데?”
“스미스가 뭐냐! 스미스 님이지!”
어느새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은 모두 다 스미스를 찬양하고 존경하고 있었다.
솔선수범해서 가장 앞에 나서고, 레벨이 높고 최상위 랭커인데도 잘난 척 하지 않는 친절한 성격.
등으로 말하는 리더 그 자체!
“지도 만들고 있지?”
“넵. 여기, 여기, 여기 체크했고. 이대로 가면 한 시간 안에 다음 층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길 진짜 복잡하네. 이거 누가 만든 건지…….”
판타지 온라인 2의 던전은 간단한 지형이 드물었다. 복잡한 던전을 깰 때는 이렇게 지도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 일!
오죽하면 인기 좋은 던전의 요소 중 하나가 간단한 지형일까.
“이렇게 가면 시간이 너무 걸릴 것 같은데, 다른 방법은 어떻습니까?”
“네? 다른 방법이요?”
“네.”
“스미스 님께서 좋으신 방법이라면 저희도 좋…….”
콰콰쾅!
말이 떨어지자마자 스미스는 랜스로 무기를 바꿔 들더니 그대로 벽에 꽂아버렸다.
그러자 박살이 나는 벽!
두꺼운 고대 벽돌로 처리가 되어 있어서 어지간한 공격이나 마법에도 흠집이 없었는데, 그대로 구멍이 뚫려버렸다.
“일직선으로 갑시다.”
“…….”
뭔가 막 나가지만 멋있어!
그렇게 생각하며 검은 바위단은 뒤를 따랐다.
* * *
-죽은 자의 눈.
스미스와 검은 바위단이 정공법으로 던전을 뚫는 동안, 이세연은 다른 방법으로 던전을 뚫고 있었다.
혼자 왔지만, 그녀는 서버 최고의 네크로맨서. 네크로맨서는 혼자 다녀도 혼자 다니는 게 아니었다.
촤르륵!
검붉은 눈이 허공에 수십 개 생겨나더니, 빠르게 날아갔다.
그리고 공유되는 시야!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이런 던전을 깰 때는 거의 치트 수준으로 편한 마법이었다.
-부우웅!
날아다니는 눈을 본 고대 제국의 전사들이 빠르게 화살을 쏘거나 검을 휘둘렀지만, 날아다니는 눈은 수십 개가 넘었다.
공격을 피하거나, 피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눈이 돌면서 길을 파악했다.
“이렇게, 이렇게…… 아하. 이런 식으로 가면 되겠네.”
이세연은 휘파람을 불며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침입자ㄷ…… 컥!
-어둠의 화살.
초보자 네크로맨서도 쓰는 마법이었지만 이세연이 쓰자 위력이 달랐다.
고대 제국의 전사는 그대로 몸통이 뚫려 쓰러졌다.
-영혼의 속박!
바로 전신의 색이 변하더니 붉은 안광을 뿜어내며 일어나는 고대 제국의 전사!
-동료여! 이러면…… 컥!
-배신하는 것이냐!
순식간에 적의 편이 되어버린 동료의 모습에 고대 제국의 전사들은 분노했다.
그러나 이세연의 마법 쇼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타오르는 검은 혼.
-영겁의 심연.
-저주가 묻은 검.
삼연속 언데드 버프 주문!
순식간에 고대 제국의 전사는 어지간한 데스 나이트 뺨은 후려갈길 정도로 강해졌다.
콰쾅! 콰콰콰쾅!
통로는 빠르게 정리되었다. 충직한 노예가 된 고대 제국의 전사는 동료들을 쓸어버렸다.
스미스와는 다른 방향이지만, 압도적인 건 이세연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판타지 온라인에서 레벨 100을 넘기면 어깨에 힘을 주고 다녀도 됐다. 그 정도면 랭커와 큰 차이가 없는 고렙이었으니까.
사실 레벨이 차이가 나도 스킬, 스탯, 아이템만 있으면 더 강해질 수 있는 게 판타지 온라인이었기에 그 정도에서는 레벨 낮은 사람이 레벨 높은 사람을 이기는 경우가 종종 보였다.
아직도 레벨이 60대에서 멈춰 있는 태현은 몰랐지만, 이미 케인은 태현을 따라다니면서 잃은 걸 다 회복하고 레벨 100을 넘긴 지 오래였다.
그 정수혁도 엄청난 속도로 성장을 해서 현재는 레벨 100을 거의 바라보고 있는 상황.
심지어 이다비도 나름 레벨 100을 넘긴 플레이어였다. 직업이 상인 계열이지만…….
태현이 다른 사람의 성장에 무관심해서 그렇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억울해서 뒷목을 잡을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세연이나 스미스같은 최상위 랭커들은 레벨이 150을 돌파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야말로 레벨 경쟁에서 가장 앞을 달리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바로 그들!
‘그런데 김태현은 레벨이 몇일지 궁금하네.’
지팡이를 휘두르며 이세연은 그렇게 생각했다.
* * *
스미스와 검은 바위단은 정공법으로.
이세연과 그녀의 언데드 군단은 마법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던전을 공략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태현 일행은?
-신의 예지.
-신의 예지.
-신의 예지.
[신의 예지로 가장 좋은 길을 찾아냅니다. 신의 예지 스킬 레벨이 오릅니다.]
오로지 믿을 것은 행운뿐!
검은 바위단이나 이세연은 이 던전이 얼마나 위험한 던전인지 잘 알고 있었다.
여기 오기 전에 사전 퀘스트를 몇 개나 깬 것이다.
그러나 태현 일행은 그냥 어쩌다가 들어온 사람들! 이 던전이 어떤 던전인지 알지 못했다.
“여기 던전 레벨 몇쯤 될까?”
“글쎄. 오스턴 왕국에, 성 지하에 있으니까 레벨 좀 낮을지도 모르겠는데.”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그렇게 떠들며 태현의 뒤를 따랐다.
뚝-
“여기서 이 문으로 들어가자.”
“네? 아무리 봐도 직진 아닙니까?”
“그리고 저건 문이 아닌데? 그냥 벽에 난 구멍 아냐?”
태현이 넓은 통로를 두고 옆에 난 조그만 개구멍을 가리키자,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가 길마냐?”
“……제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것이 파워 워리어 길드! 이다비는 길드원들의 모습을 보고 창피하다는 듯이 시선을 피했다.
스르륵, 스르륵-
-위대하신 태현 님. 저희는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아. 그래?”
날개 악마들이 그 덩치 때문에 곤란스러움을 표하자, 태현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성으로 올라가서 조각상인 척하고 있어.”
“선배님, 제가 마법으로 덩치를 줄여볼까요?”
정수혁이 말했지만 태현은 못 들은 척을 했다. 이런 곳에서 정수혁의 마법은 그 무엇보다 두려운 시한폭탄!
“아니야. 성으로 올라가서 조각상인 척하고 있어.”
-…….
“어차피 아무도 모를 거야.”
성을 점령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내성 쪽에 가고일처럼 생긴 조각상 몇 개가 추가되었다고 해도 눈치챌 사람은 없었다.
“내가 신호 보내면 돌아오라고.”
-예…….
악마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위로 올라갔다. 그걸 본 용용이가 고소하다는 듯이 말했다.
-몸을 줄이지도 못하다니, 역시 악마들은 능력이 없는 놈들이다.
“너도 엄밀히 따지면 몸을 줄일 수 있는 게 아니라, 강제로 줄여진 거 아닌가……?”
-그런 건 넘어가자, 주인이여!
어쨌든 악마들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은 개구멍으로 들어가 기어가기 시작했다.
플레이어, NPC, 오크들까지 일렬로 기어가는, 어찌 보면 우스꽝스럽고 희한한 모습!
태현한테 익숙한 케인이나 정수혁은 입을 다물고 태현을 따랐지만, 나머지 플레이어들은 속으로 대체 태현이 왜 이러나 싶었다.
‘왜 멀쩡한 길 두고 여기로 가는 거야?’
‘몰라. 김태현이니까 생각한 게 있겠지.’
‘우리 김태현 따라온 게 잘한 거 맞을까?’
길을 가던 정수혁은 좁은 개구멍 통로 벽에 무언가 새겨져 있는 걸 발견했다.
[고대 제국의 문자를 발견했습니다.]
[관련 스킬이 없어서 해석할 수 없습니다.]
“선배님, 여기 고대 제국의 문자가 있다는데요.”
“누가 새겼나 보지. 읽을 수 있는 사람 있냐?”
아무도 없었다.
“그럼 내버려 두고 가자. 지금 일단 움직여야 해. 좀 있으면 위에 오크들이 몰려올 거라고.”
“……!”
태현의 말에 플레이어들은 지금 상황을 깨달았다.
최대한 빨리 여기서 벗어나는 게 목숨에 좋을 것!
다시 기어가려던 태현은 멈칫했다. 그 덕분에 뒤에 따라오던 케인은 태현의 신발에 얼굴을 박았다.
“야 이 개…….”
‘잠깐, 그런데 고대 제국의 문자가 새겨져 있는 던전이면…… 뭐하는 던전이지?’
호기심이 생겼지만 일단 이 통로에 계속 있고 싶지는 않았다. 움직여야 했다.
일행의 가장 뒤에는 정수혁을 따르는 오크 부족들이 있었다.
가장 마지막에 붙어서 따라오는 오크는 눈을 깜박이며 벽에 새겨진 글자를 보았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렸다.
“취익, 이런 길을 지름길이라고 써놓다니. 이걸 만든 놈은 이상한 놈이다.”
그렇게 세 세력은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 던전의 중앙으로 레이스를 펼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