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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221화 (221/1,826)

§ 나는 될놈이다 221화

그렇게 그들이 지하 던전을 공략하는 사이, 다른 곳에서는 또 한 명의 플레이어가 <잊혀진 망자의 왕관>을 찾아 움직이고 있었다.

“도착!”

허공에 차원문이 열리더니, 거기서 한 명의 네크로맨서가 나타났다.

평범해 보이는 남색 로브를 입고, 특별한 것 하나 없는 지팡이를 손에 든 모습.

누가 봐도 초보자 마법사였지만, 초보자 마법사는 이런 공간 이동을 할 수 없었다. 흑마법사는 손짓을 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나타나는 8기의 데스 나이트!

이세연이었다.

-시체 저장. 시체 저장. 시체 저장. 영혼 구속.

사방에 시체들이 있는 상황은 네크로맨서한테는 주 무대였다. 이세연은 도착하자마자 준비를 했다.

이제 이 주변은 이세연이 손가락만 까딱여도 정예 언데드 몬스터들이 우르르 나올 수 있는 요새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잊혀진 망자의 왕관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아랄타 성 지하 입구네.’

검은 바위단의 퀘스트와 이세연의 퀘스트가 겹친 상황! 두 세력은 다른 입구로 같은 던전에 들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언니. 도착하셨어요?

-응응. 걱정할 필요 없어.

-언니라면 괜찮으시겠지만 그래도 오스턴 왕국이니까 조심하세요. 언니는 알아보는 사람도 많을 거 아니에요.

-변장했는데 누가 알아봐……?

-아, 그리고……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뭐야, 뭐야? 너 지금 뭐 말하려다 말았지? 말해.

이세연은 같은 길드에 있는 동생이 말을 머뭇거리는 걸 바로 눈치챘다.

-진짜 아무것도 아닌데…….

-현아야, 만약 나중에 알아봤는데 숨긴 거면 화낸다?

-죄송해요! 사실 사이트에 오스턴 왕국에 김태현이 있다는 글이 올라왔었거든요. 뭔가 잔뜩 이끌고서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있다는데…… 언니는 그 김태현한테 이상하게 관심을 보여서 말 안 하려고 했어요!

-이상하게 관심이라니. 그냥 관심이지. 그리고 흥미롭지 않아? 랭커잖아.

-다른 랭커한테는 그렇게 관심 안 가지시잖아요! 저번에 한 것도 그렇고! 왜 김태현한테만!

-질투할 필요 없다니까, 현아야? 그리고 저번에 한 건 나름 의미가 있었어.

태현이 정체를 드러내고, 본격적으로 방송에도 나서고 활동을 하자, 이세연은 한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저 김태현이 판타지 온라인 1의 김태현이 아닐까?

근거는 한 가지가 아니었다.

처음에 만난 건 마차를 수리했을 때. 그때 굳이 가명을 말한 이유는 뭐였을까?

물론 그냥 조심한 걸 수도 있겠지만, 이세연의 감은 예리하게 무언가를 잡아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판타지 온라인 1과는 직업과 전투 방식이 완전히 달랐지만, 이세연은 그 속에서 무언가 낯익은 것을 느꼈다.

이렇게 되자, 오히려 돌아다니는 소문인 ‘김태현은 판타지 온라인 1 김태현 팬이라 닉을 그렇게 지었다더라’ 같은 소문은 더 의심스러워졌다.

그건 사실 김태현이 진실을 숨기기 위해서 퍼뜨린 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세연은 한 가지 실험을 해보았다. 김태현이 판타지 온라인 1의 김태현이라는 소문을 퍼뜨린 것이다.

에스파 왕국 퀘스트가 끝난 직후였다.

그런데…….

‘그 소문이 이상하게 사라졌어.’

어떻게 되나 보려고 한 짓이었는데, 누군가 대량으로 여론을 조작이라도 한 것처럼 소문이 묻혀 버린 것이다.

이러니까 더 수상할 수밖에 없는 것!

-어쨌든 그런 놈한테 더 이상 관심 가지지 마세요! 방송에서 착하게 나오는 것도 분명 이미지 관리일 거예요! 실제로는 성격 나쁘고 더럽고 못생기고 하여튼 온갖 안 좋은 건 다 갖고 있을 거라고요!

-그, 그 정도는 아닐 것 같은데…… 그리고 어차피 김태현하고 만날 일은 없을 거야. 지하 던전 들어가서 <잊혀진 망자의 왕관>만 가지고 나올 생각이니까.

-좋은 생각이에요! 혹시 김태현 만나더라도 절대로 길드에 영입 제안은 하지 마세요!

-김태현이 진짜면 하더라도 안 받을 거야.

-네? 뭐 그런 놈이 다 있어요! 언니한테 받으면 영광으로 여겨야…….

-현아야, 네가 말하고도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니? 어쨌든 이만 끊을게.

-네! 언니! 파이팅!

떠들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아랄타 성 앞에 도착했다. 이세연은 성 주변을 둘러보았다.

‘생각보다 복구가 빠르네? 점령한 사람들이 돈이 많은가?’

안을 보니 오크들이 뚝딱거리며 성벽을 수리하고 있었다. 순간 몬스터인줄 알았지만, 몬스터가 아니었다.

“저기요-”

“……?”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오크들은 움찔했다. 순식간에 웅성거리며 떠들기 시작했다.

“태현이 아니지?”

“여자 목소리잖아.”

“태현이가 보낸 여자 아니지?”

“…….”

김태현 노이로제에 걸린 오크 아저씨들!

“보니까 아닌 것 같은데.”

“마법사야? 레벨 낮아 보이는데. 용케 여기까지 왔네.”

“레벨 낮을 때는 다들 겁이 없잖아. 그나저나 저래가지고 여기서 돌아다닐 수 있나? 우리 길드에 들어오라고 해볼까?”

오크 아저씨들은 웅성거리며 떠들었다. 그걸 들은 이세연은 살짝 미소 지었다.

대화하는 것만 들어도 꽤 괜찮은 길드라는 걸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우리 길드 들어오라고 하면 다들 거절하잖아. 그건 왜 그럴까?”

“그러게. 이렇게 좋은 길드도 없는데.”

자기들의 복장은 잊어버리고 떠드는 아저씨들! 김태산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조용히 좀 해…… 그보다 여기는 무슨 일로 온 거지? 여기 주변이 막 돌아다닐 곳은 아닌데.”

“아, 이 성 지하에 볼 일이 있어서요. 혹시 들어가도 될까요?”

“지하? 이 성 지하에 뭐가 있었나?”

“형님 알고 계셨습니까?”

“몰라. 나도 못 들어봤는데.”

“내성 건물의 지하실을 보면 지하 던전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거든요.”

이세연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러나 원래 이런 건 이렇게 쉽게 말해줄 게 아니었다.

던전의 정보는 그 자체로도 아주 큰 가치가 있었다. 괜찮은 던전이 필드에 나왔다는 소식만 들리면 그 주변의 길드들이 닥치는 대로 달려들어서 독점하려고 들었다.

자리가 되고 상황이 되면 자릿세를 걷거나, 아예 못 들어오게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러면 일반 플레이어들은 그냥 다른 던전을 찾아야 했다. 억울하고 치사해도 어쩌겠는가.

그런데 이세연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준 것이다. 당장 여기 아저씨들이 쫓아내고 던전을 혼자 독점해도 놀랍지 않았다.

자신감!

이세연은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그녀를 쫓아내도 뚫고 안으로 들어갈 자신이.

그러나 아저씨들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뭐? 여기 밑에 던전이 있었어?”

“어쩐지 보일 리가 없는 몬스터 시체가 있다 했다.”

“형님, 어떻게 하실 겁니까?”

김태산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우리는 원래 알지도 못했을 걸 알려줬으니 들어가게 해줘라. 불쌍하잖아.”

“어…… 네?”

이세연은 귀를 의심했다. 왜 불쌍?

“다른 길드 놈들이 얼마나 던전 입장을 막았으면 여기까지 와서 던전을 찾겠냐. 불쌍하다.”

“하긴, 우리는 영지가 목적이니 던전 먼저 들어가는 건 양보해도 별 상관없겠죠.”

아저씨들은 김태산의 말에 동의하며 말했다. 그들은 이세연을 저렙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녀가 들어갈 정도의 던전이라면 별것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아, 아니…… 그런 건 아닌데요…….”

이세연은 당황해서 말했지만 이미 오크 아저씨들은 알아서 오해를 마친 상태였다.

“힘내라, 힘!”

“열심히 하라고!”

“…….”

이세연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안으로 걸어갔다.

“좋아하는데요?”

“감동한 거겠지. 우리 참 착해지지 않았냐?”

오크 아저씨들은 서로 덕담을 해주며 뿌듯해했다. 예전이었다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양보와 선행!

그러나 그들은 그걸로 목숨을 구했다고는 상상치도 못했다.

“야. 와서 여기 성벽이나 마저 수리해라! 시간 없어!”

“내가 허리가 안 좋아서…….”

“나는 주술사잖아. 힘쓰는 건 좀…….”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와!”

오크 아저씨들은 투덜거리며 다시 건축에 들어갔다. 손이 부족하니 그들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

다들 고렙에 장비까지 빵빵하니 건축 스킬은 없어도 잡일은 완벽하게 해냈다.

* * *

“X까!”

“……!”

태현은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걸 본 케인이 물었다.

“너 정말로 쟤네들이 저런 반응 보이는 게 놀라워서 이러는 거냐?”

“반쯤은 그렇지?”

태현은 표정을 수습하고 위를 쳐다보았다. 카달타 성. 그 성벽 위에 서 있는 건…….

쑤닝 길드!

쑤닝 길드도 그 짧은 사이에 성을 나름 보강하는 데 성공한 상태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성벽도 다 멀쩡했다.

그리고 그 성벽 위에 있는 쑤닝 길드원들은 전원 다 독기 서린 얼굴!

철천지원수를 보는 것 같은 비장함이 그들의 얼굴에는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은 모조리 태현한테 주목되어 있었다.

“너하고 협상하느니 차라리 죽겠다!”

“이 개-XX-XXXX-XXXXXX-”

“뒈져! 그냥 뒈져!”

쏟아지는 욕설과 증오!

그걸 본 이다비가 말했다.

“협상이 전혀 안 통할 것 같은데요.”

“흠. 쑤닝 길드 정도면 아무리 쌓인 원한이 있어도 현재 상황을 좀 침착하게 파악하고 손을 잡아줄 줄 알았는데.”

“……그러기에는 너무 많이…….”

“뭐?”

“아무것도 아니에요!”

태현한테 아이템 사기까지 당한 쑤닝 길드원들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태현에게 좋은 일을 해줄 생각이 없었다.

사람이 언제나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는 없는 법!

태현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협상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그 뒤에는 실력 행사뿐.

‘여기서 오크들 올 때까지 있지 뭐.’

물론 단단히 약이 오른 쑤닝 길드는 가만히 당하고 있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쉬익-

“……?”

[높은 행운으로 상대의 은신이 풀립니다. 모습이 드러납니다.]

“……!”

태현 뒤에 와있던 암살자 플레이어가 은신이 풀리고 태현과 눈이 마주치자, 눈을 깜박였다.

은신해서 접근한 다음 뒤에서 정확하게 기습을 넣으려고 했는데…….

참으로 어색한 순간!

“우리 친구, 뒤에서 기습을 넣으려고 했구나?”

“네…….”

“그런데 지금 걸려서 난처한 거고?”

끄덕끄덕!

“저…… 그냥 놔주시면…….”

“뭔 개소리를 하는 거야! 공격해!”

암살자가 머뭇거리자 성벽 위에서 쑤닝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암살자는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죽는 건 나만 죽잖아!’

은신 후 기습을 넣고 다시 재빨리 성 안으로 튀는 게 계획이었는데, 길마란 인간이 지밖에 몰라가지고…….

“에에이!”

암살자 플레이어는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이렇게 된 이상 김태현을 공격하고 다시 성으로 튄다!

한 번에 폭딜을 넣으면 김태현도 무리해서 쫓아오지는 못할 것이다.

촤락!

“……?”

[석화의 검은 허리띠로 인해 석화 스킬이 발동됩니다. 저항에 성공합니다. 이동 속도가 내려갑니다.]

[황제 슬라임의 반지로 인해 완전무결한 반격 스킬이 발동됩니다. 데미지가 돌아옵니다.]

[봉쇄의 발목 장식으로 인해 그림자 발목 묶기 스킬이 발동됩니다. 잠시 동안 움직일 수 없습니다.]

[진홍의 배신 셔츠로…….]

순식간에 주르륵 뜨는 메시지창들! 암살자 플레이어는 경악했다. 제대로 공격도 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

“뭐…… 야?”

덤벼든 탓에 태현의 외투가 살짝 걷혀졌다. 그러자 그 안의 모습이 드러났다.

“!!!”

경악스러울 정도로 빼곡하게 입은 장비들!

에스파 왕국의 약탈에서 알짜배기들만 모아서 장착한 것이었다.

하나하나가 뛰어난 효과를 갖고 있는 PK용 장비들이었는데, 그걸 전부 다 긁어모아서 장비를 하니 무시무시한 시너지 효과가 나타났다.

“이야. 효과 좋네. 회피 뜨기도 전에 다 막을 줄은 몰랐어.”

“이건 진짜 말도 안…….”

퍼퍼퍼퍼퍽!

[HP가 0으로 내려가 사망합니다.]

암살자 플레이어를 깔끔하게 정리한 태현은 검을 휘두르며 성벽 위를 가리켰다.

“쑤닝, 나와라, 비겁한 녀석! 동료를 버리다니! 나와서 심판을 받아라!”

“우리가 악당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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