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20화
<왕자를 찾아가라-오스턴 왕국 내전 퀘스트>
오스턴 왕국의 1왕자와 2왕자는 각자 뛰어난 능력과 재능을 갖고 있는 거물들이다.
선대 왕이 서거한 이후 둘은 각자의 세력을 이끌고 치열하게 경쟁해 왔다.
도적들이 출몰해도, 오크들이 쳐들어와도 그들은 나서지 않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이 왕국을 지배할 수 있는 이들이다.
그런 둘에게 오스턴 왕국에 새로 나타난 종교는 주목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다.
왕자들을 찾아가 그들의 세력에 합류해라. 이 내전을 끝낸다면 크나큰 보상을 받으리라.
보상:?, ???
오스턴 왕국 내전 퀘스트!
다른 플레이어들은 밑바닥에서 어떻게든 왕자들과의 인맥을 쌓으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태현은 그냥 왕자를 만나러 가라고 퀘스트가 떴다.
귀족 작위와 교단 최고 권력자 자리를 가진 덕분!
‘이건 지금은 못 하겠군.’
다른 플레이어라면 혹해서 바로 찾아갔을 퀘스트의 시작이었지만, 태현은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지금 오크 군대를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왕자들 퀘스트까지 추가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더라도 이번 오크 대공세가 끝나고 해야 했다.
* * *
“안녕하십니까, 스미스입니다.”
“반갑습니다!”
“우와, 진짜 스미스야? 우리 길마 진짜 인맥 좋네.”
“실물이 더 잘생긴 것 같아.”
캉탄 요새에서는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이 스미스를 보고 감탄하고 있었다.
그들도 대부분 고렙 이상 랭커 이하의 플레이어들이었지만, 그래도 스미스는 그 격이 달랐다.
같은 플레이어로서 동경의 대상!
“그런데 무슨 일로 부르신 겁니까? 역시 오크들 때문입니까?”
“아, 아니요. 오크들은 우리끼리 처리할 수 있죠. 여기같이 작은 요새는 그냥 입구만 틀어막아도 충분히 지킬 수 있거든요. 스미스 님을 부른 건 지하 던전 때문입니다.”
“지하 던전?”
“예. 여기 요새 지하에는 던전이 있습니다.”
그랬다. <검은 바위단> 길드가 스미스를 부른 건 오크들을 상대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오스턴 왕국에서 돌아다니는 오크 정도는 그들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스미스를 부른 건 캉탄 요새 지하에 있는 던전 때문!
검은 바위단이 오스턴 왕국에 온 것도 실은 이 던전 때문이었다. 원래라면 요새에 들어갈 수도 없었지만, 오크들의 대공세가 생각지도 못한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요새 점령은 어디까지나 덤. 검은 바위단은 다른 시각으로 이번 대륙 퀘스트를 보고 있었다.
-꼭 영지를 얻어야 할 필요는 없다. 지금 괜히 무리해봤자 역효과가 날 수도 있고, 우리 길드는 그렇게 규모가 크지도 않으니까. 차라리 이제까지 못 깼던 퀘스트들을 깨는 거다.
검은 바위단의 길마는 꽤나 현명한 사람이었다. 구성욱은 고개를 길마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길마지만 참 대단하단 말이야.’
검은 바위단이 태현한테 낯익었던 이유는 하나!
바로 타이럼 시에서 구성욱이 태현을 끌어들이려고 했을 때 말했던 길드 이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태현의 위치와 지금 태현의 위치는 전혀 달랐지만…….
“그런데…… 스미스 님은 괜찮으시겠습니까?”
“무슨 소립니까?”
“그, 기사 직업은 좁고 갇힌 곳에서는 활약하기 힘들잖습니까.”
“그런 걸 걱정하셨습니까?”
스미스는 귀공자 같은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좁아도 충분히 싸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미스의 말은 사실이었다.
콰콰콰콰쾅!
-침입자는 허락할 수 없다!
-돌아가라, 침입자!
[고대 제국의 전사들이 일어납니다. 던전의 기운을 받아 공격력이 증가합니다.]
지하 던전을 들어서자마자 고대 갑옷을 입고 중무장한 전사들이 묵직하게 덤벼 들어왔다.
스미스의 뒤에서 쌍검을 들고 있던 구성욱은 긴장했다.
이 던전의 몬스터들은 정말 만만치 않았다.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이 파티를 짜서 공략을 몇 번 시도했지만, 도중에 막혀서 돌아와야 했던 것이다.
몬스터 하나하나의 전투력도 강하고, 조금이라도 멈칫하면 다시 몬스터들이 생겨나서 발목을 잡았다.
아예 대규모 파티로 공략을 하거나, 압도적인 힘으로 쓸어버리거나.
검은 바위단이 선택한 방법은 후자였다. 스미스가 바로 그 방법!
-태양의 힘.
스미스는 앞으로 걸어가며 스킬을 사용했다.
파아아아악!
스미스의 전신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오며 앞으로 내달렸다. 고대 제국의 전사들은 방패를 앞에 세우고 막아내려고 했지만 일격에 날아갔다.
-칼날 소나기.
이어지는 스킬 연계. 뒤에서 마나로 된 칼날들이 생겨나고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태양의 힘에 튕겨 나간 고대 제국의 전사들은 순식간에 칼날에 꿰뚫렸다.
-크아아악!
-눈부신 힘이다! 이겨낼 수가 없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니면서 적을 상대할 때, 스미스는 그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왕자의 품격!
그러면서도 주변을 완전히 압도했다. 빠르게 리젠되는 몬스터들은 스미스의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났다.
‘대, 대단하다……!’
구성욱은 속으로 감탄했다. 구성욱 그 자신도 나름 랭커였고, 다른 랭커들도 몇 번 본 적이 있었지만, 스미스는 정말로 대단했다.
압도적!
구성욱은 갑자기 김태현이 떠올랐다. 김태현이 온갖 다양하고 변칙적인 스킬들을 복합적으로 사용하는 스타일리시한 플레이어였다면, 스미스는 강력한 스킬들을 한 방 한 방 묵직하게 쓰는 왕도파 플레이어였다.
둘의 공통점이 있다면 각자의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가할 정도로 대단하다는 점?
‘아니, 내가 왜 그놈 생각을 했지?’
구성욱은 고개를 흔들었다.
물론 김태현하고 그가 이상하게 많이 엮이기는 했다.
타이럼 시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대장장이 옆에 있던 플레이어가 이렇게 될 거라고 그 누가 상상을 했겠는가! 다른 사람들도 그건 몰랐다.
그렇지만 구성욱은 김태현하고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았다. 이상하게 김태현하고 엮인 일은 다 꼬였던 것이다.
특히 차가운 울음의 검은 아직도…….
지하 1층의 몬스터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2층의 입구 앞에 도착한 스미스는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아. 오는 길에 김태현 플레이어를 만났습니다.”
“?!”
“왜 그러십니까?”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구성욱은 당황했다. 순간 그의 속마음을 스미스가 읽은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냥 우연의 일치였다.
“두 분이 친하셨던 겁니까?”
“아니오. 그냥 오는 길에 우연히 만났습니다.”
‘김태현도 여기에 있나? 하긴, 오스턴 왕국이 매력적이긴…… 잠깐, 김태현은 이미 영지도 있는데 왜 여기 왔지?’
정답은 ‘오크 군대를 갖고 장사를 하려고’였지만, 비교적 참한 양심을 갖고 있는 구성욱은 떠올리지 못했다.
“여기 지하 던전에 있는 보상이 뭔지는 모르지만, 혹시 김태현 플레이어도 그것 때문에 온 거 아닙니까?”
“아, 그건 아닐 겁니다. <잊혀진 망자의 왕관> 아이템인데, 그건 흑마법사용 아이템이거든요. 김태현한테는 맞지도 않을 거고, 게다가 연계 퀘스트가 몇 개나 있어서 아무리 김태현이라도 이걸 알지는 못할 겁니다.”
“그렇습니까?”
“그보다 저는 스미스 씨가 여기까지 오신 게 신기한데요. 바쁘시지 않으세요?”
“하하. 바쁘기는 하지만, 약속은 지켜야 합니다. 제 할아버지께서는 언제나 ‘은혜는 잊지 말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참된 인성!
구성욱은 스미스의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어두운 던전에서도 비치는…….
“몬스터가 쏜 거잖아?!”
구성욱은 재빨리 달려들어서 쌍검을 휘둘렀다.
-마탄 베어내기!
몇 가지 마법을 방어할 수 있는 쌍검술사의 스킬! 구성욱은 당황해서 검을 휘둘렀다.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적 마법사가 당황해서 다음 마법을 시전하려고 했지만, 바로 스미스가 반격에 나섰다.
콰콰쾅!
“감사합니다. 설마 저기에 숨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별, 별거 아니죠. 헉헉…….”
별거 아니라고 말했지만 구성욱은 숨을 헉헉 내쉬고 있었다.
여기까지 온 스미스는 귀한 몸이었다. 스미스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길마의 얼굴을 볼 체면이 없었다.
“이렇게 도움을 받다니. 제가 뭐 도와드릴 거라도 있으면 말씀해 보시죠.”
“예? 아닙니다, 괜찮아요.”
도와주러 온 사람한테 무슨 실례란 말인가. 구성욱은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스미스는 묘하게 끈질겼다.
마치 계산기처럼 은혜와 원수에는 철저한 남자!
성실하고 귀공자 같은 겉모습 속에는 이런 모습이 있었던 것이다.
“말씀해 보시죠. 뭐든 좋습니다. 사소한 거라도…….”
‘얘 왜 이래?’
구성욱은 당황했다.
“최근에 어떤 문제도 없었습니까? 하나도? 조금도?”
“그, 문제…… 문제가…….”
구성욱은 최근에 겪었던 문제가 뭐가 있는지를 떠올렸다.
“어, 하나 있긴 한데요…… 이건 도와주실 수 있는 게 아닌데요.”
“말해주십시오.”
박력!
구성욱은 스미스의 박력에 눌려 입을 열었다.
“그, 제가 사실 직업 퀘스트 아이템, <차가운 울음의 검>이라는 걸 찾아 헤매고 있었는데…….”
구성욱은 <차가운 울음의 검>과 관련된 그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5분 요약본으로 빠르게 설명했다.
“그러고 제작법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길드 대장장이님한테 그걸 줬는데, 글쎄, 필요한 게 뭔 줄 아세요?”
“뭡니까?”
“다른 것도 다 희귀 재료인데! <교황의 축복을 받은 강철>이 필요하대요! 그걸 어떻게 구해요!”
그랬다. 구성욱은 아직도 <차가운 울음의 검>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차라리 포기할까 싶었지만, 이제까지 들인 게 너무 많아서 포기도 못 하는 상황!
구성욱에게 <차가운 울음의 검>은 이제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교황의 축복을 받은 강철…… 그 아이템 구할 방법이 없습니까? 경매장에도 안 올라왔습니까?”
“올라왔으면 고민할 이유가 없죠. 애초에 교황한테 직접 축복을 받아서 만드는 아이템인데, 그 정도 공적치 포인트를 쌓은 사람이 굳이 그런 아이템을 만들겠어요? 저라도 다른 거 만들 텐데. 결국 제가 직접 만들어야 하는데…….”
구성욱은 푹푹 한숨을 쉬었다. 다른 사람들이 저 아이템을 만들어서 경매에 올리지는 않을 테니, 그가 직접 교단에 공적치 포인트를 쌓아서 교황을 만나야 했다.
그래서 교단들을 보며 이것저것 시도는 해보고 있지만…….
많은 플레이어가 이미 교단 내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절대 만만치 않았다.
“경쟁이 적은 교단에 들어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네? 그런 교단이 있어요? 교단은 다 경쟁이 치열하잖아요.”
“이번에 김태현 플레이어가 아키서스 교단을 연 걸로 압니다만.”
“…….”
설마 김태현의 이름이 여기서 나올 줄은 몰랐다. 구성욱은 한 대 얻어맞은 표정을 지었다.
“아, 아니…… 그래도…… 그건…….”
본능적으로 드는 거부감! 본능이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김태현하고 엮이면 좋지 않을 거라고!
그러나 논리적으로, 스미스의 말이 맞았다.
경쟁자도 없고, 김태현한테 말만 잘하면 받을 수 있는 아이템 아닌가!
“끄으으으 끄으으으으으으 끄으으으으응…….”
구성욱은 짐승 같은 소리를 냈다. 그걸 본 스미스가 이상한 사람을 보는 눈빛을 보냈다. 눈치를 챈 구성욱이 헛기침을 했다.
“험험.”
“…….”
“어, 어쨌든 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민 좀 해보겠습니다.”
“그러십시오. 김태현 플레이어를 실제로 만나보니 친절하고 예의 발랐습니다. 방송하고 똑같더군요. 부탁을 하면 거절하지 않을 겁니다.”
“……?”
구성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얘 진짜 김태현 제대로 만난 거 맞아?
‘가짜를 만난 것 아닌가? 김태현으로 변장하고 다니는…… 헉! 충분히 가능해!’
급기야 현실을 부정하는 구성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