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19화
신개념 구걸!
솔직히 이 정도가 되면 구걸이 아니라 협박이라고 봐도 됐다.
“뭘 메모하고 있는 거예요?”
“협박 리스트…… 아니, 부탁할 리스트.”
협박이라고 말했다가 급히 수정하는 태현!
길마를 따라서 같이 온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태현을 감동스러운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아, 게임은 저렇게 해야 하는데!
방송과는 전혀 다른 태현의 이미지?
그런 건 상관없었다.
오히려 더 좋았다!
방송에서 만들어진 태현의 이미지는 인기 좋은 영웅의 이미지라면, 현실에서 직접 보는 태현의 이미지는 따라 해야 할 롤모델의 이미지!
* * *
첫 번째로 도착한 곳은 아랄타 성이었다. 길 위로 박살 난 표지판에 [아랄타 성]이라고 쓰여 있었다.
“아랄타 성은 누가 갖고 있냐?”
“어…… 이건 사이트에 안 나와 있는데. 방송이나 인터넷을 안 하는 길드인가? 왜 아무것도 안 나와 있지?”
“뭐 비밀 유지라도 하나? 상관없어. 직접 보면 되니까.”
위풍당당!
뒤에 괴상한 오크 전사들과 악마들까지 데리고 있는 태현은 자신만만했다.
어지간한 전력과는 그냥 부딪혀도 될 수준!
물론 태현은 싸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 상대가 태현의 말만 제대로 들어준다면…….
저벅, 저벅-
아랄타 성은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꽤 괜찮은 모습이었다. 태현이 이끌고 온 군대가 보였는지, 성문 안에서 누군가가 나왔다.
태현이 이끈 오크 전사들보다 더 괴랄하게 입고 있는 오크들!
그런 오크들은 하나밖에 없었다.
“아버지?!”
“?!”
김태산은 멀리서 나타난 태현을 보고 들고 있던 도끼를 떨어뜨렸다. 아니, 저놈이 왜?
“아드님이십니까?”
옆에서 성벽을 보강하고 있던 제랄드가 물었다. 김태산이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런데 방금…….”
“성벽이나 다시 만들어! 손이 놀고 있잖아.”
“알, 알겠습니다.”
제랄드는 입을 다물고 다시 성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따따블을 받고 온 그였다. 어지간한 구박은 들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 주변이 위험하고, 수리하고 만들어야 할 것은 많지만…….
그래서 더 타오르는 것이 건축가의 혼!
게다가 다른 오크 길드원들도 소매를 걷어붙이고 도와주려고 했다.
김태산은 성큼성큼 걸어갔다. 옆에서 태현의 군대를 본 양성규가 속삭였다.
“형님. 섣불리 행동하시면 위험합니다.”
“알고 있다.”
태현을 보는 순간 울컥했지만 김태산은 빠르게 이성을 되찾았다.
태현의 뒤에 있는 건 악마들과 오크들!
‘악마들이야 에스파 왕국 퀘스트에서 갖고 나온 거겠지. 그런데 오크들은 어디서 구한 거야?’
대체 어떤 수작을 부려서 오크 전사들까지 부리게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오크들과 가장 원수를 진 플레이어는 바로 태현! 저 오크들이 당장 태현한테 덤벼들어야 정상이었다.
“네가 여기까지 왔을 줄은 몰랐다.”
“하하. 아버지. 저도 여기 아버지가 계신지 몰랐습니다. 보아하니…… 영지 만드시나 봐요?”
“…….”
“저 따라 하시는 거 아니죠?”
빠드득!
“아, 아니다……!”
“진짜 아니에요? 맞는 거 같은데.”
“시끄러워 이 자식아! 본론만 말해!”
결국 사라진 위엄과 체통!
김태산은 울컥해서 외쳤다. 태현의 장기 중 하나가 바로 사람의 성질을 긁는 것!
“여기 주변에 길드가 많다길래 돌면서 부탁 좀 하려고 했죠.”
“뭔…… 부탁?”
“다 아시잖아요. 골드 기부도 받고, 이제 새로 도시나 성 개발 들어가는데 아키서스 신전도 좀 짓고…….”
골드도 골드지만 태현은 새로운 영역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아키서스 교단의 깃발을 꽂을 영지!
다른 왕국의 영지들은 이미 다른 교단들이 들어서 있고, 거기서 또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태현이 ‘아키서스 교단도 좀 넣읍시다!’라고 말해 봤자 들어줄 리 없었다.
오히려 견제나 반격이 들어올 게 분명!
그러나 오스턴 왕국은 달랐다. 오크들이 닥치는 대로 부수고 가버린 덕분에, 도시나 성에 있던 교단 신전들도 박살이 나 있고 사제들도 사라져 있었다.
먼저 먹는 놈이 임자나 마찬가지!
“태현아.”
“예, 아버지.”
“너 미쳤냐?”
“아니, 아버지 아들한테 그게 하실 소립니까?”
“넌 인마 내 친구들을 공격하고 속였잖아! 그리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들어주지. 그딴 부탁을 누가 들어줘?”
“아버지. 아버지가 예전에 ‘친절한 부탁에 칼을 곁들이면 더 많은 걸 얻어낼 수 있다’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내가 언제 그랬어! 사람 이상하게 모네 이 자식이 또!”
“하셨거든요? 리X지 하실 때 분명히 하셨는데. 아저씨들. 아저씨들도 들으신 기억 있죠?”
오크 아저씨들은 불똥이 그들한테 튀자 움찔했다. 순간 맹렬하게 교환되는 시선들!
-어떻게 할까?
-끼어서 좋을 거 없지.
-그렇지?
땅, 땅, 땅-
못 들은 척 다시 망치를 두드리기 시작하는 오크들! 오크들은 갑자기 건축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저 오크 전사들하고 악마들을 데리고 협박을 하겠다 이거냐? 태현이 이 자식. 똑똑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이런 실수를 할 줄은 몰랐는데.”
김태산은 의기양양해져서 떠들었다. 그걸 본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왜 저러신담?
“여기 왕국에 온 길드들이 그렇게 만만해 보였냐, 요놈. 그런 식으로 협박해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다. 저 정도 막을 자신이 없는 놈들이 여기 왔겠어? 게다가 너는 다른 놈들이 방어하고 있는 곳을 뚫어야 하잖아!”
“아버지.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여기 있는 놈들은 싸우려고 데리고 온 놈들이 아닌데요. 그냥 호위에 가깝죠.”
“……?”
“그리고 제가 하려는 협박…… 아차, 부탁은 제 말 안 들어주면 데리고 온 놈들로 공격을 하겠다는 부탁이 아니에요. 그냥 성문 앞에서 버티고만 있을 겁니다.”
“……그런 짓을 왜 하는데?”
“그야 오크 대족장한테 케인이 여기 있다고 보냈거든요. 어지간하면 군대 이끌고 돌아오겠죠.”
“!!!!!!”
김태산은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표정이 되었다.
“그, 그러니까 지금…….”
“예. 부탁 들어주시면 얘네들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겠습니다.”
“너 이 자식이 진짜!”
“형님! 참으십시오! 지금 싸우시면 안 됩니다!”
“참아요, 참아!”
“이거 놔! 내가 저놈하고 오늘 끝장을 봐야겠어!”
* * *
“헉, 헉헉…….”
죽이니 살리니 온갖 험한 대화가 오고 나서, 김태산은 헉헉거리며 숨을 돌렸다. 그리고 태현을 노려보았다.
파지직!
허공에서 부딪히는 두 부자의 시선!
“좋아. 그놈의 신전을 건설해 주마. 됐냐?”
“네. 네. 화해하죠, 화해.”
“누가 화해를 한다고 했냐! 너 이 *#@&$…….”
“형님! 진정! 진정!”
뜯어낼 거 다 뜯어내고 화해의 악수를 내미는 모습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저놈을 대체 누가 저렇게 키웠을까!’
자기가 한 교육은 잊어버리고 김태산은 속으로 한탄했다.
[아랄타 성에 아키서스 교단의 신전이 지어집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신성이 오릅니다.]
[아키서스 교단의 세력이 커집니다. 아키서스 교단 사제를 더 임명할 수 있습니다.]
[아키서스 교단 사제-교단의 대소사를 책임지며 각종 일에 나서는 일꾼입니다. 플레이어, NPC 모두 가능합니다.]
이걸로 두 부자의 싸움은 일단락이 되었다. 물론 서로가 품고 있는 감정은 절대 사라지지 않았지만!
“태현 님, 사제는 얼마나 고용하실 겁니까? 여기는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와 멀어서 사제를 고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루포가 옆에서 조언을 했다.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야 교단의 총본산이고, 태현도 거기 있는 데다가 현재 아키서스 교단 관련 인물들은 다 거기에 있으니 상관이 없었다.
그렇지만 여기는 멀리 떨어진 왕국의 박살 난 도시. 아무렇게나 방치할 수는 없었다.
“사제는 어떻게 고용하지?”
[사제 NPC의 경우, 골드를 지불하고 교단의 최고 권력자인 당신이 허락만 하면 일반 NPC를 사제로 만들 수 있습니다. 사제 NPC는 매달 유지비용이 듭니다. 교단의 영향력에 따라 부릴 수 있는 교단 NPC의 숫자가 달라집니다. 숫자 제한이 있으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음…… 사제를 꼭 고용해야 하나?”
“예? 아니, 그러면 여기는 어떻게 운영하라고요?”
“그냥 원하는 사람 와서 기도한 다음 버프 받아가라고 하면 되잖아. 무인판매대처럼.”
“…….”
루포의 입이 크게 벌려지더니 다시 다물어지지 못했다.
“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신전에……!”
“루포, 잘 들어봐. 여기가 지금 그렇게 평화로운 곳이 아니잖아. 골드를 내서 사제를 만들고, 또 매달 유지비용까지 내야 하는데. 만약 공격이라도 당해서 사제 NPC가 죽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겠어.”
“그런 위험은 모든 교단이 갖고 있는 위험입니다! 그렇다고 아예 사제를 고용 안 하는 곳은 없잖습니까!”
“사제를 고용 안 한다는 게 아니라, 이런 곳에 고용해서 두지 않겠다는 거지. 사제는 고용할 거야. 나중에. 여유가 되면. 적절한 장소에서.”
태현은 냉정했다. 사제를 고용해서 교단의 세력을 키우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급하게 사제를 고용해서 곳곳에 뿌려두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특히 태현처럼 적이 많은 사람은 더더욱 위험했다.
‘안 그래도 나한테 원한 가진 놈들이 많은데 쫓아다니면서 사제들 공격할지도 몰라.’
사제처럼 공격받기 쉬운 NPC는 잠시 미룬다.
‘어차피 성이나 도시 하나를 아키서스교로 독점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다른 교단이 가만히 있지도 않을 거고, 그렇게 투자하기도 힘들고.’
태현의 전략은 질보다 양!
도시나 성, 요새까지 아키서스의 신전을 일단 박을 수 있는 데까지 다 박아둘 생각이었다.
그러면 어느 정도 영향력이 퍼질 것이다.
케인이 뒤에 보이는 아랄타 성을 힐끗 보며 물었다.
“너 그런데 진짜로 화해한 거냐?”
“그러면 가짜로 화해하는 것도 있냐? 일단은 화해했어. 일단은.”
“…….”
‘일단은’이 이상하게 위협적으로 들렸다.
* * *
태현 일행은 아랄타 성을 떠나 계획적으로 오스턴 왕국을 돌아다녔다.
플레이어들이 점령한 곳이 있으면 일단 문을 두드리고 접촉!
-안녕하세요. 좋은 말씀 전하러 왔습니다.
-뭐하는 놈이야?
-저희는 김태현 님하고 같이 온 플레이어들인데…….
-꺼져! 도시 안으로 들어오면 바로 공격한다!
-……여기 계속 있으면 대족장이 이끄는 오크 본대가 이쪽으로 올 거라는 사실을 말해드리고 싶어서요. 어쨌든 알겠습니다. 도시 안으로는 안 들어가고 밖에서 그냥 있을게요.
-흑흑, 골드 드리고 아키서스 교단도 믿을 테니 제발 오크들을 데리고 저 멀리 꺼져주세요.
마치 미리 짠 것처럼, 성과 도시를 점령하고 있던 길드들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처음에는 화를 내고, 그다음에는 현실을 부정하다가, 마지막에는 현실을 수긍하고 포기!
약간 다른 반응도 있었다.
-골드를 더 줄 테니까, 저기 XX 성 가서 협박을 해줘! 저놈들은 골드도 많으니까 우리보다 두 배는 뜯어내도 될 거야!
물론 태현은 평등하게 뜯어냈다.
[오스턴 왕국의 영지 중 50%가 넘는 곳에 아키서스 교단의 신전이 설치되었습니다.]
[아키서스 교단의 인물이 오스턴 왕국에서 싸울 때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현재 오스턴 왕국에서 내전을 벌이고 있는 제1왕자가 당신을 주목합니다.]
[현재 오스턴 왕국에서 내전을 벌이고 있는 제2왕자가 당신을 주목합니다.]
‘응?’
그러고 보니 오스턴 왕국에는 오크 군대와 플레이어들만이 있는 게 아니었다.
원래 내전을 벌이고 있던 왕국 세력들도 있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