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18화
간단하지만 효과적이고 강력한 단어, 따블!
두 배!
제랄드는 당황한 목소리로 말을 더듬었다. 나름 건축가 직업 중에서는 고렙에 속하는 그였다.
꽤 의뢰비를 많이 받는 편이었는데, 거기에 두 배라니.
-그, 그래도 위험한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탐이 났지만 제랄드는 참았다. 골드 탐내고 갔다가 죽기라도 한다면 본전도 못 찾는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지금 오스턴 왕국은 혼돈과 파괴의 근원!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일이 있을 수 있었다. 제랄드는 신념이 있었다.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안전하게!
돌다리가 있더라도 두들겨 보고!
이번 일은 그의 신념에 거슬리는 일이었다.
그러나 김태산은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말했다.
-따따블!
-……!
* * *
“이야, 살벌하다.”
오스턴 왕국에 도착한 케인은 중얼거렸다. 다른 평화로운 왕국과 달리, 오스턴 왕국은 그냥 지나가는 길에도 긴장감이 맴돌았다.
플레이어도, NPC도 언제 어디서 싸울지 몰라서 준비를 하고 있는 곳!
[현재 오스턴 왕국의 치안은 매우 낮습니다. 왕국의 NPC들이 공격을 할 수도 있습니다.]
[파괴된 영지에서는 NPC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케인, 지도 좀 펴봐라. 어디가 좋을까 정해보자고.”
“오케이. 내가 다 정리를 해놨지.”
케인은 방송과 사이트를 왔다갔다 하며 정보를 모아왔다.
현재 오스턴 왕국에서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세력들!
크게 노리는 대형 길드들은 성이나 도시를, 그보다 힘이 약한 중소형 길드들은 요새나 마을을 노렸다.
‘에휴. 나도 한때는 이렇게 잘나갔었는데…….’
갑자기 추억이 떠오르자 슬퍼지는 케인이었다.
“여기 캉탄 요새를 점령한 건 <검은 바위단>, 탈라 요새는 <압생트>, 이고든 요새는 <치킨>, 다 고만고만한 길드 아닌가? 뜯어먹기 좀 애매한데. 나중에 오크들하고 싸움 붙을 때 끼워 넣을 수는 있겠다. 오그던 요새는 <레스토랑>…… 잠깐. 오그던 요새?”
태현은 고개를 들고 케인을 쳐다보았다. 오그던 요새라면 분명…….
케인과 레드존 길드가 점령했던 본거지!
케인도 기억이 났는지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다른 놈이 점령했나 본데?”
“어떤 건방진 놈들이?!”
레드존 길드는 다 깨지고 흩어졌지만, 그래도 한 번 가졌던 게 그렇게 쉽게 잊혀지는 건 아니었다.
케인은 자기 물건이라도 뺏긴 양 씩씩댔다.
“레스토랑 길드면 그놈들이네. 그때 그 요리사들 길드.”
요리 경연 때 식재료를 전부 구입해서 다른 길드들을 방해하거나, 투기장 시작하기 전에 음식에 독을 타거나…….
‘창의적으로 활동하는 놈들이었지. 배울 구석이 있는 놈들이야.’
당한 사람들에게는 악당 중의 악당이었지만 태현은 나름 감탄한 길드였다.
물론 레스토랑 길드는 태현을 매우 싫어했다. 투기장 사건 때 당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요리사 놈들이 뭔 힘이 있다고?”
“걔네 쑤닝 길드하고 친하잖아. 쑤닝 길드가 이 주변에서 영지 하나 점령하는 김에 요새 하나 줘도 놀랍지 않지.”
거대한 길드들이 요리사 길드 같은 제작 직업 길드와 친하게 지내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쑤닝 길드와 레스토랑 길드는 예전부터 손을 잡는 모습이 종종 보였으니 더더욱 그랬다.
“야. 거기 털까?”
“……?”
케인의 말에 태현은 케인을 쳐다보았다. 지금 뭐라는 거야?
“왜 그렇게 쳐다봐! 나는 요새 공격하면 안 되냐?! 너는 나쁜 짓 다 하면서 왜 나한테만 그래!”
“……아니, 해도 되는데. 그리고 나쁘냐 나쁘지 않냐가 아니라 할 수 있냐 없냐의 문제지. 그리고 네가 평소에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잘 알겠다.”
“……!”
“지금 오그던 요새 터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야. 레스토랑 길드가 요리사 길드여도 요새 하나를 점령했는데 그냥 가만히 있겠냐? 용병이든 다른 플레이어들이든 고용해서 지키고 있겠지. 조금만 시간 끌면 쑤닝 길드에서도 올 거고, 무엇보다 지금 다들 벗겨 먹어야 하는데 우리가 먼저 공격을 하면 벗겨 먹을 수가 없잖아.”
“…….”
한 마디로 쑤닝 길드를 협박하고 싶으니 아직은 털고 싶지 않다는 것!
케인은 순간 감동했다. 그가 이렇게 좁은 시야로 나쁜 짓을 고민할 때, 태현은 드넓은 시야로 나쁜 짓을 고민하고 있었다.
가히 나쁜 짓의 달인!
“그러니까 얌전하게 가자. 굳이 싸우지 않아도 뜯어내려면 얼마든지 뜯어낼 수 있으니까.”
다그닥, 다그닥-
“……?”
멀리서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 태현과 다른 일행은 고개를 돌렸다. 이게 무슨 소리?
저 먼 언덕에서 한 명의 기사 플레이어가 느긋하게 말을 타고 다가오고 있었다.
케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저건 뭐하는 놈이야?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지금 오스턴 왕국의 상황을 안다면, 저렇게 느긋하게, 그리고 혼자 돌아다니는 플레이어는 겁이 없는 플레이어였다.
아니면 믿을 구석이 있거나!
“아니…… 저거 고렙이다.”
“그래 봤자지! 지금 여기가 레벨 높다고 해결되는 곳이냐?”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높은 것 같은데.”
태현은 중얼거리며 플레이어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타고 있는 말은 반짝이는 갈기에, 기사용 전투마 갑옷까지 입고 있었다.
숨길 수 없는 명품의 느낌!
게다가 얼굴마저 잘생겼다. 그림으로 그린 듯한 귀공자풍의 얼굴. 그 잘생긴 얼굴이 케인을 괜히 발끈하게 만든 것 같았다.
“야! 여기는 우리가 먼저 가고 있어! 돌아서 가!”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태현과 케인부터 시작해서 날개 악마들과 오크 전사들까지 있었으니까.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길이 꽉 차는 인원이었다.
다그닥, 다그닥-
그러나 기사 플레이어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몰았다.
멀어서 케인의 말을 듣지 못한 것이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먼저 가고 있으니까 다른 곳으로…….”
“잠깐만요. 오크들? 설마 그 오크 군대들 맞습니까?”
“내 말 안 들려? 너…….”
[백기사의 태양 스킬이 발동되었습니다. 움직일 수 없습니다.]
[노예의 근성 스킬로 저항하는 데 성공합니다.]
“?!”
“제가 지켜드리겠습니다. 뒤로 오십시오!”
“이 자식이 진짜 귀가 먹었냐? 야!”
기사 플레이어는 전체 광역기로 동작을 멈추게 한 다음 전투에 들어가려고 들었다.
그걸 본 케인은 울컥해서 무기를 뽑으려고 들었다. 그러나 이다비가 케인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퍽!
“……야!!!”
“저거, 저거!”
“뭐가 저거야?”
“스미스잖아요!!”
이세연과 함께 전설 직업을 얻은 플레이어. 최상위권 랭커 경쟁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랭커!
<고대 제국의 백기사>를 갖고 있는 스미스였다.
케인은 뽑은 무기를 스르륵 다시 집어넣으려고 했다. 그러다가 스미스와 눈이 마주쳤다.
“하, 하하…….”
“그 무기는 왜 뽑으신 겁니까?”
“저기 오크들하고 같이 싸워주려고 했지!”
“이런, 그런 친절까지는 필요 없었는데. 감사합니다.”
이다비는 어이가 없다는 눈빛을 케인에게 보냈다. 그러나 케인은 당당했다.
‘나도 살아야지!’
아무리 그래도 스미스와 붙어서 이길 자신은 없었다.
케인이 바보짓을 하고 있자 태현이 나섰다.
“여기 오크들은 적이 아니야. 내 후배가 갖고 나온 오크들이야.”
“아, 그렇습니까? 잠깐.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아! 김태현! 김태현 아닙니까? 김태현 맞는 것 같은데?”
세 번이나 이름을 부르면서 반가워하는 스미스! 태현은 갑자기 찜찜해졌다.
물론 태현이 유명하기는 하지만 처음 보는 랭커가 저렇게 연달아서 이름을 외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날 알고 있었나?”
“물론입니다. 제가 나온 방송이 2위로 밀린 게 김태현 씨가 나온 방송이 1위를 해서잖습니까.”
“…….”
갑자기 싸늘해지는 분위기! 옆에 있던 이다비는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 그런…….”
“케인 씨도 그 방송에 나왔었습니다.”
“미, 미안…….”
괜히 변명을 하려고 나섰다가 본전도 못 찾은 케인은 조용히 찌그러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현은 조용히 스미스를 쳐다보았다.
‘싸우자는 건가?’
이런 곳에서 최상위권 랭커와 싸우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싸우게 된다면 최선을 다해서 싸울 뿐! 스미스가 여러모로 유리하다고 해도 태현은 싸울 자신이 있었다.
“어쨌든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런 곳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스미스는 예의 바르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적대감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
무기를 잡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케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 싸워?
“여기는 무슨 일로 온 거지?”
“예전에 신세를 진 길드가 도와달라고 요청을 해서 왔습니다.”
“그랬군.”
스미스는 태현 일행을 공격하지도, 적대심을 보이지도, 뭔가 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걸 본 이다비가 소곤거렸다.
“별로 위험해 보이지 않는데요?”
“그러게?”
“생각해 보니까 방송에서도 신사적인 걸로 인기가 높았던 것 같아요.”
“재수 없지 않냐? 얼굴도 잘생긴 놈이 성격까지 좋다니!”
“목소리 낮춰요! 그러다 들린다고요.”
“힉!”
케인은 겁을 먹고 입을 다물었다. 저렇게 신사적이고 성격 좋아 보여도, 실력은 진짜!
태현은 케인과 이다비를 한심하다는 듯이 힐끗 쳐다보고는, 스미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지금 중요한 건 스미스의 정보!
“그런데 무슨 길드?”
태현은 아무렇지 않게 들리도록 물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긴장!
만약 쑤닝 길드나, 태현이 벗겨 먹으려는 길드 쪽으로 가는 거라면 계획을 바꿔야 할지도 몰랐다.
오크 군대들이 오기 전에 스미스가 포함된 길드원들과 싸울 수도 있었으니까.
“모르실 겁니다. <검은 바위단>이라는 작은 길드인데, 예전에 퀘스트 관련으로 신세를 진 적이 있습니다. 그걸 갚으려고 가는 겁니다.”
퀘스트를 깰 때 받은 도움을 갚기 위해서 직접 찾아온 스미스!
랭커면 1분 1초가 아쉬울 텐데도 이렇게 시간을 낸다는 게 대단했다. 이다비나 케인, 정수혁은 다 감탄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태현은 심드렁했다.
‘뭐하러 그런 짓을 하나?’
태현이었다면 그냥 먹고 튀었을 것 같았다.
“검은 바위단이면 아까 캉탄 요새를 점령한 길드네.”
케인의 말에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그래서 들어 본 것 같았나?”
검은 바위단. 작은 길드라고 했지만 태현은 이상하게 귀에 익었다.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 이름!
“그러면 저는 이만 캉탄 요새로 가 보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좋은 하루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아. 예! 제가 오크들 비켜드리겠습니다!”
케인은 굽신거리며 오크 전사들의 귀를 잡고 길을 만들어주었다. 스미스는 생긋 웃은 다음 멋지게 말을 몰고 떠나갔다.
“갔지?”
“갔네요.”
“퉷!”
“…….”
이다비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케인을 쳐다보았다.
“어우, 왜 랭커가 혼자 다녀서 사람을 엿 먹이는 거냐? 죽는 줄 알았잖아!”
“그보다 검은 바위단이 신경 쓰이는데. 어디서 들은 것 같단 말이야. 너 어디서 들은 적 없냐?”
“없어.”
“저도 없어요.”
“으음…….”
태현은 눈썹을 찌푸렸다. 마치 재채기처럼, 나올 것 같으면서 나오지 않는 그런 미묘함!
“그런데 쟤네는 뭘 하려고 스미스까지 불렀대? 아깝지도 않나?”
“여기 주변에 오크들이 많고, 남은 오크 군대도 있으니 불렀겠지. 어쨌든 스미스가 우리랑 상관이 없다는 걸 알았으니 우리 일이나 하자.”
태현은 지도를 펴고 길을 그리며 말했다.
“여기, 여기, 여기, 여기. 이렇게 성과 도시를 방문하자.”
“방문해서 뭐라고 할 거예요?”
“뭘 당연한 걸 물어? 골드를 주면 물러나고, 안 주면 그냥 앞에서 오크 군대 올 때까지 버티는 거지.”
“그거 그냥 협박…….”
“어허, 다른 사람 들으면 오해하겠다. 협박이 아니라 구걸 정도로 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