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15화
꿀꺽-
정수혁은 침을 삼켰다. 이건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좋습니다!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오오! 좋은 자신감이군!”
바마어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본 오크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취익, 둘이 아는 사이면 나는 가도 되지 않나?”
“안 되지! 내 마법이 성공했다는 걸 증명할 때까지는 못 간다!”
정수혁은 궁금해서 물었다.
“무슨 마법이신데요?”
“오크가 취익거리지 못하게 하는 마법이지.”
“…….”
정수혁의 눈빛이 기분 나빴는지, 바마어가 표정을 찌푸렸다.
“왜 그렇게 쳐다보지?”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커험! 마법을 해보겠습니다!”
정수혁은 지팡이를 들고 마법을 준비했다. 바마어가 무슨 마법을 좋아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위력이 좋은 마법이 낫겠지?’
효과가 애매하거나 알기 힘든 마법보다는, 위력적이고 겉으로도 보기 좋은 마법이 좋을 것 같았다.
-카흘라단의 번개!
정수혁의 애용 마법 중 하나!
고급 마법 스킬을 갖고 있는 마법사답게, 정수혁은 빠르고 강력하게 마법을 시전했다.
허공에서 벼락이 생기더니 강하게 내려찍는 게 과연 장관!
보던 오크도 취익거리며 감탄했다.
“취익거리지 말라고 했을 텐데!”
“취익! 취익!”
바마어는 오크를 한 대 후려 패더니 쯧쯧거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시원찮은 마법이라니.”
“시, 시원찮습니까?”
“그래. 여기에 마법을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마법사들이 얼마나 되는 줄 아나?”
“저는 마법을 배우려고 온 게 아니라 전도를 하려고…….”
“시끄럽고!”
“…….”
바마어는 정수혁의 말을 귓등으로 듣는 것 같았다.
“그런 놈들은 다 똑같아! 어디 마탑에서 배워 온 식상한 마법들만 써대면서 ‘어떠냐?’ 하는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고. 어떠긴 뭘 어때! 그런 금속 틀로 찍어 만든 놈들을 보고 내가 만족할 것 같나? 마법이란 창의적이고 번뜩이는 기발함이 있어야 한다고! 내가 지금 만든 ‘오크의 혓바닥 교정’처럼 말이야!”
정수혁은 ‘근데 오크를 협박해서 취익거리지 못하게 하는 게 무슨 마법이냐’라고 묻고 싶었지만, 바마어가 무서워서 입을 다물었다.
“실망이야, 실망! 역시 밖에서 온 마법사라 그런지 별로군! 오크. 아직도 취익거리나?”
바마어는 정수혁에게서 고개를 돌리더니 오크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오크의 입에서 유창한 말이 쏟아져나왔다.
“오크가 취익거린다니. 그건 인간이 가지는 고정 관념일 뿐이다. 오크들은 인간들 생각보다 훨씬 더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대화를 한다. 인간.”
“?!?!?!?!”
“이렇게 붙잡고 힘으로 협박을 하면서 마법이라고 우기려고 하다니, 정말 야만적이군. 오크로서 이런 야만적인 인간이 같은 지역에 산다는 게…….”
“잠깐 닥치고 있어라.”
“커헉!”
바마어는 정수혁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어깨를 부서져라 잡았다.
“으, 으악! 어깨! 어깨!”
“합격이다!”
“!?”
“이런 기특한 놈을 보았나. 저런 번개 마법 같은 식상한 마법으로 나를 방심시키고, 진짜 마법은 따로 쓰다니!”
[바마어의 시험을 매우 높게 통과했습니다.]
[부족 내에서 당신의 평가가 올라갑니다.]
[부족이 당신을 환영합니다.]
‘……내가 뭘 한 거지?’
정수혁은 당황해서 다시 메시지창을 확인했다. 아까는 놀라서 제대로 보지도 못했었다.
[<아키서스의 마법>이 발동됩니다. 오크 춈스크를 상대로 <인격 전환> 마법이 발동됩니다.]
정수혁은 오해를 풀려다가 멈칫했다. 태현의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
-남이 떠먹여 주면 괜히 깔끔한 척하지 말고 그냥 먹어라!
“……바로 그겁니다! 다른 방법은 생각할 수도 없죠!”
“마음에 드는군, 외부인!”
바마어와 정수혁은 사이좋게 부족의 안으로 들어갔다.
* * *
“그래서…….”
“오크가 취익거리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거야?”
케인은 이해를 하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넌 가만히 있어라. 그래, 그 부족들과 친해진 건 좋은데 어쩌다가 이 오크들을 부리게 된 건데?”
태현은 천막 밖의 오크들을 가리켰다.
극진한 태도로 정수혁을 지키고 있는 오크들!
태현과 케인을 보고도 정수혁이 ‘물러서라’라고 말하자 아주 공손하게 물러섰다.
“그, 일단 부족에 들어가는 걸 허락을 받았으니 거기서 퀘스트를 깨서 친밀도를 더 올려야 했습니다.”
“그래. 네가 나한테 저번에 연락했을 때가 그때였지.”
정수혁이 ‘저는 부족들하고 친해지고 있고 여기 오크들이 엄청나게 살벌하게 무장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던 때였다.
그다음에 에반젤린이 반지를 뜯어가는 영상을 본 덕분에 그것만 기억하고 있었지만…….
‘얼마나 지났다고 이렇게 된 거야?’
* * *
부족 안으로 들어가는 걸 허락받게 된 정수혁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일단 호감을 사기는 했지만, 아키서스를 믿게 하려면 아직 길이 멀었다.
“저기, 혹시 아키서스라는 신에 대해서 아시는지…….”
“아키서스 한 번 믿어보세요!”
“아키서스 믿어! 믿으라고! 좀! 믿어봐!”
그러나 부족 마법사들은 시큰둥했다.
“아키서스? 우리는 신 안 믿는데.”
“그거 믿으면 뭐가 좋은데?”
심지어 어떤 마법사는 괴상한 표정으로 외쳤다.
“내가 신이다!”
“?!”
“아. 저 양반은 미쳐서 그러니까 무시해도 좋아.”
“…….”
만만치 않은 부족이었다. 그나마 정수혁의 마법이 아키서스와 상관이 있다는 것 덕분에 조금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있었지만, 모두 믿게 하기에는 부족했다.
“바마어 님! 도와주십시오!”
“그렇게 말해도 우리 애들이 말을 듣는 놈들이 아닌데. 네가 알아서 설득해봐. 믿고 싶으면 믿겠지.”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정수혁은 바마어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렸다.
“아키서스 그 신…… 재밌어 보이기는 해. 나도 한 번 믿어보고 싶기는 하군.”
“……!”
“그렇지만 부족장으로서 흥미만 갖고 부족 전체에게 명령을 내릴 수는 없지.”
‘겉모습이랑은 달리 책임감이 크구나.’
“뭔가 기분 나쁜 시선이 느껴지는데.”
“예!? 아닙니다!”
“어쨌든 아키서스라는 그 신을 믿게 하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증명해야겠지.”
“어떻게 증명하면 됩니까?”
정수혁은 다시 지팡이를 들었다. 마법을 써야 하나?
그러나 바마어는 고개를 저었다.
“마법 하나로 될 일이 아니야! 가치라는 건 스스로 증명해 보이는 것. 직접 증명해 보게! 마침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생겼는데. 어때, 해볼 생각 있나?”
“……물론입니다!”
어려운 퀘스트라는 직감은 왔다.
그러나 정수혁은 물러설 수 없었다.
그를 믿고 여기까지 보내준 태현!(딱히 믿고 보내준 건 아니었지만)
그 믿음에 뭔가 제대로 보여줘야 했다. 정수혁은 주먹을 불끈 쥐고 대답했다.
“좋아! 따라오라고!”
바마어를 따라가니 나온 것은…….
오크들이었다.
“????”
성질 더러워 보이는 오크들이 취익거리면서 자리에 앉아 있었다. 험악하게 무장하고 있었지만 공격은 하지 않았다.
“취익! 바마어. 결정은 내렸나?”
“그래. 결정을 내렸다. 여기 이 마법사가 우리를 대신해서 참전할 것이다.”
“취익! 바마어! 어디서 허튼짓이냐! 우리는 강력한 전력이 필요한 거다! 어디 비리비리한 놈 하나를 주고 우리를 속이려…… 허억! 그놈이다! 그놈!”
“……?”
“지진을 불러온 인간 마법사다! 취익! 가까이 다가가지 마라! 위험하다!”
오크들은 정수혁을 보고 기겁해서 외쳤다.
“…….”
“그런 짓도 했었나? 더 마음에 든다! 이번 일도 잘할 수 있을 거야!”
바마어가 정수혁을 보는 시선이 더욱 깊어졌다.
[바마어가 당신을 더욱 고평가합니다.]
“취, 취익. 그래. 바마어. 이런 마법사라면 받아줄 수 있다. 대족장님께 잘 말씀드려보겠다.”
“저,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정수혁은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물었다. 바마어가 설명하기도 전에 뜨는 퀘스트창!
<전쟁에 참가하라-오크 군대 참전 퀘스트>
우르크 지역에 있는 오크 부족들을 연합시킨 오크 대족장!
그는 언제나 눈엣가시였던 우르크 지역 원시 인간 부족에게 최후통첩을 보냈다.
오크들이 일으키는 전쟁에 참가하거나, 아니면 오크들과 죽을 때까지 싸우거나.
현명한 부족장 바마어는 이렇게 오크들이 강하게 뭉쳐 있을 때는 싸울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러나 오크 군대에 참가해서 싸우는 것은 오크들과 적들을 같이 상대해야 하는 매우 위험한 일. 바마어는 괴팍하고 통제할 수 없는 부족원 마법사들을 믿지 못한다.
바마어의 신뢰에 응답해라. 성공적으로 해낼 시 부족원들의 절대적인 믿음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보상:우르크 지역 원시 인간 부족의 절대적인 지지. 우르크 지역 원시 인간 부족이 아키서스 교단에 소속됨. ?, ???, ????
그제야 정수혁은 상황을 깨달았다. 곧 일어날, 대규모의 오크 군대가 일으키는 전쟁.
거기에 참전해서 오크들을 돕는 퀘스트!
보통 난이도의 퀘스트가 아니었다. 게다가 바마어도 자기 부족원들을 못 믿고 맡길 정도의 퀘스트 아닌가.
겁이 났지만 정수혁은 결심했다.
‘도망칠 수는 없어. 최선을 다할 수밖에!’
“하겠습니다!”
“호쾌해서 좋다!”
바마어가 정수혁의 등을 두드렸다.
“이번 일을 해내면 우리 부족 모두가 널 인정할 거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니, 최선을 다할 필요는 없고.”
“……?”
“그냥 적당히 오크들이 불만 안 가질 정도만 해라! 여차하면 도망치고!”
“……그래도 됩니까?”
“알 게 뭐야. 오크 군대가 한 번 출정하면 다시 돌아오지는 않을 텐데. 설마 오크 놈들이 저 멀리 약탈할 걸 두고 우리 먼저 때려잡으려고 돌아올 거 같냐?”
소규모의 부족만을 데리고 계속 오크들과 싸워서 살아남은 바마어는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
“취익. 인간 마법사. 따라와라!”
“취이익. 인간 마법사. 내 몸에 손대지 마라! 내 주변에서 멀리 떨어져서 걸어와라!”
“…….”
오크들한테 무슨 오물 취급을 받으니, 뭔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정수혁은 멘탈이 약하지 않았다. 다른 마법사 플레이어들이 파티를 짜고 퀘스트를 깰 때 혼자 마탑 구석에서 마법만 주구장창 연습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오크들한테 이런 취급을 받는 건 뭔가 기분이 나쁘다!
그렇게 정수혁은 불안과 불만을 감추고 오크들과 같이 길을 떠났다.
그러나 위대한 오크 주술사 정수혁의 전설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 * *
“취익, 이놈이 데리고 온 인간 마법사냐?”
“췩! 왜 한 명밖에 없는 거냐! 그 부족 놈들이 우리를 우습게 본 게 아니라면 이럴 수는 없다!”
오크들은 정수혁을 보고 화를 냈다. 그러자 정수혁을 데리고 온 오크 전사들이 변명을 시작했다.
“취익! 이렇게 보여도 보통 강한 마법사가 아니다!”
“췩! 그걸 어떻게 믿으라는 거냐!”
“취이익! 이 마법사가 바로 그 지진을 일으킨 마법사다!”
“취이이이이익!”
오크들이 비명을 지르며 정수혁을 두고 거리를 벌렸다.
“취익! 눈을 마주치지 마라! 눈을 마주쳤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
“…….”
[오크 군대 사이에서 당신의 악명이 올라갑니다.]
[오크들이 당신을 두려워합니다.]
[오크들의 복종도가 올라갑니다.]
물론 모든 오크가 정수혁의 소문만 듣고 두려워하는 건 아니었다.
제법 강해 보이는 오크 지휘관은 정수혁을 보더니 물었다.
“췩. 인간 마법사. 마법을 써봐라.”
“어떤 마법을 말하는 겁니까?”
“취익! 네가 자신 있는 마법! 그것도 일일이 설명을 해줘야 하냐?”
정수혁은 지팡이를 들었다. 이런 곳에서 카흘라단의 번개 같은 마법은 좀 뒷감당이 힘들 것 같았다.
‘이동 속도 증가 마법 정도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