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14화
어찌 되었든 간에 상황이 더 나아졌는데 불평을 할 생각은 없었다.
‘아탈리 왕국으로 좀 약한 놈들이 왔으면 좋겠다. 여기로 오기 전에 미리 처리가 됐으면 더 좋고.’
-아탈리 왕국으로 간 오크들은 특히 정예인 것으로 추측이 되고 있고요.
‘젠장!’
-몇몇 오크 부대들은 선봉대 식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하니, 플레이어들은 거리가 있다고 마음을 놓으시면 안 되겠습니다. 이 지역 주변에서는 언제든지 오크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셔야 할 것 같네요.
태현은 혀를 찼다. 머리를 굴려 봤지만 딱히 좋은 방법이 나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나? 교단 페널티를 감수해야 하나?’
새로 세운 교단을 폐쇄하는 건 정말 속이 쓰렸지만, 아무리 아까워도 이걸 붙잡고 같이 침몰할 수는 없었다.
여차하면 교단을 버리고 튀어야 했다.
[몇몇 플레이어들은 오크 군대에 가입해서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게 과연 옳은 짓인가 하는 걸로 뜨겁게 말다툼이…….]
나머지 기사 내용은 별 의미 없는 내용이었다. 그러는 사이 연락이 왔다.
정수혁이었다.
-선배님!
-넌 왜 연락이 안 됐어? 설마 갇혔냐?
-아닙니다. 그런 건 아닌데…….
정수혁은 보기 드물게 우물쭈물했다. 언제나 망설이지 않고 말하는 정수혁에게서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태현도 무언가를 눈치챘다.
-너 사고 쳤냐?
-……죄송합니다!
-뭔 사고를 쳤길래…… 거기 세력들하고 싸웠어?
-그, 그런 건 아닙니다.
-?
현재 정수혁은 아키서스의 영향력을 올리는 퀘스트를 깨기 위해 우르크 지역에 가 있었다.
목표 대상은 오크들과 사이가 안 좋은 세력들.
그런 상황에서 오크들이 대규모로 움직이는 퀘스트가 떴으니, 정수혁이 퀘스트를 완수 못 했어도 이상할 건 없었다.
-아니라고?
-친해지긴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 진짜. 야. 뭐라고 안 할 테니까 그냥 말해!
-직, 직접 뵙고 설명을 드리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네가 어딘데?
-저 지금 아탈리 왕국입니다.
-뭐? 용케 왔네. 거기서 아탈리 왕국까지 오는 동안 오크들은 안 만났냐?
-그…… 그게…… 만났다고 해야 하나…… 그…….
-……알겠으니까 만나자.
슬슬 짜증이 난 태현은 정수혁에게 위치를 물었다.
-주레 산맥 입구에 있습니다!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에서 약간 거리가 있지만, 날개 악마들을 타고 가면 금세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알겠어. 지금 간다.
* * *
“얘가 이럴 애가 아닌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배신한 거 아냐?”
“수혁이가 너냐?”
“…….”
‘그러면 나는 배신한다는 거냐 이 자식아?’
케인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지금 옆에서 얼마나 성실하게 일을 하고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뭔가 사고를 친 거 같아.”
“사고라…….”
“안 그러면 씩씩하던 놈이 이럴 이유가 없지. 근데 뭔 사고를 친 건지 모르겠어. 얘가 칠 만한 사고가 없는데.”
“나하고 다르게?”
“그래. 너하고 다르지.”
“…….”
비꼬듯이 말했는데 태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수긍해버렸다. 케인은 그냥 말하는 걸 포기했다.
본전도 못 찾을 것 같았던 것이다.
“헉! 오크들이다!”
케인은 기겁해서 날개 악마 위로 바짝 엎드렸다. 저 밑에 오크 전사들이 우글거리며 지나가는 게 보였다.
딱 봐도 야생 오크 전사들이 아닌, 군대에서 갈라져 나온 오크 전사들!
대륙 퀘스트가 발동되고 나서 제일 시달린 건 케인이었다.
오죽하면 게임 밖에서 잠을 잘 때도 오크들이 목을 노리고 덤비는 꿈을 꿨을까!
태현은 한심하다는 듯이 케인을 쳐다보았다. 지금 그들은 꽤 높이 날고 있었다. 나무들 사이를 지나가며 한눈을 팔고 있는 오크들이 발견할 일은 없었다.
“이런 한심한 자식…….”
“너도 오크들한테 목숨 노려져 봐라! 잠깐만. 애초에 내가 쫓기게 된 건 너 때문이잖아?”
케인은 가장 중요한 사실을 떠올렸다. 그렇다. 지금 오크들한테 겁을 먹고 있는 건 결국 태현 때문!
“뭐 그런 옛날 일을 계속 붙잡고 있고 그래. 생각보다 속이 좁구나?”
-맞다. 덩치랑은 다르게 생각보다 소심하다.
옆에 있던 용용이도 태현을 거들었다. 날개 악마의 등 위에 크기를 줄이고 엎드린 상태!
“개소리 하지 마 이 자식아! 지금 내가 죽게 생겼는데 그게 옛날 일이냐!?”
물론 태현은 대놓고 무시했다. 태현은 용용이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넌 악마 위에 타는 걸 싫어하지 않았냐?”
-나는 개인적인 감정으로 일을 망치지 않는다.
“그게 아니라, 넌 크기를 키워서 날면 되잖아?”
-…….
용용이는 순간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너 설마 잊고 있었냐?”
하도 작아진 상태로 땅 주변을 날아다니던 것에 익숙해진 탓!
덕분에 힘을 되찾았는데도 당연한 걸 놓치고 있었다.
-아, 아니다. 힘을 아끼기 위해서…….
“그래. 알겠다.”
-진짜다! 주인이여! 내가 설마 그런 걸…….
“조용히 해봐. 저기 오크들이 움직인다. 저놈이 지휘관인가?”
“규모가 생각보다 안 큰데. 그 선봉대인가? 먼저 움직이는…….”
“너도 기사 봤구나?”
“그래.”
빠드득!
케인은 이를 갈며 대답했다.
“왜 이를 가냐?”
“그 기사를 봤는데 당연히 이를 갈지! 거기서 뭐라고 했는지 모르냐?!”
“몰라. 필요한 것만 보고 껐거든.”
“……기사 뒤에 보면 그 자식이 내 위치를 깠다고!”
그랬다. 태현이야 별로 중요하지 않아 신경을 껐지만, 기사에는 다른 내용도 들어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케인의 위치!
케인은 씩씩거리며 기사를 켜서 태현한테 다시 보여주었다.
-현재 오크 군대에 들어간 플레이어들에게 가장 궁금한 건 바로 케인의 위치일 겁니다. 네! 전 레드존 마스터이자, 지금은 김태현을 충성스럽게 따른다고 해서 ‘김태현의 개’라는 별명도 붙었죠. 몇몇 플레이어들은 ‘김태현 개XX’로 줄여서 부르기도 하고요.
“김태현 개XX는 내 욕 아닌가?”
“지금 그게 중요하냐?”
-이번에 김태현 플레이어의 영지에서 유명한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판타지 온라인 2에서 전무후무했던 이벤트였죠. 길드들의 아이템을 경매하는 이벤트!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졌고, 또 그만큼 많은 사람이 비관적으로 예상하기도 했습니다. ‘망할 거다’, ‘아이템 뜯긴 길드들이 호구들도 아니고 가만히 있겠냐, 어떻게든 습격을 할 거다’. 그렇지만 경매는 평화롭게 진행되었습니다. 오히려 길드들이 꼼짝도 못 했죠. 케인은 바로 이 경매에서 모습을 보였습니다. 오크 군대에 들어간 플레이어들에게는 누구보다 탐나는 목표겠죠?
아주 대놓고 케인을 저격하는 기사!
“너 이 기사 쓴 기자랑 무슨 원한이라도 있냐?”
“몰라 이 자식아! 내가 어떻게 알아?”
케인은 투덜거렸다. 애초에 레드존 길마 때 하도 앞뒤 안 보고 저지른 짓들이 많아서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나와도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그저 억울한 것은, 태현도 비슷하게 했는데 전혀 다른 취급을 받는다는 것!
“어쨌든 저게 오크 선봉대면 차라리 잘 됐군. 본대 오기 전에 처리하면 되니까.”
“지금 내려가서 싸울까?”
“기다려봐. 확인 좀 더 하고.”
“그냥 싸워도 될 것 같은데…….”
“넌 그러니까 케인인 거야.”
“…….”
‘케인인 거야’가 대체 왜 욕으로 쓰이는 건지 납득이 가지 않았지만, 케인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취이익! 취익! 맹독을 가진 지네를 잡았다!”
“취익! 그런 귀한 것을!”
“고아서 먹으면 마나에 좋다! 위대한 주술사님께 가져다 바치자!”
“취익! 아주 좋은 생각이다!”
보통 탐욕스럽고 자기가 갖고 있는 걸 남한테 주지 않는 오크들이 보이는 태도치고는 신기한 태도였다.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크들한테 저 정도로 존경을 받는 오크가 있나?”
“엄청나게 오크다운 오크인가 보지.”
“오크다운 오크라…… 어떤 놈이지? 선봉대라고 해서 약한 놈들이 온 줄 알았는데 아닐지도 모르겠군.”
오크들의 말을 들어보니, 매우 오크다운 데다가, 강력한 마법을 쓸 수 있는 오크 주술사 같아 보였다.
‘오크 주술사면 살려두기 위험한데…… 먼저 죽이고 시작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오크들이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오크들의 존경을 받는 오크 주술사(?)의 모습이 드러났다.
“…….”
“…….”
-……
그건 바로 정수혁이었다.
* * *
-수혁아?
-예! 선배님!
-내가 지금 너랑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보고 있거든?
-…….
대답 대신 침묵이 돌아왔다. 정수혁도 지금 태현이 그를 발견한 걸 깨달은 것이다.
-아니라고 해줘. 너 아니지?
-저 맞습니다…….
-…….
태현은 한숨을 한 번 쉬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이렇게 푸른데!
‘그래. 이런 일도 있을 수…… 있지는 않지만…… 뭐 그래, 있다고 치자.’
빠르게 가다듬은 정신.
전도하라고 보내놨더니 오크 군대를 이끌고 여기로 왔지만, 태현은 어떻게든 받아들이는 데 성공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해라. 그리고 저 오크 부하들은 치워야 하지 않냐? 우리 보면 공격부터 할 텐데.
-아, 아닙니다. 선배님.
-?
-이 오크들은 제 명령을 더 잘 듣습니다. 제가 싸우지 말라고 하면 안 싸울 겁니다.
-…….
대족장한테 빌린 오크 군대인데도 자기가 직접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건?
그사이 엄청나게 오크들과 친해지고 존경을 받고 있다는 뜻!
대체 뭔 짓을 했길래 저 오크들의 충성도와 복종도를 쌓았는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그래…… 내려가서 듣자…….
정말 드물게 들을 수 있는, 태현의 기운 빠진 목소리였다.
* * *
우르크 지역 원시 인간 부족, 붉은 바다 무법자 부족, 옛 땅굴 고블린 부족.
정수혁의 목표가 된 우르크 지역의 세력들이었다.
정수혁의 첫 목표는 우르크 지역 원시 인간 부족!
붉은 바다 무법자 부족은 바다에 있어서 찾기도 힘들었고, 옛 땅굴 고블린 부족은 지하에 있어서 마찬가지로 찾기 힘들었다.
우르크 지역 원시 인간 부족은 강력한 고대 마법을 사용하는 부족.
정수혁은 같은 마법사로서 좀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다.
‘그래도 같은 마법사니까!’
“저, 퀘스트를 깨고 싶은데 잠깐 돌아다녀도 될까요? 만약 NPC들 만나면 데리고 오겠습니다!”
“그러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데메르 교단은 너무 친절했다. 정수혁은 양심이 아파 오는 걸 느끼며 움직였다.
다른 두 부족과 달리 우르크 지역 원시 인간 부족은 금세 찾을 수 있었다.
“취이익! 이상한 마법 쓰는 인간 놈들?! 저기 산봉우리로 가면 나온다!”
“취익! 못생기고 성격 더러운 인간 놈들! 저 골짜기를 돌아가면 나온다!”
아무 오크나 붙잡고 협박을 하면 바로 나오는 위치!
오크들 사이에서 유명한 부족이었던 것이다.
점점 목표한 곳에 가까워지자, 정수혁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만나는 오크들마다 ‘괴팍하다’, ‘미친놈들 같다’, ‘상대하고 싶지 않다’ 등 이런 소리를 듣는 게 과연 멀쩡한 부족일까?
오크들한테 저런 소리를 듣는 인간들이라면…….
“취이이익! 오크 살려!”
“취이이익이 아니야! 이 오크 놈. 취이이익을 빼라고 했을 텐데! 자. 다시 말해봐라! 앞에 취익을 붙이지 말고!”
눈앞에서 웃통을 벗고 있는 대머리 인간이 오크를 붙잡고 마법을 연거푸 시전하고 있었다.
오크는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치는 중!
“저, 실례합니다…….”
“뭐야, 여행자인가? 여기는 무슨 일로 왔지?”
“그, 음, 저는 마법사인데, 여러분한테 신의…….”
“뭐? 마법사? 잘 됐군. 한 번 마법을 써봐!”
“네?”
[우르크 지역 원시 인간 부족의 부족장, 강력한 대마법사 바마어가 당신의 실력을 시험합니다.]
[결과에 따라 부족의 태도가 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