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12화
20만 골드는 현금으로만 바꿔도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바로 현금화할 고민을 했겠지만, 태현은 아니었다.
‘뭐 돈 아쉬운 것도 아니고…….’
이다비가 들었다면 울컥했을 속마음!
생각의 방식 자체가 달랐다.
태현은 판타지 온라인 내에서 얻은 골드는 다시 게임 안에서 투자하려고 했다.
안 그래도 돈 잡아먹는 괴물인 영지를 갖고 있으니, 20만 골드가 현실 기준으로도 어마어마한 돈이긴 했지만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었다.
다른 플레이어들이야 길드로 움직여서 여러 방법으로 돈을 모으지만, 태현은 혼자서 모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뭘 새로 지을까, 역시 교단 건물이…… 마탑도 가능할 거 같긴 한데. 필사꾼 갈락파드 그놈도 한 번 만나 보고 싶은데. 언제쯤 나타나는 거야?’
행복한 상상을 하던 태현의 어깨를 누군가가 두드렸다.
“……?”
“태현 님. 지금 무슨 일이 난 것 같습니다.”
고개를 들어 플레이어들을 보니, 모두 다 웅성거리며 어수선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뭐지? 습격인가?’
순간 원한을 가진 플레이어들이 결국 손을 잡고 습격을 하나 싶었다. 가능성은 낮아 보였지만 언제나 불가능은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면 뭐야?’
정답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오크 대족장의 분노-피의 전쟁>
오크는 원한을 잊지 않는다.
대족장 카라그는 그의 아들이 인간들에게 죽은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오크들은 서로 힘을 합치지 못하는 존재지만, 카라그는 우르크 지역의 오크들의 힘을 합치는 데 성공했다.
카라그의 입에서 <피의 전쟁>이 선포된 이상, 카라그가 죽기 전까지는 <피의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카자크의 죽음과 관련된 자들은 대비하는 게 매우 좋을 것이다.
보상:?, ???, ?????
“…….”
골드 모은 것 때문에 기뻐한 지가 얼마나 됐다고, 바로 닥쳐오는 위기!
‘마, 마탑이…….’
태현은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다. 지금 오크 대군대가 쳐들어오는데 마탑을 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내 마탑……!’
자리에 있는 플레이어들 모두에게 퀘스트가 떴다.
<오크 대군의 습격>
아탈리 시를 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당신. 오크 군대의 습격으로 아탈리 시에는 비상이 걸렸다. 아탈리 시 방위전에 참가하라.
보상:?, ???, ??
<에랑스 왕국과 오크>
오크 군대의 습격에 있어서 서쪽에 있는 에랑스 왕국은 비교적 안전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귀족을 설득해서 영지의 방어도를 올리거나, 아니면 오크가 오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방어도를 낮춰라.
예측이 맞는다면 크게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보상:?
각자의 상황에 맞춰서 다르게 떴지만, 결론적으로 한 가지 내용을 가리키고 있었다.
동쪽에서 더럽게 센 오크 군대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있다는 것!
“대, 대륙…… 대륙 퀘스트다!”
누군가가 크게 말했다.
대륙 퀘스트!
거대한 규모로 진행되는, 대륙에 있는 플레이어 모두가 참가할 수밖에 없는 대륙 퀘스트.
우르르-!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플레이어들은 정신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각자 본거지가 있으니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에 오래 있을 수 없었다.
특히 오크 군대의 습격이 가까운 도시가 본거지인 플레이어들은 매우 다급했다.
오크 군대보다 늦으면 참가도 불가능!
“아 젠장! 탈 것 두고 왔는데!”
“비행 탈 것 같이 타드립니다! 원하는 곳까지! 10골드!”
“단거리 이동 마법 시전해 드립니다!”
“이동 속도 증가 버프 걸어드립니다. 교단 사제예요!”
경매의 열기가 가시기도 전에 영지는 순식간에 떠날 준비를 하는 플레이어들로 북적거렸다.
“가자!”
쑤닝은 길드원들을 데리고 떠날 준비를 했다.
“길마님, 기다렸다가 기회를 보시는 거 아니었습니까?”
“넌 지금 그런 소리가 나오냐! 멍청한 놈. 오크 군대가 오는데 여기 있으면 무사할 것 같냐?”
쑤닝은 영지를 가리키며 비웃었다.
제대로 된 방어 시설도 거의 없는 영지!
게다가 쑤닝은 태현이 오크 카자크를 죽인 걸 알고 있었다. 그 동영상은 다들 봤던 것이다.
물론 오크들은 케인이 한 걸로 알고 있겠지만, 케인도 여기 있는 상황!
“우리가 안 건드려도 알아서 자멸할 거다! 크하하하하!”
“그렇군요! 크하하하!”
“…….”
신나게 웃는 쑤닝 길드원들을 보며 태현은 순간 울컥했다. 그냥 다 곱게 보내주려고 해도 저렇게 매를 벌다니…….
‘참자. 참아. 한 짓이 있으니까.’
“안 죽이냐?”
케인이 옆에서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분노 조절하는 태현만큼 놀라운 것도 없었다.
“지금 한 짓이 있어서 가능하면 안 싸우려고.”
“……?”
“아저씨들!”
움찔!
떠나려는 오크 둘이 움찔했다. 그러고는 다시 움직였다.
“방금 이름도 안 부르고 아저씨들이라고 했는데 움찔거리지 않았나?”
“오해겠지.”
“맞아. 내가 나이가 있다 보니 아저씨라고 부르면 나도 모르게…….”
“원준 아저씨, 청식 아저씨. 두 분 인 거 다 압니다.”
“…….”
두 오크는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알았냐? 변장을 했는데.”
“제가 아저씨들하고 몇 년을 같이 지냈는데 얼굴을 못 알아보겠습니까?”
두 오크 아저씨는 살짝 감동한 표정이었다. 태현이 이놈, 그래도 이런 애틋한 점이 있다니까.
그렇지만 조금만 더 생각했다면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들의 종족은 오크. 외모를 커스터마이징 하지 않아도 알아보기 힘들 수밖에 없는 종족이었다.
그런데 바로 알아보다니.
‘저런 대머리 오크가 흔하지는 않지…….’
태현이 이 영지에 있는 수많은 오크 중에서 두 아저씨를 찾아낸 건 바로 특징적인 대머리 모양!
거기에다가 돈까지 팍팍 써댔으니 확실한 증거였다.
둘이 태현의 속마음을 알았다면 바로 PK를 시도했을 정도로 무례한 추측!
“근데 왜 불렀냐? PK라도 하려고?”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여기 아이템이요.”
“????”
두 오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대체 무슨?
태현이 내민 건 그들이 아까 경매에서 구입한 아이템과 똑같은 아이템이었다.
“이, 이게 뭔……?”
“뭐냐? 2개씩 있었냐?”
“아니, 그런 건 아니고요. 그건 가짜라서…….”
“…….”
오크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뭐 이런 개잡…….
“……가짜를 팔았다고?”
“하하. 진짜, 가짜의 기준이 꼭 정해져 있는 건 아니잖아요? 남들이 보기에는 가짜라도 아저씨들이 진짜라고 생각한다면 그게 진짜일 수도…….”
“야 이 사기꾼 같은 놈아!”
“어떻게 네가 우리한테 이럴 수가 있냐!”
“아니, 제가 알아보고 판 것도 아니고, 그냥 올렸는데 아저씨들이 사간 게 제 책임입니까!”
태현은 얼굴에 철판을 깔고 외쳤다.
<장비 위조>!
에스파 왕국의 악마들과 상대하면서 얻은, 얼핏 보면 이상한 스킬.
그러나 태현은 스킬을 얻은 이상 어떻게든 써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 먹힐 만한 놈들한테만.’
그 결과 타겟으로 잡은 몇몇 대상!
쑤닝 길드원이나 양성규의 장비를 사려고 온 아저씨들도 그 대상에 들어갔다.
지금 좋다고 빠져나간 쑤닝 길드원들을 공격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였다.
싸우는 순간 <장비 위조>가 풀리고 걸릴 테니까. 수많은 사람이 보고 있는 앞에서 ‘저놈이 가짜를 팔았어!’라는 소리가 나오는 건 별로 좋지 않았다.
발각이 되는 건 어디까지나 이 자리가 끝나고!
태현은 아주 영리하게 대상을 골랐다. 쑤닝 길드 같은 경우는 ‘김태현이 가짜를 팔았다!’라고 해봤자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다 진짜를 샀으니까! 다들 ‘저 쑤닝 길드 놈들이 어떻게든 김태현 흠을 잡으려고 하는군’이라고 생각할 게 분명했다.
그래서 태현은 쑤닝 길드원들을 그냥 보내주었다.
그 사실도 모르고 태현을 비웃으면서 떠나는 쑤닝 길드원들!
“제가 그래도 이렇게 사실을 말씀해드리잖습니까. 얼마나 착해요.”
“…….”
두 오크는 대답도 하지 않고 등을 돌린 채 떠날 준비를 했다.
태현과 더 대화를 해봤자 등골만 빼 먹힐 게 분명!
“그거 장착하고 열심히 싸워주세요!”
“우리가 싸울 거 같냐?”
“안 싸운다! 너 좋을 일 절대 안 해!”
“아저씨들 오크라서 이번 퀘스트에 안 낄 수가 없을 텐데요.”
“안 들린다! 안 들려!”
오크들은 퉤퉤 침을 뱉으며 떠나버렸다. 그 뒷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쳐다보던 태현은 문득 생각나는 게 있었다.
‘그런데 왜 수혁이는 연락이 없지?’
이 정도로 대규모 오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거기 가 있던 정수혁이 가장 먼저 봤을 것이다.
-수혁아?
[현재 귓속말을 받을 수 없는 상태입니다.]
‘응?’
태현은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걸 깨달았다. 판타지 온라인에서 귓속말을 받을 수 없는 상태라면…….
‘휘말렸나? 오크들한테 붙잡혀서 가둬졌나? 아니면 거기 있는 희귀 던전에라도 들어갔나?’
그나마 오크들한테 붙잡힌 게 아니라면 다행이겠지만, 지금 가장 잘 알 사람이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건 아쉬웠다.
‘나와서 연락하려고 해도 귓속말 못 받는 상태면 바로 로그아웃도 못 할 거고…….’
수혁의 도움은 없이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았다.
“태현 님,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흠. 그냥 튀는 게 낫지 않을까?”
“…….”
귀족의 체면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즉답!
“아, 아니. 영지가 여기 있는데 도망치시는 건 좀…….”
“건물 짓고 있는 게 아깝긴 한데 솔직히 이거 잃기 싫다고 여기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 건 좀 계산이 안 맞잖아.”
태현은 냉정했다.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는 언제든지 다시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에 비해 여기서 싸우는 플레이어들은 잃을 게 많았다. 괜히 목숨 걸고 싸웠다가 죽기라도 한다면 손해가 심했다.
“태현 님. 그런데…….”
펠마스가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
“현재 저희 교단의 신전이 이것밖에 없잖습니까.”
“그렇지?”
“그래서 이 신전이 파괴당하면…… 매우 안 좋습니다.”
“……!”
태현의 표정이 변했다. 잊고 있었던 것, 그건 바로 아키서스 교단의 신전 건물이었다.
바로 여기가 지금 아키서스 교단의 총본산이자 핵심!
“얼마나 안 좋은데?”
“제 지갑 사정만큼이나 안 좋습니다.”
“…….”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설명!
교단의 본거지가 파괴당하면 당연히 엄청난 페널티가 따라 들어올 것이다.
‘끙…….’
태현은 고민에 잠겼다. 기껏 야심 차게 진행했던 게 이렇게 발목을 잡게 되다니.
“교단 신전 건물이 다 파괴당하면 한동안 제대로 된 운영도 못 하고, 대부분의 기능도 못 쓰게 될 테니…….”
“알겠으니까 조용히 좀 하고 있어 봐.”
태현은 펠마스의 입을 다물게 한 다음 고개를 돌렸다. 옆에 있던 케인은 태현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고 보니 지금 오크들이 가장 목을 따고 싶어 하는 건 바로…….
둘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야, 야! 그건 아니지! 진짜 아니지!”
“내가 무슨 소리를 했는데?”
“그건 아니잖아! 진짜 아니잖아! 내 직업을 봐! 이렇게 노력을 하는데!”
케인은 필사적으로 외쳤다. 지금 동쪽에서 오크들이 그의 목을 노리고 우르르 몰려오는데, 태현이 버리면 정말 답이 없었다.
사실 이렇게 된 건 태현 때문이었지만…….
“버리지 마라! 진짜! 그건 진짜 아니다!”
“하하. 케인. 내가 널 언제 버린다고 했냐.”
태현이 친절하게 말하자, 케인은 더더욱 겁을 먹었다. 차라리 욕을 해줘!
“제발! 버리지 말아달라니까! 흑흑!”
“아니, 속고만 살았나. 안 버려 이 자식아.”
“진짜로?”
“그래. 진짜로.”
“진짜로 진짜로…… 커헉!”
“이 자식이 어디서 귀여운 척이야. 적당히 해라.”
“내, 내가 언제 귀여운 척을 했다고…….”
케인을 걷어차고서 태현은 한숨을 쉬었다. 쉬운 길을 두고서 어려운 길로 가게 생겼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한 번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