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11화
“근데 누구랑 연합을 하지?”
“…….”
갑자기 조용해졌다.
사실 쑤닝 길드 이미지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던 것!
꼭 쑤닝 길드만 그런 건 아니었다. 대형 길드 중에서 사고 안 치고 이미지 좋게 유지하는 길드가 더 드물었다.
“다른 길드하고…….”
“믿을 수 있겠냐?”
“끄응…… 확실히. 배신이라도 하면 위험합니다.”
쑤닝은 멍청하지 않았다. 아발랍 시의 패배로 학습한 상태였다.
어설픈 연합은 태현에게 오히려 역으로 당할 수 있었다.
‘김태현 그놈은 오히려 첩자를 심을 수도 있어.’
방송에서 하도 착하고 친절하다고 칭찬을 해주다 보니 그마저 속게 되었다.
착하다? 친절하다? 절대 아니었다.
‘구렁이 백 마리는 넘게 속에 같이 살고 있는 놈이다!’
아발랍 시에서 겪었던 일이 아직도 떠올랐다.
-야. 그냥 안 쫓을 테니까, 저쪽 성문으로 도망쳐라.
-정, 정말로? 정말 안 쫓을 거야?
-그래. 내가 어쩔 수 없이 에다오르 명령을 따라야 하니까 이러고 있기는 하지만, PK가 좋아서 하겠냐. 그냥 나가면 안 쫓을게.
-고, 고마워! 크악! 뭐야! 이 XXX!
-미안. 손이 빗나갔어. 그런데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욕을 하다니. 내 기분이 몹시 상하는걸?
-크아악! 야! 이 XXXX!
태현의 말에 홀렸던 놈들은 전원 다 안 좋은 꼴을 맞이했다.
배신, 이간질, 매수…….
아발랍 시에서 온갖 험한 꼴이란 꼴은 다 본 것 같았다.
덕분에 이 자리에서 태현을 적으로 두고 힘을 합쳐야 할 길드들은 서로를 믿지 못했다.
“믿을 만한 놈들 없냐?”
“…….”
전원 침묵!
사실 쑤닝 길드가 그런 소리를 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쑤닝 길드를 못 믿을 테니까.
“저…….”
“오. 뭐냐.”
“그냥 경매에 참가해서 아이템을 사는 건 어떨까요?”
“…….”
굴욕적이지만 현실적인 방법.
그냥 경매에 참가해서 뺏긴 아이템을 골드 주고 사오는 것.
피해는 어떻게든 최소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었다.
김태현은 어떻게 된 놈인지, PK를 할 때마다 알짜배기 아이템만 골라서 가져갔다.
길드원들이 PK로 악명 페널티를 받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김태현이 PK를 많이 해서 페널티를 받으면 받았지.
그런데도 가져간 아이템 목록들을 보면 미스터리!
“아니…… 그래도 그건 좀…….”
자존심 때문에 다들 거부감을 표했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었다.
곳곳에서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진짜 돈 주고 사라고?”
“내가 자존심이 있지 그건 죽어도 못 하겠다!”
“아이템 그거 어디서 구하시게요. 여기서 구하면 모를까, 경매 사이트에 올라가기라도 하면 전 세계 판타지 온라인 유저가 참가할 거라고요.”
태현을 치기 위해 모였던 플레이어들의 고뇌!
* * *
“김태현 백작님! 소문은 잘 들었습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거대한 덩치의 아농 백작이 태현을 보자마자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아름다운 영지군요! 앞으로는 탁 트인 벌판! 뒤로는 웅장하게 솟은 산맥!”
아무것도 없는 영지를 이렇게 잘 포장해서 말해주는 것도 능력이었다.
“영지 이름과 잘 어울리는 광경입니다! 이 영지 이름이…….”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
옆에서 마르셀 백작이 중얼거렸다. 그걸 들은 아농 백작이 멈칫했다.
“어…….”
“괜찮아. 영지 이름과 어울리긴 하지.”
“아, 아닙니다! 지금은 웅크리고 있을 뿐, 곧 머지않아 힘찬 불사조처럼 비상하게 될 게 분명합니다! 저 건설 현장을 보아하니 미래가…….”
아농 백작은 허둥지둥 태현을 위로했다. 태현은 한 귀로 흘리고 물었다.
“그런데 소문이라니. 무슨 소문?”
“김태현 백작님께서 에스파 왕국에 나타난 악마를 쓰러뜨렸다는 소문 말입니다. 어떤 사악하고 같잖은 놈들은 김태현 백작님께서 악마들과 손을 잡고 왕국 도시들을 파괴하고 약탈했다고 떠들지만, 그런 헛소문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
“위대한 영웅 김태현 백작님께서 그런 무도한 짓을 할 리가 없잖습니까!”
“……물론이지!”
[화술에 성공합니다. 아농 백작이 당신의 무용담을 믿습니다.]
[아탈리 왕국 내에 당신이 만들어낸 소문이 퍼져 나갑니다.]
마르셀 백작은 의심 가는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태현은 뻔뻔했다.
“저 전리품들은 악마들을 쓰러뜨리고 악마들에게서 가지고 온 것이지.”
“과연! 대단하십니다!”
“그런데 아농 백작. 내가 이번에 아키서스 교단을 부활시켰는데 말이야…….”
“예?!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새 교단이 나타났다는 말에 마르셀 백작과 아농 백작 모두 관심을 가졌다.
-그러니까, 아키서스란 잊혀진 신이 있었는데, 내가 예전에 그 신에게 은총을 받은 적이 있어서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이러쿵저러쿵해서 신의 흔적을 찾아 모으고 교단을 다시 부활시켰다!
태현은 있었던 일들을 최대한 그럴듯하게 설명해 주고 나서 말했다.
“그래서 이렇게 온 것도 인연인데 둘 다 영지에 작은 신전 하나씩 지어줬으면 좋겠는데. 어때?”
“…….”
마르셀 백작은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이거 완전 도둑놈 아냐!?
한 영지에 신전이 지어지는 건 교단의 권리 중 하나였다.
그 영지와 교단의 사이에 따라서 지어지냐, 지어지지 못하느냐가 갈리는 것이다.
당연히 사이가 안 좋다면 들어가지 못했고, 그것 때문에 교단은 사제들을 보내고 성기사들을 보내 귀족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이런 걸 그냥 말 한 마디로 넘어가려고 하다니! 다른 교단은 뇌물이고 뭐고 다 바치는데!
그러나 아농 백작은 태현을 존경하는 눈빛으로 보며 외쳤다.
“신께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 교단을 다시 세우다니. 저는 차마 상상도 못 할 위업입니다!”
“내가 좀 대단하지.”
[아농 백작이 당신을 매우 존경합니다.]
[앞으로 아농 성에 아키서스 신전을 지을 수 있습니다.]
“마르셀 백작도 지어야지?”
“아, 아니…… 나는 그게…… 다른 교단들도 신경을 써줘야 하고…….”
“아. 괜찮아. 아키서스 교단 신전은 다른 교단 신전이 있어도 상관이 없거든. 영지에 독점 교단이 있는 게 아니면 무조건 들어갈 수 있지.”
“과연 관대한 신이십니다, 하하하!”
아농 백작은 마르셀 백작의 속마음도 눈치 못 채고 호탕하게 웃었다.
* * *
“그러면 지금부터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빠득!
빠드드드득!
곳곳에서 이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몇 번은 죽었을 것 같은 눈빛들!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는 경매에 참가하기 위해 온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1/3은 정말로 쓸 만한 아이템을 찾기 위해서 넉넉하게 골드를 준비해서 갖고 온 플레이어들이라면, 또 다른 1/3은 살 골드는 없지만 그냥 재밌어 보여서 구경을 하기 위해 온 플레이어들이었다.
나머지 1/3은?
태현한테 원한을 갖고 모였다가 백작들의 기사단이 오는 바람에 결국 습격을 포기하고 경매에 참가하게 된 플레이어들!
당연히 원한이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내 걸 돈 주고 사야 한다니!’
‘죽인다, 김태현! 반드시 죽인다!’
속으로 아무리 욕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다. 태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경매를 진행시켰다.
“……다음 아이템은 <울부짖는 쇠사슬 창>입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이게 아마 쑤닝 길드원이 갖고 있던 아이템 같은데.”
빠직!
원래 주인인 쑤닝 길드원의 이마에 굵은 혈관이 돋았다.
“갖고 있던 사람에 맞게 당연히 옵션이 좋습니다! 자. 쑤닝 길드가 쓰던 무기를 구할 수 있는 기회!”
“100골드!”
“150골드!”
시작하자마자 뛰어오르는 가격대. 쑤닝 길드원은 억울했지만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200골드!”
“250골드!”
말하는 순간 바로 다른 사람이 손을 들었다.
‘이렇게 많이 참가했었나?’
사람이야 많았지만 아이템을 살 수 있을 정도로 골드가 있는 사람은 얼마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게다가 팔리는 전리품이 한두 개도 아니니, 원하는 아이템 하나는 가지고 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300골드!”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오는 쑤닝 길드원을 보며,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 바람잡이를 하고 있는 건 모두 그들!
사실을 알게 되면 쑤닝 길드원은 뒷목을 잡을 것이다.
“크으윽!”
결국 쑤닝 길드원은 원래 예상했던 가격의 두 배를 내고 아이템을 샀다.
호구를 잡힌 건 쑤닝 길드원만이 아니었다. 태현한테 에스파 왕국에서 아이템을 털린 플레이어들은 모두 다 눈물을 머금고 거액을 지불해야 했다.
절대로 그냥은 주지 않는 집요함!
‘개자식!’
‘죽인다!’
“그다음은 암살자입니다!”
“?”
“암…… 살자?”
“장비 이름이 암살자야?”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이제까지 쟁쟁한 아이템들만 나와서 신이 났는데, 갑자기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 나온 것이다.
그러나 나온 것은 아이템이 아니었다. 포로로 잡힌 플레이어!
“절 기습하려다 잡힌 암살자! 여기 소속 길드가 있으면 돈 내고 데리고 가면 됩니다!”
“?!?!?!?!”
포로 상태의 암살자 플레이어는 얼굴을 붉혔다.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었다.
“푸하하하하!”
“잡힌 놈들이었어?”
그제야 어떻게 된 건지 깨달은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지금 끌려 나온 건 태현을 암살하려다가 역으로 잡힌 플레이어들이었던 것이다.
그걸 돈 주고 판다니!
짓궂은 한 명이 손을 들고 물었다.
“아무도 안 사가면 어떻게 되나요?”
“그러면 그냥 PK하고 아이템 뜯어내야죠.”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나오는 대답!
-야, 어떡하냐? 저거?
-골드 내야 해? 우리 지금 얼마 있지?
-도와줘 이 자식들아! 설마 내버려 둘 생각은 아니지? 나 내버려 두면 너희들도 데리고 간다!
치열하게 오가는 길드 귓속말 창.
잡힌 플레이어들은 물귀신 작전을 써서라도 같은 길드원들을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이 멍청한 놈은 지가 잡혀놓고! 김태현 처리할 방법 찾으라고 했더니 네가 잡히냐!
-애초에 내가 하지 말자고 했잖아. 우리 수준에 김태현은 너무 빡세다고.
-시끄럽고 골드나 모아봐.
일단 여기까지 온 이상 동료를 안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길드원들은 포기하고 골드를 모았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너무 안일했다.
“10골드.”
“20골드!”
“?!?!?”
아이템과 달리, 인질로 잡힌 플레이어들은 경쟁이 붙을 이유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포로로 잡은 플레이어들을 데리고 가서 뭘 하겠는가?
기껏해야 무방비 상태인 상대로 PK를 할 수는 있겠지만, 뭐가 나올지도 모르는데 비싼 골드를 주고 데려갈 이유가 없었다.
“뭐야? 왜 경쟁이 붙어?”
“그러게? 데리고 가면 뭐 좋은 게 있나?”
“혹시 뭐 좋은 거라도 갖고 있는 거 아냐?”
“……!”
동료를 데리러 가기 위해 참가한 길드원들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자리에 있는 다른 플레이어 중 골드가 넉넉한 플레이어들이 갑자기 손을 들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참가하는 걸 보니 뭔가 있는 게 분명해!’
‘사낼 수 있다면 한몫 뜯어낼 수 있다!’
“이, 이 미친놈들……! 왜 돈을 올리는 거야?!”
* * *
“얼마 정도 나올 거 같아?”
“어, 그러니까, 이것저것 다 떼고 하면…… 20만 골드 정도 나올 거 같은데요.”
“……다시 말해봐.”
“2, 20만 골드에요.”
말을 하면서도 이다비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당연했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액수였던 것이다.
전리품들을 다 비싸게 팔아치우고 갖고 나온 걸 합친 액수!
거기에 아직 몇 명은 몰랐지만 추가로 팔아넘긴 게 있었다.
“영지 개발, 본격적으로 해도 되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