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06화
“그래! 나처럼 어울리는 놈이 또 어디 있겠어! 나만큼 네 옆에서 열심히 한 놈이 또 어디 있겠냐고!”
“알겠어. 알겠어. 주면 되잖아. 그만 징징거려.”
“그, 그런데 무슨 직업이야?”
“영웅 직업이다.”
“?!?!?!”
케인의 눈이 더 크게 떠졌다. 부르르 떨리는 손끝!
“옛다.”
[김태현 님이 당신에게 아키서스 교단 관련 직업을 부여하려고 합니다.]
[받아들이는 순간 현재 직업은 그 직업으로 바뀌며, 돌이킬 수 없습니다.]
[직업 변경은 신중하게 하셔야 합니다.]
[김태현 님이 당신에게 부여하려는 직업은 <아키서스의 노…….]
-수긍! 수긍! 예쓰! 좋다고!
줄줄이 뜨는 메시지창. 케인은 끝까지 읽지도 않고 수긍을 해버렸다.
[직업이 성공적으로 변경됩니다.]
[직업 <붉은 피의 전사>가 <아키서스의 노예>로 변합니다.]
[관련 스킬 몇 가지가 사용 불가능해집니다.]
[현재 레벨에 맞춰서 추가 스킬을 얻습니다.]
[힘과 체력이 오릅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신성이 오릅니다.]
“……어?”
케인은 순간 그가 뭔가 잘못 본 줄 알았다. 직업 이름이 뭔가 이상했던 것이다.
“뭐? 노예? 내가 잘못 본 거지?”
그러나 상태창은 냉정했다.
[아키서스의 노예-아키서스를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선봉장입니다. 굳건한 신앙심과 강철 같은 육체로 이단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냅니다.
(전직 조건)
-아키서스를 오랫동안 믿고 따라다녔을 것
-힘 250, 체력 250 이상.
-아키서스의 허락을 받을 것
아키서스의 노예의 체력과 방어력은 신성 스탯의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
“좋지? 너한테 딱이라고 생각했거든.”
“너 죽고 나 죽자, 이 자식아!”
케인은 울컥해서 검에 손을 가져다 대려고 했다.
[아키서스를 배신할 경우 신성 스탯이 대폭 하락합니다.]
[각종 저주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니, 내가 아키서스 배신한다고 했어?! 이 자식 좀 손봐줄 수 있는 거지! 뭔 놈의 신이 이렇게 빡빡해! 신 믿으면서 같이 신 믿는 신도 좀 팰 수 있는 거 아냐?!”
케인은 메시지창을 보고 억울해서 소리쳤다. 태현이 아키서스에서 중책을 맡고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아키서스 그 자체라고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 케인이었다.
“너랑 나랑 같은 위치라고 생각했냐?”
“닥쳐! 이렇게 된 이상 페널티를 받고서라도…… 내 붉은 피의 전사 직업을 돌려줘 이 자식아! 희귀 직업이지만 그거 꽤 좋은 직업이었다고!”
“아니, 이런 뻔뻔한 놈을 봤나. 좋은 거 달라고 해서 좋은 거 줬더니만. 너 직업 확인은 제대로 했냐?”
“으윽…….”
케인은 태현의 말에 다시 상태창을 켰다. 확실히 <아키서스의 노예>라는 이름만 보고 발끈해서 날뛴 감이 있었다.
<강철 같은 신앙심>
신성 스탯에 비례해 방어력을 올립니다. 아키서스가 주변에 있으면 방어력이 추가로 올라갑니다.
<죽어라, 이교도!>
아키서스를 믿지 않는 적을 상대할 때 추가 공격력을 얻습니다.
<내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HP를 25%로 내리고 일시적으로 무적 상태를 얻습니다. 그 시간 동안 모든 능력에 버프를 받습니다.
etc, etc…….
분노로 벌벌 떨렸던 케인의 손이 다시 얌전하게 돌아갔다.
직업 이름만 보면 <붉은 피의 전사>보다 훨씬 더 스킬 라인업이 빵빵했다.
괜히 영웅 직업이 아니었던 것!
붉은 피의 전사 전용 스킬들을 못 쓰게 된 건 뼈아픈 손실이었지만, 새로 얻은 스킬들이 그걸 갚고도 남았다.
스킬 숙련도를 다시 올려야 하는 페널티를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흠흠. 괜찮긴 하네.”
“뭐?”
한층 내려간 태현의 목소리. 케인은 갑자기 소심해졌다.
“아, 아니. 괜찮다고…… 좋다고.”
“나는 지금 너한테 좋은 직업을 주고도 욕을 먹었는데. 그 한마디로 퉁치겠다 이거냐? 응?”
“직업 이름이 이래서 그런 건데…….”
케인의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졌다.
* * *
끼이이익-
한계까지 당겨진 운동 기구가 거슬리는 소리를 냈다.
“후.”
태현은 깊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몸이 좀 무뎌진 거 같기도 하고……?”
최근 연속으로 퀘스트를 깨면서 여유가 나지 않았었다.
이번 아키서스 교단을 부활시키고, 영지에서 건물 몇 개를 짓게 명령한 다음 경매를 발표하고 나서 태현은 잠깐 현실에서 숨을 돌리고 있었다.
‘일은 잘 풀려가고 있어. 아키서스 교단 부활은 생각보다 더 좋았고. 이제 경매만 잘 처리해서 골드를 긁어내면 영지 초반 단계는 어떻게든 될 거 같은데…….’
덕분에 이렇게 잠깐 숨을 돌릴 시간이 났다.
칭호:교단의 부활을 가져온 자
교단의 부활을 가져온 자:잊혀진 교단을 세우고 부활을 선언했습니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위업입니다.
교단 관련 NPC를 상대할 때 추가 보너스. 스킬 <부활> 사용 가능.
칭호:교단 최고 권력자
교단 최고 권력자:교단 내에 최고 권력자만이 가질 수 있는 칭호입니다. 교단의 모든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교단 내에서 가능한 모든 이벤트 실행 가능. 타 교단 관련 NPC들이 경의를 갖고 대함.
<부활> 스킬은 심플하지만 강력한 스킬이었다. 죽었을 때 페널티 없이 바로 부활할 수 있는 스킬.
다른 사람이 목숨 하나를 갖고 다닐 때 태현은 두 개를 갖고 다니는 셈이었다.
어쨌든 아키서스 교단 부활은 일단은 성공적이었다. 일단은.
어려운 건 앞으로부터!
다른 교단들의 견제부터 시작해서, 교단의 세력도 키워야 하고, 동시에 영지도 관리해야 했다.
다른 직업들과 비교한다면 몇 배나 되는 난이도!
“…….”
부릅!
씻고 나온 태현은 김태산과 눈이 마주쳤다. 러닝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있던 김태산은 태현을 보자 손에 들고 있던 쭈쭈바를 꽉 쥐었다.
꾸깃!
“하하. 아버지. 아이스크림이 맛이 없으세요? 맛이 없으면 그냥 드시지 말지 왜 그걸 그렇게…….”
“네가 지금 이겼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어!”
“네. 이겼다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말 한 마디를 지지 않는 태현!
“두고 봐라. 아직 안 끝났어! 바르도 시에서 너 죽이겠다고 이 가는 놈들이 한둘인 줄 아냐?”
“뭐 저 죽이겠다고 이 갈던 놈이 예전부터 한둘이 아니라서…… 그보다 아버지, 제가 판타지 온라인 1 하던 소문 퍼뜨리는 건 너무 치졸하지 않습니까? 정정당당 외치시던 아버지가 그럴 줄은…….”
“뭔 소리야?”
‘응?’
김태산은 뭔가를 잘 숨기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 김태산은 정말로 영문을 모르는 표정이었다.
‘어라? 아버지가 한 게 아니었나? 성규 아저씨도 아버지 허락 안 받고 멋대로 할 사람이 아닌데? 그럼 누구지?’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우연히 소문이 퍼진 건가?
“두고 봐라. 너 이번에 네 영지에서 경매한다고 했지? 그게 그렇게 잘 풀릴 거 같냐?”
“하하. 아버지도 오시게요?”
“무, 무슨 소리냐? 난 안 간다.”
“아버지야 직접 안 오셔도 아버지 친구분들은 좀 오실 거 같은데…….”
예리한 태현의 눈빛!
김태산은 진땀이 등에서 나오는 걸 느꼈다.
“안 간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뭐, 직접 보면 알겠죠.”
“나 아니어도 너 싫어할 놈은 많다. 경매가 잘 끝날 거 같냐?”
“다 생각이 있습니다. 아버지.”
파지직!
두 부자의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 * *
‘아버지도 뭔가 생각이 있는 거 같긴 한데.’
태현은 김태산의 태도를 떠올렸다.
뭔가 기다리고 있는 게 있는 것 같은 태도!
‘좋은 퀘스트라도 깨고 있나?’
우우웅- 우우웅-
핸드폰의 진동 소리.
태현의 후배, 정수혁이었다.
-선배님! 잘 지내셨습니까!
“어. 나야 잘 지냈지. 넌 어떻게 지냈냐?”
<아키서스 교단 마법사>를 얻고 직업 퀘스트를 받은 정수혁은 혼자 우르크 지역으로 떠난 상태였다.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있습니다!
“……그거 잘 되어가고 있다는 거 아니지?”
-네! 아닙니다!
“자랑이다.”
-교단 세운 거 봤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축하는 귓속말로 해도 되잖아…….”
-그래도 직접 말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 고맙다. 네 상황이나 좀 말해줘라.”
태현은 정수혁의 퀘스트가 어느 정도 됐는지 궁금했다. 어떻게 보면 태현과도 상관이 있는 퀘스트였으니까.
먼저 아키서스를 전도하는 것도 전도하는 것이지만, 그 지역이 우르크 지역이라는 것도 특별했다.
태현이 목을 딴 오크 족장 카자크의 본거지가 바로 거기였으니까!
카자크의 아버지인 오크 대족장이 이를 갈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 지역 주변에 아키서스 교단의 영향력을 올리는 것도 좋겠지만, 태현은 그보다 정보를 더 원했다.
거기 오크들이 과연 얼마만큼 싸울 준비가 되어 있을까?
슬슬 대규모 퀘스트가 시작되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잠잠하니 오히려 걱정이 되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 * *
정수혁은 자신만만하게 우르크 지역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예전이었다면 겁을 먹거나, 앞날을 두려워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태현과 같이 다니면서 많이 배우고 성장한 것!
솔직히 말해서 태현이 하는 걸 보니 이제 어지간한 적은 두렵지도 않을 것 같았다.
물론 그렇다고 혼자 갈 생각은 없었다.
혼자 다니는 마법사는 걸어 다니는 먹잇감!
게다가 우르크 지역은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마법사 플레이어가 아니더라도 파티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
“우르크 가시는 분? 저 마법사인데…….”
“우르크 안 가요.”
“혹시 우르크 가세요? 그러면 저도 같이…… 저 마법사예요! 쓸만한 스킬도 많은데!”
“우르크? 거기를 누가 가요?”
시작부터 꼬이는 정수혁.
그러나 정수혁은 포기하지 않았다. 마법 스킬을 혼자 수련하는 것만으로 고급까지 찍은 근성가이가 바로 정수혁!
결국 우르크를 가는 파티 하나를 찾아낼 수 있었다.
“마법사요? 우리 우르크 가는데 마법사 괜찮지 않을까?”
“그러네. 어라? 어디서 보신 분 같으신데…….”
최하준, 최하영. 데메르 교단 플레이어 남매였다. 그들은 정수혁을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아, 김태현 님하고 같이 다니던 마법사다.”
“진짜? 그런데 왜 혼자 다니세요?”
“사정이 있어서 직업 퀘스트를 깨느라…….”
“아. 그러셨구나. 어쨌든 김태현 님하고 같이 다니셨으면 실력은 보장된 거고, 같이 가실래요?”
“예!”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리는 것에 기뻐하며, 정수혁은 냉큼 파티 초대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인원이…….”
정수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최하준과 최하영 말고 다른 플레이어들이 안 보였던 것이다.
다들 NPC 같아 보이는 생김새! 게다가 데메르 교단에서 나온 것 같은 겉모습이었다.
경건한 성기사들과 사제들.
“데메르 교단에서 퀘스트 나온 겁니까?”
“네. 맞아요.”
최하영은 선선히 대답해 주었다.
“우르크 지역에서 데메르 교단 영향력 올리는 퀘스트가 나왔거든요. 교단 지원 NPC 받아서 같이 가는 거예요.”
“……!”
정수혁은 입을 다물었다.
들키면 망한다!
“그런데 그쪽은 무슨 퀘스트로 우르크를 가는 건가요?”
“하, 하하하…… 저는 거기 있는 NPC들을 찾아서 직업 스킬 배우는 퀘스트입니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김태현 밑 삼 개월이면 사기를 배운다!
평소에 거짓말과는 담을 쌓고 지내던 정수혁이었지만, 본능처럼 거짓말이 나왔다.
“잘됐네요. 저희도 마법사 하나 더 있으면 든든하니까요.”
“감, 감사합니다.”
벌써부터 찔려오는 양심에 괴로워하며, 정수혁은 데메르 교단 마차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