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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202화 (202/1,826)

§ 나는 될놈이다 202화

갈르두의 해적 함대를 만나는 것 같은 예상치 못한 이벤트들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전화위복!

갈르두를 만난 덕분에 눈에 불을 켜고 쫓아와야 할 에스파 왕국 해군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태연 일행은 그 많은 전리품을 그대로 챙기고 아탈리 왕국 땅에 상륙할 수 있었다.

“평화롭군. 평화로워.”

“…….”

루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했다. 과연 이래도 되는 걸까? 뒷감당이 되는 걸까?

“육지다. 이대로 영지까지 들고 가자!”

태현은 기분 좋은 목소리로 악마들에게 외쳤다. 그러나 악마들은 시무룩한 상태였다.

겉에 쓰고 있는 갑옷들 때문!

누가 보면 마법사가 소환한 조잡한 가고일 몬스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아니었다.

-주인이여. 그래도 내가 입은 갑옷은 좀 괜찮은 것 같다.

“그걸 이제 알았냐? 내가 널 얼마나 아끼는데.”

신수 용용이는 삐걱거리고 흉측한 돌 갑옷을 껴입은 악마들을 불쌍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한 열 번 넘게 시도해도 잘 안 되자, 태현은 그냥 대충대충 때워서 만들어버렸다.

‘어차피 이 갑옷 실제로 쓸 것도 아니고, 싸울 때는 벗고 싸울 텐데 대충 하자!’

물론 악마들에게 그런 이유가 와 닿을 리 없었다.

* * *

-태현 씨, 정말 방송합니다? 진짜 방송합니다? 나중에 저희한테 뭐라고 하시면 안 됩니다?

배장욱의 말에 태현은 귀찮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된다고 몇 번을 말해야 해요?”

-아뇨,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태현 씨. 이건 스스로 목을 조르는 걸 수도 있어요. 지금 태현 씨 이미지가 이렇게 좋은데…….

영지에 도착한 태현은 산더미 같은 전리품들을 안에 보관하고 재정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 도중에 온 배장욱의 연락.

에스파 왕국에서 태현이 날뛰고 있는 건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었기에, 방송국에도 문의가 솟구쳤다.

-김태현 방송 언제 나와요?

-현재 김태현 플레이어의 방송 예정은 잡혀 있지 않습니다. 대신 부패한 영주를 덜덜 떨게 한 그림자 춤꾼, 도동수 플레이어의 방송이 오늘부터 시작됩니다.

-아, 그딴 놈은 됐고요! 김태현 방송 틀어주세요!

-죄송합니다. 지금은 일정이 잡혀 있지 않아서…….

-김태현 방송 틀어주세요!!

-재방송 계획이라도 잡아보겠습니다.

-김태현 방송 틀어주세요!!!

사태가 이렇게 뜨거우니 배장욱으로서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바로 방송을 편집해서 틀어야 하…… 겠지만!

태현은 현재 치열하게 맞붙는 방송국 경쟁에서 가장 가치 있는 플레이어 중 한 명.

그리고 배장욱은 앞만 보고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름 멀리 보는 긴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었다.

플레이어들의 인기가 있다고 마구잡이로 방송을 했다가는 오히려 가치가 떨어졌다.

게다가 이미지.

방송에서 플레이어의 인기는 이미지와도 상관이 있었다. 지금 태현처럼 이미지가 좋은 사람은 조심해야 했다.

‘이번 에스파 왕국에서 한 걸 방송으로 내보내도 괜찮을까?’

아발랍 시 투기장에서 우승한 것까지는 괜찮았다.

물론 온갖 음험한 짓은 다 하고 다녔지만 마법의 편집 기술이 있었으니까. 이건 커버가 가능했다.

그 이후 에다오르가 나타나고 길드와 맞붙은 것도 괜찮았다. 대량으로 PK를 했지만 상대가 이미 평판이 안 좋던 길드들이었던 게 다행이었다.

여론을 확인해 보니 오히려 태현한테 우호적!

문제는 그 뒤였다. 악마들을 바르도 시로 보내고, 위로 날아 들어가 바르도 시를 아주 구석구석 약탈한 다음 마지막에는 배로 도주!

‘이건 어떻게 편집할 수가 없어!’

방송했다가는 태현의 이미지가 망가질 것 같았다. 그래서 배장욱은 태현을 설득했다.

그러나 태현은 단호했다.

“별 상관없으니까 그냥 내보내시죠.”

-이미지가 나빠지면…….

“그걸로 나빠질 이미지면 그냥 미리 나빠지는 게 낫죠.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

순간 배장욱은 귀를 의심했다. 시작도 안 했다니, 잘못 들은 거겠지?

“어쨌든 전 진짜 괜찮으니 걱정 그만하셔도 됩니다. 그냥 틀어주세요.”

-진짜 방송에 내보냅니다?

“예. 예. 괜찮습니다. 아, 그리고 마지막에 예고 좀 달아주시죠.”

-?

“제가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에서 대규모 경매를 열거라고요. 아발랍 시 PK에서 얻은 아이템들 처분할 테니까 원하는 사람들 있으면 찾아오라고 좀 하시죠.”

-……!”

어떻게 어그로를 끌어도 이렇게!

‘괜찮을까?! 아이템 뜯긴 길드들이 찾아오지 않을까?!’

* * *

“영지에 뭐가 있어야 할까?”

자리에는 아키서스의 떨거지들…… 아니, 아키서스의 신도들이 모여 있었다. 루포나 에드안, 펠마스까지.

펠마스는 신이 나서 손을 들었다.

“도박장 어떻습니까!”

“저 미친놈 끌어내.”

“어째서?!”

루포가 그나마 견실한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대장간이나 식료품 가게, 거기에 바깥으로 가면 울타리나 목책도 필요할 거고…… 사실 여기에는 있는 게 없습니다. 다 처음부터 시작해야 해요. 대장간의 화로나 그런 건 상단에 부탁하면…….”

“아, 괜찮아. 훔쳐왔거든.”

“……예.”

태현은 대충 필요한 건물들만 집어서 골짜기 안에 그리기 시작했다.

작은 상점이나 대장간 건물 하나만 지어도 최소 몇십에서 몇백 골드가 그냥 나갔다.

‘삥 많이 뜯어놓기를 잘했지…….’

현질을 하지 않는 태현에게 있어서 골드는 넘쳐나는 자원이 아니었다.

“식료품 가게를 설치하면 요리사들이 버프를 받고…… 좋아. 궁수들을 위한 사격장? 나 활 안 쏘는데.”

“이 주변에 오는 플레이어 중에서는 궁수가 많잖습니까. 태현 님 기준이 아니라 주변에 찾아오는 사람들 기준으로…….”

“하긴. 그래야겠군. 마탑은 못 짓나?”

마탑. 지으면 영지에 마법사 NPC들이 생기고 관련 퀘스트가 생겨나며 영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마법 관련 도움을 받을 수 있고…….

하여튼 있으면 좋은 것!

“물어보실 것 같아서 알아왔습니다. 최소 2만 골드부터 시작합니다.”

“……현실에서 건물을 사겠군.”

“거기에다가 마법사도 따로 데리고 와야 하니 정말 최소입니다. 마법사 어디서 데려오시게요”

“글쎄, 퀘스트도 안 깼으니…… 됐다. 마탑은 꼭 필요한 거 아니니까 필요한 것부터 먼저 해.”

마탑은 꼭 필요한 건물이 아니었다. 태현은 작은 마을 수준의 필수 건물들을 먼저 챙기려고 들었다.

“플레이어들 많이 오면 세금도 좀 신경을 써야 할 거 같습니다.”

“세금 많이 떼죠. 이중으로 떼죠. 아니, 삼중으로 떼죠!”

태현은 혀를 찼다.

“지금 한참 이미지 관리할 때에 세금 떼면 잘도 오겠다. 안 돼. 한동안은 세금은 건드리지 마.”

“영지 병사들은 상단 용병들로 고용했습니다. 월마다 골드가 나갑니다.”

본격적으로 영지에 관심을 가지자 생기는 돈 나가는 구멍들!

“끙…… 그냥 좀 완성된 도시 주면 어디가 덧나나. 이놈의 국왕은…….”

그러는 사이 케인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고민할 거 없는 케인의 얼굴은 매우 윤기가 흘렀다.

“좋냐? 난 이렇게 머리가 아픈데 넌 왜 이렇게 쌩쌩해?”

“내, 내가 뭘 했다고……!”

케인은 오자마자 공격을 받자 억울해서 대답했다. 물론 요즘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이었다.

태현한테 아무리 많은 구박을 받아도, 케인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으니까.

‘팬들도 다시 생기고!’

조금이었지만 케인을 응원한다는 쪽지도 받고 있었다.

-태현 님한테 충성스러운 모습이 멋져요!

-태현 형을 위해 자폭하는 의리! 저 진짜 감동했어요!

물론 태현한테 딸려가는 느낌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냐!

“밖에서 놀지 여기는 왜 들어왔어. 뭐 도와주려고 온 거겠지? 설마 그냥 심심해서 온 건 아니겠지? 네가 죽고 싶지 않다면 그런 건 아니겠지?”

“아, 아니. 그냥 뭐 좀 물어보려고 했는데…….”

“뭘?”

“……화 안 낼 거지?”

태현이 까칠하게 나오자 케인은 겁을 먹고 물었다. 태현은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하하. 케인. 내가 언제 화를 냈다고 그래. 빨리 말하라고.”

“그거 화낸다는 거잖아 이 자식아!”

케인은 포기하고 말했다.

“그…… 네가 판타지 온라인 1의 미친 대장장이 김태현이라는 소문이 돌아서…… 진짜냐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

케인이 말한 건 사실이었다.

최근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태현이 판타지 온라인 1의 김태현이 아니냐는 가설이 다시 돌고 있었던 것이다.

* * *

-판온 2 김태현이 1 김태현 이름 따라 한 거라며? 그런 거 아니었어?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야. 그거 사실 김태현이 위장한 거라는 말이 있대.

-왜 위장해? 1에서 뛰던 랭커들 다 자기 광고하면서 시작했는데. 그걸 왜 숨겨? 나 같으면 엄청 자랑했겠다.

-그러니까 네가 김태현이 아니지. 야, 다른 랭커들하고 김태현하고 같냐? 김태현이 1에서 얼마나 적을 많이 만들고 다녔냐. 2에서 ‘나 김태현이다’라고 했다가는 바로 견제를 받을 테니까 숨겼다는 거지.

-어? 그럴듯한데?

-그냥 동명이인 같은데…….

-어디 뭐 확인할 방법 없냐?

반응을 본 태현은 눈썹을 찌푸렸다. 한 번 사라졌던 반응이 갑자기 다시 나타났다는 건 언제나 이유가 있었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한 짓이군.’

정확히 말하자면 아버지의 친구인 양성규가 머리를 굴렸을 가능성이 높았다.

태현한테 그렇게 당했으니 어떤 방법으로라도 견제를 해올 게 분명했다.

사람들은 음모론을 좋아했다. 대충 떡밥만 몇 개 던져줘도 뜨겁게 타오르게 되어 있었다.

‘내가 방송에서 아니라고 말하는 건 최악의 방법이고.’

태현이 ‘나는 판타지 온라인 1의 김태현이 아니다!’라고 해봤자 사람들의 귀에는 제대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더 이미지만 강하게 남을 터. 더 쑥덕거릴 것이다.

‘인터넷에서 여론을 펼칠 만한 사람이 없나…… 아. 있었군.’

태현은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이다비!”

“저, 저 아무것도 안 했어요!”

전리품을 가방에서 꺼내던 이다비가 화들짝 놀라서 대답했다.

* * *

“여론을 조작해달라고요?”

“그래.”

“어떻게 그런 못된 짓을 할 수…….”

태현은 골드로 가득 찬 주머니를 흔들었다. 찰랑찰랑!

“있어요! 하게 해주세요!”

“그래. 판타지 온라인 1의 김태현이 내가 아니라는 여론전을 펼쳐줘.”

“아니에요?”

“아니니까 이러지. 어떤 놈이 헛소문을 퍼뜨리는지 모르겠어.”

이다비는 태현의 말에서 본능적으로 미심쩍은 걸 느꼈다. 이다비는 태현을 쳐다보았다.

에스파 왕국에서 보여준 모습과 판타지 온라인 1에서 미친 대장장이 김태현이 보여준 모습.

비교한다면?

‘똑…… 같잖아……?!’

“왜 그렇게 쳐다봐?”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다비는 화들짝 놀라서 침을 삼켰다. 이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태현이 감추려고 한다면 더더욱.

‘말하면 죽일 거야! 분명 죽일 거야!’

“물론 이것만으로 끝나지 않아. 이다비, 너 상인 직업이지?”

“그런데요…….”

“나는 맥크레니 상단과 친하지만 거긴 플레이어가 운영하는 곳이 아니지. 그러니까 꼭 거기 담당자가 여기를 맡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영지 하나의 흐름을 통째로 관리하는 상인. 어때. 경험치가 얼마나 나올까?”

“……!”

이다비의 눈이 매우 크게 떠졌다.

“물론 이런 걸 하고 싶어 하는 상인들은 매우 많겠지만 내 친구는 너잖아. 그렇지?”

“……물론이에요!”

이다비는 덥석 태현의 손을 잡았다. 판타지 온라인 1이고 뭐고 알 게 뭐냐! 중요한 건 현재!

이런 크고 아름다운 먹잇감을 줄 수 있다면 이다비는 얼마든지 태현에게 충성충성충성을 외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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