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99화
“야, 나는 악마 한 마리도 안 주면서 저놈은 뭐가 예쁘다고 주는 거야?”
케인은 악마들을 받고 신이 나서 지휘하는 로이를 보며 투덜거렸다. 태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케인. 잘 생각해 봐라.”
“……?”
“내가 처음 보는 놈한테 아무 이유 없이 선물을 줬다. 넌 그걸 받고 싶냐?”
“……절대 아니지!”
그제야 케인은 태현이 뭔가 사악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자식은 진짜 지치지도 않나?’
마치 숨 쉬는 것처럼 뒤통수를 치는 태현!
* * *
‘잠깐만, 지금 생각해 보니까 마냥 좋은 상황이 아닌 것 같아!’
이다비는 태현을 따라 이동하며 생각했다. 지금 어떻게 해야 가장 크게 이익이 될지.
대형 퀘스트에, 태현이라는 최근 가장 뜨거운 플레이어와 같이 움직일 수 있다는 기회 덕분에 일단 따라왔다.
그런데 차분하게 생각을 하자, 지금이 매우 위험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먼저 케인한테서 들은 생생한(?) 태현의 정보. 각종 스킬들.
남들이 모두 탐을 내는 걸 얻은 건 좋았다. 그런데…….
‘밖으로 알려지면 범인이 나밖에 없잖아……?’
케인이 말하는 게 사실이라면 태현만큼 성질 더럽고 원한을 잊지 않는 사람도 없었다.
밖으로 태현의 정보를 팔아먹었다는 게 들키면 반드시 보복을 당한다!
랭커들이 자기 개인 정보에 얼마나 예민한지는 이다비도 잘 알고 있었다. 스킬 하나 방송으로 공개했다고 PK 일어난 적도 있었으니까.
-애들아. 어떻게 하지?
-그냥 튀시죠?
-맞아요.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그런 랭커 옆에 있어요. ‘가늘고 길게’가 우리 길드 신조 아니었어요?
-지금 바르도 시 주변에 대형 길드들 모이고 왕국군도 모이는데 거기 괜히 꼈다가 뒷감당 어떻게 하시려고요.
냉정한 길드원들!
이다비는 입을 삐죽거렸다. 물론 파워 워리어가 객관적으로 보면 전력이 좀 형편없는 길드이기는 했다.
길드원은 많지만 명령에 제대로 따르지 않는 길드원들도 많았고, 핵심 전력은 얼마 안 됐으니까.
-이번에 광고 하나 따왔는데 그냥 이거나 잘하죠?
-뭐? 진짜 광고 따왔어? 어떻게?
-우리 광고하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던데. 자기네 것도 그렇게 광고해 달래.
-무슨 업체인데?
-어……. 스포츠 토토인데 살짝 몰래 하는 토토래.
-……그거 불법 아니야?
-에이, 설마 불법이겠어? 그냥 정부 허락만 안 받고 하는 거라던데.
길드원들의 대화를 듣던 이다비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꼈다. 부자가 되겠다고 길드를 만든 건 좋았다.
그런데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신경을 써야 하는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길드 운영도 해야 하고, 이다비 본인의 직업도 골드를 많이 먹는 직업이었다. 그런데 파워 워리어는 다른 길드처럼 고정적인 수입원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다비가 길드원들한테서 골드를 뜯어낼 만큼 냉정한 길마도 아니었다.
골드, 더 많은 골드가 필요했다.
‘방송이든 광고든 뭐든……. 기회를 잡아야 해!’
그런 상황에서 태현과 같이 하게 된 건 분명하게 기회였다.
-아, 시끄럽고! 방법 좀 생각해 봐!
-만약에 김태현이 바르도 시를 뚫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면……. 안에서 한몫 두둑이 챙기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
이다비는 눈을 크게 떴다. 그랬다. 왜 그녀가 그걸 놓치고 있었지?
-맞아, 아발랍 시처럼!
-바르도 시는 아발랍 시보다 훨씬 더 부유하죠. 그리고 아발랍 시는 길드끼리 싸우느라 많이 날렸잖아요.
아발랍 시에서는 에다오르가 나타나고 길드끼리 싸우느라 챙길 시간이 적었지만, 바르도 시는 아니었다.
-바르도 시에서 한몫 챙기는 거야! 그다음에는 알 게 뭐야! 튀면 그만인데!
-근데 김태현이 나눠준대요?
-어? 나, 나도 열심히 싸울 테니까 나눠주지 않을까……?
-그거 먼저 물어보셔야 하지 않나…….
-그리고 지금 바르도 시 뚫을 수 있는지가 문젠데요. 방송 보시면 바르도 시 주변에 장난 아니에요. 바르도 시에 있던 플레이어들 다 몰려나온 거 같은데. 먼저 도착한 악마들 못 뚫고 있어요.
-끙……. 일단 물어봐야겠어.
* * *
“저기, 바르도 시에서 전리품 얻어내면 얼마 정도 가져갈 수 있나요?”
이다비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나 태현은 흔쾌히 대답했다.
“네가 챙기는 건 다 네 거지.”
“!?”
이다비는 귀를 의심했다.
“진짜요!?”
“내가 왜 네가 챙긴 걸 가져가겠어. 네가 챙긴 건 다 네 거야.”
“감사합니다! 열심히 할게요!”
이다비는 태현의 손을 잡고 폴짝폴짝 뛰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나쁘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나쁜 사람은 아니었잖아? 역시 케인 저 사람이 과장을 한 것 같아.’
태현은 친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불행하게도 이다비가 그 표정에 담긴 속마음을 알아차리기에는 태현과 보낸 시간이 너무 적었다.
케인이었다면 분명 알아챘을 것!
“적이다.”
“예? 어딥니까?”
“저 언덕 뒤에 숨어 있어.”
태현은 고대 뱀파이어의 권능 <몬스터 조종>을 톡톡하게 써먹고 있었다. 작은 새들을 불러서 정찰용으로 보낸 것이다.
얼핏 보면 사소한 스킬이지만 태현은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저기도 적이고, 여기도 적이고……. 이제 슬슬 부딪히지 않으면 못 들어가겠군.’
태현은 로이를 불렀다. 악마들을 지휘할 수 있어서 신이 난 로이는 기대되는 얼굴로 달려왔다.
“뭘 하면 됩니까?”
“이제 싸워야 할 시간이다. 너는 오른쪽을 맡아. 저기 언덕 뒤에 적이 있으니까 마법 가능한 마족들한테 먼저 공격 쏟아붓고 시작하라고 해. 그러면 나는 옆으로 돌아서 포위를 할 테니까.”
막힘없이 나오는 태현의 말은 믿음직스러웠다. 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전력이라면 질 것 같지가 않았다.
“알겠습니다!”
“부하들을 좀 더 주지. 그리고 이 폭탄들도 가져가.”
“……!”
태현이 내미는 폭탄들을 받은 로이는 기쁜 표정을 지었다. 태현의 장기 중 하나는 기계공학. 그 정수인 폭탄이라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크핫핫. 아주 날 완전히 믿는군!’
폭탄을 받은 로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크기가 많이 작았던 것이다.
‘김태현은 기계공학 스킬 높아서 작게 만들었나? 왜 이렇게 작지?’
“좋아. 준비됐으면 가라고!”
“네!”
로이가 악마들을 이끌고 먼저 앞으로 달려 나갔다.
‘너무 많이 준 거 아냐?’
케인은 로이한테 왜 저렇게 악마들을 주나 싶었다. 남은 악마들은 기껏해야…….
“!!!!”
남은 악마들을 본 케인은 경악했다. 설, 설마…….
“야. 타라. 가자.”
남은 악마들은 전부 날개 악마들! 태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날개 악마 위에 타서 날아올랐다.
태현은 애초에 싸워서 돌파할 생각이 없었다.
에다오르가 살아 있었다면 보스 몬스터다운 위용으로 이 주변에 몰린 플레이어들을 상대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 에다오르는 태현이 잡은 상태.
남은 군세도 나뉘어서 위력이 팍 떨어진 상태였다.
그런 상태로 플레이어들이 몰린 곳을 돌파하는 건 멍청한 짓! 태현은 처음부터 뒤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 와중에 로이는 좋은 미끼가 되어주었다.
“다 탔지? 위로 날아올라! 최대한 높게 날아올라서 가자!”
“…….”
케인은 날개 악마 위에서 생각했다.
인간이 이래도 되나?
* * *
“야. 김태현이 악마 이끌고 온다는 게 정말이냐?”
“김태현이 악마 이끌고 올 수도 있지. 너 같으면 퀘스트 안 하겠냐.”
“근데 김태현은 그런 사람 아니잖아…….”
“야, 김태현도 사람이야 사람! 그런 퀘스트 있으면 나 같아도 하겠다.”
“너랑 김태현이랑 같냐?”
“시끄러워, 이것들아!”
“?!”
로이는 외침과 함께 공격을 개시했다. 떠들던 플레이어들은 화들짝 놀라서 무기를 들었다.
“니들이 좋아하는 김태현이 만든 폭탄이다!”
태현 앞에서 굽신거렸던 스트레스! 로이는 그걸 이 사람들 앞에서 풀 생각이었다.
“으아악!”
“피해!”
폭탄처럼 생긴 게 날아오자 플레이어들은 기겁해서 피했다. 방송을 본 사람들은 모두 저 폭탄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었다.
퐁!
그러나 폭발 대신 일어난 건 귀여운 소리였다.
“……?”
[폭탄 모양의 음성 장치를 작동시켰습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로이는 눈을 깜박였다. 방금 뭐라고?
-내가! 김태현이다! 모두! 덤벼라!
-콰콰쾅! 콰콰콰쾅!
아주 크게 울려 퍼지는 소리들!
누가 들어도 태현이 직접 폭탄 던지면서 난리를 피우는 소리였다.
녹음된 소리를 재생하는 장치, 기계공학은 이렇게 별로 쓸모없어 보이는 아이템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뭐? 김태현?”
“어디? 어디야?”
다른 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눈을 번뜩거렸다. 김태현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봤자 그런 것에 겁을 먹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
강하면 강할수록 잡을 시 보상이 커진다!
“김태현이 진짜 왔구나! 잡으러 가자!”
“역시 정정당당하게 정면 승부를 걸어올 줄 알았어!”
사방에서 들리는 소리에 로이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이, 이건……. 설마…….”
콰콰쾅!
“태현이 네 이노오오오오오오옴!”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 기계공학을 쓴 장치보다 더 크게 울리는 목소리였다.
바로 김태산이었다.
“어디 한 번 내 앞에서 성규한테 했던 것처럼 지껄여봐라!”
“…….”
“근데 어딨냐?”
“그러게요?”
김태산과 최강지존무쌍 길드원들은 태현은 안 보이고 악마들과 어디서 본 것 같은 플레이어만 있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아! 너 그놈이잖아! 깝치다가 죽은 놈!”
“아, 아닌데요.”
로이는 본능적으로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나 그 대답이 통할 리 없었다.
“김태현 어딨냐? 말해라. 말하면 살려주마.”
“……몰라! 나도 모른다고!”
“태현이 이 녀석……. 입단속 단단히 시킨 거 봐. 오냐! 말하기 싫으면 죽어야지!”
“진짜 모른다고 이 자식들아!”
로이는 울컥해서 무기를 뽑고 달려들었다. 최강지존무쌍 길드와 로이가 이끄는 악마들의 대결!
물론 승패는 정해져 있었다. 싸우고 있는 동안에도 플레이어들이 몰려오고 있었으니까.
“김태현 이 자식아!!!!”
* * *
“너 근데 그……. 김태산이란 사람이랑 싸우려는 거 아니었냐?”
“그딴 놈 도움은 필요 없어.”
간단명료한 태현의 대답!
김태산과 싸우는데 로이 같은 하찮은 플레이어를 끼워 넣을 생각은 없었다.
“좋아. 내려가자! 여기서부터 멈추지 않고 저쪽까지 쭉 달린다! 챙길 수 있을 만큼 모두 챙겨라!”
“예, 주인님!”
악마들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쐐애애애액!
“악마들이다! 악마들! 공중에서!”
“?!”
“뭐? 공중에서?! 쏴! 쏴버려!”
-아키서스의 축복!
설마 끌고 온 다른 악마들을 전부 버리고 허공에서 바로 들어올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도시 안에 있던 플레이어 몇이 화살을 쏘거나 마법을 갈겼지만 전부 회피!
콰콰쾅!
“애들아!”
태현은 에다오르의 대검을 들고 외쳤다. 땅에 착지한 악마들은 존경하는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털자!”
-우오오오오오!
태현의 외침과 함께, 나중에 <바르도 시 약탈>이라고 불리게 될 사건이 시작되었다.
악마들이 상점 건물 하나에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등에 짊어지고 있던 가방이 두둑해졌다.
“야, 안 막아?”
“너, 너는?”
“저걸 어떻게 막냐? 우리끼리?”
남아 있던 플레이어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태현과 악마들은 숫자는 비교적 적었지만 기세가 워낙 흉흉했던 것이다.
결국 그들이 하는 건 그냥 지켜보는 것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