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98화
서로 합의가 끝나자, 태현은 재빨리 악마들을 수습해서 바르도 시로 방향을 잡았다.
깽판을 쳐도 다른 악마들이 가서 깽판을 칠 때 같이 쳐야지, 나중에 따로 갔다가는 덤터기를 쓸 수 있었다.
“지금 부하들이 대충…….”
태현은 악마들의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200마리 가까이 되는 악마들!
‘전술 스킬이 아쉽네. 더 올렸으면 더 많이 부릴 수 있었을 텐데.’
태현의 전술 스킬은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었다. 부하로 부리는 악마들 각각이 약하지 않았기에 적게 부릴 수밖에 없었던 것!
중급 날개 악마, 덩치 큰 대형 중급 악마, 중급 흑마법사 마족들…… 구성은 다양했다.
태현은 공적치 포인트를 써서 그들 중 몇몇의 등급을 올렸다. 싸움을 위한 대비였다.
“좋아. 상급 날개 악마에…… 이 정도면 됐겠지.”
“그런데 그 양성규라는 분, 그렇게 공격해도 되는 거 맞아요? 아는 사이 아니었어요?”
움직이는 악마들 사이에서, 이다비는 태현에게 말을 붙였다.
어쩌다 보니 태현과 같은 배를 타게 됐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이건 기회였다.
다른 사람들은 같이 다니고 싶어도 같이 다니지 못하는 태현 아닌가. 물론 이번 퀘스트가 도시를 박살 내는 악마들과 함께하는, 매우 불길한 퀘스트긴 했지만…….
기회는 기회!
이다비는 이번 기회에 태현에 대해 알아낼 수 있을 만큼 알아내고 싶었다.
“아버지 친구.”
“네?!?!”
아버지 친구를 그렇게 몇 번이고 공격해도 되는 건가?!
“아, 아버지 친구분이신데 그래도 돼요?”
“괜찮아. 괜찮아.”
“어…… 아버지께서 화내시지 않을까요?”
“괜찮아. 아버지도 곧 쓰러뜨릴 거거든.”
“…….”
이다비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지금 농담하는 건 아니겠지?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태현은 가정교육을 판타지로 받은 게 분명했다.
“그보다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좀 부르지?”
“저희 길드원들은 좀…… 약해서…… 제 말도 잘 안 듣고…….”
“…….”
태현이 안쓰럽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자 이다비는 순간 발끈했다.
물론 이해는 가지만!
“그러게 다단계식으로 좀 모으지 말고 탄탄하게 조직을 만들었어야지.”
“남한테 그런 소리 들을 이유 없거든요? 그리고 다단계도 아니에요!”
“다단계지 뭘…….”
태현은 그렇게 말하며 아이템을 확인했다. 뒤에는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따라오는 악마들이 보였다.
전부 다 아발랍 시에서 박박 긁어모은 전리품들!
‘저거 처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계속 들고 다닐 수는 없고…… 아.’
“루포.”
“네?”
“맥크레니한테 연락해서 큰 상선 좀 갖다 놓으라고 해.”
“어디로요?”
“바르도 시 주변에. 탈 수 있으면 어디든 좋아.”
“……태현 님. 지금 악마들이 바르도 시로 공격을 가는데, 바르도 시 주변에 맥크레니 상단의 배를 갖다 놓으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당연히 위장을 해서 갖다놔야지. 해적선으로 위장을 하든 뭐로 하든 안 들키게 알아서 하라고.”
태현은 별생각 없이 해적선을 예시로 들었다. 이게 나중에 어떻게 돌아올지 모르고.
그러나 루포는 여전히 불안한 표정이었다.
“그러다 들키면요? 맥크레니 님이 허락을 안 하실 것 같은데요.”
“하하. 루포. 맥크레니한테 이렇게 전해.”
“……?”
“상선 안 갖다 놓으면 바르도 시 가서 난리 칠 때 ‘나는 아탈리 왕국의 백작 김태현이다! 맥크레니 상단과 매우 친하다!’라고 외치면서 난리 칠 거라고.”
“그런 미친 짓은 왜 하십니까?!”
“망할 거면 같이 망해야지.”
루포는 태현이 진심이라는 걸 깨달았다. 루포는 고개를 푹 숙이더니 연락을 하기 위해 움직였다.
아발랍 시에서 대량으로 챙긴 전리품과 별개로, 태현은 에다오르와 양성규한테서 뜯어낸 전리품을 확인하기 위해 상태창을 켰다.
세상에서 가장 즐거울 때가 보스 몬스터를 잡고 아이템을 확인할 때!
에다오르의 뜨겁게 끓어오르는 진홍빛 대검:
내구력 550/550, 마법 공격력 275
스킬 ‘하급 악마 소환’, ‘악마들의 진격’, ‘악마 강화’, ‘승급’, ‘끓어오르는 지옥’ 사용 가능.
착용 시 악마들의 공격에 저항력. 신성력에 취약해짐, 공격 시 일정 확률로 마력 흡수.
레벨 제한 225. 힘 제한 600. 지혜 제한 600.
마계의 악마 에다오르가 사용하는 주무기다. 에다오르의 기술을 담고 있는 이 무기는 보통의 방법으로는 손에 넣을 수 없다.
만약 손에 넣었다면 에다오르가 되찾기 위해 찾아올 것이다. 반드시!
아이템 등급:전설
“……!”
처음 손에 얻은 전설 등급의 아이템. 태현은 침을 삼켰다. 더 좋은 건 <장비 강제 착용> 스킬을 얻은 덕분에 제한을 무시하고 이 무기를 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에다오르가 찾아올 수 있다는데…… 에이, 몰라. 바로는 못 나오겠지.’
마계에서 인간계로 온 악마가 죽어서 다시 마계로 돌아갔는데 바로 돌아올 수는 없을 것이다.
에다오르의 왼쪽 뿔:
수많은 악마를 통솔하던 에다오르의 정수가 담겨 있는 왼쪽 뿔이다. 사용하면 흑마법 스킬의 상승과 동시에 흑마법 <악마 소환>을 배울 수 있다.
사용 시 악명 1000 상승. 행운 150 감소.
전에 배웠던 언데드 소환 마법과 비슷한 효과였다. 더 강력한 마법과 더 강력한 페널티라는 걸 빼고.
‘악명은 에다오르 잡은 것 때문에 명성 올라서 견딜 만하고, 행운이야 뭐 미친 듯이 넉넉하니…….’
태현은 망설이지 않고 사용했다. 지금은 페널티 좀 받더라도 계속해서 성장을 시켜야 할 때였다.
-사용.
[에다오르의 왼쪽 뿔을 사용했습니다.]
[초급 흑마법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초급 흑마법 스킬이 중급 흑마법 스킬로 변합니다.]
[초급 언데드(망령) 소환 스킬이 중급 언데드(망령) 소환 스킬로 변합니다.]
[중급 악마 소환 스킬을 얻었습니다.]
[현재 지휘 가능한 악마 숫자가 한계에 도달한 상태입니다. 더 이상 소환할 수 없습니다.]
‘마법 스킬이 많이 부족하긴 해도 흑마법, 거기서 소환 쪽은 나름 중급까지 찍긴 했네.’
신의 화신이란 직업을 갖고서 흑마법 스킬들만 마구 올리니 기분이 좀 묘했다.
-주인이여. 흑마법 같은 사이한 건 다루지 않는 편이 좋다!
에다오르가 죽고 나서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게 된 용용이가 태현의 상태를 보고 기겁을 했다.
몸에서 풀풀 피어오르는 사악한 오오라!
-나 지금 악마가 쓰던 대검도 들 생각인데.
-…….
용용이가 질색을 하거나 말거나, 태현은 대검을 들고 외쳤다.
“부하들아! 우리도 바르도 시로 간다! 부수고! 태우고! 뺏자!”
“크아아아아아아!”
태현의 부하 악마들은 태현의 고함에 호응하듯이 따라 소리 질렀다.
[악마들이 당신의 지휘에 기뻐합니다.]
[이동 속도가 올라갑니다.]
이다비는 진지하게 궁금해졌다. 그녀와 달리 태현은 방송도 하는 사람이었다.
‘이미지 관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저기요. 김태현 플레이어는 이미지 관리를 안 해요?”
이다비는 케인을 붙잡고 물어보았다. 그나마 여기 있는 사람 중에서는 가장 만만해 보이는 게 케인!
케인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이다비를 보며 대답했다.
“저게 하는 놈 같냐?”
“방송 보면 이미지 되게 좋게 나왔잖아요.”
“그게 다 사기라고! 사기!”
케인은 옳다구나 하고 울분을 풀어놓았다. 그나 태현이나 똑같이 사고를 치고 다녔는데, 왜 그는 쓰레기가 되고 태현은 선량한 마음을 가진 정의의 영웅이 된단 말인가!
케인은 있었던 일들을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이다비는 귀찮았지만 표정을 잘 관리하며 들었다.
“저런.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다음에는요?”
케인의 고백은 마치 주인한테서 탈출한 노예가 털어놓는 것 같은 절절함이 있었다.
듣는 이다비는 다시 한번 감탄했다.
‘나도 길드원들을 저렇게 다뤄야 해!’
아주 못된 것만 본받으려고 하는 모습!
케인은 이다비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계속해서 떠들어댔다.
* * *
-죄송합니다. 형님.
-아니 이 자식아! 태현이한테 넘어가지 말자고 한 놈이 그새 속아 넘어가!? 내가 말했잖아! 그놈이랑은 그냥 거래도 하지 말라고! 그놈이랑 대화를 하면서 뭔가 속여서 이득을 보려는 생각을 버려! 잔머리 굴리는 건 당해낼 수가 없다니까!
김태산은 양성규한테서 소식을 듣고 가슴을 쳤다. 그래도 머리 굴릴 줄 아는 양성규가 저렇게 호구를 잡혀서 휘둘리고 오니 답답했다.
-잘 들어라. 태현이 보면 무조건 튀거나 싸우거나 둘 중에 하나다! 괜히 대화하지 마! 손해만 볼 테니까!
김태산은 그렇게 말하고 한숨을 푹푹 쉬었다.
‘이놈 시키 아주 신이 나가지고 오고 있겠군……!’
“저, 저기! 악마들이 나타났습니다!”
“?!”
바르도 시 주변에 악마 군세들이 도착했다. 태현의 무리와 갈라져서 먼저 출발한 군세들!
소식을 들은 플레이어들은 알아서 바르도 시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바르도 시를 지키려는 플레이어들, 악마를 잡고 경험치와 보상을 받으려는 플레이어들, 아니면 그냥 이 거대한 퀘스트에 직접 참여해서 구경을 하고 싶어하는 플레이어들…… 목적이야 다양했다.
그리고 그사이 김태산과 최강지존무쌍 길드원들이 있었다.
“악마들 왔다! 공격해!”
“내가 먼저 친다! 따라 들어와!”
곳곳에서 벌어지는 싸움들! 바르도 시 근처는 순식간에 난장판으로 변했다.
* * *
“정말 대단한 솜씨십니다. 저는 감히 따라갈 수도 없…….”
“그래. 그래.”
로이는 태현의 옆에서 최대한 겸손한 태도로 아부를 했다. 그러나 태현은 시큰둥했다.
‘이 자식은 왜 이렇게 반응이 약해?’
보통 이렇게 노골적으로 아부를 하면, 싫어하는 것 같아도 속으로는 좋아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태현은 그런 티가 전혀 나지 않았다.
‘상관없지. 나는 바르도 시만 가서 그놈이 박살 나는 것만 보면 되니까.’
둘을 싸움 붙이고 그 사이에서 이득을 보려는 게 로이의 계산이었다.
에다오르를 처치할 때 끼지 못했지만, 그 결과만 보면 태현의 실력은 역시 대단했다. 방송에서 본 게 과소평가 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다른 랭커들하고 부딪히지 않아서 그렇지, 분명 어디 가서 밀리는 실력은 아니다. 그놈하고 싸움 붙이면 충분히…….’
그리고 그러다가 기회가 되면 태현도 손 좀 봐주고. 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현이 에다오르한테서 뭘 얻었는지 생각하면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놈은 언제 처리하는 게 좋을까.’
로이는 태현의 실력은 인정해도 음모력은 무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였다.
사람 엿 먹이는 실력을 비교한다면 로이는 태현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
태현은 로이가 뭐하는 놈인지 이미 다 파악하고 있었다.
‘그냥 죽여도 되지만 좀 더 좋은 방법이 있을 텐데…….’
태현은 하품을 하며 고민에 잠겼다. 너무 평화로운 표정이라 로이는 태현이 무슨 살벌한 생각을 하는지 꿈에도 몰랐다.
“아. 그러면 되겠군.”
“……?”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로이. 너도 꽤나 레벨이 높아 보이는데, 악마들을 좀 이끌어 보지?”
“제, 제가요?”
“왜, 싫어?”
“……좋습니다! 이끌어 보겠습니다!”
로이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한테 부하까지 내주다니. 완전히 믿는다는 것 아닌가.
아직은 배신할 생각이 없었지만, 나중에 배신하기 더 좋아진 것이다.
“그래. 그래. 너 정도 되는 플레이어가 악마들을 이끌어주면 내가 부담이 좀 덜하지.”
“감사합니다!”
태현은 로이의 어깨를 툭툭 치며 악마들을 넘겨줬다. 로이는 보지 못했다. 태현의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감돌았다가 사라지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