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96화
“그거 술 받았을 때나 쓰시지 그랬어요.”
부들부들!
물론 이런 주문서를 하나 낭비했다고 양성규가 억울해하는 건 아니었다. 어차피 돈은 남아돌았으니까.
그렇지만 옆의 태현이 기름을 부었다. 얄밉게 깐족거리는 데에는 타고난 재능!
이다비는 양성규가 부들부들 떠는 걸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비싼 아이템 그냥 날려서 저러는구나. 너무 아깝다.’
저거 하나면 골드가 얼만데!
“나…… 한테는 별거 아니다.”
“뭐 그러시겠죠. 그렇다고 믿고 싶으시겠죠.”
“…….”
양성규를 놀리던 태현은 이다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이제 에다오르를 잡을 계획을 짜야 하는데…… 너 투기장에서 썼던 스킬 에다오르한테 쓸 수 있냐?”
“네?!”
이다비는 화들짝 놀랐다. 투기장에서 썼던 스킬이라면 <녹인 황금의 저주>.
공격력은 없지만 상대의 발을 완벽하게 묶어버리는 강력한 스킬이었다.
문제는…….
“그거 골드가 많이 들어가는데요…….”
“얼마나?”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더 많이요.”
태현은 이다비가 왜 저러는지 알아차렸다. 돈 좋아하는 그녀로서는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에다오르를 잡기 위해 네 골드를 써라! 이런 소리라도 들을까 봐 저러는 거겠지.
“뭐, 아저씨가 골드 좀 주시면 되겠네.”
“?!”
“골드 많잖아요?”
“많긴 한데 왜 내가 줘야 하냐!”
“아저씨. 에다오르가 죽으면 누가 좋습니까? 아저씨가 좋잖아요. 에다오르가 안 죽으면 군세가 어디로 간다?”
“……준다, 내가 주마!”
이다비는 싱글벙글.
양성규는 찜찜한 표정이었다.
-야. 진짜 에다오르 잡을 거냐?
옆에 있던 케인이 몰래 귓속말로 속삭였다.
-그러면 가짜로 이러겠냐?
-잡을 수 있냐? 보통 보스 몬스터도 아니잖아.
케인이 걱정하는 것도 당연했다. 에다오르는 쉽게 잡을 수 있는 보스 몬스터가 아니었다.
흔하게 나오는 작은 던전의 보스 몬스터는 파티 하나 정도로 잡을 수 있지만, 에다오르 같은 보스 몬스터를 잡으려면 기본적으로 파티 여럿에다가 다른 NPC들 지원까지 추가로 동원해야 했다.
그 마르덴 후작을 잡기 위해서 무슨 짓을 했었는가.
백작을 설득해서 백작의 군대를 빌리고, 잔뜩 함정을 파고, 성 안에 있던 재료를 전부 써서 폭탄을 만들어야 했다. 마지막에는 성벽째로 날려버리기까지.
그랬는데도 힘들었던 레이드!
에다오르도 만만치 않은 보스 몬스터였는데, 지금 그들은 다른 파티도 없고 다른 NPC들의 지원도 없었다. 게다가 태현의 장기인 기계공학도 지금 재료가 많이 부족한 상황.
-잡을 수 있다.
그러나 태현은 믿고 있는 구석이 있었다.
아키서스 교단의 신성한 단검:
내구력 1/1. 공격력 ?
일정 확률로 즉사 발동. 사용 시 파괴됨.
이건 아키서스가 내려와서 만들고 간 게 아닌지 의심해야 하는 단검이 아니다. 아키서스가 직접 만들었으니 말이다.
아키서스가 쓰는 아이템에게 있어서 ‘일정 확률’은 의미가 없었다. 기본적으로 엄청난 행운을 업고 가는 신.
즉 이건 일회용 즉사기나 다름없었다.
‘아깝지만…… 아까워하면 안 되지. 아끼면 X된다.’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아까워서 망설였을 아이템이었지만 태현은 망설이지 않았다.
쓸 수 있을 때 써라!
‘일단 에다오르 발 묶고, 직속 부하들 처리한 다음에, 한 대만 찔러넣을 수 있으면 잡을 수 있다고 봐야 한다. 별로 어렵지는 않겠지.’
태현의 행운이 있다면 이 신성한 단검은 거의 무조건 발동될 것이다.
‘발동 안 될 확률은 아무리 높게 잡아봤자 1%도 안…… 잠깐.’
갑자기 데자뷔처럼 떠오르는 기억.
이세연과의 대결! 1%도 안 되는 확률 때문에 제대로 엿을 먹었던 일.
‘……에이. 그건 옛날 일이고.’
태현은 고개를 저었다.
* * *
합의가 끝나자 계획은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애초에 여기 모인 플레이어들은 초보자가 아니었다.
다들 어디서 한가락씩 하는 플레이어들!
하다못해 구박을 받는 케인도 전 길드 마스터 출신이었고 이다비는 파워 워리어 이미지가 그래서 그렇지 숫자만 보면 대형 길드 길마였다.
“오래 걸리면 에다오르 직속 부하들이 달려오니까 바로 끝내야 해.”
“그런데 에다오르는 계속 부하들 데리고 있잖아?”
누가 악마 아니랄까 봐 불러낸 악마들을 계속 거느리고 다니는 에다오르였다.
“떨어뜨려 놔야지. 다 떨어뜨리지는 못해도 몇 명만 남겨도 충분히 할 만하잖아.”
“어떻게 떨어뜨리게?”
“꼬셔서 끌고 나오면 될 것 같은데…….”
“악마가 뭘 좋아하지?”
다들 웅성거리며 머리를 굴렸다. 에다오르는 악마. 에다오르를 속여서 데리고 나오려면 뭐가 필요할까?
“피?”
“사람?”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은 태현은 깔끔하게 결론을 내렸다.
“케인을 바치면 되겠군.”
“왜 나냐?!”
“바친다는 게 아니라 바치는 척만 할 거야.”
“바치는 척만 하는 것도 싫어! 다른 놈 좀 시켜라!”
“너 말고 할 사람이 없는데. 그리고 내가 새로 갑옷도 만들어줬잖아. 받았으면 밥값을 해라.”
“원래 갑옷 터뜨린 놈이 누군데! 너 새로 만든 갑옷에도 그런 짓 한 거 아니냐!?”
“하하. 그럴 리가 있냐. 저번만 그런 거야. 저번만. ……예리한 자식.”
“뭐라고?”
“아무것도 아냐. 어쨌든 척만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태현과 케인의 대화를 듣던 이다비가 태현에게 물었다.
“역시 그 투기장 갑옷은 직접 만드신 거예요?”
“그렇지.”
“그거 만드는 데 재료가 많이 들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하나요?”
“아니. 별로 유니크한 아이템은 아니야. 대충 급하게 만든 건데.”
“……!”
이다비의 머릿속에서 순간 한 장면이 떠올랐다.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폭탄이 내장된 갑옷을 입고 우르르 덤벼드는 장면!
‘아, 너무 멋져!’
생각만 해도 짜릿했다. 이다비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하는 걸 본 태현은 고개를 저었다.
‘얘도 멀쩡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 * *
“뭐라고? 감히 내 술을 받고 도망을 치려고 해? 그런 놈이 있다니!”
“아주 나쁜 놈입니다. 제가 붙잡고 얼마나 놀랐는지…….”
“인간 중에서 쓸 만한 놈이 너밖에 없군, 김태현 백작!”
[에다오르의 친밀도가 오릅니다.]
[강력한 적을 상대로 화술 스킬에 성공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잘 속아서 좋긴 한데, 이 악마 날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닌가?’
에다오르는 쿵쿵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막사 주변에 있던 악마 중 일부가 따라왔다.
‘여섯, 일곱…… 뭐 저 정도면 할만하겠네.’
대부분이 자리에 남은 걸 본 태현은 안심했다.
“그래서 그놈은 어디에 있냐!”
“저기에 잘 묶어놨습니다!”
“잘했다! 내가 직접 놈을 먹어치우겠다.”
에다오르는 허공에서 활활 타오르는 검을 뽑아내더니 손에 들고 움직였다.
인간 크기의 종족에게는 커다란 대검으로 분류되겠지만, 거인과 크기가 맞먹는 에다오르에게 저 정도 검은 그냥 가볍게 휘두를 수 있는 검이었다.
그리고 태현은 그걸 보고 생각했다.
‘저 검 뺏을 수 있으려나?’
언제나 쉬지 않고 노리는 뒤통수!
에다오르는 충성스러운 태현이 옆에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채 움직였다.
“저놈이냐?!”
“예! 그렇습니다!”
“…….”
멀리서 나타난 에다오르와 태현, 그리고 악마들을 본 케인은 속으로 욕했다.
‘왜 맨날 나만 이런 역할이야?’
불만이 많았지만 케인은 참고 무릎을 꿇은 채 버텼다. 솔직히 저 악마들보다 태현이 더 무서웠다.
이번 일을 실수로 망치기라도 한다면 태현은 악마가 무엇인지 직접 보여줄 놈이었다.
그걸 본 이다비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런 역할도 아무렇지 않게 하다니. 정말 대단한 충성심이야! 우리 길드원들도 저랬으면 좋겠어!’
점점 깊어가는 오해!
“어디 이 하찮은 미물이 내 술을 받고서 도망칠 생각을 한단 말이냐! 네 이놈! 인간 주제에!”
에다오르는 케인 앞에 서서 케인의 머리를 잡았다.
“너를 처형해서 본보기를 보여주겠다. 할 말이라도 있느냐?”
“내가…….”
“……?”
“무릎을 꿇은 건 추진력을…….”
케인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며 멋진 대사를 읊으려고 했다. 태현에게 불평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좋은 기회였다.
멋있게 보일 기회!
이미지를 회복할 기회!
에다오르 앞에서 무릎을 꿇다가 기습을 먹이는 역할을 맡게 된 이상,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야 했다.
분명 태현의 방송이 나온다면 하이라이트가 될 것이니까.
“얻…….”
-아키서스의 축복.
“……?”
갑자기 걸리는 버프에 케인은 움찔했다. 벌써 버프를? 물론 태현의 버프 스킬이 사기적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지속 시간은 매우 짧았다.
그러나 그 이유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콰콰콰콰콰콰쾅!
[회피에 성공합니다.]
“으억!?”
“……이 개XX야!”
폭발하는 갑옷과 투구! 케인은 욕설을 내뱉으며 에다오르에게 달려들었다.
자폭해서 미안하다고 다시 만들어준 갑옷에 또 자폭 기능을 넣는 놈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불평을 한가득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움직여야 했다. 자폭 덕분에 에다오르는 데미지를 입었다. 케인은 때맞게 걸린 버프 덕분에 회피에 성공했고.
“쳐라!”
폭발이 터지자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던 다른 플레이어들이 공격을 개시했다.
-녹인 황금의 저주!
“들어갔어요! 들어갔어!”
이다비가 환성을 내질렀다. 골드를 쏟아부은 보람이 있었다. 양성규도 지지 않고 스킬을 썼다.
-오크 투사의 울부짖는 함성!
“이 인간 놈들이 감히 배신을?! 그러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에다오르는 바로 술에 담긴 독을 작동시켰다. 물론 이미 다 해독된 상태였다.
“뭐라, 독을 해독해?! 김태현 백작!”
에다오르가 태현을 부르자 다들 긴장했다. 배신을 주도한 태현을 공격하려는 것인가?
“김태현 백작! 이놈들을 처리해라!”
“……이 멍청한 악마 놈! 아직도 상황을 모르네!”
케인은 그렇게 말하며 대검으로 에다오르를 후려쳤다. 이다비한테 당한 덕분에 에다오르의 발목은 묶인 상태.
과녁이나 다름없었다.
[에다오르의 끓어오르는 붉은 오라가 공격을 방어해냅니다.]
[데미지가 되돌아옵니다.]
[회피에 성공합니다.]
“?!”
사기적인 스킬 창을 본 케인은 경악했다. 태현의 버프가 아니었다면……
휙-
에다오르가 고개를 돌려 케인을 쳐다보자 케인은 움찔했다.
“하, 하하하…….”
“…….”
갑옷과 투구도 자폭 때문에 박살 난 상황! 케인은 욕설과 함께 재빨리 예전에 쓰던 장비를 찾아 입으려고 했다.
쾅! 콰쾅! 콰콰쾅!
그리고 그런 케인을 향해 내리치는 에다오르의 일격!
[회피에 성공합니다.]
[회피에 성공합니다.]
“뭐냐, 이놈! 이상한 기술을 쓰다니. 김태현 백작! 김태현 백작! 이놈들을 처리해라!”
“…….”
비싼 포션(양성규에게서 뜯어낸)을 빨고 다음 스킬을 준비하던 태현은 좀 미안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솔직히 저 정도면 눈치를 채야 하지 않나?
“대체 NPC 친밀도를 얼마나 올린 거예요?”
“올리려고 올린 게 아닌데…….”
태현은 고개를 저으며 스킬을 사용했다.
새로 얻은 권능, <아키서스의 신성 영역>!
파아아아아아아앗!
눈부신 흰 빛이 하늘로 솟구치더니, 태현을 중심으로 넓은 원이 퍼져나갔다.
‘이건…… 사제 스킬?’
이다비는 깜짝 놀라서 태현을 쳐다보았다. 도저히 직업을 종잡을 수 없는 스킬들!
‘진짜 정체가 뭘까?’
수많은 시청자가 계속 궁금해해 왔지만 아직도 답이 나오지 않은 그 대답!
이다비는 오늘 혹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만 되면…… 부르는 게 값일 거야!’
행복한 꿈에 부푸는 이다비였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뒤로 에다오르가 데리고 온 직속 악마들이 덤벼들었다.
“야, 뒤! 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