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93화
“어떻게 된 거야?”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 한 사람 몇 명은 그렇게 떠들었지만 머리가 조금이라도 돌아가는 사람들은 다들 어떻게 된 건지 파악한 상태였다.
태현이 길드들의 뒤통수를 모조리 다 한 대씩 후려갈기고 최종으로 승자가 된 것!
물론 안에서 싸움이 시작될 때만 해도, 구경을 하는 사람들은 태현의 승산을 높게 쳐줬다.
“그래도 김태현인데 꽤 오래 버티겠지.”
“야. 김태현이면 저기서 끝까지 살아남을걸? 투기장에서도 우승했잖아.”
“투기장이랑 같냐? 저기 지금 길드원들 다 몰려서 싸우고 있는데.”
“그래도 김태현 다른 길드랑 손잡은 거 같은데?”
“이러면 쑤닝 길드가 불리하지. 김태현이랑 다른 길드 연합이 이기겠다.”
이때만 해도 사람들은 태현이 모두의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단독으로 승자가 될 거라고는 상상치도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지는 상황들!
“……다른 길드 다 죽었냐?”
“다 죽은 거 같은데? 지금 남은 사람들 성문 밖으로 나오는데…….”
“크라잉 해머 길마 로그아웃했다는데요?”
도시 주변에서 구경하고 있던 플레이어들도 시끄러웠지만, 그걸 생방송으로 보고 있던 다른 플레이어들의 반응은 더 격렬했다.
-어떻게 된 거야??
-김태현이 진짜 다 죽임?
-야. 어떻게 혼자서 다 죽이냐? 그 에다오르한테 받은 부하들이랑 배신으로 이긴 거지.
-말은 쉽게 하네. 그거 네가 할 수 있냐? 그것도 다 능력이거든?
-그보다 NPC들 지휘하는 것도 전술 스킬 없으면 페널티 심할 텐데 김태현은 페널티 없나? 대체 직업이 뭐야?
-진짜 김태현 직업 아는 사람 없냐? 일반 직업 중에 저런 직업이 있을 것 같지가 않은데.
-지금 김태현 빨 때입니까? 어떻게 저런 배신을 할 수 있습니까? 투기장 때도 그렇지만 김태현 인성이 지금 나오지 않습니까?
-?
-쟤 뭐래냐?
-너 어디 길드원이니?
-저 길드원 아닙니다.
-김태현이 우리 건드린 것도 아니고 길드 박살 냈는데 왜 우리가 김태현을 까냐. 지금 김태현한테 화낼 사람은 길드원밖에 없는데? 너 진짜 아발랍에 있던 길드원 맞지? 길마가 시켰지?
어떻게든 태현을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음흉한 놈’으로 몰려던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집중포화를 맞고 사라졌다.
도시와 함께 길드 몇 개를 박살 냈는데도 이렇게 반응이 좋은 건 태현밖에 없을 것이다.
‘이게 뭔 개소리야?!’
도시에서 한참 싸우던 케인은 갑자기 생각이 나서 방송을 확인해 보았다.
원래 레드존 길마였을 때 본격적으로 방송을 했던 케인이었다. 지금이야 쫄딱 망한 탓에 쪽팔려서 방송도 하지 않고 있지만…….
태현의 방송에 자기가 조금 나오는 건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방송으로 지금 아발랍 시가 나오고 있나 확인만 해보려고 한 거였는데…….
이 시청자들은 뭐가 좋다고 태현을 빨고 있단 말인가!
‘아니, 지금 뒤통수에 뒤통수 쳐가면서 배신하고 있는 놈을 대체 왜 좋아하는 거야?!’
사람들에게 아발랍 시에서 깽판을 치고 있던 대형 길드는 악당 이미지였다.
그런 길드 상대로 더 심한 깽판을 치고 있는 태현은 자동으로 악당과 싸우는 영웅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게다가 원래 이미지가 좋았던 탓도 있었다.
아직 폭탄 갑옷으로 앙금이 남아 있었던 케인은 싸우는 와중에 댓글을 달았다.
-김태현 인성이 뭐가 좋냐! 투기장 우승도 봐라. 그거 자기 따르는 부하한테 폭탄 갑옷 입혀서 자폭시키는 거. 그게 보통 사람이 할 생각이냐! 와, 나는 보고 소름이 돋았다!
-길드원 아직도 있었냐? 너 쑤닝 길드냐 크라잉 해머 길드냐?
-그거 케인이 스스로 태현을 위해서 한 거라고 이미 말했거든?
-맞아. 김태현이 설마 시켰겠냐.
‘내가 언제 그랬어 이 XX들아!!’
이제는 하지도 않은 말까지 소문으로 돌고 있는 상황!
케인은 미치고 팔짝 뛸 것 같았다.
“야! 뭐하냐! 저기 골목으로 성기사 한 명 튀었으니까 가서 잡아!”
“아, 알겠어.”
태현의 부름에 케인은 원통한 마음으로 방송을 끄고 움직였다.
* * *
그리고 현재.
태현은 방송에서 뭔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고 로이와 마주 보고 있었다.
“그래서 길드 이름이 로켓단?”
“아니라고 했잖습니까!”
로이는 다시 한번 울컥했다. 여기 오기 전에, 그는 몇 번이고 다짐했다.
‘김태현 앞에서 내가 어떤 놈인지 절대로 들켜서는 안 된다.’
이제 태현을 얕보는 플레이어들은 없었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태현을 랭커로 추측하고 있었다.
물론 레벨은 아니었지만.
‘지금 싸울 수는 없지!’
랭커끼리의 싸움은 어지간해서는 잘 일어나지 않았다. 서로 잃을 게 많았으니까.
게다가 완전한 상태에서도 태현은 상대하기 꺼림칙했는데, 지금 로이는 김태산한테 죽은 것 때문에 잃은 게 많은 상황.
들켜서 부딪혔다가는 위험했다.
‘김태현 성격에 내가 뭐하는 놈인지 알면 위험하겠지. 분명 공격할 거야.’
로이는 이전 방송만 보고 태현을 오해하고 있었다.
정의롭고 선량한, 정정당당한 길을 걷는 그런 플레이어! 그렇지 않다면 그 케인을 착하게 만들어서 데리고 다닐 이유가 없었다.
하다못해 아발랍 시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제대로 봤으면 조금 생각이 달라졌을 수도 있었겠지만, 로이는 태현이 아발랍 투기장에 있다는 소식만 듣고 바로 오느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간단하게만 말로만 들은 상태였다.
-뭐야. 아발랍 시가 왜 이렇게 됐지?
-투기장에서 악마 나왔잖아요. 못 봤어요?
-뭐? 악마가 나왔다고? 그러면 김태현은? 설마 죽은 건 아니지?
-김태현은 도시 안에 있을걸요. 지금 악마 관련해서 퀘스트 깨고 있는 거 같던데. 다른 길드들은 다 쓸려나가고요.
-그래? 잘됐네.
로이는 신이 나서 아발랍 시 안으로 들어갔고, 이렇게 태현을 만나게 된 것이다.
로이는 선량한 표정을 지으려 애썼다. 태현이 신경을 긁었지만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떨리는 손끝!
부들부들!
로이의 표정을 본 태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놈 평소에 성질을 얼마나 부리고 다녔으면 이렇게 티가 나냐?’
뭔가 되게 선량한 척을 하려고 애쓰는데, 속으로는 열 받은 게 너무 잘 보였다.
태현은 이런 부류의 사람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판타지 온라인 1에서부터 2까지 태현의 먹잇감이었으니까.
PK 좋아하는 속 검고 꿍꿍이 있는 놈들!
‘표정도 표정이고 장비 보니까…… 저거 PK 전용 장비네. 손잡이에 PK용으로 보석 주렁주렁 박아 넣은 거 봐라. 아주 광고를 해요. 연기를 할 거면 좀 그럴듯하게 하던가…….’
태현은 속으로 혀를 찼다. 태현의 기준에서 저렇게 성의 없게 연기를 하는 로이 같은 사람은 도저히 봐줄 수가 없었다.
연기를 하려면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여기는 무슨 일로 왔지?”
“방송 꾸준히 챙겨보고 있었습니다! 팬입니다!”
로이는 태현의 경계심을 풀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자 그걸 본 케인은 옆을 보고 헛구역질을 했다.
‘뭐야, 저놈은? 왜 저래?’
로이는 케인을 보고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케인은 태현에게 엄청난 충성심을 보인다고 들었는데……?
“그래. 내 팬인 건 알겠고. 왜 왔냐고.”
“어…… 흠흠. 그러니까…….”
로이는 살짝 헛기침을 하고 연기를 할 준비를 했다. 눈가를 자극해서 눈물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며 태현은 고개를 저었다.
“케인, 저 모습을 봐라.”
“왜?”
“연기를 못하면 저렇게 추하다. 너도 앞으로 누구 앞에서 연기할 때에는 저걸 떠올려.”
“……난 저 정도까지는 아니다.”
“네가 그 산맥 속에서 연기한 게 딱 저 수준이었어. 자식아. 아닌 척하기는…….”
“내가 언제!”
“콜록콜록!”
둘이 수군거리며 떠들자 로이는 주목을 끌기 위해 헛기침을 다시 했다.
“그래, 뭐라고 했지?”
“네. 여기에 왜 왔냐면…….”
로이가 말한 사연은 구구절절했다. 그는 바르도 시 주변에서 평화롭게 퀘스트를 클리어해 가며 살던 선량한 플레이어였는데, 어느 날 <최강지존무쌍>이라는 흉악한 길드와 김태산이라는 길마가 그와 그의 친구들을 습격해 PK를 한 것이다.
“저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이 평화로운 판타지 온라인에서 다른 사람을 죽이다니!”
“……?”
케인은 태현이 말하는 걸 보고 미친놈 보듯이 쳐다보았다.
‘넌 방금까지 길드 세 개를 통째로 몰살시켰잖아 이 자식아!’
얼굴에 아다만티움 판을 깔아도 저 정도로 뻔뻔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그런 놈들은 모조리 잡아서 묻어버려야 해. 그렇지?”
“맞는 말이십니다!”
“그런데 그 길드한테 당한 거하고 내가 무슨 상관이지? 내가 도와줄 거라 생각하고 온 건가?”
아버지 김태산의 이름을 여기서 들을 줄은 몰랐지만, 태현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직감이 강하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건 기회라고!
“그, 그런 생각도 조금 했긴 했습니다만…….”
‘많이 했겠지.’
태현은 심드렁하게 속으로 생각했다. 이미 다 들켰는데도 로이는 그걸 모르고 불쌍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 길마인 김태산이라는 사람이 막, 김태현 그놈을 잡아야 한다고, 온갖 욕을 해댔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현 님 팬이라 이걸 알려줘야 할 것 같아서…….”
“저런…… 따뜻한 배려에 눈물이 나려고 하는걸?”
점점 뜨거워지는 연기 배틀!
“그놈들이 보통이 아니라서 갑작스럽게 당한다면 위험할 겁니다.”
“그렇지.”
“괜찮으시다면 제가 같이 싸우는 걸 돕겠습니다. 혹시 그놈들과 아는 사이십니까?”
“아는 사이지. 악연이야. 갚아줄 것도 있고.”
‘역시! 내가 맞았어!’
로이는 속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태현이 방송에서 말한 적은 바로 그 아저씨가 맞았구나!
이렇게 된다면 태현과 김태산을 싸움 붙일 수 있었다.
‘두고 보자, 이 아저씨들!’
“그래. 싸우는 걸 돕겠다고?”
“예!”
“잘됐네. 따라와라.”
“……?”
로이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태현 주변에 악마 몬스터들이 우르르 몰려 있었다.
‘투기장 주변에 악마가 나왔다더니, 잡은 게 아니었나?’
로이는 악마 관련 퀘스트라는 게 악마 토벌 퀘스트인 줄 알았다. 보통 그게 정상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투기장 건물에 도착하자, 로이의 표정은 급변했다.
쌩쌩하게 살아 있는 악마들과 그 대장 에다오르!
‘악마 토벌한 거 아니었냐?!’
“에다오르 님, 충성충성충성!”
“크핫핫. 왔나, 김태현 백작! 여기 이 버러지들이 먼저 와서 보고를 하고 있었지.”
에다오르는 자리에 앉은 채로 유쾌하게 말했다. 보아하니 양성규와 이다비는 이번 싸움으로 인해 먼저 보상을 받은 것 같았다.
뒤에 부하로 보이는 악마들이 있었다.
“이 아발랍 시에 있던 모험가들을 전부 몰아내고 도시를 점령한 공. 칭찬해 줄 만하다. 무슨 원하는 것이라도 있나?”
“에다오르 님이 지시한 걸 충성스럽게 지켰을 뿐인데 무슨 원하는 게 있겠습니까!”
[에다오르가 더욱 좋아합니다.]
[에다오르의 친밀도가 크게 오릅니다.]
“크핫핫, 과연 내 왼팔 자리에 앉은 인간답구나! 악마들보다 더 악마답다!”
뭔가 미묘한 칭찬!
태현은 공적치 포인트를 지금 쓸 생각이 없었다. 이다비나 양성규는 악마 부하를 받기 위해서 써버린 모양이었지만, 태현은 이미 부하들을 꽤 거느린 상태였다.
전술 스킬의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부하들을 더 늘릴 필요는 없었다.
‘나중에 분명 쓸 기회가 온다.’
그리고 태현은 로이를 만나고서 계획을 바꿨다. 에다오르를 두고 도망칠 필요가 없었다.
걸어 다니는 폭풍을 조종할 수 있다면 왜 그걸 포기하겠는가?
적이 있는 곳으로 보내야지!
“에다오르 님. 아발랍 시는 완전히 에다오르 님의 발아래에 놓였습니다. 다음으로 진격할 도시를 제가 말해도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