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87화
‘시간을 끌어야 해!’
성기사이즈킹 길마는 뒤에서 케인에게 막힌 길드원을 보며 방패를 들었다.
성기사 영웅 직업을 갖고 있는 그였다. 작정하고 버틴다면 꽤나 끈질기게 버틸 수 있었다.
‘저놈이 가장 위험해 보이는데…….’
그가 가장 위협적으로 느낀 건 양성규였다. 이다비는 파워 워리어 길마였지만 본인 능력은 솔직히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았고, 태현은 겉으로 보기에는 별거 아니었다.
콰쾅!
결국 그가 견제하기로 마음먹은 건 양성규! 검에서 빛의 파동이 뿜어져 나오더니 양성규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러자 이다비와 태현이 달려들었다. 길마는 이다비의 공격을 방패로 막고 태현의 공격을 몸으로 견디려 했다.
그러나 그 공격은 몸으로 받고 견딜만한 게 아니었다. 태현은 피식 웃었다.
저렇게 대놓고 무방비하다니. 이렇다면 성기사가 아무리 단단하고 생명력이 높아도 한 번에 끝낼 수 있었다.
파파파파파파팍!
미친 듯이 들어가는 스킬 콤보!
[현재 체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스턴 상태에 빠집니다.]
[장비의 내구도가 내려갑니다.]
[움직일 수 없습니다.]
“?!?!?!”
놀랄 틈도 없이 다음 공격이 들어왔다. 길마는 이다비가 이렇게 강했나 경악했다.
‘말도 안…….’
그러나 이다비는 방패 위를 공격하고 있었다. 그제야 길마는 이 데미지가 어디서 왔는지 깨달았다.
“너, 너 누구…….”
[HP가 0으로 내려가 투기장에서 탈락합니다.]
이다비는 순간 놀란 눈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3:1로 공격하고 있기는 했지만 이건 너무 빨랐다.
양성규는 지금 공격을 하지 않았으니 지금 <성기사이즈킹> 길마가 죽은 건 순전히 태현이 넣은 데미지 때문!
‘이 사람…… 누구지?’
이런 플레이어는 어지간해서 유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태현의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이다비의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갔다. 그녀는 태현과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랐다.
“왜, 지금 날 공격해야 할 거 같아?”
“무, 무슨 소리. 그런 생각 조금도 안 했는데요. 우린 친구잖아요. 그렇죠?”
태현의 강함을 보자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우정! 이다비는 무기를 내리고 전혀 적대심이 없다는 걸 보여주려 애썼다.
“하하. 그래?”
“물론이야. 친구, 친구! 우리 친구 등록도 할까요?”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둘이 서로 가식적인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양성규는 케인이 상대하는 성기사에게 덤벼들어서 손쉽게 쓰러뜨렸다.
“다음은 어떻게 할 거냐? 이제 우리 넷은 한 팀으로 인식이 된 거 같은데.”
양성규의 말대로였다. 이미 넷이 같이 움직인 이상, 넷이 한 팀이라고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견제는 없었다.
다들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콰콰쾅! 콰쾅!
투콱!
“혼의 일격!”
“연속 삼단 베기!”
“파워 샷!”
쑤닝 길드와 크라잉 해머 길드는 아예 대놓고 붙고 있었다. 한두 명씩 싸우다가 싸움이 본격적이 되자 숨어 있던 다른 플레이어들도 정체를 드러내고 나온 것이다.
‘두 길드가 가장 많이 내보냈군.’
4 vs 5!
두 길드가 합하면 9명이나 되는 인원이었다. 얼마나 투자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다행히 가장 큰 놈들이 싸우고 있으니…… 남은 놈들을 치자.”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이야.”
“?!”
두 길드의 싸움을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던 남은 개인 플레이어들은 4명의 말에 깜짝 놀랐다.
“잠, 잠깐……!”
“저기 길드! 저기 길드 싸우잖아! 우리는 길드 소속 아닌……!”
그러나 개인 플레이어들의 말을 들어줄 정도로 태현 일행이 친절한 성격은 아니었다.
그들은 허겁지겁 연합해서 싸워보려고 했지만 너무 늦었다. 그 전에 넷은 한 명 한 명씩 빠르게 쓰러뜨렸다.
* * *
“이제 저 길드 중에서 이긴 놈을 치면 되는 건가?”
“그렇지.”
“지금 끼어드는 건 어때?”
“괜히 둘이 팽팽하게 싸우는데 들어가지 말자고. 굳이 삼파전으로 갈 이유가 없는데.”
“이미 삼파전 된 거 같은데. 쟤네들도 멈췄어.”
초반의 혼란스러움은 사라지고, 경기장 안은 어느 정도 정리가 잡혀 있었다.
쑤닝 길드와 크라잉 해머 길드가 아직도 싸우고 있었고, 나머지 인원들은 전원 탈락한 상태.
그 때문에 쑤닝 길드와 크라잉 해머 길드도 싸우는 걸 잠깐 멈추고 태현 일행을 쳐다보고 있었다.
여기서 더 싸웠다가는 당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태현은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지금 처리해야 하나.”
양성규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누구를? 쑤닝? 크라잉 해머?”
“아뇨. 아저씨요.”
푹!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
동시에 양성규의 등을 매섭게 후려치는 케인의 일격!
“야 이 자식아!”
“아저씨도 저 뒤통수치려고 했을 텐데요? 아니라고 부정은 못 할 겁니다!”
“그래도 난 다 끝나고 하려고 했다!”
양성규는 욕설을 내뱉으며 피하려고 했다. 갖고 있는 아이템을 쓸 시간을 벌려면 거리가 있어야 했으니까.
그러나 양성규를 잘 알고 있는 태현은 시간을 주지 않았다.
-현질을 더럽게 많이 한 양반이니까 기회 주지 마라! 바로 쳐!
-오케이!
케인과 합을 맞춰서, 태현은 양성규에게 폭딜을 넣었다. 양성규는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처음에 받은 기습이 너무 강했다. 양성규의 눈이 각오한 듯이 빛났다.
“애들아!!!!!”
“?!”
“이 자식 김태현이다!!!!”
“……젠장!”
마지막 말과 함께 양성규가 투기장에서 탈락했다.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던 사람들은 양성규의 말에 경악했다.
“김태현이라고?”
“얼굴이 다른데…….”
“아이템 쓴 거 아냐?”
-야. 어떡해?
-뭘 어떡해. 이미 늦었지.
다행스럽게도 쑤닝 길드와 크라잉 해머 길드는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태현이 양성규를 공격하는 순간 그들도 다시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태현이 노린 대로였다. 싸움을 멈췄어도 조금만 자극하면 다시 싸우게 되어 있었다.
“김태현이었어요????”
이다비는 떨리는 손으로 케인을 가리켰다. 케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나 말고 이 자식이거든?”
“아. 여기였구나. 너무 평범해서…….”
“그렇게 보이려고 위장했으니까.”
태현은 그렇게 말하면서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이다비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끼고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
“왜 물러서?”
“그…… 그냥요?”
“친구잖아. 가까이 있어야지.”
“……나 공격할 거예요?”
“응.”
“무…… 무승부로 하지 않을래요?”
태현은 대답 대신 검을 들었다. 이다비는 급하게 손을 흔들었다. 원래 우승을 위한 계획이 있기는 했지만 태현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목표 급변경!
“알겠어요! 우승 포기할 테니까 협상, 협상하죠!”
“내가 우승하고 너는 탈락하는 협상 좋지.”
“그런 협상 말고 돈 들어가는 협상! 골드만 주면 뭐든지 하라는 대로…….”
“이런, 뒤! 쑤닝 길마!”
“?!”
이다비는 급하게 몸을 돌렸다. 그 순간…….
퍼퍼퍼퍼퍽!
케인은 태현과 같이 때리면서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돌렸다.
‘이 자식은 랭커면서 왜 이렇게 치사한 방법을 쓰는 거야?!’
정면으로 싸워도 충분히 실력이 되는 놈이 굳이 이런 방법을 쓰는 이유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너……!”
-녹인 황금의 저주!
“?!”
파워 워리어라는 길드 이름과 이다비의 장비 때문에 그녀가 전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저주 스킬은 전사가 쓰는 스킬이 아니었다.
태현의 회피마저 뚫어버리는 강력한 저주 스킬!
[녹인 황금의 저주에 당했습니다. 움직일 수 없습니다.]
데미지는 없지만 발을 완전히 묶는다는 점에서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스킬이었다.
이다비는 태현의 발목을 잡고 협상에 들어서려고 했다.
일단 여기까지 온 이상 뭐라도 받아낸다!
지금 한시가 바쁜 상황에서 이런 저주는 매우 치명적이었다.
이다비는 헉헉대며 외쳤다. HP가 너무 많이 깎여 있었다. 태현의 공격력이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력했던 것이다.
‘대체 레벨이 몇이야?!’
“골드 내놔요! 골드 내놓으면 풀어줄게요!”
“그냥 죽이면 될 거 같은데?”
“안 풀리거든요?!”
“일단 죽이고 생각하도록 하지!”
그러나 이다비가 하나 놓친 게 있었다.
원래 태현은 협박을 하면 두 배로 받아치는 사람이라는 것!
-케인, 여기로 몰아붙여라.
케인이 이다비를 튕겨내자 태현의 사정거리 안으로 이다비가 들어왔다.
“진짜 이런 무식한…… 으아앗!”
이다비도 로그아웃!
그러나 녹인 황금의 저주는 풀리지 않았다. 태현은 발목을 잡고 있는 금색 손을 보았다.
-어떻게 하냐?!
-뭐 이렇게 싸워야지. 어차피 이러고서도 피할 수 있으니…… 그나저나 저거 직업이 뭐야? 전사가 아닌 거 같은데.
-지금 그거 신경 쓸 때냐? 쑤닝 길드가 이겼어! 그것도 세 명이나 남았다고!
-걱정 마라. 방법이 있으니까.
쑤닝 길드는 4 대 5라는 불리한 상황을 뒤엎고 3명이나 살아남았다.
2명인 태현과 케인. 게다가 태현은 발까지 묶인 상황이었다. 아무리 봐도 불리했다.
그러나 케인은 태현이 자신만만하게 말하자 살짝 안심했다. 태현이 이런 곳에서 허언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먼저 가서 공격해.
-뭐? 여기서 싸우는 게 낫지 않나?
-아냐. 먼저 가서 공격해. 그리고 방어는 신경 쓰지 말고 무조건 공격만 해라. 상대방 HP를 깎는 것만 집중해.
-왜?
-하라는 대로 해 이 자식아.
-……설명 좀 하면 어디가 덧나냐?!
케인은 투덜거리면서도 돌격했다. 태현과 케인을 보며 견제하고 있던 쑤닝 길드원들도 케인이 돌격하자 맞서서 달려 나왔다.
“혼자 나왔다! 먼저 끝내고 저 김태현을 상대하자!”
김태현이라는 걸 알게 된 이상 쑤닝은 방심할 생각이 없었다. 일단 케인을 빠르게 끝내고 3 대 1이라는 이점을 살려서 공격할 생각이었다.
마침 케인이 혼자 달려 나온 상황!
콰콰쾅!
-피와 분노의 돌격!
-끓어오르는 진홍의 피!
-전투 함성!
-피의 대가!
케인은 태현을 믿고 공격에 올인했다.
쑤닝 길드원들은 케인의 기세가 심상치 않자 당황했다.
‘이 자식 뭐 잘못 먹었나?!’
케인이 죽으면 태현은 혼자 남았다. 태현에게 걸린 저주가 풀리려면 시간을 벌어야 했다.
그런데 이놈은 아무 생각이 없는지 방어는 포기하고 미친 듯이 공격만 해왔다.
자칫하면 바로 쓰러질 수 있는 위험한 도박!
그러나 허를 찌른 게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케인의 공격을 겁낸 쑤닝 길드원들은 일단 방어 태세로 돌아섰다.
조금 막다 보면 기세가 떨어지겠지!
“견뎌라! 놈을 보니 HP를 깎아서 스킬을 쓰고 있다!”
이런 식의 도핑 계열 스킬에 대해서는 그들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순간적으로는 좋았지만 오래 가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칼날 솟아오르기!
“크아악!?”
“이거 뭐야?!”
“김태현! 김태현 맞다! 기계공학이야 저거!”
케인의 갑옷에서 칼날이 솟아오르자 사람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김태현! 김태현!”
“싸우고 있는 건 나거든?!”
케인은 억울해서 외쳤다. 지금 HP 아슬아슬하게 깎아가면서 싸우고 있는 게 누구인데…….
“잡았다!”
“이익…… 로켓 발사!”
투쾅!
“뭐 이런 갑옷이 다 있냐?!”
케인의 뒤를 잡았던 길드원은 갑자기 튀어나오는 공격에 넉백을 당하고 이를 갈았다.
-고블린 식 레이저 포! 회전 칼날 뿔!
“저 미친놈 대체 갑옷에 뭘 넣고 다니는 거냐?!”
“둘러싸서 패! 둘러싸서 패!”
케인의 기세와 생각지도 못한 스킬 덕분에 쑤닝 길드원들은 혼란스러워했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쑤닝 길드는 얻어맞으면서도 삼각형을 만들어 케인을 포위했다.
-야! 나 이제 위험해! 어떡해야 하냐!
-잘했다.
-잘한 건 알고 있고! 어떡해야 하냐고!
-그냥 가만히 있어도 돼.
-?
태현은 대답 대신 스킬을 작동시켰다.
콰콰콰콰콰콰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