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86화
다른 플레이어들이 노려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아발랍 총독이 술잔을 던진 당신을 매우 불쾌하게 여깁니다.]
[아발랍 총독의 적대도가 올라갑니다.]
‘으아…….’
케인은 바로 나오는 반응에 속으로 끙끙 앓았다. 이거 나중에 꼬이는 거 아냐?
케인이 그러는 사이에 태현은 재빨리 술을 치웠다. 그걸 본 양성규가 다가와서 물었다.
“너 태현이 맞지?”
이 자리에서 김태현 같아 보이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외모가 달랐지만, 양성규는 태현의 행동으로 정체를 추측했다.
“아. 아저씨. 용케 올라오셨군요.”
“그래. 그런데 넌 어떻게 외모를 바꾼 거냐?”
“아이템이죠.”
‘하필 저런 놈한테 저런 아이템이 가다니…….’
양성규는 속으로 생각했다. 태현 같은 녀석이 외모를 바꾸는 아이템을 갖고 있으면 무슨 짓을 할 수 있을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술은 왜 가방에 넣은 거냐?”
“제가 술 안 좋아해서요.”
“판타지 온라인에서는 취하지도 않잖아!”
“하하. 안 맞는 걸 어떡합니까?”
“…….”
양성규는 속으로 의심의 시선을 태현에게 보냈다. 이 자식 혼자 안 마시다니.
‘불안한데 이거…….’
“어쨌든 아저씨, 저번에 했던 이야기는 아직 기억하시죠?”
“아, 동맹? 물론이지. 내가 느끼는 건데 저놈이랑 저놈은 같은 길드 소속 같아.”
“그렇죠. 저놈이랑 저놈도 같은 길드 소속 같고.”
양성규나 태현이나 보는 눈 하나는 비범했다. 모르는 척 시침을 떼도 오히려 거기서 정보를 읽어냈다.
서로 시선을 맞추지도 않으려는 플레이어들은 친할 가능성이 높았다.
“둘이 친구인가요?”
“……?”
둘이 이야기하는 곳에 끼어든 것은 이다비였다. 이다비가 누군지 알아본 양성규는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태현도 마찬가지였다.
“저리 가라 파워 워리어.”
“잘 만들어진 롱소드는 너희들끼리 갖고 놀라고.”
“…….”
바로 날아오는 날 선 반응! 그러나 이다비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태현이 느낀 것처럼, 그녀의 얼굴 가죽도 태현처럼 두꺼웠던 것이다.
“길드 홍보 좀 할 수도 있죠!”
“그게 홍보냐? 아저씨가 원래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닌데 너희들은 좀 심해! 스팸 처리를 했는데도 어떻게 계속 이메일을 보내는 거냐?”
“그렇게 사소한 과거 일은 잊어요! 지금 더 중요한 게 있잖아요!”
“내 방송에 파워 워리어 리플 도배한 놈을 족치는 일 같은 거?”
태현의 말에 이다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도 많이 달아서 어느 방송인지 기억이 잘…….”
철컥!
“잠깐, 잠깐만. 들어서 나쁜 이야기는 아닐 거예요!”
“지금 널 공격해도 나쁜 이야기는 안 될 것 같은데.”
“저 플레이어 보여요? 저 길마가 <성기사이즈킹> 길마거든요?”
<성기사 이즈 킹> 길드는 길드원들 빼고는 아무도 <성기사 이즈 킹>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모두 다 줄여서 불렀다.
“그런데 저기 구석에서 모르는 척 하고 있는 플레이어도 <성기사이즈킹> 길드원이에요.”
“그 정도야 이미 알고 있다.”
“그걸 누가 몰라?”
양성규와 태현은 이다비가 무슨 말만 해도 까칠하게 나왔다. 그러나 이다비는 꿋꿋하게 계속했다.
“다른 곳들도 분명 저렇게 길드원들 넣어서 결승까지 진출시켰을 거예요. 가만히 있으면 우리만 당한다고요. 우리도 뭉쳐야 해요.”
“언제부터 우리가 됐냐?”
“그러게요, 아저씨. 전 파워 워리어하고 우리가 된 적이 없는데.”
냉정한 반응! 이다비는 둘이 아예 넘어올 것 같지도 않자 초조한 반응을 보였다.
“……과거는 좀 잊죠!”
“그래. 내가 널 PK 하면 과거를 좀 잊을 수 있겠지. 그리고 우리가 널 싫어하는 것보다 한 가지 문제가 더 있는데. 넌 <파워 워리어> 길마잖아. 길마면서 은근슬쩍 혼자 올라온 플레이어인 척하지 말라고. 네 길드원이 여기 주변에 있을지 어떻게 알고?”
“저희 길드원들은 다 떨어졌어요.”
양성규가 코웃음을 쳤다.
“그걸 믿으라는 소리냐?”
“잘 생각해 보세요. 저희 길드원들은 그 광고 보고 들어온 사람들이거든요? 실력이 얼마나 되겠어요?”
왠지 모르게 설득력 있는 말!
확실히 그랬다. 파워 워리어에 들어갈 정도 사람이라면 뭔가 강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연합하자고?”
“네! 최소한 저 치사한 길드들을 상대하는 동안에는!”
“자기도 시도했으면서 참 뻔뻔하지 않냐?”
“실패했으니까 됐죠! 그래서 할 건가요 말 건가요?”
양성규는 태현에게 눈짓을 보냈다. 어떻게 할 거냐는 뜻이었다.
“해서 손해 볼 거 없죠. 대신 한 가지 더.”
“……?”
“오늘 이후로 내 방송에 광고 리플 작작 달아. 한 번만 더 보이면 PK 하러 갈 거니까.”
“그쪽 방송이 뭔데요?”
“끝나면 알려주지.”
“잠깐만요, 그러고 보니 저는 그쪽처럼 생긴 플레이어 본 적 없는 것 같은데요?”
“판타지 온라인이 얼마나 넓은데 네가 다 알겠어?”
“여기 올라올 정도에, 방송할 정도의 플레이어면 다 알아요.”
“?!”
“저는 플레이어 리스트 따로 만들어놨거든요. 메시지를 보낼 리스트.”
“…….”
양성규와 태현은 황당하다는 듯이 이다비를 쳐다보았다. 뭐 저런 게 다 있냐?
“그 짓을 왜 하는데?”
“100명한테 찔러보면 한 명 정도는 들어오지 않을까 싶어서요?”
“…….”
“사실 그건 크게 기대 안 하고, 노이즈 마케팅이죠.”
“노이즈 마케팅?”
“저희 길드가 이만큼 유명할 수 있는 이유가 뭐겠어요? 이런 식의 적극적인 홍보 덕분이라고요. 다른 식으로 했다면 사람들은 길드 이름도 모를걸요.”
맞는 말이긴 했다. <파워 워리어>는 이제 길드의 실력을 떠나서 나름 유명한 길드였으니까.
아까 이다비가 나타났을 때 <파워 워리어> 길드원이 아니면서 광고를 따라한 플레이어들이 있을 정도였으니…….
“저희 길드는 질보다는 양이에요. 들어온 길드원들도 그걸 잘 알고 있고요. 이런 식으로 광고하는 건 다 계산을 한 거라고요.”
이다비는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태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대단하네.”
“그런 짓을 왜 하는 거냐?”
양성규는 영 이해가 가지 않아서 물었다. 이다비는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이거 때문이죠.”
“돈?”
“그래요, 돈! 판타지 온라인은 진짜 돈이 된다고요. 제가 한 달에 얼마를 버는 줄 아세요?”
“억?”
“……억이 지금 누구 동네 강아지 이름이야? 그렇게 벌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음…… 미안. 천?”
“억이 아니라고 천?! 천보다는 조금 안 되게 벌어요. 그래도 엄청 많이 버는 거죠.”
“그렇게 광고를 뿌리고 다니는데 천이 안 된다고?”
“광고 돌리고 길드 운영하는 것도 돈 들거든요? 더 크게 벌려면 투자도 해야 해요.”
“너무 안 나오는 거 아닌가?”
태현의 질문에 양성규가 대답했다.
“뭐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잘 버는 건 아니니까. 이해해 줘라.”
그걸 본 이다비가 살짝 울컥했다. 자기들은 얼마나 잘 벌길래!
“지금은 그렇지만 길드원 더 모이고 안정 궤도로 올라서면 아주 돈이 솟아날걸요? 몇 배로…….”
“뭐, 그래. 힘내라.”
태현이 전혀 반응을 하지 않자 이다비는 약이 올랐다. 아까까지의 흔들림 없는 태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돈 관련된 이야기 나오니까 사람이 바뀌네.’
태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이다비를 쳐다보았다.
“여러분 같은 고렙 플레이어는 언제나 환영이니까 생각 있으면 말하세요. 좋은 자리를 줄 수 있어요. 수입도 나눠줄 수 있…….”
“됐다.”
“필요 없어.”
“……돈 아까운 줄 모르네요, 진짜. 됐어요. 약속이나 지키라고요.”
이다비가 가자 태현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양성규는 그걸 보고 말했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있는 법이지.”
“그러게요. 그보다 저런 식으로 길드 크게 굴리는 것보다 그냥 랭커 찍어서 방송사하고 계약하는 게 더 돈 많이 나오지 않나?”
“…….”
이 무슨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돼지’ 같은 말! 양성규는 태현의 뒤통수를 한 대 치려다가 참았다.
* * *
꿀꺽-
케인은 그를 노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눈알을 굴렸다.
예선과는 달리 이 경기는 참가하지 않은 다른 플레이어들도 다 볼 수 있었다.
“저 사람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혼자서 다른 사람들 전부 덤볐는데 이겼다고 하던데.”
“랭커라고 하더라.”
“뭐? 저 사람이 이세연이나 스미스하고 맞먹는 랭커라고?”
점점 부풀려지는 소문들! 어쩌다 보니 시작도 하기 전에 케인은 가장 많이 관심을 받게 되었다.
아발랍 총독은 그의 자리 옆에 있는 푸른색 상자를 가리켰다. 번쩍이는 빛이 참 비싸 보이는 상자였다.
“싸워라! 다른 쓰레…… 아니, 다른 모험가들을 쓰러뜨리고 강하다는 걸 입증해라!”
“방금 쓰레기라고 하지 않았냐?”
“설마…….”
“승자에게는 이 상자와 도시에서의 특권이 주어질 것이니!”
뿌우우우-
나팔 소리와 함께 싸움이 시작되었다.
서로 오가는 시선들!
모두가 긴장한 채 눈빛만 보냈다. 가장 먼저 누구를 공격해야 할까?
“저놈 먼저 쳐야지. 우리하고 다 싸워도 이길 자신 있다며?”
플레이어 중 한 명이 케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케인은 눈을 질끈 감았다.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쑤닝. 널 먼저 쳐야 하지 않을까?”
“…….”
“네가 <레스토랑> 길드랑 짜고 독 요리 풀었다며? 너무 치사하지 않냐?”
<쑤닝> 길마, 쑤닝에게 이빨을 드러낸 건 <크라잉 해머>의 길마였다.
쑤닝이 가장 위협적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는 사람들을 선동해서 쑤닝을 먼저 공격하려고 들었다.
마침 <레스토랑> 길드가 사고 친 것 덕분에 몰아세우기도 좋았다.
“난 레스토랑 길드와 상관이 없다.”
“상관이 없다니. 거기 길마가 중국인이고 너도 중국인인데 상관이 없을 리가.”
“나라 같다고 다 같은 팀이냐?”
“더 친할 가능성이 높지!”
‘이런…….’
쑤닝은 분위기가 점점 불리해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레스토랑 길드와 쑤닝 길드가 손을 잡았다는 증거는 없었지만, 같은 나라 출신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원래 적당한 이유 하나 생기면 밟히는 곳이 이 투기장!
순간 갑자기 조용해졌다. 폭풍 전의 고요 같았다.
“쳐!”
그리고 폭발! 크라잉 해머의 길마와 다른 곳에 있던 플레이어 한 명이 재빨리 쑤닝에게 달려들었다.
경기장에 있던 사람들은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솔직히 이 자리에 길드 소속으로 숨은 플레이어들이 없다면 그게 더 놀라웠을 것이다.
“저 쑤닝 길드를 먼저 밟자!”
크라잉 해머 길마는 다른 플레이어들이 호응해주기를 바라며 그렇게 외쳤다.
쑤닝 길드가 한 짓이 있으니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었다.
끄덕-
태현, 케인, 양성규, 이다비까지. 모두 고개를 끄덕이더니……
<성기사이즈킹> 길마에게 돌격!
“?!”
“길마부터 조져! 그래야 숫자가 맞아!”
같은 팀원을 얼마나 데리고 있을지 모르니 일단 길마부터 조진다!
쑤닝 길드와 크라잉 해머 길드는 서로 싸우고 있으니 지금은 내버려둬도 됐다.
“이, 이런…… 나와! 나와서 막아!”
졸지에 4:1로 상대하게 된 <성기사이즈킹> 길마는 다급하게 길드원을 불렀다.
뒤에서 아닌 척하고 있던 길드원은 급하게 버프를 걸더니 돌격하기 시작했다.
“케인. 막아라.”
“알고 있다!”
케인은 달려드는 성기사에게 덤벼들었다. 굳이 잡을 필요는 없었다. 저 길마를 잡을 때까지 시간만 벌면 됐다.
“이 자식들이 진짜…… 정말 죽고 싶냐?”
<성기사이즈킹> 길마는 협박을 했지만 여기서 그 협박이 먹힐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