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83화
태현은 가면을 변형시켜 외모를 바꿨다. 어딘가 순박하고 통통한 얼굴로.
그러고는 겉에 두르고 있던 망토는 다 벗어 던지고 장비, 무기도 집어넣었다.
그리고 초보자용 허름한 천 옷을 꺼내 입은 다음 식칼과 국자를 허리에 찼다.
1분도 채 되지 않아서 태현은 순식간에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누군가 봤다면 기가 막혀 할 수준!
누가 봐도 레벨 낮아 보이는 요리사였다.
“좋아. 가볼까.”
태현이 의욕적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 케인은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걸 보고 솔깃해서 줄을 섰다.
“여기 요리가 그렇게 맛있어?”
“진짜 맛있고 거기에다가 효과도…… 으헉!”
뒤에서 케인이 말을 걸자 친절하게 대답해 준 플레이어는 깜짝 놀라서 한 걸음 물러섰다.
뭐 이리 수상쩍게 생긴 전신 갑옷이 있냐! 엄청나게 강해 보이는 겉모습이었다.
‘고, 고렙 플레이어인가 보다.’
플레이어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먹어야겠다.”
케인은 얌전하게 줄을 섰다. 예전과 비교한다면 매우 달라진 모습이었다. 예전이라면 사람들을 밀치고 섰을 것이다.
‘이번 투기장에서는 나도 뭔가를 좀 보여줘야지.’
언제까지 태현한테 시달리면서 살 수는 없었다. 언젠가는 벗어나야 했다.
이렇게 눈에 띄는 장비를 입기는 했지만, 역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투기장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다.
‘김태현 그놈이 성격은 개 같아도 따라다니면 얻는 건 많으니까…….’
다시 레벨을 회복하고 랭커 경쟁에 진입하면 언젠가 탈출도 가능!
케인을 싫어하는 놈이 많다지만 그건 레드존 전성기 때도 그랬다. 결국 본인의 힘이 가장 중요했다.
힘만 있으면 싫어하는 놈이 얼마나 있던 상대 가능!
“음음. 맛있네!”
케인은 그렇게 말하며 <레스토랑> 길드의 요리를 우걱우걱 먹었다. 묘한 감칠맛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뒷맛이 중독성 있었다.
* * *
“아, 진짜. 오늘 장사 좀 하려는데 너무한 거 아냐?”
“재료 다 떨어지면 우리한테도 사람들 오지 않을까?”
“야. 가서 봐라. 재료를 산더미처럼 쌓아놨어. 요리사들도 많고. 오늘 투기장 시작하기 전까지 전부 다 먹여도 남을 거 같다.”
다른 요리사들은 투덜거리며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초반에는 그래도 손님 몇 명이 와서 요리를 사 먹었지만, 이제는 거의 오지 않았다.
저렴한 가격에 더 좋은 버프 효과. 사람들은 줄을 서서라도 <레스토랑> 길드의 요리를 먹으려고 했다.
덕분에 이 투기장을 노리고 온 요리사 플레이어들은 손님들을 다 뺐기고 허탈해하고 있었다.
“에이 씨. 진짜 대형 길드면 다냐. 상도덕도 없고…….”
“가서 뭐라고 하고 싶다.”
“미쳤냐? PK 당하게?”
“같은 요리사인데 설마 PK를 하겠어? 나 아는 애들 있어.”
“쟤네들도 아는 플레이어들 있을 테니까 제발 미친 짓 하지 마라.”
그렇게 떠드는 도중 누군가 나타났다. 겉모습만 봐도 ‘나 초보 요리사야’라고 말하는 것 같은 모습.
“아. 또 왔네.”
“아이고…… 멍청하기는. 쟤도 재룟값도 못 건지겠다.”
어떻게 보면 경쟁자였지만, 요리사들은 태현을 보고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들보다 레벨도 낮아 보이는 데다가 지금 가장 위협적인 건 <레스토랑> 길드였기 때문이었다.
견제하기보다는 안쓰러운 눈빛!
“여러분!”
“……?”
“이대로 있으실 겁니까!”
갑자기 나타난 초보 요리사가 크게 외치자 다들 얼굴에 ‘?’을 띄우고 쳐다보았다.
-지금 쟤가 뭐라는 거야?
“뭔 소리야?”
“저기 레스토랑 길드가 손님들을 다 뺏어가고 있잖습니까. 이대로 내버려 두면 우리는 손님들을 다 뺏길 겁니다. 손님들을 다 뺏기면 오늘 준비한 재료들은 다 버리게 될 거고, 그러면 손해를 보게 될 거고, 요리사 경쟁에도 밀리게 될 것이고, 이런 실패가 쌓이고 쌓여서 나중에는 결국 인생도 실패하게 만들 겁니다!”
“……?”
“그, 그 정도까지는 안 갈 거 같은데…….”
“아닙니다!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하니까 맨날 레스토랑 길드 같은 놈들한테 당하고 사는 겁니다. 레스토랑 길드원들이 뭐라고 한 줄 아십니까? ‘저 멍청이들은 우리랑 상대도 안 되면서 주제도 모르고 이곳에 얼굴 내민다’고 했습니다! 제가 그 말을 듣고 얼마나 화가 났는지!”
“!!”
물론 레스토랑 길드원들은 그런 소리를 하지 않았다. 지금 그들은 요리에 독을 타는 것만 해도 바빴던 것이다.
그러나 요리사들에게는 충분히 믿음이 가는 소리였다.
“그런……!”
“이 자식들 너무한 거 아냐?”
“여러분! 우리도 행동해야 합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레스토랑 길드 같은 대형 길드한테 매번 당할 뿐입니다. 가만히 있지 말고 행동해서 본때를 보여줘야 합니다. 우리도 건드리면 발끈한다는 걸 보여줘야죠! 게다가 레스토랑 길드는 이런 짓을 처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번에 아탈리 왕궁에서도 이런 짓을 했었습니다! 재료를 전부 사버려서 견제를 한 거죠! 여러분들이 지금 손님이 없는 건 레스토랑 길드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이 꼬이고 애인이 없고 취직을 못 하는 것도 다 레스토랑 길드 때문입니다!”
뒤의 말은 아무도 하지 않았지만 태현의 말에는 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처음에는 심드렁했던 요리사들도 점점 솔깃한 표정을 지으며 태현의 말을 듣기 시작!
“그런데 우리가 뭐 어떻게 할 수 있어?”
“맞아. 레스토랑 길드한테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
“레스토랑 길드는 숫자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많은 길드원으로 사람들을 꼬시는 거죠.”
물론 레스토랑 길드는 길드원들의 실력도 뛰어났지만, 태현은 그런 건 넘어갔다.
“우리도 거기에 맞서서 행동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레스토랑 길드 요리에는 독이 있다고 헛소문을 퍼뜨리는 겁니다!”
“…….”
순식간에 분위기가 얼었다. 태현의 말을 듣던 요리사들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뭔가 대단한 생각을 하고 있나 했더니 저런 정신 나간 놈이었나!
“에이…….”
“난 또 뭐라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그걸 누가 믿어?”
당연한 반응이었다. 요리에 독을 넣는다고 해도 그걸 누가 믿겠는가. 말한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 될 것이다.
“실제로 넣으면 됩니다!”
“…….”
요리사들은 점점 미친놈 보듯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태현은 진지했다.
“제 친구 중에 고렙 도적이 있습니다. 은신 스킬이 보통이 아니요. 그 친구한테 부탁해서 요리에 독을 넣을 겁니다.”
“!!!!”
“그다음에는 여러분들이 바람만 잡아주시면 됩니다! ‘독을 숨겨서 요리 스킬이 없으면 잘 발견할 수 없었다’, ‘레스토랑 길드가 투기장에 참가하는 대형 길드한테 돈을 받고 몰래 독을 풀었다’ 이런 식으로!”
“그, 그런 헛소문을 퍼뜨려도 돼?”
요리사 중에는 그래도 양심이 있는 사람이 있었다. 물론 태현이 지금 말한 건 전부 사실이었지만!
“그러면 가만히 계실 겁니까? 좋습니다. 여러분이 안 하시면 저도 안 하죠, 뭐. 독 넣고 하는 건 전부 다 저하고 제 친구가 하는데…….”
할 말을 다 한 태현은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이렇게 되자 오히려 아쉬워지는 건 요리사들!
“잠, 잠깐만!”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생각을 해보겠다는 거지! 잠시만. 잠시만 여기로 와봐. 잘 이야기를 해보자고.”
수군수군!
태현을 미친놈 보듯이 봤던 요리사들도 태도를 바꿨다. 진짜로 독을 넣으면 의외로 가능성이 있어 보였던 것이다.
어려운 건 태현이 다 해주니, 그들은 바람만 잡아도 됐다. 완전히 남는 장사!
“정말로 독을 넣을 수 있어?”
“아, 여러분들이 넣는 것도 아닌데 왜 못 믿는 겁니까? 어차피 여러분들은 독 넣는 게 성공한 다음 움직여도 되니까 손해 보는 거 없잖습니까.”
“그…… 렇긴 하네.”
“맞는 말이야.”
요리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하고 움직이면 되니 문제는 없었다.
“그러면…… 해볼까?”
“그럴까?”
요리사들은 서로 눈치를 보더니 한두 명씩 입을 열었다. 그들도 사람인 이상 욕심이 없을 수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건 나중의 뒷감당!
레스토랑 길드가 이걸 알게 되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복수를 하려고 할 게 분명했다.
“근데 넌 이름이 뭐야?”
요리사 중 한 명이 태현에게 물었다. 태현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갑자기 이름을 묻는 이유야 뻔했다.
나중에 레스토랑 길드가 따져 물으면 ‘이놈이 했어요! 우린 아무것도 몰라요!’라고 하고서 빠져나가려는 속셈!
어차피 상관없었다. 태현도 그걸 알고 있었으니까.
“양성규입니다.”
“아. 그래. 양성규! 잘 부탁할게!”
“맞아! 믿고 있을게! 레스토랑 길드한테 한 방 먹여주자고!”
“하하! 네!”
태현은 웃으면서 생각했다. <마르덴 후작의 살아 움직이는 가면>을 조금 더 잘 다룰 수 있었으면, 양성규의 외모로 완벽하게 변장할 수 있었을 텐데.
이게 외모 변경은 가능해도 완벽하게 한 사람의 외모와 똑같이 만드는 건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시간이 없을 때는 대충대충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여러분.”
태현은 손을 내밀었다.
“……?”
“돈…… 설마 돈을 달라고?”
‘이 자식 설마 사기꾼 아냐?’
요리사들은 그런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태현은 돈을 달라고 손을 내민 게 아니었다.
“재료 내놓으시죠. 독 필요하거든요.”
“독 갖고 있는 거 아니었어?! 그 도적 친구는?”
“제가 만들어야 주죠.”
태현의 말을 들은 요리사들은 한층 더 미친놈 보듯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저 말인즉…….
독 관련 요리 스킬을 익혔다는 뜻!
‘그거 실제로 익히는 놈도 있었냐?’
‘진짜 할 일 없는 놈인가 보네.’
요리사들은 수군거렸지만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작을 시작했다. 재료야 많았으니 충분히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었다.
[섬세하게 배합된 완벽한 마비 독을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현재 스킬 레벨로 만들기 힘든 아이템을 만들었습니다. 독 제작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저거 초보자 맞아?’
‘동작이 왜 저렇게 능숙하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태현은 독 제작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면 하고 오겠습니다. 바람 잘 잡아주세요.”
“물론이지! 맡겨만 달라고!”
“독만 넣으면 우리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
태현이 사라지자 요리사들은 자기들끼리 떠들었다.
“정말 넣을 수 있을까?”
“글쎄…… 그보다 나중에 레스토랑 길드가 범인 찾으면 어떡하지?”
“양성규 저 사람이 했다고 해야지. 뭘 어떡해. 우리가 했다고 해?”
“그렇지?”
* * *
“에취!”
양성규는 재채기를 했다.
“누가 내 이야기라도 하나?”
투기장 시작 전이지만 양성규는 요리를 사 먹으려고 줄을 서지 않았다. 대신 가방에서 요리를 꺼냈다.
랭커 요리사 플레이어한테서 현질로 산 요리!
오늘 같은 날을 위해 준비한 아이템이었다. 요리사 플레이어의 스킬 덕분에 시간이 지나도 효과가 떨어지지 않았다.
들어가려고 준비를 하는 양성규의 귓가에 사람들의 고함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독이다! 독이 있다!”
“무슨 소리야! 그런 거 없어!”
“레스토랑 길드가 요리에 독을 풀었다!”
“요리 스킬로 독을 숨겼어! 대형 길드한테 돈을 받고 푼 게 분명해!”
“뭐?! 어떻게 그럴 수가?!”
시끄러워지는 사람들을 보며 양성규는 혀를 찼다.
“쯧쯧. 그러니까 검증된 요리를 사 먹어야지. 불량식품을 어떻게 믿고.”
양성규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투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저 밖의 놈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는 건 알 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