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79화
폭발과 함께 대장장이가 비명을 질렀다. 폭탄을 만들다가 폭발해 버린 것!
태현 때문에 기계공학이 갑자기 유행을 탔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계공학이 가진 커다란 단점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불안정성!
대장장이 기술과 비교했을 때 기계공학 스킬은 너무 불안정했다. 폭탄 하나를 만들어도 재수 없으면 폭발할 수 있는데, 이런 걸 계속 만드는 건 목숨을 걸어야 했다.
스킬 레벨을 올리고 올리면 그나마 좀 나아지지만, 거기까지 가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이 태현처럼 행운으로 폭발을 씹어 먹고 최고의 성능을 가진 아이템을 만들어서 스킬 레벨을 쭉쭉 올릴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으아악 폭발이다!”
“피해! 내 거까지 터진다!”
대장장이 한 명이 비명을 지르자 다른 대장장이들도 급히 좌판을 챙겨서 옆으로 튀었다.
폭발을 두려워하는 건 그들도 마찬가지!
폭탄을 사려고 했던 다른 플레이어들은 그 광경을 보고 기겁을 해서 외쳤다.
“저, 저렇게 멋대로 폭발하면 어떻게 쓰라고!”
“아냐! 평소에는 별로 폭발 안 해! 40% 정도밖에 폭발 안 한다고!”
물론 그런 말로는 겁을 먹은 플레이어들을 달랠 수 없었다.
“그게 별로냐 이 자식아!”
“안 사, 안 사!”
김태현이 썼던 폭탄이라는 말을 듣고 솔깃했던 플레이어들은 우르르 빠져나갔다.
남은 대장장이들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아. 진짜…… 김태현은 어떻게 안 터지게 하는 거지?”
“뭔가 스킬이 따로 있는 게 분명해. 직업 관련 스킬일 거야.”
“직업 관련 스킬이 아닐 수도 있어. 대장장이 기술 스킬일 수도.”
“혹시 그냥 운 좋아서 안 터진 거 아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그게 말이 되냐!”
“미, 미안해…….”
“…….”
태현은 왠지 미안한 마음으로 대장장이들 사이를 지났다. 태현이 기계공학을 하라고 한 건 아니지만, 태현 때문에 들어서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래도 열심히 하긴 하네.’
만들다가 폭발이 일어나도 플레이어들은 기계공학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템이 폭탄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기계공학의 꽃이 폭탄인 거지, 기계공학은 의외로 범위가 다양했다.
<부스터 달린 외발자전거>나 <50% 확률로 펴지는 낡은 낙하산> 같은 아이템도 있었다. 용케 제작법을 구해서 만든 모양이었다.
‘물론 아무도 안 쓰겠지만.’
대장장이 기술과 달리 기계공학 스킬은 스킬 레벨이 낮을 때 만든 물건을 쓰기 매우 위험했다.
당연히 쓰는 사람이 없었다.
“혹시 이 폭탄 사실래요?”
“아. 안 사, 안 사!”
대장장이 한 명이 케인을 붙잡고 말을 걸자 케인이 질색을 했다.
태현한테 시달린 그에게 폭탄은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키는 물건!
“50실버! 50실버만 받을게요!”
“안 산다니까!”
“40실버! 진짜 원가에요!”
“40실버든 40쿠퍼든 안 산다고!”
“내가 사지.”
“?!”
케인은 태현을 쳐다보았다. 이 쓰레기 같은 걸 산다고?
“야. 이걸 왜 사냐?”
“다 쓸 곳이 있거든.”
태현에게는 <여기에다가 쓸 수 있는 건 저기에다가도 쓸 수 있어> 스킬이 있었다.
조잡하게 만들어진 아이템이라도 일단 기계공학 관련 아이템이면 분해해서 활용이 가능!
“저, 저도!”
“제 것도 사주세요!”
호구가 한 명 잡히자 주변에 있던 대장장이들은 벌떡 일어나서 아이템을 팔기 시작했다.
가면을 써서 인자한 얼굴로 변장하고 있던 태현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렇게 급하게 안 하셔도 다 사드립니다.”
“……!”
“제 거! 제 거부터 먼저!”
우르르-
도시 성문 주변에 있던 대장장이들이 기회를 놓칠세라 몰려들었다. 서로 밀치고 밀어내고 끼어드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
“급하게 안 하셔도…….”
“내 거! 내가 먼저야!”
“비켜! 나 이거 못 팔면 하루 동안 굶어야 해!”
“너나 비켜 이 자식아!”
“……죽을래, 줄 설래?”
“!??!”
“네?”
순간 음산한 목소리가 태현한테서 흘러나오자 대장장이들은 당황했다.
방금 잘못 들었나?
그러나 태현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하하. 줄을 서세요. 빨리해야 하니까.”
“아. 네…….”
* * *
“장사는 이렇게 하는 거지.”
태현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아발랍 시의 성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섰다.
기계공학을 막 배우기 시작한 대장장이들은 재룟값이라도 챙기기 위해서 아이템을 원가로 마구 팔아댔던 것이다.
[기계공학 스킬이 중급입니다. <부스터 달린 외발자전거>의 제작법을 이해합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중급입니다. <50% 확률로 펴지는 낡은 낙하산>의 제작법을 이해합니다.]
대장장이들이 만든 아이템들은 어지간해서 태현의 눈을 벗어나지 못했다. 스킬 레벨보다 낮은 수준의 아이템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제작법을 얻을 수 있었다.
“그거 터지는 불량품들이잖아.”
“내가 만지면 안 터지거든.”
“흥. 그런 걸 갖고 다니는 건 멍청한 짓이지. 나 같으면 절대 그러지 않을 텐데.”
케인은 투덜거리며 앞서서 걸음을 옮겼다. 태현은 미묘한 표정으로 케인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
자기 갑옷 안에 폭탄이 들어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하는 케인!
‘모르는 게 낫겠군!’
스스로가 참 배려심이 넘쳐난다고 생각하는 태현이었다.
챙! 채채챙!
“……?”
거리 옆에서 들리는 무기 부딪히는 소리. 태현은 머리를 내밀어서 무슨 일이 일어나나 확인했다.
“이 치사한 자식들이……!”
“꼬우면 너도 길드에 들어가던가! 그러게 누가 우리 말 듣지 말래?”
모범적인 다구리였다. 골목에 한 명을 몰아넣고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 다음 세 명이서 두들겨 패고 있었다.
전부 플레이어.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PK였다.
‘뭐지?’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 도시 안에서는 플레이어들이 싸우는 일이 드물었다.
싸울 수야 있었지만, 싸우는 순간 경비병이 달려오는 것부터 시작해서 온갖 불이익이 날아오는 것이다.
어지간히 멍청하거나 열이 받지 않고서야 도시 안에서 PK를 시도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저 싸우는 모습은 어떤 길드의 길드원들이 한 명을 공격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단체로 미쳤을 거 같지는 않고…… 다른 이유가 있겠군.’
태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서는 아무나 지나가는 플레이어 하나 잡고 순진무구한 목소리로 물어봤다.
“저기, 여기는 경비병이 왜 안 달려와요?”
멀리서 지나가던 케인은 고개를 홱 돌렸다.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지?
태현한테 붙잡힌 플레이어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새로 오셨나 봐요? 아발랍 시는 안에서 PK해도 아무도 안 막아요.”
“뭐?! 그런 좋은 곳이 있다고?”
“어?”
“하하.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왜 안 막죠?”
“몰라요. 도시 주인인 총독이 명령을 내렸는데 NPC니까…… 귀족들 보기 힘들잖아요.”
들어보니 아발랍 시는 모험가들끼리 PK를 해도 신경을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도시 안의 상인 같은 NPC를 건드리면 다른 도시처럼 엄격하게 반응하지만, 모험가들끼리 PK하는 건 그냥 방관!
태현은 ‘뭐 이리 좋은 도시가 있냐’하고 생각했다.
“그럼 저 사람들은 뭐하는 거죠?”
“투기장 때문에 싸우는 거겠죠.”
“……?”
“진짜 아무것도 모르시나 보네. 아무것도 모르는데 아발랍 시는 왜 오신 거예요?”
“도시 구경하는 게 재밌어서요.”
순진무구한 목소리로 말하자 플레이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현처럼 그냥 구경하는 재미로 판타지 온라인 2를 즐기는 사람도 많았으니까.
“구경할 거면 잘 왔네요. 곧 있으면 투기장 열리니까 그거도 볼 수 있겠고요.”
플레이어는 골목을 슬쩍 본 다음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원래 여기 투기장 보상이 짭짤한데, 이번에는 또 총독이 투기장 우승자한테 추가로 보상을 걸었거든요.”
“아이템?”
“아이템도 아이템이고, 도시에서 자리도 주고…… 뭐 이것저것 주나 봐요. 그래서 길드들이 눈 뒤집힌 거죠. 투기장에 참가할 거 같은 경쟁자들 찾아서 꺾어놓으면 쉬워지니까…….”
“그 정도로 보상이 좋아요?”
“저야 저 투기장 퀘스트는 참가 안 해서 보상 잘 모르죠. 보상 정확하게 나오지도 않았다는데…… 그래도 자리 받는 거 자체가 대단한 보상이라니까 저러는 거 아니겠어요? 하여간 김태현이 사람 여럿 버려놨다니깐. 욕심부린다고 되는 게 아닌데.”
뜨끔!
태현이 작위와 영지를 받은 것 때문에 여러 사람이 목을 매달고 있기는 했다. 태현은 찔리는 마음을 감추고 표정을 관리했다.
“설마 김태현도 몰라요? 판타지 온라인 2 하면 방송도 좀 보고 그래요. 그냥 즐기는 것도 좋지만 정보를 아느냐, 모르느냐가 큰 차이거든. 저 보세요. 레벨이 무려 62라고요.”
“아, 네…….”
“저보다 레벨 낮으시죠?”
“…….”
뭐라고 반박할 수가 없는 팩트!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상대방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요. 즐기는 것도 즐기는 거지만 레벨 좀 더 올리면 많이 즐길 수 있으니까 조금은 올려 봐요. 저처럼 말이에요.”
“아, 네…… 알겠습니다…….”
떨떠름했지만 태현은 굳이 뭐라고 하지 않았다. 정보를 알려줬으니 저 정도 자랑은 들어줄 수 있었다.
플레이어가 가버리고 나서야 케인이 다가와서 물었다.
“대체 그 끔찍한 목소리는 뭐였지?”
“연기를 잘해야 오래 사는 법이지. 그보다 여기 재밌게 돌아간다.”
“……?”
태현은 케인에게 들은 정보를 말했다.
“도시 안에서 PK를 해도 된다고?”
“그래. 덕분에 투기장에 눈독 들이고 있는 길드들이 만만하다 싶으면 저렇게 달려들어서 꺾어놓는다고 하더라.”
그사이 싸움이 끝났다. 결국 포위당한 플레이어는 회색빛이 되어서 로그아웃을 당했고, 세 플레이어는 투덜거리며 골목에서 걸어나왔다.
힐끗-
그들은 태현이 아니라 케인을 쳐다보았다. 아직 태현이 준 세트 아이템을 입지 않았지만, 그래도 케인의 겉모습은 충분히 눈에 띄었다.
겉을 망토로 가리고 있어도 안의 중갑 때문에 커 보이는 덩치!
길드원들은 멈추더니 케인에게 말을 붙였다.
“야. 너 레벨 몇이냐?”
케인한테 걸린 시비였지만 태현이 웃었다. 태현은 웃으면서 칼에 손을 뻗으려고 했다.
도시에서 PK가 된다니 너무 좋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니었다.
“됐어. 그냥 가자.”
“……?”
“저거 봐.”
길드원이 가리킨 건 용용이였다. 강철 강아지처럼 생긴 위장을 하고서 바닥에 서 있는 용용이를 본 길드원은 고개를 저었다.
“고렙은 저런 허접한 펫 안 데리고 다니잖아.”
“하긴. 그러네.”
-…….
용용이의 침묵에서 강렬한 분노가 느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길드원들은 그냥 지나쳐서 걸어갔다.
“하여간 탱커 놈들은 쪼렙이나 고렙이나 다 덩치가 커가지고 헷갈린단 말이야. 저렙 장비도 커가지고.”
“투기장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이야.”
그들이 사라지자 케인이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좋은 기회였는데…….”
“뭐, 괜찮아. 나중에 기회는 또 올 테니까.”
-전혀 괜찮지 않다!
카르릉대며 용용이는 앞발로 바닥을 긁어댔다.
“어디로 가지? 투기장 먼저 가서 구경이나 할까?”
“아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
태현은 툭툭 털더니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케인은 태현이 어디로 가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 가는데? 갈 곳이 있어?”
“내가 누구냐?”
태현의 질문에 케인은 순간 멈칫했다. ‘개XX’라고 바로 나오지 않은 것은 케인이 성장했기 때문이었다.
태현 밑에서 배운 것은 끝없는 인내심과 생각 없이 말을 내뱉지 않는 침착함!
“……김, 김태현이지.”
“흠…… 케인. 가끔 느끼는 건데…….”
“……?”
“넌 네 머리를 투구 장식으로만 쓰는 거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