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76화
-야! 도우러 와! 급해!
로이는 급하게 그의 길드원들을 불렀다. 사방에서 덤비는 오크들을 향해 창을 휘둘렀지만, 이 오크 길드원들은 보통이 아니었다.
‘아니 XX 대체 뭘 입고 다니는 건데 방어력이 이따구야?!’
원래라면 <질풍의 삼연창> 스킬을 맞으면 스턴에 걸리거나 뒤로 밀려나야 했다.
그런데 이 오크 길드원들은 그런 스킬을 맞아도 아랑곳하지 않고 덤벼들었다.
사용하는 스킬이나 공격력을 봤을 때 로이보다 레벨이 높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건?
아이템!
‘이 아저씨들 설마 다 현질해서 돈지랄하고 다니는 건 아니겠지?!’
로이는 설마 그가 정답을 맞혔다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는 포위당해서 미친 듯이 창을 휘둘렀다.
과연 랭커다운 모습!
그러나 그를 둘러싼 오크 길드원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리X지 때도 그들에게 덤빈 적들은 많았다. 그리고 적 중에서는 그들보다 실력이 뛰어난 놈들도 있었고.
그러나 그들은 결국 승리했다.
-실력이 아무리 차이나도, 결국 이기는 놈이 강한 거다!
단순하지만 절대적인 진리! <최강지존무쌍> 길드의 아저씨들은 그들의 장점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화려한 컨트롤은 부족하지만 강력한 아이템과 팀워크!
-우어어어어어!
김태산이 함성을 지르자, 길드원들의 능력치가 향상되었다.
[고대 정령을 불러내서 지휘력을 상승시킵니다. 파티원들의 능력치에 보너스가 붙습니다.]
로이가 아무리 날뛰어봤자 오크 길드원들은 무시하고 덤벼들어서 로이를 공격했다. 무슨 복잡하고 대단한 스킬을 쓰는 것도 아니었다.
한 명이 붙잡으면 다른 한 명이 때리고, 또 다른 한 명이 다시 붙잡고…….
마치 파도 속에 휘말리는 것 같은 공격!
퍽! 퍼퍼퍽! 퍼퍼퍼퍽!
빠르게 로이의 HP가 깎여나갔다.
‘이 별것도 아닌 아저씨들이!!’
로이를 가장 미치게 만드는 것은 이 길드원들의 실력이었다. 뭐 복잡한 스킬을 쓰는 것도 아니라 단순하게 연계만 해대는데 어떻게 깰 수가 없었다.
-야! 이 XX들아! 빨리 오라고!
로이가 다급한 표정을 짓자 멀리 있던 김태산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왜, 네 친구들 찾냐?”
“……!”
“네 친구들 다 죽었다.”
김태산의 말에 양성규가 손을 흔들었다. 로이와 김태산이 맞붙는 사이 다른 최강지존무쌍 길드원들은 로이의 길드원들을 털었던 것이다.
“헉, 헉…… 이…… 비겁하게! 일대일로 붙자!”
몰릴 대로 몰린 로이는 억지까지 부리기 시작했다. 김태산은 귀를 후비적거리며 말했다.
“어디서 강아지가 짖나? 안 들리는데?”
“일대일로 붙자고! 그러고도 남자냐!”
“남자는 모기를 상대할 때도 전력으로 밟는 게 남자지. 마. 괜히 얕봤다가 도망이라도 치면 얼마나 짜증 나냐.”
김태산의 말에 다른 길드원들은 손뼉을 치며 동의했다.
“역시 형님!”
“충성충성충성!”
로이는 이를 악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포위망이 너무 단단해서 뚫고 나갈 길이 안 보였다.
“일대일로 붙자니까!!”
악을 쓰는 로이를 향해 오크 아저씨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야. 젊은 놈.”
“……!”
“억지 부리지 마라. 네가 아무리 난리를 쳐봤자 우리가 일대일로 싸울 일은 없으니까. 너희들은 뭐 방송이다 뭐다 해서 폼 잡고 다 잡은 놈하고 일대일로 붙던데…… 우리 같은 아저씨들은 그런 짓을 안 해. 그냥 죽이지. 다 잡은 놈을 뭐하러 일대일을 해? 아쉬운 게 없는데.”
“맞아. 맞아.”
오크 아저씨들의 비웃음까지 받자 로이의 얼굴이 붉어졌다. 김태산이 쯧쯧거리며 말했다.
“그만 놀려라. 애가 젊어서 그럴 수도 있지.”
“…….”
얼핏 들으면 상냥하게 들리는 말이었다. 그러나 김태산은 절대로 상냥한 사람이 아니었다.
“자. 그러면 할 말 다했지? 이제 죽어라.”
“잠, 잠깐! 잠깐만!”
로이는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었다.
“항복! 항복!”
“항복은 오성과 한음에서 오성 본명이 항복이고. 항복 같은 건 없다. 어디서 먼저 덤빈 놈이 항복이야? 미쳤냐?”
랭커 경쟁에서 한 번 죽으면 치명적이었다. 사망 페널티는 그만큼 발목을 잡는 것이다.
그렇기에 로이는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아저씨들!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반성할 테니까 제발 목숨만은!”
“허. 이 어린놈 태도가 마음에 드네.”
“무릎부터 꿇어봐.”
“예, 옛!”
로이는 무릎을 꿇었다.
“다시는 아저씨들을 무시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외쳐. 크게. 이거 동영상 촬영 어떻게 하더라?”
“이렇게 하는 거였나?”
“그건 귓속말 같은데.”
“…….”
아저씨들이라 동영상 촬영에 익숙하지 못한 모습! 한참을 지나서야 오크 아저씨들은 촬영 준비를 마쳤다.
“자. 앞으로 지나가는 사람을 괴롭히지 않고, 아저씨라고 무시하지 않고…… 또 뭐 있더라?”
“그 정도면 되겠지. 크게 외쳐라.”
로이는 무릎을 꿇고 하라는 대로 외치기 시작했다.
살이 떨리는 굴욕이었지만, 목숨이 우선! 로이는 꾹꾹 참아가며 다 따라서 외쳤다.
멀리서 하품을 하던 김태산이 물었다.
“다 했냐?”
“네!”
“그래.”
부웅- 쾅!
[HP가 0으로 내려가 사망합니다.]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하하. 형님도 참.”
“앞으로는 손에 힘 좀 주고 다니시죠!”
김태산은 로이를 죽이고 경험치를 얻은 다음 아이템까지 챙겼다. 다른 길드원 중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새로 온 젊은 뉴비인 김상철만 빼고는.
“어…… 살려주는 거 아니었어요?”
“미쳤냐? 우리한테 덤빈 놈이 뭐가 예쁘다고 살려줘?”
모두 다 살려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던 것!
그렇게 동영상까지 찍으면서 굴욕을 줬는데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김상철은 등에 소름이 돋았다.
허허 하면서 웃는 모습이 친절한 아저씨들 같아도, 속은 절대로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한때는 게임을 주름잡던 사람들!
먼저 덤빈 사람이 무릎 꿇고 반성 좀 했다고 해서 가만히 내버려 둘 리 없었다.
* * *
“?!”
놀라서 외치기도 전에, 로이는 죽어서 로그아웃되었다. 김태산이 거대한 망치로 전력을 다해 스킬까지 서서 빈사 상태의 로이를 후려갈긴 것이다.
당연히 사망!
“뭐 이런 #&$*#!”
억울해서 외쳐 봐도 이미 캡슐 밖으로 나온 상황에서는 들어주는 사람이 없는 상황!
로이는 가슴을 쾅쾅 쳤다.
“이 XX 같은 아저씨들이…… 두고 보자! 두고 보자고!”
얕봤던 아저씨들한테 이렇게 당하고 나니 보통 분한 게 아니었다.
‘어떻게 복수를 한다?’
상대방이 만만하지 않다는 걸 알아버린 상황. 한 명도 아니라 길드였다. 게다가 전력도 보통이 아니었다.
어떻게 저런 길드가 아직까지 유명하지 않은 건지 이상할 정도로!
사실 <최강지존무쌍> 길드가 실력으로 유명하지 않은 건 그 겉모습 덕분이었다.
길드명도 그렇고, 길드원들도 오크 아저씨들이고, 복장도 이상하고…….
겉에서 보면 그냥 아저씨들이 친목하려고 만든 길드처럼 보이는 것!
사람들은 최강지존무쌍 길드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대해서는 이야기해도 실력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
무언가 번뜩이고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로이는 김태산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어쩐지 수상하다 싶었는데, 날 노리는 놈이었군. 너 뭐하는 놈이냐? 너 태현이한테 돈 받았냐?
태현. 설마 김태현?
‘그러고 보니 그 김태현이 방송에서 적 있다고 하지 않았나? PK해야 할 사람이 있다고……’
로이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만약 저 김태산이라는 아저씨와 그 김태현이 적대 관계라면, 이건 정말 좋은 기회였다.
적의 적은 나의 친구!
김태현을 찾아서 손을 잡고 김태산을 같이 공격할 수 있다면, 로이한테는 매우 큰 힘이 될 것이다.
‘두고 보자, 이 아저씨들!’
* * *
저 멀리서 생각지도 못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태현은 케인과 한가롭게 떠들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발랍 시 투기장이…… 개판이라는 소리군.”
“그렇지.”
케인한테 설명을 들은 태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발랍 시 투기장 형식이 좀 심했던 것이다.
1:1, 2:2, 4:4, 15:15, 몬스터vs몬스터도 아니었다.
1:1:1:1:1:1…….
즉 한 라운드에 참가자 전원이 개인전으로 참가해서 한 명만 살아나오는 것!
‘인원에 맞춰서 자른다고 해도 10명이나 15명 정도는 한 판에 낄 거 같은데.’
10명에서 15명 정도가 다 개인전을 펼친다면?
혼돈과 파괴는 둘째 치고, 다른 요소가 개입되기 쉬웠다.
바로 정치질!
단순 계산으로도 두 명이 손을 잡으면 이길 확률이 몇 배로 늘어났다. 태현은 이런 방식의 투기장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몰래 접촉해서 손을 잡는 건 물론이고, 한 명을 강하다고 몰아세워서 마녀사냥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같은 길드원들끼리 한 투기장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이 투기장에서는 강하다고 이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기기 위해서 필요한 건 상황을 파악하는 눈과 냉정한 마음!
“으음. 정치질을 해야 한다니. 자신이 없어지는데.”
“?!?!”
태현의 말에 케인은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태현이 정치질이 자신이 없다니.
마치 육식동물이 ‘나 사실 채소를 더 좋아해’라고 말하는 것 같은 충격!
“뭐냐. 그 표정은. 불만이라도 있냐?”
“아,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정치질을 잘하는 편은 아니잖아?”
‘그게 잘하는 편이 아니라면 잘하는 놈은 대체 누구란 말이냐?’
케인은 속마음을 삼켰다.
“그리고 이런 투기장은 판이 작아도 애들이 짜고 치는데 판이 크면 더 짜고 치겠지.”
“어떻게 짜고 치는데? 방법이 있나?”
“이런 무식한 놈…… 머리는 폼이냐? 시작할 때 팀을 만들어도 좋고, 아니면 처음부터 길드원들끼리 들어가도 되겠지.”
“같은 길드원들끼리 들어가면 걸리잖아?”
“당연히 안 걸리게 하겠지!”
태현은 케인의 투구를 두들겼다. 맑고 고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런 게임에서는 유명한 사람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고.”
“……?”
“너 같으면 15명이서 시작하는데 한 명이 유명한 랭커야. 어떻게 할 거 같냐?”
“당연히…… 집중 공격하겠군.”
“그렇지.”
이런 식의 게임에서는 유명할수록, 강해 보일 수록 불리했다. 다른 사람들이 합심해서 먼저 탈락시키려고 할 테니까.
그리고 태현은 최근 가장 유명한 플레이어 중 하나. 관심이 아주 뜨겁다 못해 타오를 정도였다.
“뭐, 그건 가서 고민해도 되겠지. 변장도 가능하니까.”
“거기서 변장한 상태로 싸우면 수상해 보이지 않을까?”
“잘된 변장은 별로 수상해 보이지 않는 변장이지. 걱정 말라고.”
태현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판타지 온라인 1 때부터 얼굴 숨기고 다니는 것에는 능했다.
‘수상함’과 ‘그냥 저 사람은 복면 쓰고 다니는 걸 좋아하나 보다’ 사이의 아슬아슬한 균형을 탈 수 있는 게 바로 태현!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었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기라는 말이 있지.”
“그게 왜?”
“네가 투기장에 들어갔는데, 어떤 한 놈이 너무 수상하게 생긴 거야. 장비도 좋아 보이는데 뭔가 아이템을 써서 겉을 가린 거 같고…… 어떤 생각이 들 거 같냐?”
“고렙 플레이어가 견제받기 싫어서 변장했구나, 생각이 들 거 같은데.”
“바로 그거야. 그리고 다른 사람들한테는 상대적으로 시선이 덜 가겠지. 잘 부탁한다.”
태현은 케인의 어깨를 툭툭 치고 걸어갔다. 케인은 잠시 동안 이해를 하지 못했다. 뭘 ‘잘 부탁한다’는 거지?
“야, 설, 설마?!”
“세상에서 가장 수상한 사람처럼 행동하라고. 괜찮아. 어차피 투기장에서는 죽어도 페널티 없잖아.”
“으윽……!”
케인은 대꾸하지 못하고 부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