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75화
오크들이 뭔 알록달록하고 괴상한 장비들을 덕지덕지 끼고 다니니 안 이상할 수가 없었다.
보통 성능을 중요시하는 플레이어여도 어느 정도 겉모습은 신경을 썼다.
그래도 조화란 게 있지 않은가.
그러나 저기 오크들은 감히 패션계의 테러리스트라고 해도 과언이 없을 수준!
‘일부러 해도 저렇게는 못 하겠다!’
로이는 고개를 저으며 창을 꺼냈다. 그의 직업은 창술사. 그것도 그냥 창술사가 아닌 영웅 직업 창술사였다.
그런 그가 왜 여기서 저 오크들을 몰래 쳐다보고 있느냐?
그 이유는 하나.
그가 PK를 즐겨 하는 플레이어였기 때문이었다.
판타지 온라인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착각하기 쉬운 것 중 하나가 바로 랭커들이었다.
그 수많은 플레이어 사이에서 순위권에 든 사람들인 만큼, 인성도 올바르고 괜찮을 거라고 무심코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
예전부터 태현은 이렇게 말해왔었다.
-랭커들 중에 절반은 약간 맛이 간 놈들이야. 남은 절반은 자기가 맛이 안 갔다고 생각하는 맛이 간 놈들이고. 나? 나는 물론 정상이지.
레벨 높다고 성격까지 올바를 리가 없었다. 랭커 중에서는 지금 로이처럼 PK를 즐겨 하는 사람도 있었다.
‘저 멍청한 놈은 쪽팔리게 저런 놈들한테 털리고 오냐?’
로이도 랭커인 만큼 길드에 들어가 있었다. 대형 길드는 아니었지만 로이가 랭커인 덕분에 나름 유명했다.
그러나 멀쩡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길드 안은 엉망진창이었다. 로이가 정상적인 길드 운영에 별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길드원들은 로이와 성격이 비슷한, PK와 약탈을 즐겨 하는 플레이어들로 구성!
여론이나 견제가 무서워서 대놓고 하지는 않지만 몰래몰래 PK를 즐기는 그들이었다.
당연히 로이의 길드원들이 로이를 따랐다. 만약에 그들이 그들보다 강한 상대를 만났을 때, 든든한 빽이 되어줄 수 있는 건 로이밖에 없었으니까.
랭커 정도의 빽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길드원 몇 명이 로이한테 도움을 요청한 상태였다.
-저 오크들을 좀 털어보려고 했는데 너무 셉니다! 막 반격 스킬에다가 방어막도 걸리고……
-우리로는 무리입니다! 도와주세요!
김태산의 길드원 몇 명을 얕잡아보고 덤벼들었다가 호되게 당한 로이의 길드원들이 고자질을 한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로이는 호기심이 생겨 그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패션 센스야 어쨌든, 저들이 주제에 맞지도 않은 좋은 아이템을 갖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남는 건 하나. 잡고 아이템을 털 뿐!
‘좋아. 가 볼까?’
로이는 창날을 빙글 돌리며 스킬 몇 개를 자신한테 걸었다.
상대방의 숫자가 꽤 됐지만 그건 무섭지 않았다. 그는 랭커였으니까.
저런 나이 든 아저씨들이 시시덕거리려고 모인 길드 따위는 순식간에 끝내버릴 수 있었다.
게다가 그의 직업은 일대 다수와의 싸움에 유리했다. 다양한 범위 스킬과 회피기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로이는 <최강지존무쌍> 길드의 뒤를 몰래 쫓았다.
* * *
‘드디어 갈라지네.’
오크들이 갈라져서 삼삼오오 흩어지자 로이는 씩 웃었다.
사악한 미소!
사냥감들이 약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사냥꾼이 짓는 미소였다.
각자 퀘스트가 있으니 같은 길드라고 해도 오랫동안 같이 있지는 않았다. 이렇게 갈라지는 순간이 오기 마련!
그 순간이 바로 기회였다.
“크크큭…… 크크크크크크크크큭!”
“너 뭐하냐?”
“?!”
로이는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덩치 큰 오크가 거대한 망치를 들고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괴상하고 화려한 복장을 봤을 때, 저 길드의 길드원이라는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어…… 그냥 지나가는 중이었는데…….”
로이는 무심코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서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내가 거짓말을 했지?’
그냥 지금 덤비면 되는 일인데!
로이는 그렇게 생각하고 창을 붙잡았다. 그리고 빠르게 앞으로 찔렀다.
-이중 가속 찌르기!
“……어쨌든 알아서 와주니까 고맙네!”
텅! 텅!
“……?”
앞에 서 있던 오크, 김태산은 험상궂게 웃었다.
“어쩐지 수상하다 싶었는데, 날 노리는 놈이었군. 너 뭐하는 놈이냐? 너 태현이한테 돈 받았냐?”
“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아닌가? 이거 원…… 요즘 젊은 놈들만 보면 다 태현이 친구 같으니…….”
김태산은 혀를 끌끌 찼다. 태현의 공개 발표 덕분에 피해망상이 심해진 그였다.
그 사이 로이는 당황함을 감추고 창을 되돌렸다. 왜 공격이 안 먹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멈추면 안 됐다.
“시끄러워, 아저씨! 그 나이 먹고 무슨 게임이야? 얌전히 죽으라고!”
“이 자식이…… 네가 나 게임하는데 뭐 보태준 거 있냐?”
쾅! 콰콰콰쾅!
풍차 같은 연속 공격이 들어갔다. 로이는 과연 랭커다운 실력을 보여주었다.
창끝이 여러 갈래로 나뉘며 뱀처럼 휘어지더니 계속해서 김태산의 전신을 후려갈겼다.
‘별거 아니잖아? 괜히 쫄았네.’
로이는 공격을 계속하며 그렇게 생각했다. 처음 공격이 튕겨 나가서 겁을 먹은 게 바보같이 느껴졌다.
-회오리 투창!
로이는 콤보를 마무리 지으며 마지막 스킬을 김태산의 몸에 찔러 넣었다. 묵직하고 강렬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김태산이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다 했냐?”
“……!”
김태산은 몸을 가리고 있던 거대한 망치를 앞으로 세웠다.
그 많은 공격을 맞았는데도 김태산은 별로 다치지도 않은 것 같았다.
“그럼 이제 내 차례지?”
붕-
콰콰쾅!
“……!”
김태산의 망치가 휘둘러지자 로이는 급하게 뒤로 물러섰다. 저런 공격에 한 대 맞으면 HP가 장난 아니게 깎일 것이다.
그러나 김태산은 그런 걸 노린 게 아니었다.
-울부짖는 고대 오크 정령!
땅이 갈라지며 위로 용암색 이펙트가 팍팍 튀어 올랐다. 그것에 맞자 메시지창이 떴다.
[고대 오크 정령에게 붙잡힙니다. 일시적으로 스턴 상태에 빠집니다.]
“……!”
로이는 기겁했다. 김태산은 달려오더니 전력을 다해 망치를 풀스윙했다.
콰아아아아앙!
“크아악!”
로이는 세 바퀴를 구르고 나뒹굴었다. 그는 욕설을 내뱉고 포션을 찾았다.
딸칵-
몇십 골드나 나가는 비싼 포션, <이메르의 급속 체력 회복 포션>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로이였다.
‘XX. 너무 얕봤네.’
로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크게 한 대 맞기는 했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라서 바로 회복할 수 있었다.
어쩌다가 맞았지만 로이는 그가 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김태산의 실력이 대단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로이가 공격할 때는 계속 막기만 하고 있었고, 반격도 단순했다. 그냥 일격이라니.
로이였다면 상대방이 스턴 상태에 빠졌을 때 공격 스킬 몇 개는 넣었을 것이다.
‘이제 안 당한다!’
로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달려들었다. 한시라도 빨리 김태산을 쓰러뜨린 다음 다른 길드원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퍼퍼퍼퍼퍼퍽-
“……!”
아까처럼 신나게 들어가는 공격. 무기력하게 맞는 김태산의 모습에 신이 나 덤비던 로이는 순간 등에 소름이 돋았다.
‘이, 이거…….’
맞고 있는 김태산의 눈빛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전혀 데미지를 입지 않은 모습!
‘함정이다!’
어떻게 이렇게 멀쩡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로이는 일단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로이의 스킬이 순간 멈추자, 바로 김태산의 반격이 들어왔다.
-울부짖는 고대 오크 정령!
아까와 똑같은 스킬. 로이는 다급한 와중에도 속으로 비웃었다.
랭커들은 싸울 때 절대로 평범하게 싸우지 않았다.
온갖 다양한 스킬과 전략들의 총집합! 옆에서 보면 그 화려함에 눈이 부실 정도였다.
그런데 저 아저씨는 아까 썼던 스킬을 다시 쓰고 있었다. 이미 눈에 익은 로이가 그걸 당할 리 없었다.
‘바보 아냐?’
[고대 오크 정령에게 붙잡힙니다. 일시적으로 스턴 상태에 빠집니다.]
“?!”
피했는데 뜨는 메시지창에 로이는 깜짝 놀랐다.
이건…….
회피 불가 스킬!
“왜. 피할 수 있을 줄 알았냐, 이놈아?”
김태산은 으르렁거리며 망치를 들고 덤벼들었다.
“잡스러운 스킬 여러 개 써봤자 정공법은 못 당하는 법이다!”
“으억?!”
다시 한번 일격. 아까처럼 로이는 뒤로 나뒹굴었다. 김태산은 망치를 어깨로 넘기고 포션을 마셨다.
<자르메의 완전 회복 포션>. 개당 몇백 골드나 하는, 던전이나 레이드를 돌 때 마지막 목숨으로 아껴두는 비장의 아이템이었지만 김태산은 아낌없이 사용했다.
로이가 넣은 공격은 이걸로 전부 회복!
뚜둑-
김태산은 목의 근육을 풀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게임을 한 시간만 따지면 로이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게 바로 김태산이었다.
로이가 온갖 화려한 스킬과 컨트롤로 덤벼들어도 김태산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의 방어력과 아이템을 믿었다.
괜히 현혹되어서 당황해하는 건 가장 멍청한 짓!
버티고 견딘다. 상대방이 멈출 때까지. 아무리 긴 콤보여도 끝은 있기 마련이었으니까.
그다음은 반격.
이 반격이 중요했다. 상대방의 실력이 좋다는 건 알고 있었다. 괜히 한 번에 끝내겠다고 욕심을 부렸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것이 분명.
김태산은 욕심을 부리지 않고 상대방의 발을 묶을 스킬만 썼다.
<울부짖는 고대 오크 정령>. MP도 많이 소모하고 공격력도 부족한 데다가 얻기까지 온갖 퀘스트를 해야 하는 스킬이었지만 그 효과는 강력했다.
일정 범위 내로 무조건 스턴! 거기 위에서 탭댄스를 추든 날아다니든 무조건 스턴을 거는 스킬이었다.
김태산은 쌩쌩하게 젊은 사람을 상대로 화려한 컨트롤 대결을 펼칠 생각이 없었다.
그에게는 그만의 싸움법이 있었으니까.
바위처럼 굳건하게. 흔들리지 않고 상대를 제압해나간다.
그야말로 제왕다운 싸움 방식!
스턴에 걸린 상대에게도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무조건 한 방. 여러 스킬을 넣으려고 하다가는 상대가 풀려서 반격을 할 가능성이 있었다.
상대방에게 한 방을 먹인 다음에는 다시 회복. 이것을 반복한다.
“헉, 헉…….”
로이는 엉망진창이 되어서 김태산을 쳐다보았다. 지금 무슨 단단한 바위를 맨몸으로 두들기는 느낌이었다.
방어력이 얼마나 단단한지 아무리 공격해도 흠이 보이지 않았다. 스킬을 쓰다가 멈추기라도 하면 바로 스턴을 걸어버린 다음 일격. 그리고 입은 데미지와 스킬로 소모한 MP는 포션으로 바로 회복해 버렸다.
“이, 이런 게 어디 있어!”
로이는 그도 모르게 외쳤다. 김태산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왜. 내가 너하고 같이 드잡이질이라도 할 줄 알았냐? 내 나이가 몇 살인데. 너하고 같이 놀아줄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그 아이템은 대체 무슨 아이템인데?! 어떻게 나보다 더 좋은 거야?!”
신경질적인 로이의 목소리에 김태산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샀다.”
“……?”
“현금으로.”
“……!”
로이의 입이 떡 벌어졌다.
“아까 네가 말했었지? 그 나이 먹고 무슨 게임이냐고.”
“…….”
“그 나이 먹은 아저씨들 한 번 상대해 봐라.”
“?!”
김태산의 말에 로이는 섬뜩함을 느끼고 뒤로 돌았다.
<최강지존무쌍> 길드원들이 살벌한 웃음을 지으며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포위당했다……!’
이렇게 되면 도망도 못 쳤다. 로이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가 미행하고 있는 동안 김태산은 눈치를 채고 역으로 포위를 해왔다는 것을!
“이, 이건 말도 안 돼…….”
“아저씨라고? 응?”
쇠사슬로 연결된 추를 휘두르는 오크가 말했다.
“어디서 건방지게 자식이 말이야…… 우리가 전성기 때는 너 같은 놈이 제대로 말도 못 걸었어!”
획!
그리고 구타가 시작되었다. 화려하지도, 복잡하지도 않은 단순한 공격들.
그러나 빈틈이 없는 완벽한 합동 공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