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74화 (174/1,826)

§ 나는 될놈이다 174화

태현도 판타지 온라인 1의 경험으로 투기장에 대해 꽤나 잘 알고 있었다.

‘즐거운 추억들이 가득하지.’

한때 랭커들 사냥 대비용으로 PVP 전용 아이템들을 얻기 위해 투기장을 뛸 때가 있었다.

물론 그때 태현이 대장장이인 걸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모두 다 중갑 계열 전사라고 생각했었다. 태현도 굳이 오해를 풀진 않았고.

그런데 아발랍 시에도 투기장이 있다니.

갑자기 두근거리는 마음!

“그래? 아발랍 시에 투기장이 있다 이거지?”

태현의 얼굴에 행복한 웃음이 떠오르자 케인의 얼굴에는 공포가 떠올랐다.

‘나는 왜 대장장이 놈들처럼 도망을 칠 수 없을까?’

제노마 시에서 퀘스트가 나온다면 도망이라도 칠 수 있을 텐데!

“아발랍 시 투기장은 며칠마다 열리냐?”

“한 달. 근데 거기는 참가하지 말지 그러냐.”

“왜지?”

“아발랍 시 투기장은 좀…… 악명이 높거든.”

“……?”

투기장이 다 똑같은 투기장이 아니었다. 각 지역의 투기장마다 돌아가는 방식이 천차만별!

어떤 곳은 평범하게 투기장 안에 두 명이 들어가서 1:1로 싸운 다음 승자가 나오는 방식이라면, 또 어떤 곳은 2:2로 싸워서 승리한 팀이 나오는 방식이었다.

어떤 곳은 아예 단체로 15:15 같은 식으로 진행되었고 또 다른 곳은 플레이어들이 싸우는 게 아니라, 몬스터들이 싸우고 플레이어들은 밖에서 이길 것 같은 몬스터들한테 티켓을 거는 방식!

한마디로 규칙은 그 투기장마다 마음대로였다.

“뭐 얼마나 악명이 높은데? 몬스터한테 티켓이라도 거나?”

플레이어들끼리 싸우는 게 아니라 몬스터한테 티켓을 거는 투기장은 그 악명이 높았다.

거기서 한 재산 날린 사람들이 수두룩!

투기장에서 골드를 내고 티켓을 산 다음, 이길 거 같은 몬스터한테 티켓을 걸어서 티켓을 따고, 그 티켓으로 투기장 전용 아이템을 얻어가는 방식.

재산 날리기 딱 좋은 방식이었다.

-이, 이번에는 분명 된다……!

-온다! 저 고블린이 오우거를 이길 것 같은 예감이 와!

‘생각하니 좀 소름이 끼치네. 또 그런 놈들을 주변에서 봐야 하나?’

“아니. 그런 건 아니고. 플레이어들끼리 싸우는데…….”

케인은 말하다가 멈칫했다.

‘잠깐, 내가 왜 이놈을 걱정해줘야 하지? 거기 가서 죽으면…….’

태현이 죽는 걸 본다면 10년 묵은 체증이 시원하게 내려갈 것 같은 기분!

그걸 눈치챈 태현이 웃으면서 태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케인. 네가 잊고 있는 게 하나 있다.”

“뭐, 뭔데?”

“우리가 처음 만남은 안 좋게 만났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는 걸.”

“……!”

케인은 태현의 말에 순간 감동했다. 이런 다정한 말도 할 줄 아는 놈이었다니!

계속 맞다가 한 마디 따뜻한 말에 가슴 뭉클해지는 케인이었다.

“이제…… 우리가 친구라는 거냐?”

“아니. 무슨 소리야?”

태현은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듯이 케인을 쳐다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지금은 네가 완전히 내 밑이라는 거지. 그러니까 투기장에서 뭐 숨길 생각하지 마. 내가 거기서 잘못되면 너는 더 잘못될 테니까. 거기 너 싫어하는 놈들이 없겠냐, 많겠냐?”

“……!”

협박의 달인! 태현은 굳이 욕과 직접적인 말을 하지 않아도 뛰어난 협박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케인은 레드존 길드 때 많은 적을 만들었다. 레드존 길드가 망했는데도 그나마 잘 지내는 건 태현 옆에 붙어있기 때문!

그건 케인도 잘 알고 있었다.

‘전 길드원 놈들이 날 안 쫓아오는 것도 김태현 때문이긴 한데……!’

케인한테 당한 전 레드존 길드원들 성격이라면 지금 당장 쫓아와서 복수를 벌여야 할 텐데, 보이지 않는 걸 보면 태현한테 겁을 먹은 게 분명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케인을 건드리지 않는 것도 태현 덕분이었고.

결국 케인이 지금 여기까지 피해를 복구하고 꾸역꾸역 올라온 건 다 태현 덕분이었다.

벗어나는 순간 위험해진다!

‘그건 아는데, 그건 아는데……!’

쉽게 납득이 안 가는 이 마음!

“자. 그러니까 헛수작 부리지 말고 투기장에 대해서 제대로 말하라고.”

“알겠어…….”

케인은 시무룩해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 * *

“나를 죽이겠다고 말한 건방진 놈이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김태산은 엄격, 근엄, 진지한 포즈로 말했다. <최강지존무쌍>의 오크 길드원들은 각 잡힌 자세로 김태산의 말을 들었다.

험악한 오크들의 살벌한 분위기!

다른 플레이어들은 언덕 위에 모인 오크 플레이어들을 보고 히익거리며 거리를 벌렸다.

“…….”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그러자 한 명이 주변의 눈치를 보며 손을 들었다.

“어…… 밟아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거야! 이 자식! 다른 놈들은 왜 말이 없어?!”

그러자 다른 길드원들 사이에서 대답이 나왔다.

“그거야 그 상대가 태현이잖습니까.”

“형님 아들인데…….”

“내 아들인 게 뭐 어때서! 그놈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날 공격할 놈이라고!”

“아, 태현이 이야기였습니까? 전 또 뭐라고.”

손을 들고 가장 먼저 말했던 길드원도 상황을 깨닫고 손을 내렸다.

길드원들의 미적지근한 태도에 김태산은 울컥했다.

“너 이 자식들. 내가 길마냐, 그놈이 길마야?!”

“형님이 길마죠.”

“그렇긴 한데 부자싸움은 칼로 물 베기 아닙니까.”

“그건 부부싸움 아닌가?”

“대충 맞는 말 같은데.”

웅성웅성!

오크 아저씨들이 한 번 이야기를 시작하자 자리는 순식간에 시끄러워졌다.

“조용!”

뚝!

김태산의 말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우리는 지금 빠르게 강해지고 있다. 그렇지?”

“예!”

김태산의 말은 사실이었다. <최강지존무쌍> 길드의 성장 속도는 보통이 아니었다.

나름 게임 좀 한다 싶은 플레이어들이 모인 길드와 비교해도 압도적인 성장 속도!

김태산과 길드원들이 게임을 엄청나게 잘해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의 게임 실력은 평범한 수준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전성기가 지난 나이에 젊었을 적 실력이 나오지는 않았다.

비결은 단 두 가지.

돈과 시간!

돈과 시간이 넘쳐나는 아저씨들이 게임을 잡자 어마어마한 위력이 나왔다.

퀘스트를 하는데 아이템을 구하느라 시간이 걸린다? 현질을 해서 사서 빠르게 끝낸다.

레이드를 해야 하는데 현재 수준으로는 좀 위험해 보인다? 현질을 해서 비싼 장비를 산 다음 포션을 미친 듯이 들고 가서 깬다.

나이가 들어서 전성기 때의 게임 실력은 사라졌어도 게임을 하는 머리는 어디 가지 않았다.

김태산과 길드원들은 최적의 성장 방법을 계산하고, 그 방법대로 가기 위해서는 돈과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했다.

그 결과가 지금 바로 현재!

김태산은 스스로를 고수급 플레이어에서 준 랭커 사이 정도에 있다고 생각했다.

늦게 시작한 것에 비교한다면 정말 무시무시한 성장 속도였다.

돈과 시간뿐만이 아니라 길드원들이 경험치와 각종 보상을 김태산에게 몰아준 덕분!

김태산은 단호하게 말했다.

“태현이 그놈이 방송에 나오고 제법 건방지게 재주를 부린다지만 우리의 단결된 힘 앞에서는 까불지 못할 거다!”

그러나 길드원들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과연 그럴까?”

“방송 보니까 보통 날랜 게 아니던데. 역시 젊은 놈은 다르다니까.”

“태현이 그놈은 어렸을 때부터 범상치 않은 놈이었지. 한 번은 스파링하는 걸 봤었는데…….”

적대심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말들! 김태산은 발을 굴렀다.

“이것들아! 태현이가 나만 노릴 거 같냐? 너희들도 같이 노릴 거다. 위기감을 가져!”

“에이. 싸운 건 형님인데 왜 우리까지 끼어들겠습니까?”

“맞아. 맞아.”

김태산은 그 말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태현이 성격 생각해 봐라. 너희들이랑 나랑 같이 다니는데 그렇게 잘라서 따로 생각할 거 같냐, 아니면 먼저 공격하고 볼 거 같냐?”

“…….”

태현을 실제로 만나본 적 있었던 아저씨들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나오는 결론 하나!

‘태현이 그놈이 성격 하나는 확실히 더럽지!’

일단 먼저 패고 볼 놈!

“확실히…… 그렇긴 하겠네요.”

“그렇지? 너희들도 방심하지 마. 내 아들이라고 봐주거나 하지 말라고! 보이면 무조건 공격해! 그리고 바로 연락하고! 혼자서 싸울 생각은 하지도 마라!”

“알겠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네.”

오크 아저씨들은 설렁설렁 대답했다. 그러나 그중 의욕이 가득한 한 명이 있었다.

“제가 반드시 잡겠습니다!”

아저씨들이 아닌, 김태산의 친구인 양성규의 체육관에서 선수로 훈련받고 있는 김상철이었다.

젊고 의욕이 가득한, 김태산의 돈지랄에 반한 젊은이!

“오. 그래도 쓸만한 놈 하나는 있어! 아주 좋아!”

김태산은 신이 나서 김상철을 칭찬했다.

그러나 옆에 있던 다른 아저씨들은 고개를 저으며 김상철의 어깨를 붙잡았다.

“먼저 안 나서는 게 좋을 거다.”

“예? 왜요?”

“저 두 부자 관계는 꽤 복잡하거든.”

“설마 제가 그 김태현이라는 놈 잡으면 태산 아저씨가 화를 내나요?”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귀여운 법. 김태산이 저렇게 말하지만 정작 태현을 잡으면 ‘내 아들을 건드리다니!’라고 화를 낼 수도 있었다. 김상철은 그런 걸 걱정했다.

그러나 아저씨들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형님이 그런 사람은 아니지.”

“그러면 왜 안 나서는 게 좋다는 거죠?”

“그야 네가 먼저 나섰다가는 태현이한테 먼지 나게 두들겨 맞을 테니까.”

“맞아. 맞아.”

아저씨들의 끄덕임!

김상철은 다들 그가 태현한테 질 거라고 생각하자 살짝 화가 났다.

판타지 온라인은 가상현실게임. 현실에서 잘 싸우고 반사신경이 좋은 사람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체육관에서도 손꼽히는 권투 선수였다. 그걸 살려서 게임에서도 근접 직업으로 잘 싸우고 있었다. 이제까지 한 번도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물론 게임은 스킬과 레벨, 직업 같은 그런 요소들이 있었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다른 오크 길드원들이 있지 않은가.

“아저씨들이 도와주시면 되잖습니까!”

“도와주기야 하겠는데…….”

“음…… 그게 말이야…….”

오크 아저씨들은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태현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전자전이라고 해야 하나? 호랑이 새끼는 호랑이라고 해야 하나…….”

“솔직히 태현이 그놈은 태산 형님보다 더한 놈이잖아.”

“방송에서 어떻게 그렇게 착하게 나오는지 모르겠다. 방송사한테 뇌물이라도 줬나?”

김태산과 김태현이 부딪히는데 굳이 끼고 싶지 않은 게 본심!

물론 싸우게 된다면 끝까지 김태산의 편을 들어줄 생각이었다. 그래도 가능하면 태현과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아는 형님의 귀여운 아들이라서가 아닌, 아는 형님의 무서운 아들이기 때문에!

“어쨌든 너도 괜히 혼자 까불다가 털리지 말고 같이 움직여. 같이 싸워야 승산이 있다.”

“맞는 말이야. 다구리가 제일이지.”

오크 아저씨들의 말에 김상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속은 아니었다.

반드시 뭔가 보여주리라!

* * *

“저게 네가 말한 그 길드냐? 아저씨들 같은데?”

“보통 놈들이 아니라니까요! 아이템이 장난이 아니에요! 제가 선빵을 쳤는데 갑자기 피가 순식간에 회복되더니 그냥 자동 반격이 되고…….”

“알겠어. 현질 좀 했나 보지. 그래 봤자 별거 아니야.”

로이는 최강지존무쌍 길드원들을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나름 랭커라고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는 로이였다. 저런 아저씨들이 모여 다닌다고 겁을 먹을 리 없었다.

‘그것보다 저것들은 뭐야? 괴상해가지고…….’

희한하고 괴상망측한 겉모습들!

그것이 최강지존무쌍 길드원들의 첫인상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