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71화
천하의 태현도 당황할 수밖에 없는 상황.
방어를 뚫고 들어와서 바로 저주를 작렬시킨 마르덴 후작의 솜씨도 당황스러웠지만, 더 당황스러운 건 롤백된 태현의 행운이었다.
“어…… 음…….”
“크핫핫핫핫핫! 어떠냐! 네가 믿는 신에게 버림받은 기분을! 네가 믿는 신이 준 힘을 빼앗긴 기분을!”
“저기…… 그러니까…….”
“어디 한 번 아까처럼 컥!”
“말 좀 들어라, 이 고마운 자식아!”
태현은 마르덴 후작이 떠드는 사이 행운의 일격을 몇 번이고 사용한 다음 유성을 들어서 후려갈겼다.
“?!”
“미안한데 난 아키서스한테 받은 거 없다.”
“말, 말도 안 돼……!”
믿은 적도 없고, 강제로 전직된 직업!
“공격해라!”
그제야 정신을 차린 아농 성 안의 모든 플레이어와 NPC들이 마르덴 후작을 맹렬하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내 종복들아! 여기로 와라!”
“예, 주인님!”
마르덴 후작을 따르던 뱀파이어들도 부서진 성벽을 넘어 달려들었다.
최후의 결전!
여기서 마르덴 후작을 잡아야 했다. 태현은 결연하게 각오를 하려고 했…….
‘아. 진짜. 웃음을 참을 수가 없네.’
싸우려고 해도 날로 먹은 행운에 웃음이 나왔다.
싱글벙글!
옆에서 싸울 준비를 하고 있던 에반젤린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아? 디버프 걸린 거 같은데. 싸울 수 있겠어?”
“디버프…… 그래. 디버프라고 하면 디버프겠네. 근데 넌 왜 떨어져 있냐?”
에반젤린은 평소와 달리 거리를 두고 말을 하고 있었다.
“행운 내려갔으면 페널티 받을까 봐…….”
“그런 거 없어!”
태현은 호쾌하게 외치고서는 마르덴 후작에게 달려들었다.
“후장! 이 은혜를 갚아주지!”
앞으로 태현에게 있어서 마르덴 후장, 아니, ‘마르덴 후작 같다’는 표현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사람한테 쓰는 표현이 될 것!
쾅! 콰콰쾅! 콰쾅!
마르덴 후작은 대량의 마나를 쓴 저주에도 태현이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당황했지만, 바로 대응에 들어갔다.
아농 성의 플레이어들과 NPC가 동시에 공격을 퍼붓는데도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는 것이 바로 마르덴 후작!
주변에 몇 겹으로 붉은색 구(球) 형태의 보호막이 생기고, 플레이어들의 공격이 그 위로 작렬했다.
근접 계열 플레이어들은 오러가 치솟는 무기를 들고 덤벼들었다.
“안 돼! 물러서!”
에반젤린은 비명을 지르듯이 말했다. 레벨 높은 뱀파이어 상대로 근접전은 미친 짓!
“크흐흐흐…….”
마르덴 후작은 몸을 안개로 변형시켜서 가까이 붙은 플레이어들을 감쌌다.
그리고 흡혈!
[마르덴 후작이 당신을 포박하고 흡혈합니다. 저항에 실패합니다. HP가 감소합니다!]
플레이어들을 흡혈하며 빠르게 HP와 MP를 회복하던 마르덴 후작은 뒤에서 누군가가 접근한다는 걸 깨달았다.
겉모습을 보니 지금 흡혈당하고 있는 버러지들과 비슷한 전사!
“멍청하구나, 버러지!”
마르덴 후작은 별생각 없이 몸을 뻗어 다가오는 사람을 붙잡았다.
“안녕?”
“?!?!”
그러나 들어온 것은 태현!
그사이 변장 스킬을 사용해 다른 전사인 것처럼 위장해서 접근한 것이다. 몇 번이고 겹친 도발로 판단력이 흐려진 마르덴 후작은 태현의 변장 스킬을 뚫을 수 없었다.
콰콰콰쾅!
“크아아악!”
태현은 갖고 있는 은 관련 무기는 다 때려 박았다. 폭탄이 내장된 은제 검, 은 조각들을 안에 박은 폭탄 등…….
흡혈이 풀린 마르덴 후작은 이를 갈며 물러섰다. 방어막이 풀린 순간을 사람들은 놓치지 않았다.
“공격!”
-아르카헤트의 끓어오르는 용암!
-짓누르는 두 손!
-카흘라단의 번개! 카흘라단의 번개! 카흘라단의 번개!
정수혁은 이번 퀘스트에서 가장 많이 성장한 사람 중 하나였다. 레벨 차이가 나는 몬스터들을 사냥한 것도 모자라서 새로운 직업까지 얻은 것이다.
이 모든 게 태현과 같이 다니고서부터 얻은 영광!
정수혁은 반드시 태현에게 도움이 되어서 인정받겠다는 일념으로 마법을 퍼부었다.
그리고 카흘라단의 번개가 연속으로 뿜어져 나갔다.
다른 효과들과 함께!
“?!”
첫 번째 카흘라단의 번개는 마르덴 후작을 후려갈기고, 동시에 마르덴 후작에게 시야 감소의 저주를 걸었다.
두 번째 카흘라단의 번개는 마르덴 후작을 후려갈기고 정수혁의 몸 주변에 방어막을 걸었다.
세 번째 카흘라단의 번개는 마르덴 후작을 후려갈기고 정수혁의 방어막 위로 화염 화살을 쏘았다.
퍼퍼펑!
“?!”
주변에 있던 마법사들은 정수혁이 갑자기 자기 방어막 위로 화염 화살을 쏘아대자 기겁했다.
“뭐야!?”
“마법 실패했어? 이럴 때 그런 마법 쓰면 안 되지! 한두 번 해봐?”
마법은 실패하면 가끔 역효과가 일어났다. 재수 없으면 자기를 공격하는 일도 종종 있을 정도.
그들은 당연히 정수혁도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수혁은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
일단 정수혁은 다른 사람들의 말대로 쓰는 마법을 바꾸었다. 초보자 시절부터 쓰던 마법, 하급 매직 애로우!
그러나 마나로 된 화살이 날아가는 것과 동시에…….
“으허허억?!”
마르덴 후작의 땅 밑이 꺼지더니 그를 구덩이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걸 본 다른 마법사들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저렇게 방어하고 있는 마르덴 후작을 뚫고 마법을 걸었다고?’
‘대체 레벨이 몇이길래?’
‘김태현하고 같이 다니는 거 같던데, 역시 차원이 다르구나!’
다른 플레이어들은 그렇게 알아서 오해를 쌓아갔다. 까맣게 타들어 가는 정수혁의 속마음은 전혀 모르는 채로!
-멍청아. <아키서스의 마법>이다.
-예? 선배님?
-새로 전직을 했으면 그 직업을 알아볼 생각을 해야지!
태현의 귓속말에 정수혁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키서스의 마법>
마법을 사용 시 특정한 효과를 추가로 부여합니다. 사용자의 신성과 아키서스 교단의 세력에 따라 영향을 받습니다.
“……!”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특정한 랜덤 효과가 추가되는 것이 바로 이 <아키서스의 마법>스킬!
‘이게 뭐야?!’
우직한 정수혁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매번 마법을 쓸 때마다 추가로 랜덤 효과가 나온다니.
‘무슨 토X피의 손가락 흔들기야?!’
그러나 당황할 시간도 없었다. 마르덴 후작이 최후의 발악에 나선 것이다.
“크아악! 이 하찮은 버러지들이 정말로!”
계속 버티고만 있다가는 집중공격으로 쓰러질 것이라는 걸 깨달았는지, 마르덴 후작은 구덩이에서 튀어나와 앞으로 달려들었다.
노리는 것은 마법사들! 방어는 포기하고 몇 대 맞더라도 그들을 쓰러뜨릴 생각이었다.
게다가 마르덴 후작은 뱀파이어. 쓰러뜨리기만 흡혈로 일시적인 회복이 가능했다.
콰콰쾅!
“어디 가십니까, 후장님!”
“너 이 버러지가 진짜!”
준비한 폭탄과 소모성 아이템은 전부 썼지만 상관없었다. 태현은 마르덴 후작의 앞에서 눈부신 공격을 펼쳤다.
훨씬 더 빠르고 강력한 적을 상대할 때야말로 ‘진짜’ 실력이 빛이 나는 법!
상대의 동작을 먼저 읽고 예측한 다음 최소한으로 피하고 다시 반격에 들어간다.
투콰콰콱-
치고 빠지고 치고 빠지고의 연속!
분노로 눈이 돌아간 마르덴 후작의 공세는 저번과는 달리 많이 무뎌져 있었다.
엄청나게 빠르고 위협적이었지만 그뿐! 태현이 상대하기에는 최적이었다.
‘우선 공격을 분류한다.’
1초 사이에 정신없을 정도로 공격과 스킬이 오가는 상황에서도 태현의 마음은 차분했다.
‘피할 정도로 위협적인 공격이라면 먼저 피한다. 아니라면 차선으로 피하고, 움직임이 꼬일 거 같다면 그냥 행운으로 견딘다.’
“어, 어떻게 하지?”
“젠장! 조준을 할 수가 없어!”
태현과 마르덴 후작이 미친 듯이 움직여가면서 서로를 공격해대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당황했다.
지금 공격했다가는 태현도 범위에 들어가는 것!
“그냥 쏴!”
“네? 그럴 수는…….”
“구성욱! 이것들이 안 쏘면 제작법은 없다! 쏘게 해!”
“?!”
긴장한 얼굴로 싸움을 지켜보던 구성욱은 당황해서 외쳤다.
“쏴! 어차피 쏴도 김태현은 견딜 수 있으니까!”
“그게 정말입니까?”
‘나도 모르지! 이 자식들아!’
구성욱은 울고 싶었다. 그렇지만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제작법!
“그래! 쏘라고!”
콰콰쾅! 쾅!
다시 궁수들과 마법사들의 폭풍 같은 공격이 시작되었다. 마르덴 후작은 사방팔방에서 들어오는 공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무리 강한 보스 몬스터라도 이렇게 계속 포위되어서 집중 공격을 당하면 당해낼 방법이 없었다.
[마르덴 후작이 생명의 위기를 느낍니다.]
[도발 상태가 풀립니다!]
도발이 풀린 건 아쉬웠지만 적의 목숨이 거의 끝나기 직전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이럴 수는…… 없단 말이다!”
마르덴 후작은 일단 눈앞의 태현을 치우고 포위망을 뚫고 나가려는 것 같았다.
-카인의 붉은 창!
짙고 검붉은 창이 마르덴 후작의 팔에 생겨났다. 미친 듯이 회전하며 섬뜩한 소리를 내는 창.
마법이나 저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태현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저건 뭔가 위험하다!
행운만 믿고 회피를 하기에는 섬뜩한 스킬. 태현은 바로 자리를 잡고 롱소드 <유성>을 뒤로 넘겼다.
쓰려는 것은 반격의 원.
주변에 온갖 마법이 떨어지고 화려한 효과가 펼쳐져도 태현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마르덴 후작에게만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르덴 후작의 몸이 연신 흔들렸다. 날아오는 화살과 마법에 두들겨 맞아서였다. 그러나 태현은 그 사이에서 꿈틀거리는 후작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콰아아아앙!
[반격의 원을 정확히 성공시켰습니다. 반격의 원 스킬 레벨이 5로 오릅니다.]
[이제 반격의 원을 성공시킬 시 추가 데미지가 들어갑니다.]
[검술 스킬이 오릅니다.]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연기가 사람들의 시야를 가렸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은 눈을 깜박였다.
방금 마르덴 후작이 뭔가 강력한 스킬을 쓴 것 같았는데, 어떻게 된 거지?
“크……으윽…….”
뒤로 튕겨 나가서 부서진 성벽 잔해더미에 처박힌 것은 태현이 아닌 마르덴 후작이었다.
“!!”
“어떻게 한 거지?”
“너, 너는 봤냐?”
“아니. 나도 못 봤는데…….”
옆에서 압도된 플레이어들이 떠들어댔지만 태현은 무시하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지금은 끝을 낼 때!
마르덴 후작은 스스로 쓴 스킬에 당해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저걸 태현이 맞았으면 어떻게 됐을지 두려울 정도였다.
-치명타 폭발, 강타!
“크아아아악!”
현재 가능한 폭딜 수단은 모조리 동원해서 공격을 집어넣는 태현!
마르덴 후작의 입에서 성벽을 뒤흔들 정도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이럴 수는…… 이럴 수는…… 영웅인 내가 이런 곳에서 죽다니……!”
“악역 주제에 주인공 같은 대사 하지 말고 그냥 죽지그래?”
“크…… 크크…… 오냐. 이 아키서스 놈……! 내게 두 번이나 굴욕을 안긴 놈에게 얌전히 죽어줄 것 같으냐!”
“?!”
마르덴 후작이 뭔가 불길한 소리를 하며 손을 뻗자 태현은 급하게 롱소드를 휘둘렀다.
원래 악당이 최후 대사를 하거나 숨겨진 힘을 꺼내려는 건 그냥 두고 보면 안 되는 법!
그러나 마르덴 후작은 롱소드에 베여나가면서도 목적을 달성했다.
[타락한 고대 뱀파이어, 마르덴 후작을 쓰러뜨렸습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사키드 뱀파이어들 사이에서 당신의 평판이 올라갑니다.]
[타락한 뱀파이어들의 적대도가 최고치가 됩니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
어지럽게 뜨는 메시지창을 뚫고, 마르덴 후작의 마지막 한 수가 등장했다.
[마르덴 후작이 몸에 박힌 아키서스 교단 마법사의 지팡이를 파괴시킵니다.]
[지팡이 안의 권능이 파괴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