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68화
생방송으로 시청자들에게 질문을 받고, 태현이 거기에 답한다. 영상은 나중에 따로 정규 방송 시간에 방송될 테니까 그 정도면 충분했다.
-진행자가 잘 컨트롤해 주면 별문제는 생기지 않겠지!
배장욱은 그렇게 생각하며 바로 준비에 들어갔다. 태현과의 질문 특집을 준비하고 있다는 떡밥은 예전부터 뿌려놨으니 사람들은 금방 모을 수 있었다.
* * *
“저리 비켜라.”
“너 뭐…… 헉! 김태현!”
태현은 성벽 위에 올라가자마자 플레이어 한 명의 뒷덜미를 잡고 옆으로 집어 던졌다.
수많은 사람이 보고 있는데도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는 저 당당함!
케인은 그걸 보고 쯧쯧거렸다.
‘드디어 저놈의 정체가 들통이 나는구나!’
이제까지 용케 안 들켰다 싶었다. 태현이 딱히 이미지 관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더더욱 그랬다.
그렇지만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고, 결국 이렇게 들키게 되는구나!
‘속이 다 시원하네!’
케인이 가장 억울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케인이나 태현이나 똑같이 사악한데, 왜 케인은 악당 취급을 받고 태현은 영웅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방송 반응을 보면 케인은 뒷목을 잡았다. 직접 옆에서 당해보지도 않은 것들이 ‘김태현만 한 플레이어가 드물지’, ‘랭커나 대형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은 다 이기적인데 김태현은 다른 플레이어들도 챙겨주더라’ 같은 소리를 진심으로 하고 있으니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 가장 그를 열 받게 하는 건 바로 ‘야 김태현이 케인 참교육 시키고 데리고 다니더라.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였다. 얼핏 들으면 불가능해 보이는 말.
그래서 사람들은 결론을 내렸다.
-아, 김태현의 인성이 저 케인의 마음을 고쳐먹게 했구나! 정말 대단하다!
물론 현실은 정반대였다. 태현은 그냥 케인이 포기할 때까지 케인을 팬 것이다.
그게 무슨 인성이고 참교육인가! 그냥 짐승을 다루는 방법이지!
파파팍!
그러나 그 순간 옆으로 집어 던져진 플레이어가 있었던 곳으로 검푸른 화살이 날아왔다.
언데드 부여 마법사가 마법을 건 강력한 화살!
그대로 맞았다면 꽤 데미지가 들어왔을 공격이었다. 태현이 집어 들어서 던져준 덕분에 플레이어는 하나도 다치지 않을 수 있었다.
“감, 감사합니다!”
“……?”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빨리 성벽 위에 올라가려고 하는데 방해가 되어서 집어 던졌는데 왜 고맙다고 하는 거지?
그걸 본 케인은 다시 한번 뒷목을 붙잡았다.
‘세상은…… 너무 불공평해!’
그러는 사이 태현은 성벽의 위로 올라가서 아래를 굽어보았다. 성벽 아래는 공성전 그 자체였다.
수비 측은 성벽과 해자에 의지해서 병력을 배치하고, 공격 측은 여러 가지 공성 수단을 끌고 와서 밑에서 퍼붓는 모습!
판타지 세계답게 대형 언데드 괴물이나 뱀파이어 장교들이 마법을 쓰는 것을 뺀다면 현실에서 있을 법한 공성전이었다.
물론 태현이 그런 걸 보려고 올라간 것은 아니었다. 태현이 찾는 건 마르덴 후작의 위치!
“인간 놈이 성벽 위에 올라갔다!”
“쏴라! 건방진 놈!”
쉬쉬쉭!
순식간에 화살이 쏟아지고 마법이 날아왔다. 태현은 맞아도 되는 화살은 그냥 맞아주고 위험할 것 같은 마법은 반격의 원으로 되돌려 보냈다.
투콱!
번쩍이는 붉은 검광과 함께 돌아가는 마법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성벽 아래에 있던 마르덴 후작의 눈에도 들어올 정도로.
“저, 저놈!”
멀리서 느껴지는 신성력. 마르덴 후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외쳤다. 태현도 마르덴 후작을 내려다보았다.
마주치는 둘의 시선!
“이놈!”
마르덴 후작은 분노해서 마법을 시전했다. <저주받은 피의 화살>은 뱀파이어 종족 전용 스킬로, 상대를 추적하는 검은색 피의 화살을 날리는 스킬이었다.
그러나 단일 공격은 태현한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게다가 이 정도 거리라면야 더더욱.
“막을 필요 없다.”
아농 성 마법사들이 막으려는 걸 말리고 태현은 반격의 원으로 후려갈겼다. 화살이 돌아오자 마르덴 후작은 더더욱 분노했다.
버러지 같은 놈이 자꾸 쥐새끼처럼 도망치는 것처럼 화가 나는 게 더 어디 있겠는가!
“이 사디크 같은 잡신을 모시는 버러지 같은 놈이 어디서 자꾸 재주를 부리는 것이냐! 네 신을 믿는다면 어디 한 번 내려와서 나와 맞붙어 보거라!”
1:1을 하자는 요청. 물론 태현이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요청을 들어줄 리 없었다.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네 신을 믿는다면 어디 한 번 내려와서 맞붙어보자고 했다!”
“미안! 잘 안 들려! 한 번만 더 말해봐!”
“그러니까 네 신을…… 이 버러지가!”
그제야 마르덴 후작은 태현한테 놀림을 받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마르덴 후작을 말로 속여 넘기고 도발하는 데 성공합니다. 화술 스킬이 크게 증가합니다!]
[마르덴 후작이 격분 상태에 빠집니다. 판단력이 내려갑니다.]
안 그래도 고성이 날아간 상황에서 태현의 도발은 마르덴 후작의 혈압을 팍팍 올렸다.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하노라! 대륙의 사디크 교단은 내 눈에 보이는 족족 찢어 죽이겠다고!”
“아. 예. 그러시든가. 파이팅.”
“?!”
마르덴 후작은 순간 당황했다. 신을 믿는 놈이 어떻게 자신이 믿는 신에 대한 협박에 저렇게 태연할 수가 있지?
“버러지 같은 놈! 내 협박이 우습게 들리느냐?”
“아냐. 그냥 네가 못 할 것 같아서 그렇지. 한 번 해봐.”
“이, 이놈…… 여기 보아라!”
마르덴 후작은 손뼉을 쳤다. 그러자 밧줄로 묶인 포로들이 나타났다.
사디크 교단의 사제와 성기사들!
마르덴 후작과 끝까지 치열하게 싸웠지만 결국 패배하고 몇 명은 사로잡힌 것이다.
“이 버러지들이 죽어도 좋으냐?”
“…….”
태현은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참아야 했다. 사디크 교단을 죽인다면 태현이야 좋은 일!
사디크 교단의 사제들은 처절하게 외쳤다.
“우리는 저놈과 한패가 아니오!”
“닥쳐라! 이 버러지들. 저놈을 지켜주려고 해봤자 내가 속을 것 같으냐!”
그러는 사이 태현은 성벽에서 비장하게 외쳤다.
“내 동료들을 죽이더라도 나는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
“야! 이 저주받을 놈아! 네가 왜 우리의 동료란 말이냐?!”
사디크 사제들과 성기사들은 울컥해서 외쳤다. 그러나 태현은 더 비장하게 외쳤다.
“형제들이여! 내가 반드시 원수를 갚아주겠다! 그러니 더 이상 나를 감싸줄 필요는 없다!”
사디크 사제들과 성기사들이 태현을 욕하는 것도 감싸주는 것으로 바꿔버리는 마법의 혓바닥!
“저, 저 버러지가…… 이놈들을 전부 처형해라!”
[마르덴 후작을 말로 속여 넘기고 도발하는 데 성공합니다. 화술 스킬이 크게 증가합니다!]
[<이이제이>스킬이 레벨 5에 도달했습니다. 전투 시 적들을 더 쉽게 혼란시킬 수 있습니다.]
“안 돼!”
“으아아악!”
사디크 교단 사제들과 성기사들이 처형되는 걸 보며 태현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세상에 있는 싫은 놈들이 모두 서로 싸운다면 얼마나 좋을까!
* * *
마르덴 후작은 사디크 교단 사제들과 성기사들을 처형하고 나자 분이 좀 풀린 것 같았다.
물론 태현은 그렇게 내버려 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애초에 성벽 위에 올라온 이유는 하나.
마르덴 후작을 아주 끝까지 도발해서 미쳐버리게 만드는 것!
이성을 유지하고 있다면 마르덴 후작은 어느 정도 세력이 꺾였을 때 후퇴를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마르덴 후작 정도 되는 몬스터는 후퇴를 할 때 막기가 힘들었다.
잘못하다가는 역습을 당하는 것이다.
한 번에 잡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미치게 만들어야 했다.
“들어라, 마르덴 후장!”
태현은 크게 외쳤다. 그러다가 실수로 혀가 꼬였다. 마지막 발음이 뭉개진 것이다.
결코 의도하지 않은 실수였다!!
“뭐?”
“마르덴 후장?”
“지금 후장이라고 하지 않았어?”
플레이어들도 웅성웅성!
그러나 이 단순한 도발이 마르덴 후작에게는 강렬한 효과로 나타났다.
“뭐…… 뭐라고?”
그리고 그 반응을 태현은 아주 예민하게 잡아챘다.
“아. 미안하군. 말실수를 했어. 세상 누가 후작을 후장이라고 부르겠어? 그렇지?”
태현이 옆에 있는 루포를 보며 묻자 루포는 시선을 돌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태현이야 온몸이 간덩어리라 마르덴 후작의 저 눈빛을 그대로 받더라도 태연했지만, 그는 그럴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아…… 하하.”
“어쨌든 마르덴 후장!”
“후작이다, 이 버러지 같은 자식아!”
이미 충분히 도발을 한 상황. 여기서 굳이 더 길게 떠들어봤자 좋은 꼴을 볼 것 같지는 않았다. 괜히 길게 말하면 머리 좋은 보스 몬스터는 눈치를 챌 수도 있었으니까.
언제나 마지막은 간단하게!
“여기 네 홀이 있다!”
“……!”
“그리고 여기 네 고성에서 가져온 지팡이다! 네 고성은 내가 잘 부숴 먹었다!”
“……!”
마르덴 후작의 눈이 더 이상 붉어질 수 없을 정도로 붉어졌다.
“그러면 열심히 해봐라!”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악!”
마르덴 후작의 괴성과 함께, 공성전은 다음 단계로 접어들었다!
* * *
“미치신 거 아닙니까?!”
루포는 비명을 지르며 외쳤다. 안 그래도 강한 상대한테 저렇게 도발하다니.
실제로 힘을 아끼고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마르덴 후작의 군대가 전력을 다해서 총공격을 시도하고 있었다.
쿵, 쿵, 쿠르릉-
대형 언데드 괴물들이 두터운 가죽을 앞세우고 돌진하기 시작했다.
목표는 성벽과 성문!
“해자를 메워라!”
성벽 앞의 구덩이 때문에 제대로 접근할 수가 없자 언데드 병사들이 달려들었다.
노리는 것은 해자에 접근해서 땅을 메우는 것!
언데들 병사들 사이에는 마르덴 후작을 따르는 뱀파이어 장교들이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그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잘 맞으려나…….”
태현은 성벽 위에서 눈을 가늘게 뜨고 폭탄을 들었다. 은이 안에 듬뿍 들은 언데드 전용 폭탄!
쉭!
아쉽게도 폭탄은 방향을 잘못 잡고 날아가 버렸다. 노리는 뱀파이어 장교와는 좀 먼 곳으로 향하는 폭탄!
그러나 언데드 병사들이 그 폭탄을 향해 맹렬하게 화살을 쏴대기 시작했다.
“어?”
탁, 타탁-
그 탓에 방향이 틀어졌다. 떨어진 곳은 뱀파이어 장교 바로 위!
콰콰콰콰콰쾅!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폭탄 제작 스킬이 오릅니다.]
태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는 사이 궁수들도 치열하게 쏘아대고 있었다.
이렇게 쏘아댈 수 있는 기회 자체가 궁수들에게는 천금 같은 기회!
그들 중에는 마르덴 고성 공략 퀘스트에 참가했던 파티도 있었다.
“야. 너 저번에 샀던 화살은 다 썼어?”
“다, 다 썼어.”
궁수 플레이어는 어색하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태현이 개조한 화살은 아직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걸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건…… 팔린다!’
유명한 플레이어들이 썼던 장비들은 그 성능과 상관없이 그냥 팔릴 때가 많았다.
팬이라는 건 원래 그런 것!
처음 샀을 때는 이건 대체 뭔 화살이냐 싶었지만, 이후에 아농 성에 김태현이 나타났다는 걸 듣고 깨달았다.
-아, 그때 그 사람이 김태현이었구나!
그렇다면 이 화살은 지금 쓰지 말고 나중에 잘 묵혀뒀다가 비싼 값에 팔면…….
다다다닥-
아농 성의 병사들이 무언가를 짊어지고 달려왔다. 화살을 쏘아대던 플레이어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뭡니까?”
“여기 화살이 있다. 이걸 쓰도록!”
“오, 감사합니다!”
“이야. 아농 성 친절한데?”
궁수들은 반색했다. 궁수들에게 화살은 꽤나 중요한 아이템. 그런 걸 공짜로 제공해 준다니.
“김태현 백작님께서 직접 손봐주신 거다! 감사한 마음으로 쓰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