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67화
뱀파이어들은 설마 태현이 이 고성을 통째로 날려버리려는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선배님. 선배님.
-뭐냐?
-권능이 담긴 무기를 찾았습니다!
-뭐? 진짜?
태현은 놀랐다. 그래도 조금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잘했다. 그러면 망설일 필요가 없지. 갖고 빠져나와!
-예!
권능이 담긴 무기를 찾았다면 굳이 이 성에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태현은 최대한 빠르게 마르덴 고성을 날려버리고 아농 성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 * *
“왜 놈이 안 오는 거지?”
뱀파이어 전사들은 지하 3층의 미로로 후퇴해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이곳의 함정은 그야말로 악랄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
적의 숫자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이 지형에 의지해서 치고 빠진다면 적들도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마르덴 후작이 돌아올 때까지 버틴다!
“잠깐…… 어디서 이상한 소리 들리지 않아?”
“……?”
뱀파이어 전사들의 청각은 인간보다 더 뛰어났다. 그들은 귀를 쫑긋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뭔가 쿠르릉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이게 뭔……?”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레벨 업 하셨습니다!]
[폭탄을 연쇄적으로 설치해 대폭발을 일으켰습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크게 증가합니다!]
[초급 폭탄 제작 스킬이 중급 폭탄 제작 스킬로 변합니다!]
[앞으로 더 강력한 폭탄을 만들 수 있습니다. 폭발의 설계를 더 강력하게 할 수 있습니다.]
[초급 화약 제작 스킬이 중급 화약 제작 스킬로 변합니다!]
[기본적인 화약의 폭발력이 더 강력해집니다.]
[마르덴 고성을 폭탄으로 파괴시켰습니다. 명성과 악명이 크게 오릅니다!]
[칭호:성 파괴자를 얻었습니다.]
[서버에서 처음 얻은 칭호입니다. 각 스탯이 25씩 증가합니다.]
어지러울 정도로 뜨는 메시지창들! 태현은 무너져 내리는 마르덴 고성을 보며 크게 웃었다.
“으하하하하하하!”
겉으로만 보면 아무리 봐도 악당! 그러나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금 뜨는 메시지창들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아농 성 창고 안에 있던 재료들을 전부 사용해서 폭탄을 만든 보람이 있었다. 마르덴 고성을 그대로 날려버린 것이다.
성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린 만큼, 기계공학 관련 스킬의 경험치가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들어왔다.
한 번에 관련 스킬이 다 중급으로 뛰는 쾌거!
‘앞으로 더 많은 성을 날려버려야겠군!’
끔찍한 생각을 하는 태현이었다.
[마르덴 후작의 적대도가 최대치에 달했습니다.]
[절대로 화해가 불가능합니다.]
‘어차피 화해할 생각도 없었는데.’
칭호:성 파괴자
성 파괴자:폭발은 많은 것을 파괴합니다. 그러나 그 폭발로 성을 날려버린 사람은 흔하지 않습니다. 폭발로 성을 날려버린 당신의 위업은 많은 기계공학자의 귀감이 될 것입니다.
기계공학 관련 NPC를 상대할 때 친밀도 상승, 드워프, 고블린 상대 시 친밀도 상승, 성주 NPC 상대로 특정 반응이 일어날 수 있음. 폭탄 아이템 제작, 사용 시 추가 보너스. 폭발의 설계에 추가 보너스.
레벨 업도 기뻤지만 <성 파괴자> 칭호도 그에 못지않게 기쁜 칭호였다.
기계공학자로서는 탐낼 수밖에 없는 칭호!
“아참. 권능이 담긴 무기는 어디 있지?”
“여기 있습니다. 선배님.”
정수혁은 신이 나서 지팡이를 꺼내서 건넸다.
“에드안이 찾았어?”
“실은 제가 찾았습니다!”
“역시 에드안은 별로 쓸모가 없군.”
쿡쿡 찌르는 팩트들! 에드안은 분해서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태현은 아이템을 확인했다.
‘……?’
아키서스의 교단 마법사라니. 거기까지는 크게 이상하지 않았다. 지금도 다른 신들을 보면 교단 관련 직업들이 여럿 있었으니까.
문제는 이 지팡이의 상태!
태현은 지팡이를 확인했다. 중급 대장장이 기술 스킬 덕분에 아이템의 상태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부러진 상태입니다. 다른 파편이 없어서 수리가 불가능합니다.]
“이게 부러져서 지금 쓸 수 없다고 나오는데, 다른 파편은 어디 있지?”
“어…….”
“그런…….”
에드안과 정수혁은 서로 쳐다보았다. 태현은 설마 싶었다. 이 인간들, 지금 안에 남아 있을 수도 있는데 성을 날려버리는 동안 가만히 있었던 건가?
“다른 파편은 아마 마르덴 후작이 갖고 있을 거야.”
“뭐?”
에반젤린의 말에 태현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동시에 안도했다.
저 성안에 남은 파편이 있다는 것만큼 끔찍한 사실도 없었으니까!
“마르덴 후작이 쉽게 회복하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진 이유가 권능이 담긴 무기의 파편이 몸속에 박혀서라고 들었거든.”
“……!”
그나마 다행! 태현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물론 남은 걸 회수하려면 마르덴 후작을 잡고 몸에서 파편을 뽑아낸 다음 수리까지 해야 얻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아예 사라진 것보단 낫지!
태현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물론 이 소식을 들은 마르덴 후작은 절대로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
* * *
도망치기로 마음먹은 뱀파이어는 잡기 힘들었다.
흡혈, 그림자 속에 숨기, 박쥐로 변신…… 뱀파이어는 종족 중에서 도망 특화 기술이 많은 종족에 들어갔던 것이다.
태현 파티가 마치 마왕성에 찾아온 용사처럼 마르덴 고성에서 깽판을 치는 동안, 발 빠른 뱀파이어 전사 몇 명은 빠르게 빠져나가 마르덴 후작의 군영으로 향했다.
-주인님! 고성이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마르덴 후작으로서는 허를 찔린 셈! 그러나 그는 역시 녹록지 않았다.
-어차피 내 눈을 피해서 고성으로 향했다면 많은 숫자가 아니겠지. 내버려 둬라! 성을 일시적으로 점령했다고 하더라도 의미가 없으니 말이다.
마르덴 후작은 아농 성을 점령하고 나면 마르덴 고성은 얼마든지 되찾을 수 있다고 여겼다.
지하에는 그가 만든 통로와 함정이 가득했고, 마르덴 고성에 대해 그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러나 몇 시간 후 들려 온 다른 소식!
-주인님! 흑흑! 마르덴 고성이…… 박살이 났습니다!
-??!?!?!
태현의 목적은 점령이 아닌 박살! 어차피 점령해 봤자 쓸 곳도 없고 유지할 수도 없으니 그냥 부숴버린 것이다.
게다가 기계공학 스킬은 움직일 수 없는 대상을 상대로 안에서 부수는 데에 특화된 스킬!
마르덴 후작은 극도로 분노했다.
-내가 이 버러지 같은 놈들을!
[마르덴 후작이 대노합니다!]
[그의 군대가 아농 성의 공격을 시작합니다. 아농 성 공성전이 시작됩니다! 공성전이 끝나기 전까지 이 주변에서 로그아웃할 수 없습니다. 로그아웃 시 페널티가 붙습니다.]
당장에라도 돌아가서 붙잡고 싶었지만, 마르덴 후작은 극도로 분노한 상황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았다.
지금 눈앞에 쌩쌩한 아농 성을 두고 돌아간다면 남는 건 뒤에서 오는 공격!
이 성부터 먼저 점령하고 가야 했다.
“전부 공격해라!!!!!!!”
마르덴 후작의 포효와 함께, 뱀파이어 군대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 * *
다그닥, 다그닥-
전속력으로 말을 몰며, 태현 일행은 아농 성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 선배님.”
“왜?”
“저 희귀 직업으로 전직했습니다.”
“?!”
태현은 깜짝 놀랐다. 대체 언제?!
“언제?!”
“아까 했습니다. 저는 그냥 일반 직업도 괜찮다 싶었는데, 선배님께서 저보고 꼭 전직하라고 하셔서…….”
“뭘로?!”
“아키서스 교단 마법사로 했습니다! 선배님을 따라갈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
태현은 정말 오랜만에 당황했다. <아키서스 교단 마법사>라니.
물론 <아키서스의 화신>은 좋은 직업이었다. 여러모로 극단적인 면이 있어서 그렇지.
<아키서스 교단 마법사>도 그런 면이 있다면 정수혁 같이 재능 없는 사람은 다루기 힘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
어차피 태현의 일도 아니었다. 태현은 빠르게 충격에서 회복했다. 이렇게 된 이상 좋은 직업이기를 바랄 수밖에.
“스킬 뭐 나오디?”
“어…… 그러니까…….”
<화신과의 공명>
신을 향한 믿음으로 힘을 불러옵니다. 아키서스의 화신의 신성력과 비례해서 마나 회복 속도가 빨라집니다.
<아키서스를 향한 강한 믿음>
주변에 아키서스의 힘을 담은 방벽을 칩니다.
‘좋잖아?!’
<화신과의 공명> 같은 스킬은 마나 부족으로 허덕이는 태현 같은 사람에게는 천금 같은 스킬이었다.
‘아니, 왜 화신인 나한테는 저런 스킬이 안 나오고 추종자인 놈한테는 저런 좋은 스킬을…….’
물론 스킬의 사기적인 수준으로만 따지자면 태현의 스킬이 압도적이었지만, 사람 마음이란 건 언제나 일관적일 수가 없는 법!
게다가 태현은 원해서 전직을 한 게 아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정수혁은 차례대로 스킬들을 띄웠다.
“잠깐.”
“네?”
“이건 뭐냐?”
<아키서스의 마법>
마법을 사용 시 특정한 효과를 추가로 부여합니다. 사용자의 신성과 아키서스 교단의 세력에 따라 영향을 받습니다.
그냥 마법 강화용 패시브 스킬인 줄 알았는데, ‘특정한 효과’가 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왠지 모르게 불길한 이름!
‘이거 설마…….’
아무리 아키서스가 행운의 신이라지만, 그 중요한 마법을 쓸 때마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 * *
“공성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억?!”
겁도 없이 성벽 위에서 말을 하던 플레이어 하나가 날아오는 뱀파이어의 마법에 맞고 그대로 사망했다.
야심 차게 공성전을 개인 방송으로 생중계하려던 속셈이 실패한 것이다.
성벽 위에서 방송을 할 만큼 간이 큰 플레이어는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농 성에 모인 플레이어 중에서 이 공성전을 생중계하는 숫자는 꽤 됐다.
대형 길드나 랭커들이 참가한 퀘스트는 아니지만, 공성전은 언제나 보기 드문 볼거리!
참가하지 않은 사람들도 화면 밖에서 흥미진진한 눈으로 쳐다보거나, 아니면 이 퀘스트가 어떻게 될지 계산을 하면서 시청했다.
쐐애애애액-
마르덴 후작은 분노한 와중에도 정석적으로 공성전을 시도했다. 용병대와 언데드 병사들을 시켜 성벽 위를 사격하고, 동시에 덩치 큰 언데드 괴물들을 앞으로 내보낸 것이다.
위를 견제하고 통로를 만드는 정석적인 공격법!
“놈들을 접근하게 하지 마라!”
아농 백작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큰 덩치에 묵직한 칼을 들고 외치자 주변의 플레이어들은 겁을 먹을 정도였다.
“우와. 인간 맞아?”
어찌 되었든 간에, 플레이어들과 아농 성의 병사들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궁수 플레이어들과 궁병들은 성벽에 몸을 숨기고 화살을 쏘아댔다. 동시에 마법사들은 마법을 준비!
서로 전력을 다하지 않고 탐색하듯이 싸움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 사이 태현 일행은 아농 성에 거의 도착한 상태였다.
-태현 씨. 태현 씨!
-?
배장욱에게서 귓속말이 오자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특집 방송 있잖습니까. <김태현이 시청자와 만난다!>
-……그런 제목이었어요?
-하하. 제가 지었습니다.
‘제목 짓는 건 다른 사람한테 맡기는 게 낫지 않을까?’
태현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마지막 남은 양심!
-어쨌든 태현 씨 시간에 맞춰야 하니, 다시 여쭤보려고 접속했습니다. 언제 시간이 되세요?
-저야 뭐 언제나 바쁘니…… 그냥 지금 하죠.
태현은 일행과 함께 재빨리 아농 성으로 들어가며 배장욱에게 대답했다.
그리고 바로 성벽 위로 향했다.
-네? 지금 시간 괜찮으십니까?
-뭐 어차피 복잡한 거 하는 게 아니라 질문받고 대답하는 거잖아요? 그냥 지금 하죠. 안 됩니까?
누구 앞이라고 안 된다고 하겠는가. 배장욱은 태현의 성격을 이미 이해하고 있었다.
청개구리 같은 성격!
-그, 그러면…… 알겠습니다! 한 시간 후! 한 시간 후 시작하도록 하죠!
-그러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