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66화
“당장 가자!”
“……!”
루포는 경악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지금 그렇게 백작들을 설득해서 군대를 동원하고 싸울 준비를 잔뜩 했는데 빠져나가자니!
“태현 님! 제가 잘못 생각했다고 했잖습니까! 그건 좀 아닙니다!”
“아니야. 아주 좋은 생각 같아.”
“……!”
태현이 이번 퀘스트에서 가장 노리는 건 무엇인가?
‘마르덴 후작이 당한 그 무기지.’
권능이 담긴 그 무기!
물론 마르덴 후작을 처치하는 것도 좋았다. 경험치부터 아이템, 명성까지 같이 따라 나오는 종합세트였으니까.
그렇지만 태현은 언제나 가능성을 생각했다.
‘마르덴 후작을 못 잡을 수도 있으니까.’
그럴 때를 대비해서, 마르덴 후작이 고성을 비운 사이 먼저 찾아가서 탈탈 털어버린 다음 권능이 담긴 무기를 찾아낸다.
태현은 아농 성이 그렇게 빨리 함락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모인 플레이어도 그렇고, 아농 백작은 마르셀 백작처럼 멍청이가 아니었으니까.
‘시간은 충분히 된다!’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망설일 필요는 조금도 없었다. 태현은 바로 준비를 마치고 출발했다. 무시무시한 빠르기였다.
마르덴 후작은 설마 태현이 무책임하게 아농 성을 두고 마르덴 고성을 터뜨리기 위해 움직였다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군대를 재정비하며 아농 성을 노려보았다.
“크크크…… 곧 함락시켜주마!”
* * *
“인간. 돌아가라. 여기는 마르덴 후작님의 땅…… 컥!”
고성 가까이 다가가자 뱀파이어 전사가 나타나서 막으려 들었다.
물론 손쉬운 먹잇감이 될 뿐!
“잘 들어.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으니 일을 나눠서 해야 한다.”
“크억! 크아악!”
케인에게 뱀파이어 전사들을 붙잡게 한 다음, 태현은 그들을 두들겨 패며 말했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
“에드안. 너는 여기 수혁을 데리고 성안을 샅샅이 뒤져라. 뭔가 권능과 관련된 거 같으면 다 챙기고 봐! 분명 후작을 다치게 한 무기가 여기 있을 거다.”
“알겠습니다.”
“나머지는 나하고 같이 성을 쓸어버린다. 너희 셋.”
태현은 대장장이들을 가리켰다. 얼핏 보면 이런 급한 임무에는 어울리지 않는 그들!
그러나 그들의 인벤토리에는 폭탄이 꽉꽉 들어가 있었다. 태현이 이를 악물고 만든 폭탄들!
“따라와. 폭탄 안 터지게 조심하고.”
“네? 이거 안 터진다면서요?”
“아차.”
“…….”
대장장이들은 순간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기계공학 스킬에 대해서는 그들도 대장장이니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태현이 ‘이거 안 터지니까 걱정하지 마’라고 해서 믿고 가방에 넣은 것이다.
‘태현이니까 뭔가 방법이 있겠지!’
그런데 이제 와서 아차라니.
“아니야. 안 터져.”
“방금 아차라고 하셨잖아요!”
“네가 잘못 들은 거야. 시끄럽고 움직여. 터지기 전에 설치를 끝내야지.”
“터지는 거 맞지 않습니까!”
태현은 무시하고 바로 고성 안으로 발을 디뎠다. 그렇게 많이 나오던 언데드 병사들이 이제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댕댕댕댕댕-
고성 안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죠?”
“무슨 소리겠냐. 우리가 와서 성안의 병력 모으는 거겠지.”
태현은 별것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이 정도 방어는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태현한테는 의미가 없었다. 태현을 잡으려면 사디크 교단처럼 작정을 하고 태현 특화 방법을 짜서 오거나, 아니면 마르덴 후작처럼 레벨이 높아서 다양한 공격 스킬이 있거나 해야 했다.
저렇게 어중간한 놈들을 어중간하게 모아봤자 태현의 먹잇감일 뿐!
“가자!”
“좋아!”
에반젤린은 태현의 말에 호응했다. 막대한 불운 때문에 한동안 파티 플레이를 하지 못했던 그녀는 파티와 같이 싸우는 것에 굶주려 있었다.
이렇게 같이 싸우는 것 자체가 즐거운 상황!
“아. 넌 앞에서 따로 싸워.”
“……왜?”
“지금은 빨리 싸우고 뚫어야 하니까.”
“…….”
에반젤린은 시무룩해져서 앞으로 혼자 돌격했다. 길을 막고 있던 뱀파이어들은 에반젤린이 휘두르는 묵직한 검에 그대로 갈려 나갔다.
“평소보다 더 잘 싸우는 거 같은데요?”
“그래? 역시 솔플에 익숙해서 그런가 보다. 앞으로는 혼자 싸우게 해야겠네.”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에반젤린은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 * *
“저, 에드안 님.”
“……!”
에드안은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네? 에드안 님이라고…….”
정수혁이 님을 붙여서 불러주자 에드안은 부들부들 떨었다. 이 얼마 만에 들어보는 예의 바른 호칭이란 말인가!
“후, 후후. 그래. 왜 불렀지?”
“에드안 님이야 대도적이니까…….”
바들바들!
에드안이 손을 떨기 시작하자 정수혁은 움찔했다. 이 인간 왜 이래?
[에드안의 친밀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계, 계속하게! 후후.”
“……이 성을 뒤지는 게 이상하지 않지만, 저는 도적 스킬이 하나도 없는데요.”
“아. 그거야 마법 때문이지.”
유적지나 던전에서는 함정이 마법으로 가려져 있는 곳이 종종 있었다.
도적의 스킬은 그런 함정도 해제할 수 있었지만, 마법 스킬이 있으면 보너스를 받았다.
그리고 정수혁의 마법 스킬은 무려 고급!
어지간한 환상 마법은 뚫어볼 수 있었다. 그래서 태현은 정수혁을 에드안에게 붙여준 것이다.
에드안은 정수혁 덕분에 잔뜩 기분이 좋아져서 말했다.
“그렇지만 역시 이런 걸 찾는 건 아무나 할 수 없지. 나만 믿고 따라오게. 그러면 다 잘 될 테니! 내가 대도적의 기술을 보여주지.”
“오오……!”
정수혁은 순진하게 에드안의 말을 믿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에드안의 입꼬리가 찢어질 듯 위로 올라갔다.
[에드안의 친밀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후후! 먼저 이런 고성을 둘러볼 때는 바닥을 가장 먼저 보고, 그다음에는 벽을 봐야 한다네. 내가 홀을 어떻게 찾아냈는지 아나?”
에드안은 능숙한 손길로 벽을 통통 두드리며 숨겨진 공간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다 낡아서 흐려진 그림의 액자를 치우고, 그 안의 공간을 찾아내자 정수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안에는…… 이런. 별거 없군. 다른 걸 찾아볼까?”
“대단하십니다!”
“후후. 더 칭찬해도 되네!”
정수혁은 에드안의 뒤를 따라다니며 그가 펼치는 화려한 도적 스킬의 솜씨를 구경했다.
에드안은 확실히 대도적을 자칭할 만한 실력이 있었다. 고성 안의 함정은 한 번도 걸리지 않고 용케 계속 비밀 공간들을 찾아냈다.
“홀이 어디에 있었는지 아나? 이런 일을 하려면 이런 공간을 갖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하지. 보통 도적들이라면 허름한 공간, 잘 보이지 않을 공간을 먼저 찾을 거란 말이야. 하지만 나는 대도적, 그런 쥐새끼 같은 놈들하고는 차원이 다르지!”
기회가 되자 미친 듯이 스스로를 자랑하는 에드안이었다. 정수혁은 당황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위층에 있는, 층 중앙에 놓인 후작의 의자. 내가 홀을 발견한 곳이 바로 거기란 말이야. 다른 도적놈들은 의자를 보면 겉만 훑어볼 거야. 누가 그런 곳에 대놓고 아이템을 숨기겠나 하고. 하지만 나는 다르단 말이지. 이런 성을 가질 정도의 주인은 아이템을 숨길 때도 그 격에 맞춰서 숨긴다고.”
“거기에서 찾으신 거군요?”
“바로 맞췄네! 후후. 시간만 더 있었다면 그때 권능이 담긴 무기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
정수혁은 태현이 에드안을 신경 쓰지 않고 후퇴 명령을 내린 건 말하지 않기로 했다. 굳이 말해서 좋을 게 없었으니까!
“저기 벽에 걸린 건 안 보십니까?”
정수혁은 벽에 걸린 무기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벽에 대충 전시된 무기들은 먼지가 쌓여서 더러워 보였다.
“그런 건 볼 필요도 없지. 말했잖나. 주인의 마음을 읽으라고. 마르덴 후작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자기를 다치게 한 무기는 아주 특별한 곳에 보관을 했을 거야. 후작 전용 의자 같은 곳을 찾아보라고.”
정수혁은 에드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벽에 전시된 무기에 손을 뻗었다. 별생각 없이 손을 뻗은 것이었다.
낡고 무뎌진 마르덴 고성 병사의 창:
내구력 40/80, 공격력 60
스킬 ‘독성 찌르기’ 사용 가능.
레벨 제한 60. 힘 제한 75. 민첩 제한 25.
마르덴 고성 병사가 쓰던 무기였지만 한동안 쓰지 않아 낡고 무뎌진 상태다. 어지간히 무기가 아쉬운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걸 쓰지는 않을 것이다.
‘역시 별거 없나?’
정수혁은 아쉬운 마음으로 다른 아이템들을 차례차례 확인해보았다.
이런 경험을 처음 하는 정수혁에게는 확인하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
아키서스 교단 마법사의 부러진 신성한 지팡이:
내구력 1/120, 마법 공격력 135, 공격에 신성 속성 부여.
스킬 ‘아키서스의 믿음직스러운 손’ 사용 가능. 스킬 ‘아키서스의 부름’ 사용 가능. 마나 회복 속도 12% 상승.
레벨 제한 100, 직업 제한 <아키서스의 교단 마법사>
아키서스의 교단 소속 마법사가 직접 아키서스의 화신에게 선물 받은 신성한 지팡이다. 화신의 권능이 담겨 있어 그 자체로도 부정한 존재들에게 강력한 무기가 된다. 지금은 부러져 있어서 사용할 수 없다.
“?!”
정수혁은 깜짝 놀랐다.
설마 찾는 게 이거 아닐까?
‘그렇지만 에드안 씨가 이런 곳에 걸어놓지는 않았을 거라고 했는데…….’
“뭐하나?”
“이거 혹시…….”
“후후. 내가 말했을 텐데. 이런 곳에 걸린 아이템은…….”
에드안은 정수혁에게 다가와서 아이템을 확인해보았다. 도적인 만큼 아이템의 감정 스킬은 높게 갖고 있었다.
“…….”
“아닙니까?”
“맞…… 맞는 거 같은데…….”
에드안은 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이거 같이 찾은 걸로 하지 않겠나?”
“…….”
정수혁은 싸늘한 눈빛으로 에드안을 쳐다보았다. 이제 뭔가 에드안에 대해서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리 주십쇼!”
“앗. 아아…….”
에드안은 애절한 목소리를 내며 지팡이를 정수혁에게 뺏겼다.
그 순간 정수혁에게 뜨는 메시지창!
<희귀 직업-아키서스 교단 마법사 전직 퀘스트>
아키서스는 잊혀진 신이지만 전성기 때에는 손꼽힐 정도로 강력한 신이었다.
아키서스 교단 마법사는 아키서스의 교단에 소속되어 그의 힘을 따르는 마법사.
만약 아키서스의 화신이 다시 나타나고, 당신이 그를 찾아서 따를 수 있다면 당신은 아키서스 교단 소속의 마법사로 전직할 수 있을 것이다.
아키서스의 화신을 찾아서 따라다니는 것을 허락받아라.
보상:아키서스 교단 마법사로 전직.
‘어?’
[퀘스트 조건을 모두 만족했습니다.]
[아키서스 교단 마법사로 전직하시겠습니까?]
정수혁은 잠시 멈칫했다. 이럴 때 태현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아. 맞다. 괜히 일반 직업으로 버티지 말고 희귀 직업이든 영웅 직업이든 빨리 찾아서 전직하라고 하셨었지!’
태현이 들었다면 말렸을 것이다. 다른 희귀 직업이면 모를까, 아키서스 교단 마법사는 뭔가 이름부터가 불길한 직업!
태현이야 무슨 직업이든 잘할 자신이 있으니 상관이 없었지만 정수혁처럼 센스가 없는 사람한테는 일단 안정적인 직업을 골라줘야 했다.
그러나 정수혁은 태현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 그대로 따랐다. 게다가 아키서스 교단 마법사라니.
존경하는 태현과 비슷한 길을 걸을 수 있지 않은가!
-전직하겠어!
[아키서스 교단 마법사로 전직합니다.]
* * *
“저, 저놈은 괴물이다! 상대할 수가 없다! 모두 후퇴해라! 성안에 숨어서 놈을 상대해라!”
몇 번 부딪히고 나자, 뱀파이어들은 태현의 강함을 깨닫고 전략을 바꿨다.
미로 같은 고성 지하의 구조를 이용해 치고 빠지려는 것이다.
그러나 태현은 굳이 적을 쫓지 않았다.
“설치.”
“예!”
[중급 기계공학 스킬로 폭탄 설치에 보너스를 받습니다.]
[패시브 스킬 <파괴 공학>을 얻습니다.]
차곡차곡 통로에 쌓여가는 폭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