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65화
원래 함정은 있다는 걸 알려주면 안 됐다. 그러나 태현은 역으로 나갔다.
[중급 화술 스킬로 보너스를 받습니다.]
[위압 스킬에 성공했습니다. 적들의 사기가 내려가고 공포 수치가 올라갑니다.]
[화술 스킬이 올라갑니다.]
어차피 저 뱀파이어들은 자존심 때문에 도망도 잘 안 칠 것 같은 놈들.
이렇게 겁을 주는 게 더 좋았다.
“우오옷!”
구성욱은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뛰었다. 쌍검을 다루는데도 전혀 흔들림이 없다는 점에서 얼마나 많이 싸워왔는지 알 수 있었다.
“크윽! 저놈의 검을 조심해라!”
“검의 살기가 짙다!”
뱀파이어들도 인정하면서 경계할 정도의 검기! 분노 상태에 빠진 뱀파이어 전사들처럼 구성욱의 눈도 붉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차가운 울음의 검!”
“뭐?! 스킬이냐!?”
뱀파이어는 움찔해서 피하려고 했지만 스킬은 나오지 않았다.
“차가운 울음의 검!!!”
“그런 얄팍한 짓을 하다니! 본때를 보여주마!”
“차가운 울음의 검!!!!!!”
“으, 으으읏!”
뱀파이어들은 구성욱의 기세에 질려서 움찔하더니 물러섰다. 그 정도로 구성욱에게는 박력이 있었다.
“빌어먹을 놈들은 무시해라! 저 벌레들부터 먼저 처리해!”
함정에 털리던 뱀파이어들은 이를 갈며 전략을 바꿨다. 저 멀리서 화살을 쏘아대는 플레이어들을 먼저 노리기로 한 것이다.
솜씨 자체는 버틸 만했지만 들고 있는 화살이 대체 어디서 구한 건지, 날아오다가 휘는 건 보통이고 폭발하고 쪼개지고 온갖 옵션이란 옵션은 다 달려 있었다.
그러니 레벨 차이가 나는 궁수 플레이어들의 공격이라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는 것!
어차피 지금 발을 묶는 적은 몇 명 안 됐다. 바로 궁수들을 치는 게 나았다.
“가자!”
빠르게 나무 밑까지 접근한 뱀파이어는 강력한 각력으로 점프했다.
노리는 건 나무 위의 궁수들!
궁수들이 ‘으아앗!’ 하며 놀라서 떠는 게 보였다.
“크하하! 죽어라, 이 버러지들……!”
[은제 그물 덫이 작동합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콰당!
“이야. 오늘 중급 찍겠다.”
태현은 씩 웃으며 <유성>을 들었다. <고대의 망치>는 쓰지 못하지만 <유성>으로도 이 정도 뱀파이어들은 충분했다.
“잠, 잠까……컥!”
태현은 덫에 걸린 뱀파이어들을 무차별로 공격했다.
‘흠. 뱀파이어들을 포로로 잡은 다음 마법 스킬 연습 상대로 쓸 수는 없을까?’
덫에 걸린 뱀파이어들이 들으면 혀를 깨물 소리!
[폭탄을 장착한 함정 덫이 작동합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초급 기계공학 스킬이 중급 기계공학 스킬로 올라갑니다.]
“……!”
태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드디어!
‘그래, 이 숲 전체에 함정을 그렇게 뿌렸는데 기계공학 스킬을 좀 올려줘야지!’
* * *
뱀파이어들은 성공적으로 격퇴당하고 있었다. 그걸 본 플레이어들은 기쁜 목소리로 외쳤다.
“물러선다! 우리가 이긴 거지?”
“그치!”
그러나 태현은 눈썹을 찡그렸다.
‘이상하군.’
지금 빠져나가는 뱀파이어들을 보면 더 싸울 수 있었다. 아니면 하다못해 추가로 지원군을 보내던가.
마르덴 후작이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지금 숲 안에서 그의 부하들이 엉망진창으로 털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시간만 끌다가 후퇴시킨다고?
‘뭘 준비하고 있나본데…….’
태현은 머리를 굴렸다. 이렇게 시간을 끌어서 할 건?
“에드안, 지금 숲 바깥쪽의 퇴로를 보고 와라.”
잠시 후 돌아온 에드안은 당황한 얼굴로 외쳤다.
“숲 바깥쪽으로 마르덴 후작의 군대가 우회하고 있습니다! 용병들이 오고 있어요!”
“역시 그랬겠지.”
“지금 그럴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이 숲에서 태연하게 마르덴 후작의 군대를 괴롭힐 수 있었던 건 탈출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숲 뒤쪽으로 빠져나가면 바로 아농 성으로 갈 수 있었다. 마르덴 후작의 군대가 따라오려면 늦을 테니까.
그러나 마르덴 후작은 뱀파이어들이 숲 안에서 두들겨 맞는 사이 군대를 우회시켜 포위망을 만들고 있었다.
과연 지능이 높은 보스 몬스터!
“괜찮아. 포위망 뚫는 데에는 문제가 없으니까.”
자리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꽤 죽어 나가겠지만 태현은 멀쩡하게 뚫고 나갈 자신이 있었다.
다른 사람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 냉정함!
“여기 있는 사람들은?”
“뭐, 내가 포위망 뚫으면 알아서 빠져나가야지. 그러라고 민첩한 사람들만 골라서 왔는데.”
“그, 그런 방법은…….”
“그런 방법은?”
“정말 좋은 방법이군요!”
주인과 마찬가지로 양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에드안! 잘 어울리는 콤비였다.
“근데 저기 오는 놈들이 그 용병대냐?”
태현은 숲 바깥의 퇴로에 접근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며 물었다. 말을 타고 무장한 모습이 심상치가 않았다.
“네? 아뇨. 아직 저기까지 못 왔는데? 먼저 따로 보냈나?”
* * *
“감히 버러지 같은 놈들이 나를 우롱하려고 하다니.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다!”
마르덴 후작은 확실히 얕볼 상대가 아니었다. 그는 한 가지 함정을 더 파놓았다.
용병대를 움직이면서 용병대와 같이 직접 움직인 것이다.
포위가 된 것을 알게 된다면 숲 안의 놈들이 퇴로로 빠져나갈 테니, 그걸 노린 전략!
용병대만 보고 포위를 뚫으려는 놈들은 마르덴 후작을 보고 깜짝 놀랄 게 분명했다.
“크크크…… 음?”
마르덴 후작은 갑자기 근처에서 느껴지는 신성력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신 관련된 것들에게 당한 게 많은 마르덴 후작에게, 신성력은 불쾌하기 짝이 없는 느낌!
“어떤 놈이냐! 감히 내 앞에서 불쾌한 냄새를 줄줄 풍기다니!”
마르덴 후작은 대노해서 외쳤다.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일행에게서 신성력이 느껴진 것이다.
용병대를 이끌고 있는 마르덴 후작에게 겁을 먹을 법도 했는데, 다가오는 무리들은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
오히려 한술 더 떴다.
“불쾌한 냄새라니. 뱀파이어 주제에 미쳐버린 것인가? 네 냄새가 더 불쾌한 것을 알아야지! 지금 당장 비킨다면 이 무례는 넘어가 주겠다.”
“뭐, 뭐라고……?”
마르덴 후작은 귀를 의심했다. 지금 저놈들이 뭐라고 한 거지?
“내가 기회를 줬는데도 죽고 싶어서 환장을 한 놈들이구나! 오냐! 죽여주마!”
마르덴 후작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위협적인 소리를 내자 말을 타고 있던 일행도 망토를 벗어 던졌다.
그러자 드러난 모습!
“어디 사디크 신의 은혜도 받지 못할 미물이 건방지게 감히!”
바로 사디크 교단의 최정예 성기사들과 고위 사제들!
콰콰쾅!
마르덴 후작은 바로 뛰어들어서 사디크 성기사들을 넉백으로 날려버렸다.
“크윽!”
“더러운 뱀파이어가 감히!”
“크크크. 어디 한 번 계속 지껄여 보거라!”
마르덴 후작은 정신없이 사디크 성기사들을 몰아붙였다. 한 번 팔을 휘두를 때마다 붉은 바람이 불어와 사디크 성기사들을 그냥 밀어버렸다.
사디크 최정예 성기사들이 어디 가서 밀리는 전사들이 아니었음에도 마르덴 후작은 그들을 압도했다.
사제들의 지원이 없었다면 벌써 쓰러졌을 성기사들!
“이것뿐이냐? 응? 이것뿐이냐고!”
“크윽. 어쩔 수 없군! 그 악마를 쓰러뜨리기 위해 갖고 온 걸 써라!”
“하지만 고위 사제님! 그걸 쓴다면!”
“지금은 저놈이 우선이다!”
“알겠습니다!”
사디크 성기사들이 무언가를 쓰려고 하자 마르덴 후작은 바로 견제에 들어갔다.
그러나 사디크 고위 사제들이 그를 막아섰다.
-크나큰 사디크의 가호!
“이 버러지 같은 놈들! 사디크 같은 잡신을 따르는 놈들이었구나!”
마르덴 후작은 이를 갈며 외쳤다.
“가만히 보니…… 그 건방지고 약삭빠른 놈도…… 이제야 알았다! 사디크 교단! 너희들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 * *
그러는 사이 태현은 멀리서 플레이어들과 함께 허술해진 포위망을 뚫고 아농 성으로 후퇴하고 있었다.
“이야. 잘 싸우네.”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싸움이 일어나자 태현은 일행의 가장 뒤로 이동했다. 어떻게 된 건지 알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플레이어들이 보기에는 강한 책임감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으로 보였다.
“설마 이런 상황에서 가장 뒤에 서다니……!”
“역시 다른 사람들 말이 맞았어! 겉은 좀 험악하지만 속은……!”
플레이어들이 감격에 젖어서 떨거나 말거나 태현은 흥미진진하게 싸움을 관찰했다.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게 싸움 구경!
게다가 그 싸우는 놈들이 다 태현의 적이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태현은 마르덴 후작과 싸우는 게 사디크 교단이 보낸 암살자들이라는 걸 깨달았다.
분명 태현을 쫓아서 온 이들인데, 어쩌다가 마르덴 후작과 만나서 싸우게 된 것이다.
일단 사디크 교단도 교단이니 신을 싫어하는 마르덴 후작과는 사이가 안 좋을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보니…… 그 건방지고 약삭빠른 놈도…… 이제야 알았다! 사디크 교단! 너희들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
태현은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거 설마 그를 말하는 건가?
“저거 설마 나하고 사디크 교단하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러는 사이 사디크 교단은 갖고 온 수를 풀어놓았다. 사디크 고위 사제가 스크롤을 찢자 허공에서 강력한 마수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마르덴 후작도 일단 물러서서 부하들을 불러올 정도의 마수들!
태현은 그걸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야. 저걸 내가 상대했으면 골치 좀 아팠겠는데?’
어쨌든 결과는 대만족!
싫어하는 놈들끼리 싸우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그러는 사이 뒤에서 일어나는 싸움은 점점 커져 가고 있었다.
쾅! 콰콰쾅! 콰콰쾅!
“크아앗! 끓어오르는 피! 흡혈! 뱀파이어의 눈!”
“사디크의 분노! 위대한 사디크의 종속! 사디크의 마수 강화!”
겉으로만 보면 박진감 넘치는, 비장한 싸움!
* * *
“사디크 교단이 이렇게 도와줄 줄은 몰랐는데.”
“그게 도와준 건 아니지 않나……?”
에반젤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좋은 점은 마르덴 후작이 이끌고 온 군대가 생각보다 많은 피해를 입었다는 거지. 저거 구덩이 패인 거 봐라.”
사디크 교단은 작정을 하고 준비를 했는지 태현 상대로 풀어놓을 온갖 마수들을 마르덴 후작에게 풀어놓았다.
덕분에 고생한 건 마르덴 후작의 군대!
원래 쌩쌩한 모습이었던 그들이 엉망이 되어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나쁜 점은 저놈들이 바로 안 덤비고 쉬고 있다는 거지. 화가 나서 바로 덤벼들 줄 알았는데…….”
태현의 계획은 마르덴 후작을 도발해서 바로 덤비게 만드는 것이었다.
숲에서 좀 얻어맞았다고 멈출 것 같지도 않았고, 태현의 화술 스킬과 도발 스킬로 공격을 유발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문제는 사디크 교단과 만난 탓에 피해가 너무 커져서 마르덴 후작이 잠시 멈춰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도발할 수는 없을까요?”
“난이도가 너무 올라가서 안 될 거 같은데. 마르덴 후작이 아예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기습을 하면?”
“숲 지나서 평야에 있는 놈들한테 기습을 하자니. 넌 머리를 장식으로 두고 있냐? 애초에 우리가 왜 공성전으로 저놈들을 끌어들이겠냐?”
구박을 받은 에드안은 시무룩해져서 구석에 쪼그라들었다. 그걸 본 루포는 무언가를 말하려다 멈췄다.
“루포. 뭘 말하려다가 말았는데.”
“아, 아닙니다.”
“말해보라고. 왜. 부끄러워?”
“그런 건 아니고…… 너무 단점이 커서…….”
“뭔데?”
“지금 마르덴 고성은 텅텅 비었을 테니, 마르덴 고성으로 가서 박살을 내놓으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수비야 있겠지만 태현 님 정도라면 충분히 뚫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
“그런데 여기 성도 지켜야 하고, 태현 님께서 책임이 막중하시니 그렇게는 못 하시겠죠. 하하!”
“하하. 아닌데.”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