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64화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알려줘야지.”
“……!”
구성욱은 태현의 손을 덥석 잡았다.
“이번 퀘스트가 끝나고 말이야.”
“……?”
“아참. 내가 이번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잘 끝내야 알려줄 기분이 들겠지?”
“…….”
“그러려면 다른 사람들이 많이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최대한 도와드리겠습니다!”
이제 구성욱은 물러날 수 없었다.
반드시 <차가운 울음의 검>의 제작법을 가져간다!
* * *
“좋아. 이 인원으로 해볼까?”
태현은 앞에 모인 플레이어들을 보며 말했다. 즉석에서 모은 플레이어들!
주로 민첩이 높은 직업이거나, 아니면 비교적 레벨이 높거나, 그도 아니면 태현한테 호구를 잡혔거나 하는 사람들이었다.
구성욱, 에반젤린 같은 호구들은 침울한 표정으로 태현 앞에 서 있었지만, 다른 플레이어들은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이런 기회를 잡은 게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
그걸 본 에반젤린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도 실제로 만나기 전에는 태현이 저런 사람인 줄 몰랐었으니까!
“저희는 뭘 해야 할까요?!”
“하하.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제가 지시를 할 테니까요.”
“우와! 진짜요? 혹시 저희도 방송에 나올 수 있나요?”
“퀘스트가 잘 풀린다면 나올 수도 있겠죠.”
태현의 친절한 대답에 자리에 모인 플레이어들의 흥분은 점점 더 커져 갔다.
“저요! 저요! 카테란드 섬 퀘스트에 대해서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자! 이제 출발하자고!”
질문이 길어질 거 같자 귀찮아진 태현은 바로 말을 끊었다. 그러나 신이 난 플레이어들은 눈치도 채지 못했다.
* * *
“마르덴 후작이 혼자 오는 거면 모를까, 군대를 이끌고 오면 길이 한정될 수밖에 없지. 아마 이 길목을 지날 거야.”
태현의 말에 플레이어들은 귀를 기울였다. 별로 대단할 거 없는 말에도 집중도는 최고!
“그러면 그걸 기다렸다가 저희가 기습하는 건가요?”
“매복했다가 공격하는 거죠?”
“아닌데.”
“……?”
“이 숲 안에다가 함정을 잔뜩 설치할 테니까 그냥 가서 유인만 하면 돼. 마르덴 후작 보니까 성질 더러워서 조금만 도발해도 바로 올 거 같더라.”
“…….”
뭔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일들!
호쾌하게 달려들어서 치고받고 하는 싸움을 기대했던 플레이어들은 살짝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어…… 싸움은요?”
“숲 안으로 오면 싸우던가.”
태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태현은 여기 플레이어들의 전투 능력에 그렇게까지 크게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마르덴 후작이 직접 오기라도 하면 바로 밀릴 플레이어들!
“뭔가 생각했던 거랑 다른데…….”
“그렇지?”
플레이어들은 중얼거리면서 태현이 시킨 대로 함정을 숲 곳곳에 깔기 시작했다.
철컥-
[강력한 관통력을 가진 투창 함정이 설치되었습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기계공학 스킬의 레벨이 오릅니다.]
‘오. 드디어 초급 9인가?’
태현은 반가운 마음으로 상태창을 확인했다. 기계공학 스킬을 올리기 위해 참 많이도 애써왔다.
다른 사람들도 대장장이 기술 스킬은 열심히 올리고 있겠지만, 기계공학 스킬에 이렇게 투자를 하는 건 태현 정도뿐!
‘중급만 찍어도 확실히 편할 텐데 말이야.’
중급 기계공학 스킬을 찍는 순간 여러 가지가 더 가능해졌다. 폭발의 화력은 물론이고 좀 더 다양한 제작법도 가능해졌고…….
‘기계공학 애완동물도 중급부터였었지?’
애완동물, 펫…… 플레이어가 데리고 다닐 수 있는 작은 동반자였다.
다들 용용이를 펫으로 착각하고 있었지만, 용용이는 엄밀히 말하자면 펫이 아니었다.
신성 속성을 갖고 있는 신수인 것!
애초에 골드 드래곤을 펫으로 부리는 건 불가능했다. 펫으로 가능한 몬스터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펫은 여러 방법으로 가질 수 있었다. 마법으로 소환하거나 아니면 실제 몬스터를 잡아서 길들이거나…….
그리고 기계공학 스킬로 만들 수도 있었다. 태현은 판타지 온라인 1에서 기계공학 애완동물에 대한 좋은 추억이 많았다.
-어? 여기 왜 토끼가 있지? 이거 귀여운…….
콰콰콰콰콰콰쾅!
‘사람들은 귀여운 겉모습에 참 잘 속는단 말이야.’
태현은 플레이어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함정을 설치하는 걸 보며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걸로 마르덴 후작을 잡을 수 있어?”
에반젤린이 옆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같이 싸웠기에 알 수 있었다. 마르덴 후작이 얼마나 강력한 보스 몬스터인지를.
보통 이런 보스 몬스터를 잡으려면 랭커나 준 랭커 정도 되는 파티가 구성되거나, 아니면 다른 강력한 NPC들을 불러오거나 했다.
그런데 지금 태현이 데리고 있는 건 레벨이 높아 봤자 70~80 정도 되는 플레이어들이 전부!
“괜찮아. 어차피 여기서 마르덴 후작을 잡을 생각은 없거든. 최대한 괴롭혀서 열 받게 하는 게 목적이지.”
“……그러다가 큰일 나면 어쩌려고? 마르덴 후작 같은 보스 몬스터는 만만치 않잖아.”
“뭐, 그때는 방법이 있지.”
태현은 에반젤린을 포함해서 다른 플레이어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무슨 방법?”
“여기 있는 사람들이 있잖아.”
“……!”
에반젤린은 살짝 감동했다. 저렇게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는 태현의 입에서도 ‘다른 사람들을 믿는다’라는 말이 나오다니.
‘마르덴 후작이 예상외의 방법으로 쫓아오면 다른 플레이어들을 미끼로 두고 도망쳐야겠군.’
물론 태현의 생각은 에반젤린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지만!
* * *
“아무도 없습니다, 주인님. 주인님의 위엄에 모두 겁에 질려서 도망친 게 분명합니다.”
“크크. 버러지 같은 놈들이 도망치는 건 당연한 일이지. 그래. 아농 성까지는 얼마나 남았느냐?”
“하루 정도면…….”
파팍!
그 순간 날아오는 화살들!
“쏴! 쏴!”
“가능하면 후작을 맞추자!”
플레이어들은 겁도 없이 웃어대며 숲 앞으로 나와 화살을 쏘아댔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여기 모인 플레이어들은 레벨 경쟁에 크게 관심이 없는 만큼 겁도 없었던 것이다.
“저놈들이?!”
마르덴 후작 옆에 있던 뱀파이어들이 발끈해서 손톱을 길게 뽑아냈다.
“주인님! 저놈들을 당장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내버려 둬라. 딱 봐도 모르겠느냐? 저 숲에서 숨어서 내 군대를 괴롭힐 생각이겠지. 저런 같잖은 놈들에게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퍽, 퍼퍼퍽!
언데드 병사 몇 명이 화살을 맞고 쓰러졌지만, 플레이어들이 계속 쏘아내는 화살들로 흔들기에는 마르덴 후작의 군대는 생각보다 많았다.
그러는 사이, 태현은 거대한 활의 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이번에 쓰려고 급하게 제작한 활이었다.
“으음…….”
거인족을 위한 조잡한 활:
내구력 55/55, 공격력 105.
크기가 맞지 않는 종족이 사용할 경우 페널티.
힘 제한 150, 민첩 제한 50.
대장장이 기술과 기계공학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뛰어난 대장장이가 거인족을 위해 급하게 만든 활이다.
설마 이런 걸 인간이 쓰라고 만들었겠는가?
“꽉 잡으라고!”
“잡, 잡고 있는데…….”
구성욱은 억울하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지금 그는 태현이 활을 쏘는 걸 돕고 있었다.
옆에서 정수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선배님. 선배님은 궁술 스킬도 올리셨습니까?”
“아니. 그렇지만 궁술은 별거 아닌…….”
퍽!
태현은 시위를 끝까지 당겼다가 놓았다. 어지간한 투창보다 거대한 화살이 쐐액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저 하늘 위로!
“…….”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말없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처음 쏴서 실수한 거야.”
“……그냥 궁수들한테 맡기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약은 약사에게, 마법은 마법사에게, 활은 궁수에게…….”
“난 할 수 있다고!”
태현이 떠드는 동안, 마르덴 후작은 숲에서 자꾸 날아오는 화살을 보고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노골적인 도발이라는 걸 알고 있어도 기분 나쁘고 성가신 건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안 되겠군. 너희들이 가서 저 버러지들에게 교훈을 가르쳐주고 오거라! 깊게 들어가지 말고…….”
쐐애애액-
“……?”
콰직!
“으아어억?!”
마르덴 후작이 타고 있는 말 앞으로 거대한 화살 같이 생긴 무언가가 그대로 날아와서 박혔다.
태현이 쏘아낸 화살이었다.
마르덴 후작은 추한 비명을 지르며 말에서 떨어졌다. 말이 놀라서 펄쩍 뛴 것이지만, 말에서 떨어진 창피함은 어디 가시질 않았다.
“이, 이 버러지들이…….”
그러나 화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콰콰콰콰쾅!
은 표창을 안에 내장한 잘 만들어진 대형 화살:
공격력 55, 은으로 인해 언데드에게 추가 피해.
대장장이 기술과 기계공학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뛰어난 대장장이가 만든 화살이다.
이 화살에는 실력을 떠나 무언가 특별한 솜씨가 깃들어 있다.
폭발한 화살에서 쏟아져 나오는 은 표창들!
“크아악!”
“카아아악!”
생각지도 못한 기습을 당한 뱀파이어들은 비명을 지르며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행운으로 보너스를 받습니다. 도발 스킬에 성공합니다. 도발 스킬의 레벨이 오릅니다.]
“아. 이것도 치명타로 쳐주는군.”
태현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메시지창을 확인했다.
‘그런데 왜 궁술 스킬은 안 오르지?’
궁수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들이 들었다면 양심 없다고 욕했을 소리!
-맞추지도 못했잖아!
“이, 이 버러지 같은 놈들이…….”
어쨌든 태현의 공격은 확실하게 도발이 된 모양이었다.
분노한 마르덴 후작이 검을 휘두르며 명령을 내린 것이다.
“가라! 버러지들을 짓밟고 와라!”
마르덴 후작이 부리는 뱀파이어들은 하나같이 동작이 재빠르고 강해보이는 겉모습을 갖고 있었다.
그런 뱀파이어들이 동시에 숲으로 달려드니 플레이어들은 움찔했다.
“온다!”
“어, 어떡해?”
“뭘 어떡해! 말한 대로 튀어야지!”
워낙 흉흉한 겉모습에 싸우고 싶은 마음은 바로 사라진 것이다. 플레이어들은 욕심을 부리지 않고 숲 안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디를 도망치는 거냐, 이 인간들아!”
“피를 내놓아라!”
콰아앙!
“?!”
폭음과 함께 연기 속에서 에반젤린이 뛰쳐나왔다. 함정 옆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으지직!
“으아악!”
뱀파이어끼리의 싸움은 보통 싸움과는 전혀 달랐다. 일단 가까이 붙어서 바로 흡혈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걸 멀리서 보던 태현은 중얼거렸다.
“에반젤린한테 독을 먹이고 마르덴 후작한테 보내면 안 되나?”
“에반젤린 씨가 절대 허락 안 하지 않을까요…….”
“쯧. 좋은 방법인데.”
쾅! 쾅! 콰콰콰쾅!
에반젤린의 싸우는 센스는 뛰어났다. 설치해 놓은 함정을 기억해 놨다가 적을 그쪽으로 끌고 들어갔다.
싸우다가 HP가 떨어지면 함정으로 피하는 척을 해서 적을 혼란시키거나 바로 흡혈로 채웠다.
영웅 직업에 랭커인 값을 톡톡히 하는 에반젤린!
“계속 쏴! 계속!”
퍽! 퍼퍼퍽!
궁수 플레이어들은 에반젤린이 다른 뱀파이어들을 붙잡는 동안 화살을 쏘아댔다.
그리고 그 화살은 그냥 화살이 아니었다. 태현이 특제로 제작한 화살!
한 대 맞으면 폭발하고 은으로 추가 데미지까지 들어갔다.
“크아아악! 이 인간 놈들이 감히!”
“죽여 버리겠다!”
뱀파이어들의 눈이 붉어지며 분노 상태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걸 본 태현이 냉정하게 말했다.
“자. 두 번째 함정들이 있는 곳으로 빠지자!”
뱀파이어들도 들을 수 있는 큰 목소리였다. 그걸 들은 뱀파이어들은 움찔했다.
방금 같은 함정들을 한 번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