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63화
“네? 뭔데요?”
“다름이 아니라…….”
배장욱은 혹시라도 태현이 끊을까 봐 빠르고 간단하고 명확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윗선에 모험적인 프로그램을 제안할 때, 최대한 그럴듯하게 설명하던 솜씨는 어디 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생방송으로 시청자 Q&A를 하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별로 어렵지 않겠네요.”
태현이 생각보다 순순히 수긍하자 배장욱은 놀랐다. 몇 번은 까칠하게 굴 줄 알았던 것이다.
‘다행이다!’
“그래도 지금 바쁘니까 게임 내에서 따로 시간을 내서 장소를 만들거나 하지는 못할 거 같고, 퀘스트 진행하면서 Q&A 해도 되죠?”
“네? 아. 벌써 새로운 퀘스트를 깨고 있으십니까?”
“네.”
“그러면 그렇게 하죠! 최대한 맞춰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배장욱은 알지 못했다.
태현은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 * *
“헉, 헉. 태현 님.”
“어. 돌아왔냐?”
돌아온 에드안은 상처투성이였다. 이마에서는 피가 줄줄 나고 왼쪽 의수는 반쯤 박살이 난 상태!
“편지를 주고 왔습니다!”
“그래. 잘했다.”
“……조금 더 칭찬을…….”
“너 그 이마 상처가 좀 이상한데. 설마 오기 전에 스스로 낸 건 아니지?”
“……!”
“뭐, 상관없나? 어쨌든 가까이 오라고. 다친 거 같으니…….”
태현은 의외로 상냥하게 대답했다. 에드안은 놀라서 태현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이마의 상처를 일부러 낸 게 들킨 줄 알았는데?
철컥-
“?!”
“이 의수 망가진 김에 내가 수리 좀 하자. 안에 개조도 좀 해줄게.”
“아, 아니. 그거 엄청 섬세하고 귀한 물건이라 멋대로 다루면…….”
“내 솜씨 못 믿냐?”
“못 믿…….”
“응?”
“……믿습니다.”
에드안은 울며 겨자 먹기로 태현에게 의수를 넘길 수밖에 없었다.
[고블린 기계공학자의 의수를 개조합니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중급입니다. 페널티를 받습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초급입니다. 페널티를 받습니다.]
-신의 예지.
[강력한 행운으로 보너스를 받습니다.]
[어떻게 개조할지 선택하십시오.]
‘흠…… 칼도 넣고, 화살도 나가게 하고, 자폭 기능도 넣어볼까?’
자기가 쓰는 팔 아니라고 막 나가는 태현이었다.
* * *
“감히 이 건방진 놈이!”
고성 앞에 몰래 놓여진 편지를 받은 마르덴 후작은 격노했다.
“신 따위를 섬기는 나부랭이 주제에 이런 건방진 편지를 보내다니!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마르덴 후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건 수많은 뱀파이어들이었다. 마르덴 후작이 깨어났다는 소식에 몰려든 것이다.
그 뒤에 있는 건 고성 주변에 있던 언데드 병사들! 생전 마르덴 후작이 마법으로 일으켜 세운 언데드 병사들이었다.
“가자! 아농 성으로. 이 같잖은 놈을 응징하겠다! 밤의 귀족의 이름으로!”
“예! 주인님!”
쿵, 쿵, 쿵-
마르덴 후작은 그의 군대를 이끌고 출발했다. 그리고 그 뒤에, 명백히 인간으로 보이는 부대가 따라붙었다. 마르덴 후작이 따로 고용한 용병들이었다.
돈만 주면 어디든 가는 용병들!
뱀파이어들과 언데드, 그리고 용병들로 구성된 군대가 아농 성으로 진격을 시작했다.
* * *
플레이어들의 장점은, 게임 내에서의 정보가 빠르게 공유된다는 점이었다.
마르덴 고성 주변에 남아 있던 플레이어들은 마르덴 후작이 군대를 이끌고 출발하는 것에 깜짝 놀라 소식을 퍼뜨렸다.
바로 게시판에 공유되는 정보들!
-마르덴 후작 군대 영상!
-최대한 가까이 가서 봤다. 언데드 오우거 독점 촬영!
태현은 그런 정보들을 보며 마르덴 후작이 출발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좋아. 그러면 가볼까?”
온갖 흉흉한 기계공학 함정이란 함정들은 다 만든 태현이었다.
이제 그걸 실험해 볼 때!
“병사들 갑옷 50개 납품해야 하는데 좀 도와줄 사람? 나 갑옷 전문 스킬 없어서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병사들하고 같이 다니는 퀘스트 떴는데 파티 하실 분! 레벨 67 전사입니다! 희귀 직업임!”
아농 성에서는 플레이어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태현이 아농 백작과 직접 대면하고 중요한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동안, 플레이어들도 나름 퀘스트를 받아서 깨고 있었던 것이다.
<갑옷 50개를 만들어서 납품하라-대장장이 퀘스트>
전투에 대비하는 아농 성의 병사들은 언제나 좋은 갑옷을 필요로 한다.
그들을 위해 뛰어난 갑옷을 만들어서 바쳐라. 갑옷의 성능이 좋을수록 더 좋은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보상:?, ???
<병사들과 함께 아농 성 앞의 숲을 순찰하라>
아농 성 앞의 큰 숲은 적이 숨기 좋은 장소다. 적의 군대가 오기 전 순찰을 마치고 숲 안의 정비를 마쳐라.
보상:?
태현은 그런 플레이어들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확실히 레벨이 낮군. 어쩔 수 없나?’
대형 길드나 잃을 게 많은 상위 플레이어들은 이번 마르덴 후작 퀘스트를 지켜만 보고 있었다.
-일단 기다렸다가 어떻게 되는지 보고 참가한다!
상황을 알 수 없을 때에는 그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물론 그 전에 끝낼 생각이지만.’
태현은 이 퀘스트를 오래 끌고 갈 생각이 없었다. 마르덴 후작이 공격해오면 반격해서 크게 데미지를 입힌 다음 바로 토벌!
“나하고 같이 마르덴 후작 토벌하러 갈 사람 있어?”
태현은 플레이어들 사이에 서서 크게 외쳤다. 그러자 모두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누구야?”
“어디서 본 거 같은데…….”
“김태현이잖아?!”
“뭐?!”
순식간에 퍼져 나가는 반응!
자기 할 일만 하던 플레이어들은 갑자기 눈을 빛내며 태현에게 몰려들었다.
“저요! 저! 꼭 하고 싶어요!”
“저 방송 다 챙겨봤습니다! 팬입니다! 저부터!”
우르르-
보통 이렇게 사람들이 모일 정도면 당황할 법도 하지만, 태현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일렬로.”
“네?”
“일렬로 줄 서.”
“아…… 네!”
“내가 먼저 설 거야!”
“비켜!”
사람들은 태현의 말 한마디에 허겁지겁 줄을 서기 시작했다. 분위기에 휩쓸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태현이 방송에서 보던 것과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을!
‘조금 더 친절한 사람 아니었나?’
그런 생각을 누군가 하는 동안, 태현은 빠르게 면접을 시작했다.
“직업, 레벨, 가장 높은 스탯.”
“네? 아! 저는 에랑스 왕국 방패 전사를 직업으로 갖고 있고요, 레벨은 7…….”
“패스.”
“?!”
“미안한데 느린 직업은 못 데리고 가. 데리고 갔다가는 죽거든.”
태현의 말에 줄을 서고 있던 사람 중 1/3은 시무룩해져서 걸어 나왔다.
“나도 잘할 수 있는데…….”
“맞아. 너무한 거 아니야? 시켜주지도 않고 자르다니.”
불평이 하나둘씩 나오자, 바로 탈락된 사람들의 분위기가 안 좋아졌다.
그 순간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아니. 저게 잘하는 거지. 데리고 가는 건 쉬워. 안 맞는 사람 데리고 갔다가 죽어도 김태현한테는 별 상관이 없잖아. 배려해 주는 거라고.”
“그…… 런가?”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
묵직한 목소리로 그럴듯하게 말하자 다시 분위기가 바뀌었다.
“후…….”
구성욱은 주먹을 불끈 쥐고 눈빛을 빛냈다. 방금 줄을 서 있다가 태현을 변호해 준 건 본심이 아니었다.
잘 보이기 위해서!
빚을 지게 하기 위해서!
<차가운 울음의 검>을 얻기 위해서!
‘제발, 제발! 좀 이번에 끝내자!’
<차가운 울음의 검>을 얻기 위해서 들인 노력만 생각한다면 거의 전설 등급 퀘스트도 깰 수 있을 것 같았다.
“저기요. 지금 줄 움직이는데 빨리 좀 가세요.”
“아. 네. 죄송합니다.”
주먹을 불끈 쥐고 혼자 생각에 빠져있던 구성욱은 뒤에서 재촉하자 급히 앞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결국 도착한 태현의 앞!
“직업, 레벨, 가장 높은 스탯?”
“흠흠.”
“……?”
물어보는 질문에는 대답을 안 하고 기침 소리를 내자 태현은 고개를 들었다.
구성욱이 턱에 손을 가져다 대고 겸연쩍은 표정으로 헛기침을 하고 있었다.
“직업 이름이 <흠흠>인가? 그러면 탈락.”
“아, 아니! 저 모르시겠습니까?”
태현을 만나기 전에, 구성욱은 속으로 온갖 상상을 했었다.
-내가 그놈의 대장장이를 만나는 순간 욕설을 퍼부어주겠다!
-내가 그놈의 대장장이를 만나는 순간 이단옆차기를 먹이고 확 검을 찔러버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단계가 올라가는 망상!
그러나 태현을 만나자 그런 생각은 싹 사라졌다. 그사이 너무 잘나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강해 보였고!
‘내가 이길…… 수 있으려나?’
간신히 고수 플레이어를 넘어 준 랭커 정도의 레벨을 갖고 있는 구성욱이었다.
그걸로는 태현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태현은 눈썹을 찌푸렸다. 원래 태현은 관심을 가질 필요 없는 사람한테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
“아. 판타지 온라인 2에서도 이런 사기를 쓰다니.”
“?!”
“미안하지만 내 사기 스킬도 곧 있으면 중급이거든. 헛수고하지 말고 다른 사람 속이라고. 그리고 ‘나야 나’사기를 하려면 좀 더 적극적으로 하고.”
졸지에 사기꾼으로 취급받은 구성욱!
억울했지만 구성욱은 침착을 잃지 않았다. 이런 걸로 흔들리기에는 그가 겪은 시련과 고난이 너무 컸던 것이다.
태현을 찾으면서 보낸 시간은 그를 묵직한 바위로 성장시켰다!
‘아니, 그보다 사기 스킬이 곧 있으면 중급이라는 게 무슨 소리지? 이 인간 대체 직업이 뭐야?’
구성욱은 혼란스러웠지만 바로 말했다. 뒤에서 노려보는 플레이어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접니다! 저! 타이럼에서 만났잖습니까!”
“타이럼에서 만났다…… 레드존 길드원?”
“아니, 왜 하필 레드존?!”
멀리 있던 케인이 작게 재채기를 했다.
“레드존 길드원이 아니라! 마을에서! 대장장이! 기억 안 나십니까!”
“아…… 아아아. 그 호구!”
“…….”
“하하. 말이 헛나왔네. 그 타이럼 사냥꾼들하고 친해지려는 멍청…… 아니, 내가 말을 친절하게 해주려고 하는데, 뭐라고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네. 타이럼 사냥꾼들하고 친해지려는 사람을 뭐라고 해야 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좋게 표현이 안 되는데.”
“…….”
구성욱은 울컥했지만 부정할 수가 없었다. 타이럼에서의 퀘스트가 끝나고 난 다음 그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도시는 타이럼이 되었으니까.
나중에 만약 타이럼 사냥꾼을 공격할 수 있는 퀘스트가 생긴다면 목숨을 걸고 참가하리라!
“그래서 원하던 건 잘 챙겨갔나?”
“어? 제가 말했었습니까?”
“타이럼 떠난 사람이 갑자기 돌아와서 다시 친해지려고 하면 이유야 뻔하지. 원하는 게 있었으니까 그랬을 거 아니야.”
구성욱은 솔직히 감탄했다. 그 더러운 성질과 꼬인 마음 때문에 잊을 때가 많았지만, 태현은 기본적으로 랭커였다.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은 절대 낮지 않은 사람!
“그, 원하는 건 사실 구렌달이라는 대장장이가 갖고 있는 아이템 제작법이었는데…….”
“아. 그 사람 친절했지.”
태현한테는 좋은 기억이었다. <고대의 망치>를 거의 공짜로 얻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늘보다 높은 스승의 은혜!
그러나 구성욱에게는 이름만 들어도 당장 PK를 하고 싶은 이름이었다.
“그…… 까득, 분이…… 까드득, 태현 님한테 알려줬으니 태현 님한테 배우라고…….”
이 갈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하하. 그런 거였어?”
태현은 친절한 미소를 지었다. 그걸 본 구성욱은 순간 안심했다.
-아, 이 지긋지긋한 퀘스트도 결국 드디어 끝을 볼 수 있구나!
그러나 케인이 옆에 있었다면 그에게 말했을 것이다.
‘저놈이 저렇게 웃을 때 가장 조심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