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62화
에드안은 땀을 뻘뻘 흘리며 편지를 받았다. 태현은 에드안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믿는다. 에드안.”
“저, 저 말고 다른 사람들이 더 믿음직스러운데…….”
“그런 곳에 가서 편지를 두고 빠져나올 수 있는 게 누가 있겠어? 너밖에 없지. 대도적이잖아 대도적.”
“저 사실 별 능력 없습니다. 팔도 잘렸고…….”
“다시 생겼잖아.”
“그건 의수…….”
“시끄럽고. 갔다 와.”
“……네.”
* * *
“직접 싸우고 싶은 모험가들은 여기로 와라!”
“저요! 저요!”
“꼭 싸우고 싶습니다!”
“김태현을 만나게 해줘!”
병사들을 이끄는 백부장이 플레이어들 앞에서 외쳤다. 한눈에 봐도 모인 플레이어 숫자는 보통이 아니었다.
태현도 예상하지 못한 전력, 그건 바로 플레이어들이었다.
태현은 이번 아농 성 퀘스트는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 퀘스트와 비교한다면 더더욱 그랬다.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 퀘스트는 일단 국왕 다미아노 2세가 보상을 걸었고, 거기에 왕국군부터 시작해서 각 교단의 성기사들까지 포함된 빵빵한 지원군이 있었다.
즉 플레이어들은 거대한 세력을 업고 싸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에 비해 아농 성 퀘스트는 지원군이 비교적 초라했다.
다른 영지를 갖고 있는 귀족들은 먼저 나설 생각이 없었고, 그나마 지금 아농 백작 정도만 싸울 의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게다가 상대인 마르덴 후작도 만만치 않은 상대였으니, 이건 불리한 싸움이 될 가능성이 컸다.
‘이번 퀘스트에는 별로 사람들이 참가를 안 하겠군.’
태현은 다른 플레이어들이 별로 참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태현 기준에서 이런 식의 퀘스트는 참가해서 이익을 볼 수 없었으니까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
구름처럼 내성 성문 앞에 몰린 플레이어들을 보며 태현은 황당해했다.
“아농 백작이 뭐 추가로 걸었나? 왜 온 거지?”
“태현 님이 퀘스트 한다고 해서 찾아온 거 아닐까요?”
박성찬은 정확하게 맞췄다. 물론 태현한테는 전혀 이해가 안 되는 멍청한 짓이었다.
뒤에서 그걸 들은 케인이 중얼거렸다.
“호구들도 저런 호구들이 없지…….”
케인이 보기에 저 밑에 몰린 플레이어들은 속고 싶어서 안달이 난 호구들!
“뭐라고 했냐?”
“아, 아무것도 아니야.”
태현이 묻자 케인은 바로 꼬리를 내렸다. 태현은 가볍게 손뼉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저렇게 와주니 나야 좋지.”
싸울 사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태현은 대장장이들에게 손짓했다.
“너희들은 날 따라와. 갈 곳이 있다.”
“뭔데? 나도 가도 돼?”
“넌 절대 안 되지.”
에반젤린이 말을 걸자 태현은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왜?”
“그야 지금부터는 대장장이 기술을 써야 하니까.”
* * *
아농 성에는 당연히 대장장이 NPC들과 질 좋은 용광로들이 있었다.
원래 대장장이들이 이런 곳을 쓰려면 돈을 내거나 공적치가 있어야 했지만, 태현이 쓴다는데 감히 말릴 사람은 없었다.
“아. 잊을 뻔했군. 너희들, 마르덴 고성에서 챙겨온 잡템들은 다 어디 있지?”
“여기 있습니다만?”
“그거 다 꺼내봐.”
“……?”
대장장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잡템들을 꺼냈다. 언데드 몬스터들을 사냥하면서 나온 아이템들.
가치가 없지는 않지만 지금 대장장이 기술로 뭘 만들려고 할 때 쓸 수 없는 아이템들이었다.
과연 태현은 이걸로 뭘 하려는 걸까?
‘우리가 모르는 스킬인가?’
‘이렇게 쓸모없어 보이지만 태현 님은 뭔가 다를지도…….’
그러나 태현은 잡템들을 만지지도 않고 시종을 불러 말했다.
“이거 갖고 가서 백작한테 보여줘.”
“예. 백작님.”
“?!”
대장장이들은 깜짝 놀랐다.
“왜 아농 백작한테 보여주는 겁니까?”
“음? 아. 공적치 포인트 쌓으려고.”
“…….”
토벌 퀘스트를 걸었던 아농 백작이니, 마르덴 고성 주변에서 얻은 전리품들을 가져다 바치면 공적치를 얻을 수 있었다.
[아농 백작과의 친밀도가 높아 추가 효과를 받습니다.]
[전리품을 바칠 때 공적치 포인트를 더 받을 수 있습니다.]
“아니, 백작 작위도 있으시면서 뭘 그렇게 쪼잔하게 하나하나 챙기시는 겁니까?!”
마치 돈 많은 재벌이 요플레 뚜껑을 핥아 먹는 걸 본 기분!
“뭐라는 거야? 공적치 포인트가 땅에서 그냥 솟아나는 줄 알아? 이번 일이야 마르셀 백작도 있으니 군대를 빌릴 수 있지만, 원래 이런 일 없으면 병사 한 명도 빌릴 수 없다고.”
태현이야 인맥과 작위로 이렇게 쉽게 아농 백작을 설득하고 군대를 동원할 수 있었지만, 원래 다른 플레이어들은 불가능했다.
NPC들한테 쓸 수 있는 공적치 포인트는 벌어놓을 수 있을 때 벌어놓는 게 좋았다.
언제든지 환전 가능한 편리한 화폐 같은 게 바로 공적치 포인트!
“난 또 뭐라고…….”
“뭐 대단한 거라도 만드는 줄 알았는데…….”
대장장이들은 꿍얼거리며 망치를 두드렸다. 지금 그들은 전투를 대비해 아농 성의 기사들이 쓰는 무기들을 손보고 있었다.
병사들이 쓰는 무기는 양이 많고 레벨이 비교적 낮아 얻는 경험치가 낮았던 것이다.
그래도 양은 보통이 아니었다. 검이나 창뿐만 아니라 다른 기타 무기들까지 쌓여 있는 걸 보니 압도적이었다.
물론 태현은 신이 나서 빠르게 손질을 하고 있었지만…….
[아농 기사의 롱소드를 완벽하게 수리했습니다. 대장장이 기술이 오릅니다.]
“양이 너무 많나? 다른 사람들 부를까?”
태현은 별생각 없이 그렇게 말했다. 원래라면 전부 다 혼자 하겠다고 했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시간이 넉넉한 상황이 아니었다.
마르덴 후작한테 도발 편지를 보냈으니 최대한 빠르게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
어차피 밖을 보니 돕고 싶다는 플레이어들이 많았으니까. 돈 한 푼 주지 않고 부려먹을 수 있었다.
“아닙니다!”
“저희끼리 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기겁해서 대답하는 대장장이들! 안 그래도 새로 끼어드는 플레이어들이 많아서 신경이 쓰였다.
굳이 경쟁자들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그래? 좋아할 줄 알았는데.”
태현은 산더미 같은 무기들을 보면 ‘스킬 경험치 덩어리군!’이라고 생각했지만, 대장장이들은 ‘저걸 언제 다 하냐’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게 보통이었다.
“태현 님께서 맡겨주셨는데 다른 사람들을 부르는 건 수치!”
“그렇습니다!”
“너희 언제부터 그렇게 성실했냐?”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별말은 하지 않았다. 누가 하든 일만 제대로 처리했으면 되는 일이니까.
세 대장장이가 합쳐서 처리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작업을 끝내고, 태현은 다음 준비로 들어갔다.
기계공학!
태현은 손을 꿈틀거렸다. 원래 이렇게 대규모 난전이 벌어지는 순간이야말로 기계공학 스킬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크크크크…….”
사악한 표정으로 뭘 만들지 고민하는 태현을 보며 대장장이들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표정만 보면 악당은 마르덴 후작이 아니라 태현!
‘클래식한 함정부터 시작해서 풀코스로 준비해야겠군!’
스킬 쓰는 데 필요한 재료들은 전부 다 아농 성에서 쓸 수 있었다.
다른 대장장이들은 뭔가 하려고 하면 재료를 모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만, 태현은 거의 인맥으로 처리해 버리는 것이다.
사소하지만 엄청난 특권!
[은으로 도금된 창날이 박힌 기계식 함정을 고안하고 성공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검은 무쇠 폭탄이 연결된 함정을 고안하고 성공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중급 대장장이 기술 스킬과 높은 행운으로 기계공학 고안, 제작에 보너스를 받습니다.]
흉흉한 이름을 가진 함정들이 연속으로 태현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만들어지는 족족 태현은 바로 병사들을 불러 아농 성 주변에 설치하라고 명령했다.
“태현 님. 아농 성의 병사들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만, 직접 설치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루포는 태현의 능력을 믿었다.
여기 병사들이 설치하는 것보다는 태현이 설치하는 게 확실히 더 효과가 좋을 것이다.
누군가를 괴롭혀야 한다면 태현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아. 어차피 지금 건 그냥 가볍게 만드는 거니까 병사들 시켜서 설치해도 돼.”
“네?”
날카로운 날붙이들과 폭탄들을 꽉꽉 채워서 만드는 함정들이 ‘가볍게 만드는’ 거라니.
그러면 제대로 만드는 건 대체 뭐란 말인가?
루포는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현은 품속에서 아이템을 꺼냈다.
마르덴 후작 같은 보스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방법이 필요했다.
불의 마수의 숨결:
사디크의 권능을 받은 불의 마수가 생전에 내쉬었던 숨결을 압축한 아이템이다. 풀리는 순간 그 주변은 불바다가 될 것이니 주의.
불의 마수를 사냥하고서 얻은 전리품 중 하나!
사실 일회용으로 쓰기에는 아까운 아이템이었다. 원래 이런 건 제작 직업이 잘 활용하면 엄청나게 강력한 아이템을 만들 수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현재 태현의 대장장이 기술은 <불의 마수의 숨결>을 사용한 아이템을 만들기에는 부족했다.
‘대장장이로 전직했으면 가능했을 텐데…….’
<불의 마수의 숨결>같은 아이템을 장비에 넣어서 각인시키는 기술은 보통 따로 스킬로 있었다.
<마법 검 제작>이나 <속성 부여> 같은 스킬들은 대장장이의 밥줄 중 하나!
무슨 특별한 퀘스트라도 깨서 얻지 않는 한 태현한테 저런 대장장이 전용 스킬들은 그림의 떡이었다.
‘어차피 내가 못 만든다면 그냥 써버린다.’
태현은 망설이지 않고 그렇게 결정했다. 마르덴 후작은 강력한 상대였다.
‘레벨도 레벨인데…… 나를 알고 있다는 게 신경이 쓰인단 말이지.’
판타지 온라인 2에서 강력한 보스 몬스터의 지능은 절대로 무시할 수 없었다.
사디크 교단이야 태현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가 당했지만, 마르덴 후작은 태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신성을 가진 것도 그 고성 안에서 느꼈을 테고, 태현이 강력한 회피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 테니…….
‘조심 좀 해야겠어.’
다음에 만날 때에는 당연히 다른 싸움 방법을 갖고 올 것이다. 태현도 방심할 수는 없었다.
<불의 마수의 숨결>이 아까워도 죽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쓸 수 있는 방법은 모두 쓸 생각이었다.
* * *
“어라?”
잠시 쉬기 위해 캡슐에서 나온 태현은 부재중 전화가 우르르 쌓여 있는 걸 보고 의아해했다.
“누가…… 아.”
물론 전화를 건 상대는 배장욱이었다.
“무슨 일로 전화 주셨습니까?”
-이야, 태현 씨! 잘 지내셨나요? 방송은 잘 보셨죠? 저희가 만든 특집은 어땠습니까?
“어…….”
태현은 머뭇거렸다. 이걸 그대로 말해도 되나?
“대충 보다 꺼서 별로 기억이 안 나는데…….”
-…….
배장욱은 순간 들고 있던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아니, 자기 나오는 방송인데 왜 이렇게 무관심해?!’
“아. 그러고 보니 잠깐 봤는데 제가 이런 말을 했나 싶더군요. 왜 기억에 없지?”
-하하. 태현 씨 이미지를 위해서 살짝 방송의 흐름을 조절했습니다.
전혀 ‘살짝’이 아니지만!
“전 별로 이미지 신경 안 쓰는데요.”
-……그래도 이미지 좋은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이미지 좋아 봤자 답답하기만 할 거 같은데…… 평소에 이미지 개 같던 사람이 착한 짓 한 번 하면 다들 좋아하지만 평소에 이미지 좋던 사람이 나쁜 짓 한 번 하면 완전 악당 되잖아요.”
-어…… 나쁜 짓을 할 계획이라도 있으십니까?
“앞으로 많을 거 같은데…….”
-…….
배장욱은 못 들은 척했다.
“어쨌든 전화는 왜 주신 거죠? 별로 중요한 거 아니면 바빠서 이만 끊고 싶은데요.”
-잠, 잠시만요! 중요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