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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60화 (160/1,826)

§ 나는 될놈이다 160화

태현이 백작이라는 걸 확인한 기사들은 꼬리를 내렸다.

마르셀 백작이 왜 권력으로 짓누르지 않고 저런 멍청한 짓을 한 건지 이제야 이해가 됐다.

같은 백작이었으니까!

* * *

“갔냐?”

마르셀 백작은 마차 창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태현은 그 내민 얼굴 앞에 서서 눈을 맞췄다.

“안 갔는데.”

“으허억?!”

마르셀 백작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놀랐다.

“언제 다가온 거냐! 이놈들!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죄, 죄송합니다.”

기사들은 고개를 푹 숙였다. 백작이라고 비키라고 하는 태현을 막을 수 없었던 것!

“왜 부하들한테 그래. 내가 친하다고 해서 비켜준 거야.”

“친, 친하다고?”

“친하잖아. 안 친해?”

순간 번쩍이는 태현의 눈빛!

[협박 스킬이 오릅니다.]

[중급 화술 스킬로 보너스를 받습니다.]

“친, 친하지! 그럼! 친하고말고! 나를 구해줘서 정말 고마웠네!”

뒤에서 듣던 에반젤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친하다’는 게 어떤 의미의 친하다는 건지 이제 감이 오기 시작했다.

“하하. 그러면 오붓하게 마차를 같이 탈까?”

“하하. 안 그러면 안 되나?”

“하하. 내가 꼭 카테란드 섬에서 썼던 계약서를 꺼내야 하나?”

“하하. 농담이었네! 마차에 타게!”

웃는 얼굴로 오가는 살벌한 대화!

마르셀 백작은 눈물을 삼키며 태현에게 마차에 타라고 문을 손수 열어주었다.

우르르-

“……?”

태현이 마차에 타려고 하자 따라오는 다른 일행들. 루포는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뭘 같이 타려는 겁니까?”

“……아니, 우리도 탈 수 있을 줄 알고…… 공간도 많이 남으니까…….”

“백작님의 마차가 장난입니까? 모두들 뒤로 물러나십시오.”

루포의 말에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다. 루포.”

“감사합니다.”

“상으로 너만 말을 주지. 타고 오라고.”

“예? 말이요?”

“그래. 말.”

태현은 말과 함께 기사 한 명을 잡고 말에서 떨어뜨렸다.

“으악?!”

기사는 푹신한 풀밭 위에서 한 바퀴 굴렀다. 태현은 루포에게 말의 고삐를 내밀었다.

“아, 아니…… 저는 괜찮습니다. 걷는 게 좋습니다!”

저 말을 탔다가는 다른 기사들의 원망을 받을 것 같았다. 루포는 손사래를 쳤다. 차라리 걷는 게 낫지!

“그래? 그러면 말고.”

태현은 그렇게 말하고 마차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른 사람들은 마차 뒤에서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으악! 깜짝이야! 몬스터인 줄 알았네!”

“…….”

기사들은 에반젤린을 보자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그만큼 흉측한 겉모습이었던 것이다.

누가 보면 언데드 기사 몬스터로 착각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잠시 멈췄던 행렬이 인원이 늘어난 상태로 다시 출발하자, 주변의 플레이어들은 경악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방금…….”

“김태현 맞지?”

“김태현이 여기서 퀘스트한다! 김태현이 여기 있다!”

빠르게 퍼지는 정보!

-뭐? 김태현이 거기 있다고?!

-아농 성에 김태현 있다고? 거기 왜? 그 주변에 뭐 퀘스트 있어?

-영지에 있는 게 아니라?

-아농 성 가봐야지. 김태현 한 번 실제로 보고 싶었어!

별생각 없이 태현을 보고 싶어 하는 플레이어들은 짐을 싸서 아농 성으로 향했다.

그리고 조금 더 계산적인 플레이어들은 태현이 있는 이유를 추측했다.

랭커나 고수급 되는 플레이어들은 행동 하나하나를 허투루 하지 않는 법!

‘그 주변에서 뭔가 퀘스트가 있는 거 아냐?’

‘우리도 참가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플레이어 중 하나가, 카테란드 섬 퀘스트 때 별생각 없이 광장에서 손을 들었다가 카테란드 섬까지 갔던 플레이어들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 노력도 안 했는데 운 좋게 태현 덕분에 대규모 퀘스트에 참가한 것처럼 보인 것이다.

물론 카테란드 섬에 간 플레이어들의 속사정은 그런 게 아니었지만.

속아서 끌려간 것!

‘한 번 가보자!’

‘가서 손해 볼 건 없잖아?’

케인이 들었다면 고개를 저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손해 볼 거 많다! 이 멍청한 놈들아!

물론 플레이어들은 케인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소문이 퍼지고 아농 성으로 플레이어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사람.

“드, 드디어…… 크흑흑…….”

“진정해. 진정하라고. 이 사람아.”

“필 씨, 흑흑…… 저 정말 힘들었어요!”

구성욱은 드워프에게 안겨 흑흑대며 흐느꼈다.

그만큼 억울하고 서러웠던 것!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노력을 했는데 타이럼은 구성욱의 뒤통수를 아주 세게 후려갈겼다.

-그 제작법은 내 제자한테 얻게나!

‘다시는 타이럼 놈들을 믿지 않겠어!’

<차가운 울음의 검>이 뭐라고 이 고생을 해야 하는가. 구성욱은 이제 <차가운 울음의 검>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분하고 서럽고 억울해서라도 반드시 손에 넣고야 만다!

“진정하고, 가서 잘 말하라고. 알겠지?”

“예.”

구성욱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만 보면 마왕과 싸우러 가는 용사급!

“김태현이 그렇게 대단한 플레이어인 줄은 몰랐어. 알았으면 다른 제안을 했을 텐데.”

“필 씨 잘못이 아니에요.”

“그렇긴 한데 아쉬워서 그렇지. 그때 타이럼 시 주변에 있던 거 보면 길드에 초대할 수 있을지도 몰랐는데 말이야. 좀 더 적극적으로 했으면…… 이제는 너무 커버렸으니 굳이 우리 길드 같은 곳에는 안 들어오겠지.”

필은 길드 내에서 나이가 많은 편이었다. 그만큼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었다.

“길드 제안은 못 하겠지만 그래도 <차가운 울음의 검>의 제작법은 꼭 가지고 와야겠지?”

“물론입니다! 목숨을 걸고!”

“아니. 목숨까지 걸지는 말고…….”

“목숨을 걸고 갖고 올 겁니다!”

-성욱이 괜찮은 거 맞냐?

-쟤 요즘 너무 <차가운 울음의 검>에 집착하던데. 괜찮은 거 맞아? 좀 걱정되더라.

길드원 전용 채팅창에 구성욱을 걱정하는 말들이 올라왔다.

구성욱이 <차가운 울음의 검>에 보내는 집착은 이제 거의 원념 수준이었던 것이다.

-괜찮아. 갖고 오면 해결될 거야.

-이번에도 못 갖고 오면 필 씨가 좀 말려 봐요. 사람 망가지겠어.

-설마 이번에도 못 갖고 오겠어?

* * *

“마르셀 백작.”

“왜, 왜 그러지?”

“카테란드 섬에서 목숨을 구해줄 때, 약속을 했었지? 이 은혜는 반드시 갚겠다고.”

“아, 아니, 그건…… 꼭 그게 뭐든지 하겠다는 게 아니라…….”

“설마 귀족이 명예를 걸고 약속했는데 그냥 어기겠다는 건 아니겠지.”

“……원하는 게 뭐냐!”

“아농 백작하고 대화할 때 좀 도와달라고. 아농 백작하고 친하다며?”

태현의 말에 마르셀 백작은 자부심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친하지. 아농 백작이 날 형님으로 모시는 걸 알고 있나?”

“뭐? 널 형님으로 모시는 사람이 있다고? 돈이라도 준 건가?”

“…….”

마르셀 백작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우리는 먼 친척이라서, 어렸을 때부터 아농 백작은 나를 잘 따랐다.”

“친척이라. 하긴 여기 대륙 귀족 NPC들은 다 연관이 있으니까.”

귀족들끼리 결혼을 하다 보니 가계도를 그리다 보면 뭔가 멀리서 하나쯤은 엮이게 되어 있었다.

“어쨌든 돈은 아니었군.”

“아니라고 했잖아!”

마르셀 백작은 억울함이 넘치는 표정으로 가슴을 쳤다.

“잠깐. 그런데 대화할 때 도와달라니.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거냐?”

“하하. 별일 아니야.”

“…….”

마르셀 백작은 매우 불안하다는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 * *

“마차 안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요?”

“분명 귀족들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겠지.”

“부럽다. 저도 작위를 받고 싶은데…….”

“꿈이 너무 큰 거 아니냐?”

“꿈은 크게 가질 수도 있지. 왜 그래?”

성안으로 들어가는 행렬을 보며 플레이어들은 수군거렸다.

“김태현은 백작 작위까지 받았으니까 분명…….”

-후후. 아스마 산 최고급 커피지. 들어보겠나?

-뭘 좀 아시는군요. 백작님. 하하!

현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그런 귀족적인 경험! 플레이어들은 태현이 바로 그런 경험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마차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들의 상상과는 달랐다.

“그러니까 별일 아니라고. 병사를 동원할 일이 생기거나 토벌을 할 때 만약 아농 백작이 망설인다면 부추기란 말이야.”

“그게 어떻게 별일이 아니냐?! 영지의 군대를 동원하는 일인데!”

“내 군대 아니고 네 군대 아니니까 별일 아니지. 내가 너한테 네 군대를 갖고 오라고 하면 그게 별일이고.”

따지고 보면 맞는 말!

그러나 마르셀 백작은 필사적으로 저항하려고 했다. 아농 백작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였으니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계속 마르셀 백작이 말을 끌자 태현은 간단하게 한 마디로 그를 제압했다.

“네 군대 여기까지 끌고 오라고 할까?”

“하하. 아농 백작과 이야기를 할 때 최대한 도와주겠네!”

이러니저러니 해도 마르셀 백작은 이기적인 인간!

* * *

“아농 백작님께서 곧 오실 겁니다. 편히 기다리시죠.”

“그러도록 하지.”

마르셀 백작은 엄격, 근엄, 진지한 표정으로 시종의 말을 받았다. 태현과 있을 때는 전혀 다른 태도!

“…….”

태현은 한심하다는 듯이 마르셀 백작을 보다가 말을 걸었다.

“그런데 아농 백작은 어떤 사람이지?”

“나처럼 훌륭한 귀족이지.”

“오. 그래?”

태현한테 ‘마르셀 백작처럼 훌륭한 귀족’이란 건 ‘마르셀 백작처럼 훌륭한 호구’라는 뜻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마르셀 백작처럼 이용해 먹기 좋은 귀족이 하나 더 생기다니. 이거 무슨 1+1 행사인가?’

태현은 싱글벙글 웃었다.

마르셀 백작은 태현의 음흉한 속마음을 눈치챘는지 수상쩍다는 눈빛을 보냈다.

“뭐지, 그 눈빛은?”

“흠흠. 아무것도 아니네.”

마르셀 백작은 곧 아농 백작이 온다는 걸 들어서 그런지 유난히 폼을 잡았다.

덜컥-

그리고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아농 백작이 들어왔다.

‘크다!’

2m 가까이 되는 것 같은 거대한 키에, 귀족 예복 위로도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잡힌 근육. 거기에 얼굴은 흉터로 가득했다.

걸어 다니는 육탄전차 같은 겉모습이었다. 딱 봐도 전장에서 잘 싸우게 생긴 귀족!

“하하. 나와 비슷하지?”

“…….”

배가 나와서 뒤뚱거리는 마르셀 백작이 뻔뻔하게 그렇게 말하자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저게 어딜 봐서 비슷?

“형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분이 그 김태현 백작님이십니까?”

“그래. 잘 알아봤구나.”

[높은 명성과 완료한 퀘스트로 아농 백작이 당신에게 호의를 갖습니다.]

[화신의 매력으로 친밀도 보정을 받습니다.]

“듣고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아농 백작은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고 태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옆에서 그걸 본 마르셀 백작이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자식 별로 좋은 자식 아니니까 너무 친하게 지내지 마!’라고 말하는 표정!

그러나 태현은 씩 웃으며 아농 백작과 손을 잡았다. 저쪽에서 알아서 좋아해 주는데 그걸 거절할 이유는 없지!

“저는 아직 어리고 미숙한 점이 많아, 멀리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듣고 놀랐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런 위대한 업적을 세울 수 있는지. 저도 정진해서 김태현 백작님처럼 위대한 업적을 세우고 싶습니다!”

백전노장 같은 얼굴로 ‘어리고 미숙한 점이 많다’고 하니 잘 적응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태현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태현은 본심을 숨기고 씩 웃으며 말했다.

“물론이지. 영웅이 되고 싶다고?”

“예!”

옆에서 보던 마르셀 백작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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