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58화
이유는 모르겠지만 뭔가 불쾌!
순간 에반젤린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번뜩이고 지나갔다.
“너, 너희!”
“……?”
“너 김태현이잖아! 카테란드 섬! 맞지?!”
태현은 대답 대신 케인에게 손짓했다. 케인은 영문도 모르고 태현한테 다가왔다.
퍽!
“이 자식은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사고만 치고 다니냐!”
“내, 내가 뭘 했다고?!”
* * *
“요즘 참 좋아. 참 좋은데 말이야…….”
배장욱은 고민 섞인 목소리로 김수아에게 말했다.
수많은 방송국이 판타지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아이템에 눈독을 들이고 경쟁을 벌이는 지금 상황에서, 배장욱은 꽤 잘하고 있는 편이었다.
요즘 하루가 멀다 않고 수많은 BJ와 유명한 플레이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만큼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유명해지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온갖 컨셉 방송이 나오고, 과열 경쟁 수준까지 갈 수준이었지만…….
‘역시 게임 방송의 본질은 실력이야.’
배장욱은 그의 생각이 맞아떨어진 것이 뿌듯했다.
특이한 컨셉 잡은 플레이어들 여럿 모아봤자, 태현처럼 강력한 한 명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
아무리 이목을 끌고 주목을 받으려고 해도, 시청자들은 결국 희귀하고 좋은 퀘스트와 정보에 끌리게 되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태현의 방송은 엄청나게 성공적이었다. 이제까지 개인 방송을 하거나, 랭커로 알려지지도 않았던 플레이어가 한 번에 이렇게 유명해지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만큼 태현이 깼던 퀘스트와 태현의 실력이 인상적이었던 것!
그렇지만 배장욱에게도 고민이 있었다.
“문제라도 있어요?”
“시청자 게시판이 너무 시끄러워서 말이야.”
그렇다. 태현의 방송 이후 시청자들의 관심이 쏠린 건 좋았다. 그렇지만 태현은 개인 방송을 따로 하지도 않는 사람.
어디에 물어볼 곳이 없는 시청자들이 게시판에서 폭주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 * *
-김태현 직업 대체 뭐에요? 그건 방송 안 해줘요?
-김태현하고 시청자하고 만나는 특집 한 번 해주시죠! 그 정도는 해줘도 되잖아요!
-와 방금 개꿀잼 시나리오 생각해냈는데 이게 뭐냐면 김태현하고 시청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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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워리어 길드 저거는 시청자 게시판에서 차단시켜.”
“네.”
이런 면에서는 칼 같은 배장욱이었다.
* * *
“이렇게 열렬하게 반응 나오는 것도 드무니까, 솔직하게 말해서 이때 더 뭔가를 하고 싶거든.”
배장욱의 말에 김수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물론 우리는 우리하고 계약한 플레이어들한테 피해를 끼치면 안 되지. 그러니까 당연히 직업이나 퀘스트 관련 정보는 공개하지 않을 거지만…… 질문 정도는 받아도 되지 않을까?”
배장욱은 그렇게 생각했다. 김태현이 나와서 사람들의 질문을 받고 대답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관심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카테란드 섬 퀘스트와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 퀘스트로 모인 관심층을 그대로 팬으로 흡수하는 방송!
김수아는 좋은 계획이라고 생각했다.
“괜찮은데요? 진행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문제가 두 개가 있어.”
“……?”
“첫 번째는 그 김태현이라는 플레이어가 이런 방송을 할지가 걱정이야.”
“네? 방송을 싫어하는 플레이어도 있어요?”
“그게 좀…….”
배장욱은 태현과 몇 번 이야기를 나눠본 것으로 태현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은 상태였다.
종잡을 수 없는, 혼자 노는 늑대 같은 플레이어!
더 골치가 아픈 건 욕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돈이면 돈, 명예면 명예 등 바라는 게 있어서 방송을 하는데, 태현은 바라는 게 없는 것 같았다.
마치 인생에 아쉬운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 같은 느낌!
“다른 문제는 뭐죠?”
“다른 문제는…… 우리가 방송하면서 좀 편집을 했잖아. 생방송을 하면 이게 들킬까 봐.”
‘좀’이라고 말하면 틀린 말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악마의 편집’!
태현과 같이 다닌 케인이나 대장장이들이 보면 ‘이게 누구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확 달라진 태현의 이미지였다.
당연히 시청자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건 문제가 없었다. 어차피 태현이 한 퀘스트 영상을 올리는 건 녹화된 영상을 올리는 것이었다.
생방송이 아니니 얼마든지 편집이 가능!
그렇지만 태현과 시청자들이 대화를 하는 방송은 생방송이었다.
‘그리고 김태현은 입에 발린 말은 절대 안 할 것 같단 말이지.’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사고의 느낌! 김태현은 방송에 나온다고 해서 겉치레를 하거나 친절한 말을 해줄 것 같지 않았다.
“괜찮을 거예요. 설마 무슨 일이라도 있겠어요? 저도 그렇고 다른 분들도 경험이 얼마인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에요.”
김수아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차분하면서 자신감 있는 태도에 배장욱은 용기가 솟는 걸 느꼈다.
“그렇지?”
“당연하죠. 까다로운 플레이어를 한두 번 다뤄보는 것도 아니고요.”
김수아가 자신 있는 건 이유가 있었다.
방송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출연했었고, 그들 중에서는 협조적이지 않거나 방송을 잘 못하는 플레이어들도 꽤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플레이어들을 잘 다루고 통제해서 좋은 방송을 만드는 게 방송인의 능력!
김수아는 그럴 만한 자신이 있었다.
“알겠어. 그러면 다시 연락해 봐야겠군. 김태현 지금 어디서 퀘스트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
판타지 온라인 2의 최근 근황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 건 배장욱이 아니라 김수아였다.
배장욱은 프로그램 기획이다 출연자 관리다 뭐다 하면서 바빠 게임에는 비교적 소홀했지만, 김수아는 애초에 판타지 온라인 골수팬이었기에 꾸준히 플레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지 받은 거 관리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제대로 뭔가 좀 해보려는 것 같던데요. 세금도 파격적으로 낮추고 상인들도 부르고.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평이 좋아요.”
“그래? 영지 세우는 게 보통 일은 아닐 텐데. 그래도 잘 세우면 그것도 방송 하나는 나오겠다.”
사실 지금 태현은 에랑스 왕국에서 재앙이 될 보스 몬스터를 깨운 상태!
“좋아. 연락하러 가볼게.”
“힘내세요.”
김수아의 응원을 들으며 배장욱은 문 밖으로 걸어나갔다.
‘아. 왜 이렇게 불안할까?’
아무리 응원을 들어도 사라지지 않는 불안함!
* * *
“맞잖아! 김태현!”
“그래. 맞아.”
“그런데 나보고 이상한 사람 취급이나 하고! 너 진짜!”
에반젤린은 억울해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나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난 또 작업 거는 줄 알았지.”
“#&*&@#$^*@!”
에반젤린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다가 멈췄다.
태현을 상대하면서 휘둘리는 건 스스로 손해만 보는 일!
태현의 말에 휘둘리지 않아야 했다. 에반젤린은 깊게 심호흡을 했다가 내쉬었다.
“후우…… 후우…….”
“그러면 우리는 갈까?”
“내 말 아직 안 끝났거든?!”
에반젤린은 기껏 가라앉힌 마음이 다시 들끓는 걸 느꼈다.
“그보다 이게 대체 뭐야?! 김태현은 분명…….”
에반젤린은 머리를 감싸고 생각에 잠겼다. 그녀가 방송을 제대로 보지는 않았지만, 방송을 본 다른 플레이어들의 말에 따르면, 김태현은 분명 뛰어난 실력에 차갑지만 따뜻한 속마음을 가진 그런…….
‘어떤 자식이 그런 헛소리를 퍼뜨린 거야?!’
“분명 뭐?”
태현이 묻자 에반젤린은 입을 다물었다. 태현 앞에서 태현의 칭찬을 해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김태현은 분명…… 잘생겼다고 들었다?”
“김태현은 분명…… 성격이 좋다고 들었다?”
에반젤린이 입을 다물자 다른 사람들이 추측해서 떠들기 시작했다. 태현은 걷다가 멈췄다.
“그러면 너희들은 평소에 내가 못생기고 성격이 안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군?”
‘아차!’
말을 꺼낸 케인은 사색이 되었다. 대장장이들은 재빨리 케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케인씨가 그렇게 말했어요!”
“야, 이 자식들아! 나 혼자 한 거 아니잖아!”
케인이 필사적으로 변명하고 있는 동안, 태현은 루포와 진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태현 님. 그런데 말입니다…….”
“……?”
“아키서스의 권능은 어떻게 된 겁니까?”
“그러게 말이다.”
태현도 지금 그걸 생각하고 있었다.
이 마르덴 고성 주변으로 거대한 퀘스트가 생기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강력한 보스 몬스터, 깨어난 마르덴 후작.
이제 군대를 몰고 이 주변을 박살을 내기 시작할 테니 다른 플레이어들도 알게 될 것이다.
게다가 에랑스 왕국은 플레이어들도 많은 왕국이니…….
초기 진압에 실패하면 피해는 엄청나게 커질 것!
문제는 이 퀘스트 어디에 <아키서스의 권능>이 들어가 있을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건 아무리 봐도 저 에반젤린 같은 직업, 그러니까 <고대 뱀파이어의 후예>를 위한 퀘스트!
“태현 님…… 이런 말은 하기 조심스러워서 하지 않았지만…….”
“말하지 마라.”
“혹시…… 저 에드안이라는 놈이 잘못 안 게 아닐까요?”
“말하지 말라니까!”
태현도 부정하고 있었지만 내심 느끼고 있었던 그것!
바로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져 있던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정보를 가져온 게 에드안이니 이걸 부정할 수 없는 게 슬펐다.
“뭐? 권능?”
옆에서 따라 걷던 에반젤린이 루포와 태현의 대화를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태현은 시치미를 뗐다.
“잘못 들은 거 같은데.”
“방금 권능이라고 하지 않았어?”
“몸이 허한 거 같군. 혹시 그 불운 효과 때문에 환청도 들리는 거 아냐?”
뻔뻔하고 태연하게. 만약 태현과 처음 만났을 때의 에반젤린이었다면 그냥 속아 넘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에반젤린은 그 짧은 시간에 엄청나게 성장을 한 상태!
태현한테 하도 시달려서 이제 이런 걸로 흔들리지 않았다.
“아냐. 제대로 들은 거 같아.”
“흠. 너는 제대로 들었다고 하는데, 나는 말한 적이 없으니까. 법정에서 봐야겠네.”
“법정은 무슨 법정?!”
“말이 서로 다르면 고소해서 법정에서 보는 게 미국식 아니었나? 아니면 말고.”
“그러니까 나는 미국인이 아니라고!”
에반젤린은 대답하다가 멈칫했다. 또 태현의 말에 휘말려서 이상한 곳으로 가고 있었다.
“너, 또 화제를 돌리려고!”
“쯧.”
에반젤린은 혈압이 오르는 걸 참고서 태현을 보았다. 이런 말에 휘말려서 손해를 보는 건 그녀뿐이었다. 휘말려서는 안 됐다.
“흥, 흥. 권능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걸 말해주려고 했었는데. 됐어. 말 안 해줄 거야!”
에반젤린은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돌렸다. 하도 당한 게 많아서 갚아주지 않으면 속이 시원하지 않았다.
탁-
그러자 태현은 에반젤린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에반젤린은 순간 기대했다.
설마 태현이 이제까지 했던 일들을 사과하고 그녀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일까?
“흐, 흥. 부탁하면 말해줄 수도…….”
“지금 내가 아농 백작한테 가는데.”
“……?”
“아는 거 다 말 안 하면 넌 두고 간다. 나 없이도 네가 혼자 백작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
세상에 어쩌면 이렇게 치사할 수가! 에반젤린은 기가 막혀서 부들부들 떨었다.
“그, 그냥 내가 대단하다고 인정하고 부탁하면 되잖아! 꼭 협박을 해야겠어?!”
“뭐야. 그거면 돼? 알겠어. 넌 대단해. 정말로 대단해. 그러니까 좀 알려달라고.”
마치 교과서를 읽는 것 같은 ‘대단해’였다.
‘진짜 치사하고 더러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