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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52화 (152/1,826)

§ 나는 될놈이다 152화

“선배님. 선배님. 저분은 왜 저러시는 겁니까?”

정수혁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물었다. 태현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 뭐시냐…… 중2병 같은 거지. 자기 오른 눈에 통제할 수 없는 힘이 있다거나…… 가까이 오면 다친다잖아.”

“아. 그런 거군요! 왼손에 드래곤이 잠들어 있다거나 그런 것도 해당되는 겁니까?”

-나를 말한 건가?

-용용이 너 아냐.

드래곤 이야기가 나오자 용용이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래. 그런 것도 들어가겠지.”

그러자 정수혁도 불쌍한 사람을 보는 눈으로 전신 갑옷 플레이어를 쳐다보았다.

“괜히 엮여서 좋을 게 없으니까 무시하고 지나치자고. 내버려 두면 문제없을 거야.”

“과연 선배님! 대단하십니다!”

이런 걸 말하고서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아야 하나 싶었지만, 태현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나 전신 갑옷 플레이어는 아닌 모양이었다.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헉. 선배님. 이번에는 왜 저러는 거죠?”

“쉽지. 저러는 건 보통 어디가 아프거나 화가 난 건데, 화가 날 이유가 없으니까 어디가 아픈 거겠네.”

“화난 거거든?!”

전신 갑옷 플레이어는 그렇게 외치며 일어섰다.

“사람이 기껏 배려해 줘서 다가오지 말라고 말해줬더니 뭐가 어쩌고 저째?! 난 아픈 사람이 아냐!”

“저희는 아프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조금 다를 뿐…….”

“그게 그 소리잖아! 더 기분 나쁘거든 이 자식들아?!”

정수혁의 어설픈 배려는 상대를 더 기분 나쁘게 한 것 같았다. 전신 갑옷 플레이어는 씩씩대더니 말했다.

“좋아. 난 분명히 경고했어. 못 믿겠으면 가까이 다가와 보시지!”

태현은 그걸 보고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너 설마 가까이 다가갔는데 덤벼놓고서 ‘이, 이건 내가 한 짓이 아니야! 내 어둠의 인격이 한 짓이야!’ 이런 소리 하면 네 어둠의 인격이 죽을 때까지 팬다.”

“……그런 짓 안 하거든?”

상대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물었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그런 짓을 해?”

“의외로 많은데.”

태현은 판타지 온라인 1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PK를 주로 하는 악 성향 플레이어들은 보통 뻔뻔하고 양심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플레이어들은 보통 불리해지고 도망칠 곳이 없어지면 정말 상상도 못 한 짓을 하기 시작했다.

-집에 늙으신 어머니와 나만 보고 있는 아내가 있는…….

-그런 놈이 게임을 하고 있냐?

-사, 사실 내가 분노조절장애가 있어서 이게 컨트롤이 안 돼.

-그래. 오늘 컨트롤이 될 때까지 맞자.

-나는 사실 다중인격……!

-그래. 그래. 인격이 합쳐질 때까지 맞으면 되겠네!

게임에서 잔뼈가 굵은 태현도 들으면 놀랍고 새로운, 창의성 넘치는 변명들!

물론 그런 변명이 통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태현은 만약 저 전신 갑옷 플레이어가 덤비고서 그런 변명을 한다면 입도 뻥긋하지 못하도록 패기로 마음먹었다.

한 걸음, 두 걸음-

태현이 가까이 다가오자 전신 갑옷 플레이어는 팔짱을 꼈다. ‘어디 한 번 당해봐라’ 같은 느낌이 전신에서 풍겼다.

그리고 바로 앞.

태현은 전신 갑옷 플레이어 앞에서 멈춰섰다.

“어때? 이제 좀 알겠지?”

“……?”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신 갑옷 플레이어는 지금 진심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뭐야?’

“뭐 아무것도 안 떠?”

“안 뜨는데.”

“말도 안 돼! 손 줘봐.”

태현은 손을 내밀었다. 전신 갑옷 플레이어는 투박한 장갑을 낀 손으로 태현의 손을 붙잡았다.

“아직도 아무것도 안 떠?”

“흠. 네 머리 위에 ‘나는 중2병입니다’라는 메시지창은 뜰 거 같기도 한데…….”

“아니라고 이 자식아!”

전신 갑옷 플레이어는 정말 억울하다는 듯이 가슴을 쳤다. 그러고는 정수혁을 쳐다보았다.

“너! 너도 이리 와봐!”

“예? 저 말입니까?”

정수혁은 당황했지만 태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가까이 다가갔다.

그 순간 뜨는 메시지창!

[강력한 불운에 휘말립니다.]

[앞으로 하는 모든 행동에 불운의 영향을 받습니다.]

“?!”

정수혁은 놀라서 눈을 깜박였다. 처음 보는 메시지창이었다.

“이게 뭡니까?”

“그래. 저게 정상이지!”

전신 갑옷 플레이어는 신이 나서 정수혁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반응도 없는 태현과 달리 아주 좋은 리액션을 보여주는 정수혁!

“너도 메시지창 떴잖아! 떴으면서 안 뜬 척하지 말라고!”

“안 떴는데. 수혁아, 넌 뭐가 떴는데 그러냐?”

“강력한 불운에 휘말렸다고…….”

“……?”

태현은 의아해했다. 강력한 불운에 휘말리다니.

보통 저런 건 어떤 던전의 특수 효과거나, 보스 몬스터가 정말 강력한 마법을 걸거나 했을 때 뜨는 메시지창이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지금 상황에서 저런 게 뜬다고?

“그래! 저러니까 내가 오지 말라고 한 거야!”

전신 갑옷 플레이어는 스스로가 중2병이 아니라는 게 증명된 것이 매우 기쁜 것 같았다. 플레이어는 태현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도 알았으면 안 뜬 척하지 말고 물러서!”

“척이 아니라 안 떴다고.”

“거짓말하지 말라니깐! 스킬 하나만 써도 답이 나오거든? 거기 너! 아무 마법이나 약한 거 있으면 써봐!”

정수혁은 자신한테 화살이 돌아오자 깜짝 놀랐다.

“해봐. 궁금하긴 하네.”

-하급 비전 화살!

정수혁은 빠르게 마법을 외웠다. 불투명하게 반짝이는 마법 화살이 날아가다가…….

전신 갑옷 플레이어의 몸에 작렬!

파아앗!

“?!”

정수혁은 깜짝 놀라서 입을 벌렸다.

‘저기로 조준 안 했는데?!’

그걸 본 태현이 감탄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 너 의외로 꽤 하는구나? 실수인 척 공격을 하다니…….”

“아닙니다, 선배님! 저 저기로 조준 안 했습니다!”

정수혁은 억울해서 손을 흔들었지만 태현은 믿어주지 않았다.

“꽤…… 꽤 하네.”

그사이 전신 갑옷 플레이어는 갑옷을 툭툭 털어내더니 말을 시작했다. 마법 스킬을 맞은 건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꽤 레벨이 높나 본데.’

태현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 던전에서 혼자 솔플을 하는 것부터가 실력을 증명했다.

“원래 마법이 실패하거나 자기한테 쏘아지겠지만…… 그 와중에 운이 좀 좋았나봐. 어쨌든 알겠지? 불운한 상태에서 마법을 쓰면 그렇게 통제가 안 되는 거야.”

전신 갑옷 플레이어는 그렇게 말하고서 태현을 가리켰다.

“그러니까 너도 스킬이나 마법을 쓰면 거짓말을 못…… 어?”

태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망치와 모루를 꺼낸 다음 평범한 롱소드 하나를 들고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수리가 완벽하게 될 때 나타나는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짜-잔.”

“?!?!?”

* * *

에반젤린.

전신 갑옷 플레이어의 이름이었다. 그녀는 나름 잘나가는 플레이어였다.

길드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친한 파티 몇 개가 있어서 퀘스트를 깰 때 곤란한 적은 없었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느 날 동굴에서 얻은 직업 전직 퀘스트를 덜컥 수락한 게 문제였다.

직업 전직 퀘스트는 무려 영웅 직업! 전설 직업을 제외한다면 얻을 수 있는 최상의 직업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에반젤린은 노력하고 노력해서 전직 퀘스트를 깨는 데 성공했다.

<고대 뱀파이어의 후예>. 이름만 들어도 멋진 직업이었다. 에반젤린은 뛸 듯이 기뻐했다.

직업 성능을 확인해 보니, 성능도 좋았다. 엄청나게 올라간 HP와 MP, 강력한 패시브 스킬들, 거기에 바로 주어지는 직업 액티브 스킬들까지…….

너무 좋아서 이상할 정도!

전설 직업도 이 정도로 성능이 좋지는 않을 것 같았다.

스탯이면 스탯, 스킬이면 스킬, 모든 면에서 다 무지막지한 직업이었다.

행운만 제외하고는.

‘어라?’

에반젤린은 순간 그녀가 잘못 본 줄 알았다.

행운 : -999

‘……?’

다른 스탯들도 올라가서 설마 행운도 999까지 올라갔나? 했는데, 아니었다.

999가 아닌, 마이너스 999!

마이너스 스탯은 처음 보는 그녀였다.

“이게 뭐야?!”

<고대 뱀파이어의 저주>

행운이 –999로 고정됩니다.

간단한 패시브 스킬이지만 그 내용은 무시무시했다.

‘아…… 아니, 행운은 어차피 쓰레기 스탯이고…… 다른 건 정말 좋으니까…… 이 정도 능력이면 어지간한 다른 직업은 비교도 안 될 거고…… 그래. 괜찮아! 행운은 없어도 상관없어!’

그러나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알 수 있었다.

* * *

[강력한 불운으로 롱소드의 내구도가 빠르게 하락합니다.]

“야!”

[강력한 불운으로 갑옷이 파괴됩니다.]

“야!!!”

[강력한 불운으로 대장장이가 성공적으로 수리를 하지 못합니다. 장비가 파괴됩니다!]

“야!!!!!”

에반젤린은 행운이 얼마나 중요한 스탯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0일 때에는 상관이 없지만, 마이너스로 내려가는 순간 그 소중함이 정말 강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장착하고 있는 장비는 내구도가 빠르게 내려가거나, 아니면 심지어 내려가기도 전에 불운한 사고로 부서졌다.

수리를 할 때에도 대장장이 옆에 있으면 대장장이가 실수로 장비를 부숴버렸다. 당연히 아무 플레이어나 쓸 수 있는 <긴급 간이 수리 세트> 같은 아이템들은 쓰지도 못했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파티를 맺으면 그 불운은 파티원한테까지 마수를 뻗었다.

에반젤린 옆에 있으면 스킬은 스킬대로 실패하고 아이템은 아이템대로 깎이고 퀘스트 보상은 낮게 나오는, 그야말로 가능한 불운의 총연속!

<고대 뱀파이어의 권능-의지>

스킬을 실패하지 않습니다.

에반젤린은 처음 봤을 때 ‘이 스킬이 뭐지’ 했었는데,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이런 패시브 스킬이라도 없으면 그녀는 스킬을 사용하는 게 불가능한 것!

덕분에 다른 파티원들이 넘어지고 스킬 실패하고 구르는 동안 그녀는 혼자 잘 싸울 수 있었지만, 당연히 파티원들은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저리 가! 쉿쉿!

-저기…… 나도 널 정말 좋아하는데…… 네가 오면 우리가 다 망해…….

-가, 가까이 오지 마! 나 이미 검 두 개 부숴먹었다고! 으헝헝헝!

알고 있던 친한 파티들도 결국 에반젤린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도망!

결국 그때부터 에반젤린은 강제로 혼자 플레이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친한 사람들과 같이하는 걸 즐기던 그녀로서는 뼈아픈 일이었다.

그래도 직업 자체는 엄청나게 강력했기에 어떻게든 솔플이 됐다.

부서지는 장비는 파괴 불가능 옵션이 달린 장비를 찾아서 끼고, 대장장이 기술 같은 제작 관련 스킬에는 얼씬도 하지 않고…….

그야말로 수라의 길!

그리고 지금, 그녀는 마르덴 고성에 와있었다. 직업 퀘스트 때문이었다.

* * *

“흑흑…… 그런 일이 있었다니…….”

이야기를 들은 정수혁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훌쩍였다. 태현은 그걸 보고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쳐다봤다.

“방금 이야기 어디가 슬픈 거지?”

“선배님! 직업을 잘못 가졌다가 다른 사람들이랑 어울리지 못하고 강제로 혼자 플레이하게 됐다고 했잖습니까! 슬프지 않아요?”

“안 슬픈데. 혼자 플레이하는 게 뭐가 어때서.”

타고난 아싸의 본성!

아싸로 사는 것에 익숙한 태현은 에반젤린의 슬픔에 공감하지 못했다.

“직업도 좋잖아? 잘됐네.”

“잘 되긴 뭐가 잘 돼!”

에반젤린이 울컥해서 말했다.

“나는 지금 친구들도 다 같이 못 만나고 이러고 있는데…… 진짜…… 뱀파이어 만나기만 하면 다 갚아줄 거야!”

“……?”

태현은 지금 잘못 들었나 싶었다.

“뱀파이어라고?”

“내가 말했잖아. 여기 직업 퀘스트 깨러 왔다고.”

“그건 나도 마찬가진데.”

“……?”

한 곳에 직업 퀘스트가 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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