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49화
그러거나 말거나 태현은 묵직하게 망치를 휘둘러댔다. 한 번 닿을 때마다 퍽퍽 튕겨 나가니 빠르게 길이 만들어졌다.
본의 아니게 대(對) 언데드 결전 병기로 활약하고 있는 고대의 망치!
-울부짖는 영혼!
마르덴 언데드 창병들이 스킬을 쓰자 반투명하고 더러운 창날이 회전하며 태현 파티를 향해 날아왔다.
맞는 순간 시야가 가려지고 이동 속도가 내려가는 디버프 저주!
김지산은 눈을 질끈 감았다.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
“뭐하냐! 안 뛰고!”
“으아앗! 으아아앗!”
살았다는 것에 놀라기도 전에 태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지산은 최선을 다해서 달렸다.
그새 따라붙은 언데드들이 발을 묶기 위해서 닥치는 대로 스킬들을 퍼부었지만 그 스킬들은 전부 빗나갔다.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아까 태현 파티를 비웃던 플레이어는 슬쩍 시선을 돌렸다.
‘지금쯤 허우적거리며 전멸하고 있으려나?’
“?!?!”
플레이어의 눈이 크게 떠졌다.
뒤에서 창을 푹푹 찔러대는데 무시하고 빠르게 고성 앞까지 달려 나가는 태현 파티!
“저게 뭐야?!”
그의 외침도 허무하게, 태현 파티는 고성의 성문 안으로 빠르게 들어가 버렸다.
* * *
“역시. 성안까지는 안 쫓아오나 보군.”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추측이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덕분에 태현 파티로 인해 생긴 언데드 몬스터들은 밖에 있는 다른 파티를 향해 천천히 전진!
“#@!&$#&…….”
밖에서 그들을 욕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태현은 고성 안을 둘러보았다.
철컥-
“뭐하냐?”
옆에서 에드안이 기계 의수를 철컥거리며 소리를 냈다. 드물게 에드안이 의욕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물론 태현에게는 ‘이놈이 또 뭔 사고를 치려고’ 싶을 뿐!
“태현 님. 여기가 어딥니까?”
“고성이지.”
“고성, 성 아닙니까! 후후. 성 하면 제가 전문가 아니겠습니까?”
도적의 피가 끓어오른다!
에드안은 손가락을 꿈틀거리며 그렇게 말했다. 원래라면 믿음직스러웠겠지만, 태현은 이미 몇 번의 퀘스트로 인해 <펠마스와 떨거지들>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상태였다.
차가운 눈빛!
“왜…… 그렇게 쳐다보십니까?”
“아니. 잡혀서 팔 잘린 놈을 믿어도 되나 싶었지.”
“그건 딱 한 번이었습니다! 그 다미아노 1세 놈이 비겁하게 함정을 판 거란 말입니다!”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세 번 되는 거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저한테 시간을 주신다면 제가 이 고성을 낱낱이 파헤쳐드리겠습니다!”
“그러다가 발견한 거 빼돌리기도 하고?”
“헉!”
속마음을 들킨 에드안은 움찔했다. 태현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빼돌리다가 들키면 자른다.”
구체적으로 어디인지 말 안 하는 게 더 위협적으로 들렸다. 에드안은 침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새 파티네?”
“에이씨. 안 그래도 경쟁 많은데…….”
그러는 사이 고성 1층의 중앙 지하 계단에서 한 파티가 걸어 올라왔다. 그들은 태현 파티를 보고 투덜거렸다.
경쟁자가 늘어봤자 좋을 게 없는 상황.
“야. 빨리 갔다 오자.”
“빨리 갔다 오고 싶어도 그게 되냐? 저것들 진짜 지긋지긋해. 가속 스킬 한 번 썼다고 네 마리가 동시에 생기는 게 말이 되냐?”
그들은 태현 파티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들리는 비명 소리!
아직 태현이 데리고 온 몬스터들이 주변에 어슬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으아아악!”
“뭐야 저것들?!”
조금 지나자 방금 나갔던 파티는 허겁지겁 다시 고성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차이점이 있다면 인원이 한 명 줄어든 것!
“아오…… 뭐야…… 왜 갑자기 몬스터가 저렇게 늘어났지?”
태현은 모르는 척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처구니없게 동료를 한 명 잃은 파티의 플레이어들은 머리를 긁적이며 떠들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좀 기다려볼까?”
“기다린다고 저놈들이 가는 게 아니잖아.”
“다른 파티 올 때까지 기다리는 건?”
“언제 올 줄 알고 기다려? 너무 막연한 거 아냐?”
“그러면 어떻게 해? 우리 지금 포션도 거의 다 썼고, 장비도 수리해야 한다고. 하필이면 사제인 데니스가 죽어서…….”
악재가 겹친 상황.
여러모로 한 번 재정비를 해야 하는데, 재정비를 하려면 저 밖의 몬스터들을 뚫고 나가야 했다.
문제는 방금 전혀 생각지 못한 기습을 받아 사제가 죽어버린 것!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그때 뒤에서 들리는 친절한 목소리.
바로 태현이었다.
“?”
“말하는 걸 들어보니까 곤란하신 것 같은데. 아닌가요?”
케인은 옆에서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태현이 저렇게 친절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하다니. 가식적인 걸 넘어서 소름이 끼쳤다.
“어…… 맞는데요. 그런데 누구세요?”
“하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도 퀘스트를 깨러 왔거든요.”
경계의 시선!
태현 일행이 전원 다 복장과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런 건 경계의 요소도 아니었다.
그들이 태현 일행을 경계하는 건 퀘스트의 경쟁자로 느껴지기 때문!
그걸 알기에 태현은 친절한 태도로 일관했다.
“그런데 간신히 들어오기는 했는데 너무 어렵네요. 저희 수준에 안 맞는 걸 고른 거 같기도 하고…… 아. 어쨌든 곤란하신 거 같은데, 도와드릴까요?”
“뭘 어떻게요?”
“저희도 퀘스트 깨러 와서 아이템은 많거든요. 그리고 여기 대장장이도 있어요.”
“……!”
대장장이가 있다는 말에 파티원들의 눈이 번쩍 빛났다. 지금 그들은 오랜 싸움으로 인해 아이템 내구도가 아슬아슬했던 것이다.
“원하신다면 수리도 해드릴 수 있고, 남는 아이템도 팔아드리죠.”
“정…… 정말요?”
“네. 서로 돕고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가식의 절정!
뒤에서 듣고 있던 케인은 이제 두려운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대체 뭔 끔찍한 짓을 하려고 저렇게 잘해주는 걸까?
“대신 이 고성에 대해 아시는 거 좀 말해보시죠.”
“어…… 그건 좀…….”
“뭐, 말 안 하셔도 되는데 말하시는 거에 따라 저희가 도와드리는 것도 좀 달라질 수 있겠네요.”
목소리는 여전히 친절했지만 내용은 전혀 친절하지 않았다.
* * *
마르덴 고성 던전은 지하 던전이었다. 높게 치솟은 고성 때문에 착각하기 쉬웠지만, 던전을 깨기 위해서는 1층 중앙의 지하 계단 아래로 내려가야 했다.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지옥 같은 미로의 연속!
다른 파티들이 다 왔다 갔다 하는 이유가 있었다. 워낙 꼬이고 복잡한 길이다 보니 한두 번으로는 클리어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저희도 지금 밖으로 나가서 재정비하고 오려는 참입니다. 근데 갑자기 성문 앞에 몬스터들이 몰려 있어서…….”
“그래요? 저희가 올 때는 안 그랬는데.”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하게 하는 거짓말.
“어쨌든 필요하신 포션 있으면 말해주시죠. 장비는 저 대장장이들이 해드릴 거고.”
태현이 직접 만지고 싶었지만 참았다. 태현이 만졌다가는 너무 눈에 띌 테니까.
이런 건 비교적 평범(?)한 대장장이들인 저 셋이 맡아야 했다.
“감사합니다!”
태현은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상대 파티의 파티장이 기쁜 얼굴로 손을 잡으려고 했다.
슥-
“?”
“선불입니다.”
악수를 하는 줄 알았던 파티장은 민망한 얼굴로 손을 거뒀다.
“……아니…… 도와주신다고…….”
“여기까지 와서 팔아주는 거 자체가 도와드리는 거 아니겠습니까? 왜요. 싫어요?”
“아, 아닙니다.”
태현 일행의 장점 중 하나는 그 무지막지한 가방의 용량에 있었다. 세 대장장이를 짐꾼으로 쓰는 기발한 발상!
덕분에 소모성 아이템은 넘쳐났다.
* * *
“이건 개조된 은제 화살(폭발할 수 있음)입니다.”
“개조된 은제 화살이요? 살게요! 주세요!”
개조된 은제 화살(50):
공격력 15, 은으로 인해 언데드에게 추가 피해.
뛰어난 대장장이가 손을 본 화살이다. 안에 개조를 통해 화살촉뿐만 아니라 화살의 속도 자체를 올렸다.
(추가 옵션) 폭발할 수 있음
“……!”
궁수 플레이어는 화살 옵션을 보고 깜짝 놀랐다. 무슨 개조를 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보통 은제 화살보다 더 강력한 공격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추가 옵션을 보지 못하고 뛸 듯이 기뻐하는 궁수를 보자 태현은 코밑을 쓱 훔쳤다.
마치 고대의 망치를 처음 보고 ‘이거 사기 아이템 아니냐?!’ 하고 좋아했던 그의 모습 같아서!
‘추가 옵션을 보지 못하는 너의 스킬을 원망해라.’
태현은 이제 다른 플레이어들이 못 보게 옵션을 다는 제작법을 다룰 수 있었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높거나 다른 특수 스킬이 있으면 발각되지만, 어지간하면 쓰기 전에는 들키지 않을 것이다.
[기계공학 스킬로 만든 아이템을 구매자가 매우 만족해합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큰 폭으로 오릅니다.]
‘크…….’
기계공학 스킬은 대장장이와 관련이 깊은 제조 계열 스킬. 이렇게 만들어주고 만족시키는 것으로 보너스를 받을 수 있었다.
아이템이 폭발하면 뭐 어떤가! 고객만 만족하면 그만!
땅, 땅, 땅, 땅-
그 옆에서는 대장장이들이 열심히 땀을 흘리며 망치를 두드리고 있었다.
파티원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대장장이들을 쳐다봤다. 대장장이의 실력이 형편없다면 아이템이 위험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현이 세 얼간이 취급하는 것과 별개로, 세 대장장이의 실력은 꽤 빠르게 늘고 있었다.
처음 태현과 만났을 때와 비교한다면 하늘과 땅 수준!
아무리 게으름을 피워도(태현 수준에서) 태현이 갈구고 굴리다 보니 스킬이 늘어난 것이다.
“태현 님, 여기 골드입니다.”
“좋아. 잘했어.”
루포가 파티원들한테서 걷어온 골드 주머니를 건네자 태현은 바로 품속에 집어넣었다.
피땀 흘려 일하는 대장장이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상황!
“골드가 필요하시면 상단에서…….”
“상단은 상단이고, 그걸 떠나서도 골드는 좀 많이 모아놔야겠어.”
태현은 직감하고 있었다. 앞으로 골드가 들어갈 일이 많다는 것을.
‘특히 영지가…….’
돈 먹는 애물단지가 될 것 같은 예감!
현질을 하지 않는 태현이었기에 게임에서 최대한 골드를 많이 모아놔야 했다.
지금도 많이 모은 수준이었지만 길드 단위로 움직이면서 본격적으로 골드를 긁어모으는 플레이어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흠…… 골드를 좀 모아야 하는데 말이야…….’
이것저것 많이 했지만, 골드는 그렇게까지 열심히 모으지 않아 채 3천 골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열심히 모으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인 게 대단한 거였지만, 태현은 만족하지 않았다.
크게 움직이다 보면 1만 단위 골드도 우습게 나갈 테니까.
만약 필요한 일이 있는데 골드가 부족하다면 그 얼마나 굴욕이겠는가. 특히 아버지 김태산이 안다면 옆에서 대놓고 비웃을 것이다.
-아이고! 우리 아드님이 골드가 부족하시다네! 그런데 어쩌나! 현질을 안 하는데!
굳이 새로 겪지 않아도 서로가 어떻게 도발하는지 너무 잘 알았다.
그렇게 파티와의 거래가 일단락되자, 상대 파티는 준비를 마치고 성문으로 떠나려고 했다.
많이 뜯기고 뜯겼지만 일단은 성공적인 거래! 서로가 만족하고 있었다. 아직은.
“잠깐, 지하 던전이면 위에는 뭐가 있죠?”
“위에요? 위에는 성 위에는 아무것도 없던데요. 그냥 폐허였어요.”
“몬스터도 안 나오고요?”
“네. 없던데요.”
태현은 파티원들의 표정을 빠르게 훑었다. 파티장이 거짓말을 하는 거라면 어떻게든 한 명은 티가 날 테니까.
그러나 모두 별 반응이 없었다.
진짜라는 뜻!
‘이런 성을 지어놓고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에드안.”
“네. 태현 님!”
“내가 밑을 도는 동안 넌 위를 뒤져라.”
“후후. 그게 제 전문 아니겠습니까.”
“만약 아무것도 못 찾아오면 넌 앞으로 펠마스 밑이다.”
“……!”